가. 소박한 삶
‘소박한 삶’이라는 책 제목이 흥미롭다. 그것이 현대적인 의미를 가진다면 별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가이우스 무소니우스는 1세기 로마에서 살았던 철학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은 바로 그 로마의 1세기를 배경으로 한다고 봐야 한다.
그때의 시선에서 정말 그의 삶이 소박했을까? 그때의 소박함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욕심 없이 살면 그것이 소박한 삶일까? 아니면 그저 끼니를 거르지 않을 정도의 삶이라는 말일까?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소니우스가 추구했던 철학은 인간이 행동 윤리에 철저히 초점 실천을 강조했다. 우리 식으로 말해 실사구시의 학문으로 볼 수 있을 법하다. 그러므로 그의 철학은 사람들의 일상적 삶에 닿아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분명 그의 삶은 소박해 보인다.
권력에의 의지보다는 올바른 삶에 무게를 두고 비록 왕 앞에서도 자기가 믿는 바를 분명히 말 할 수 있는 철학자로서의 결기가 그런 소박함을 뒷받침한다. 대체로 역사는 이러한 지식인들에게 설 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가 유배를 거듭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의 실사구시를 추구한 철학과 척박한 유배생활을 극복해 냈다는 점에서 언뜻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 선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그의 철학하는 왕이 결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백성의 삶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당대에 스토아 철학자로 꼽히는 사람이 많았지만 무소니우스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라는 고결한 가치를 추구하며 실제 삶에서 실천하였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그를 ‘로마의 소크라테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무소니우스가 사람들에게 심어주려고 했던 철학은 단순한 말이나 가르침, 토론의 기술이 아니었다. 학자들만의 심오한 철학적 이론도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성찰하여 한 인간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실천을 추구하는 철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유일한 방편으로 철학을 배워야 하다고 설파했다. 그는 인간이 덕을 따르려는 본성을 타고 났다고 보았고, 도덕적인 삶을 지향하는 데 유일한 장애물은 어린 시절부터 습득된 악습ㅇ라고 보았다.
그래서 철학을 치유의 정신 예술로 간주했다. 그는 이론보다는 실천을 더 선호하면서 미덕을 행할 것을 늘 강조했다. 모든 지식은 행동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식생활과 복장, 두발, 심지어 세간살이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소박한 삶’의 실천할 것을 주장하였다.
나. 이론과 실천
이론은 무엇이 옳은 행위인지 가르치는 일이고, 실천은 그러한 이론에 따라 행동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의 습성을 의미한다. 덕을 익히는데 이론과 실천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를 두고 의문이 일었다. 무소니우스는 실천이 더 효과적이라고 여겼다.
자전거를 어떻게 타야하는지 잘 알지만 타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전거를 탈 줄 모르지만, 자전거를 잘 타는 방법을 훌륭하게 설명하지는 못해도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즐길 수 있는 법이다.
항해술을 잘 아는 사람과 항해할 줄 아는 사람이 배를 타면 당연히 항해할 줄 아는 사람이 우선시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절제와 자제의 문제에서도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모든 행위가 절제되고 자제된 것이 훨씬 낫다고 무소니우스는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론은 실천과 연관되어 있으며, 실제적 수행이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제대로 해낼 수 없으므로 이론이 우선한다. 그러나 실천은 인간을 행동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영향을 미치므로 이론보다 훨씬 효과적이라 본다.
스토아 철학은 확실한 도덕을 낳는 행동양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무소니우스 또한 덕은 이론적인 지식일 뿐 아니라, 의술이나 음악적 기예와 마찬가지로 실제적 수행이라고 했다. 즉 훌륭한 인간은 덕의 이론뿐만 아니라 이를 열과 성을 다해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이론과 실제를 함께 훈련해야 한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종합체이기 때문이다. 쾌락을 멀리 하고, 고난을 회피하지 않으며, 목숨에 집착하지 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며, 재물이나 돈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여자를 재산으로 취급하던 시대에 그는 성평등을 주장하였고, 정략결혼이 판을 치던 시대에 결혼에 대한 현대적 관점을 견지하기도 했다. 아울러 왕도 철학을 공부해 한다고 역설하는 장면에서는 중국의 맹자가 슬그머니 떠오르기도 한다.
다. 최초의 미니멀리스트
무소니우스는 먹거리 문제는 절대 하찮은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절제의 시작과 기본은 먹고 마시는 것을 자제하는 데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먹거리는 비싼 것보다 저렴한 것을, 희귀한 것보다 흔한 것을 먼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땅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나오는 먹거리 즉 곡식과 그 외 영양분을 줄 수 있는 것들과 가축에서 얻는 살코기가 자연에서 얻는 먹거리다. 이러한 먹거리 가운데서도 불로 조리하지 않고 당장 먹을 수 있는 채소, 우유, 치즈, 꿀 같은 것이 유용한데 가장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육류는 훨씬 덜 고상하고 야생 동물에게 더 적합한 먹거리라고 설명한다. 육류는 소화가 잘 안 되며, 사색과 추론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육류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탁하여 정신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마치 비건주의자 같기도 하다.
게다가 인간은 지상이 모든 창조물 가운데 신과 가장 흡사한 존재이니 먹는 것도 신과 가장 흡사해야 한다. 신들은 지상에서 제사로 피워 올리는 향과 물이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도 그것에 가장 흡사하게 가볍고 순수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정신이 순수하고 담백할 테고, 그렇게 될 때 가장 고결하고 현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산해진미는 인간을 타락시킬 뿐이다. 인간을 창조한 신은 인간에게 쾌락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게 하려고 먹을 것을 주었다.
그런데도 인간은 쾌락을 위해 산해진미를 준비하며 재산을 탕진한다. 그러나 가장 저렴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 제일 건강하다. 주인보다 노예가, 도시 사람보다 촌 사람이,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건강하고, 추위와 더위, 수면 부족 등과 같은 모든 고난을 더 잘 견딘다.
음식은 건강과 힘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삭사할 때에는 절제와 중용에 유념하며 특히 일반적 악덕인 식도락과 허겁지겁 먹는 탐욕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의복도 비싸거나 과도하지 않은 것이 최선이라고 보았다.
옷과 신발 역시 정확히 갑옷과 똑같다. 즉,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몸을 보호할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도 추위와 극심한 더위를 막아 주고, 필요할 경우 태양과 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필요만 충족되는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집안의 세간살이 또한 생활에 필요한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자꾸 세간을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으로 늘려간다. 세간살이는 취득, 사용, 보존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어떤 것이 좋고 나쁜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소니우스의 말에 따르면 ‘철학 공부란 옳고 타당한 것을 이성으로 알아내어, 그것을 행위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에게는 시대를 넘어 정의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었다고 느껴진다. 덧붙여 그야말로 최초의 미니멀리스트의 삶 그대로다.
그는 통치자와 시민이 파멸하는 원인은 모두 방탕이라고 하며,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절제하게 만들 수 없으며, 절제력을 키우는 데에는 철학만 한 학문이 없다고 보았다. 그의 시각에서 오늘을 보면 정신개조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