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 신부에게 미사는 어떤 의미인가?
한번은 비오 신부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신부님, 미사는 신부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비오 신부가 대답했다.
“예수님과의 완전한 일치.”
비오 신부의 미사는 사실 그러했다.
골고타에서의 제물, 교회의 제물, 최후만찬의 제물인 동시에
우리들을 바치는 제물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미사 때 제대 주위에는 우리 외에 또 누가 있습니까?”
“제대 주위에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서 있지요.”
“신부님, 성모님께서도 미사 때 거기 계시는지요?”
“어머니가 아들에게 무관심할 수 있겠소?”
비오 신부가 1912년 5월에 쓴 편지에는 성모님이 그를 제대로 인도하셨다는 말이 나온다.
틀림없이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께 하신 것처럼 비오 신부를 대하셨을 것이다.
성모님은 하느님과 형제들을 위한 사랑으로 오상의 몸이 된 비오 신부를 통해
예수님이 가시화된 것을 이렇게 알아주셨던 것이다.
“신부님, 저희가 미사를 어떻게 드리면 좋겠습니까?”
“사랑과 자비심을 가지고, 성모님과 경건한 여인들처럼,
그리고 성찬 예식과 피의 십자가 수난을 직접 본 성 요한처럼.”
비오 신부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쏙 빼닮은 것이었다.
그의 일상생활은 계속 이어지는 미사였다.
골고타의 수난을 넘어서, 교회와 우리의 제물인 최후만찬의 희생제물,
희망의 제물, 또 종말론적 제물이 그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성변화 뒤에 우리가 말하는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삶 전체를 오로지 미사 봉헌에 주력한 비오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해가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미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토록 값진 보배, ‘이승에서 가장 큰 보배’를 사람들이 회피하는 것을 보면
그는 참을 수 없었다.
한 성직자가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러 왔다.
볼로냐에서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오랜 시간을 거기에 머물러야 했는데
그 시간에 매일미사를 드렸으면 될 것을 쉬러 가서 그만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가 고해성사를 봤는데 비오 신부가 고백 끝에 물었다. “또 덧붙일 것있습니까? 신부님.”
“아니오, 없습니다.” 그러자 비오 신부는 아버지처럼 친밀한 어조로 말했다.
“어제 당신이 탄 기차는 아침 5시에 볼로냐에 도착했습니다.
성당 문이 닫혀 있었는데, 당신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잠시 쉬러 갔지요.
곧바로 잠이 들었는데 하도 깊이 잔 나머지 오후3시에야 깼습니다. 미사 드리기에는 너무 늦었지요.
물론 나쁜 마음은 없었겠지만 이러한 태만이 우리 주님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비오 신부의 영적 자녀들은 그가 미사와 영성체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는지 잘 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느슨한 기색이 보이면 그는 멀리서라도 그들을 불러 기강을 바로 잡았다.
한번은 영성체 차례가 된 좀 나이 든 사람에게 비오 신부가 말했다.
“당신은 한 시간 전에 식사를 했군요. 나가시오!”
이것은 공심재 규정이 3시간이었던 때의 이야기다.
비오 신부는 성체 분배 때 영혼 상태가 바르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그를 건너뛰었다.
물론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한번은 마흔쯤 되는 부인이 영성체 난간의 마지막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 앞에 온 비오 신부가 엄하게 말하였다.
“나가시오!”
울며 파랗게 질린 그녀는 성당을 나갔다.
비오 신부는 왜 그녀를 내쫓았던 것일까?
그녀 자신이 그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산 조반니 로톤도에 와서 어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면서
결혼한 몸으로 옛 애인과 자주 간통했다는 것과 이것으로 하느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것을 뉘우친다며
앞으로는 바르게 살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내심 옛 애인을 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진정한 통회나 회개 없이 고백했기 때문에 사실 이것은 고해성사로서는 무효였다.
하지만 그 고해신부는 영혼을 들여다볼 수 없었으므로 그녀의 말만 믿고 사죄를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오 신부는 속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 종일 자신과 싸우다 끝내 새 삶을 결심하여 다시 고해소를 찾았고 울면서 영성체 난간에 꿇었다. 그녀의 영혼 상태는 이제 정상이었다.
그제야 비오 신부는 그녀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었다.
우리도 영성체를 할 때, 그것이 우리의 첫 번째 또는 마지막 영성체라 생각하며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오, 비오 신부님, 저는 영성체하기에 합당치 않습니다.” 라고 했다.
이에 비오 신부가 답하기를 “합당하다는 말이 뭐요? 도대체 누가 합당하단 말입니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소! 모든 것은 은총이고 자비란 말입니다!”
비오 신부가 자신의 영적 자녀에게 보낸 편지에도 영성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충고와 경고가 보인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매일의 영성체는 놓치지 마십시오. 이에 대해 의문이 생기더라도 문제 삼지 마십시오. 내 양심을 걸고 책임집니다. 확실하게 대죄를 짓지 않았다면 영성체를 거절하지 마십시오.”
고해사제의 모델
비오 신부야 말로 고해성사를 주는 모든 사제 중에서도 뛰어나고 빛나는 모범이었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고해소에 박혀 있던 비오 신부는 자신을
‘사람들에게는 형제이고, 제대에서는 희생양이며, 고해소에서는 재판관’이라고 표현했다.
비오 신부는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생활의 재발견과 성숙을 가져다주고
죄악의 뿌리를 없애는 효과적인 치유를 거의 고해소에서 다 이루었다.
곧 제대와 고해소, 피의 봉헌과 죄 사함은 비오 신부 삶의 두 기둥이었다.
골고타의 수난 드라마에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과 똑같은 조건으로
제대의 갈바리아에 참여하고, 용서의 성사로 참회자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삶을 주었다.
그는 새로운 인간이었고 새로운 미사를 봉헌했으며 새로운 고해성사를 주었다.
1919년 6월에 쓴 편지에서 비오 신부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시간 전부를 사람들의 영혼을 사탄의 사슬에서 해방시키는데 쓰고 있습니다.
주님은 찬미를 받으소서! 수없이 많은 순례단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세계에서 이곳에 옵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한 가지, 나에게 고해성사를 보려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놀라운 고해가 많습니다!
지금은 자정을 넘은 1시입니다. 당신에게 급하게 한두 줄 쓰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19시간 동안 휴식도 없이 내 할 일을 했습니다.
내 힘을 넘어서는 일이기에 나 자신을 생각할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습니다.
내가 이성을 잃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적일 것입니다.”
비오 신부의 인내력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그 많은 시간을 고해소에 앉아 몇백, 몇천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아무도 비오 신부가 직책상 마지못해서 또는 습관적으로 고해성사를 준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어느 날 비오 신부는 온종일 고해소에서 고해성사를 주고 밖으로 나와 이렇게 말했다.
“영혼들이여, 오 영혼들이여!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기라도 한다면!”
영국에서 온 신부가 이러한 비오 신부의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마음이 속속들이 얼어붙어 버리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비오 신부는 오직 영혼들의 구원만을 생각하며 고해소에서 순교한 참으로 착한 목자이다.
마음을 읽는 능력
“나는 여러분의 얼굴을 거울을 보듯 환하게 알아봅니다.
나는 또 여러분이 말하기 전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시킨다고 내게 감추지 마십시오. 마귀는 도둑과 같습니다.
그는 정체가 탄로나는 즉시 달아납니다. 유혹이 오면 곧바로 내쫓으십시오.
유혹은 타는 불과 같아 오래 쥐고 있을수록 손가락은 더 타게 됩니다.”
어떤 여자가 산 조반니 로톤도에 와서 비오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비오 신부가 모든 걸 다 아신다지만, 그건 말도 안되요.
여기 이렇게 순례자들이 많은데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다 알겠어요?”
어느 날 아침 그녀가 가게에서 기념품을 샀다. 그녀는 기념품을 사면서
어쩌면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볼 차례가 될지도 모르니 좀 서둘러 달라고 했다.
사실 그랬다. 그런데 고해 뒤에 비오 신부가 말했다.
“당신 손가방에 들어 있는 그 물건 말이요. 그건 당신이 훔친 것도 빼앗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당신 것도 아니군요.” 그러고는 고해소 문을 닫았다.
그녀는 무슨 말인지 되묻고 싶었으나 이미 늦었다.
혹시 물건을샀을 때 무슨 잘못이 있었나 싶어 다시 그 가게에 갔다.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다시 알아봤지만 아무 이상이 없는 듯했다.
갑자기 주인이 그녀에게 거스름돈으로 받은 지폐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거슬러 받은 1000리라짜리 돈을 꺼내어 보니, 반으로 접힌 돈 안에서 500리라짜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두 사람 다 그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비오 신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비오 신부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그녀도 시인했다.
비오 신부는 정말 사람의 마음을 거울처럼 들여다보았고 영혼의 밑바닥까지도 볼 수 있었다.
비오 신부는 자신의 영적 자녀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네를 안팎으로 알고 있다네. 자네가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아는 것처럼 말일세.”
이렇게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닌 비오 신부에게 얼렁뚱땅 넘어간다거나 말을 얼버무리는 것은 통하지 않았다.
어떤 사제가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았다. “신부님. 제가 이러이러한 생각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자 비오 신부가 그 사제의 말을 가로 막았다. “그렇지 않았소.” 그러고는 그 사제가 당시에 했던 생각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 사제는 비오 신부의 말이 어찌나 정확한지 어안이 벙벙했다.
비오 신부는 사람의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따라서 고해성사를 보려는 사람들은 처신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고해 사실이 충분치 않으면 당사자의 체면을 깎아서라도 도와주려고 했고, 올바르게 죄를 고해할 때에는 힘을 보태주었다.
자기 아이를 연못에 빠트려 죽인 죄 많은 여인이 비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러왔다.
비오 신부는 그것만 빼고 다른 죄를 모두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 죄만은 그녀가 직접 고백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여인은 끝내 입을 다물었다. 할 수 없이 신부가 입을 열었다.
“저 연못을 보시오!”
깜짝 놀란 그녀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 드디어 그 사실을 고백했다.
“그걸 말했어야지!” 라고 비오 신부는 기쁘게 말하고는 “이제 사죄해 주어도 되겠군” 라고했다.
나중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 생애의 모든 것을 다 기록한다면 내 죄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분은 그 온갖 세세한 것까지 다 알고 계셨지만
이 대죄만은 내가 용기를 내어 직접 고백하도록 하셨습니다.”
- 오상의 비오 신부 이야기 / 이상각신부 / 바오로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