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묵상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1: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1: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1: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본문 해석)
11월 12일 화요일 디모데후서 1:1~8
1~2절
1절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소개한다.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철저히 그리스도 예수와의 관계 속에 위치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세상이나 다른 존재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예수에게만 충성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의 뜻으로라는 표현은 바울의 사도됨과 그 사역의 신적 기원을 말하는 것으로 이 역시 바울이 지속적으로 순종의 삶을 산 이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것은 사도의 직분이란 생명의 약속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2절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구한다. 긍휼을 덧붙인 것은 바울이 생의 마지막에 디모데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3~5절
3절 바울은 밤낮 쉬지 않고 디모데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다고 한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그는 디모데를 위하여 밤낮 쉬지 않고 기도했다. 이는 디모데가 자신의 사역을 잘 이어갈 수 있는 적합한 후계자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한다. 청결한 양심은 참된 믿음과 연결되는데, 주님의 사역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 그리고 디모데가 섬겨온 하나님은 그의 조상 때부터 섬겨온 분이다. 이것은 유대적인 전통과 그리스도의 복음 사이에 있는 연속성을 강조한다. 4절 바울은 자기를 걱정하는 디모데의 눈물을 기억하고 다시 만나서 서로 위로했으면 하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가 임무를 잘 완수하고 속히 자신을 만나러 와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5절 디모데의 믿음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디모데의 진실한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즉 그의 신앙은 유대적 전통을 따른 진실한 믿음을 계승했다. 이렇게 유대적인 유산을 물려받은 신앙인 것을 설명하는 것은 거짓 교사들 때문이다. 그들은 유대적인 전통을 강조하면서 율법주의를 가르쳤지만, 그것은 참된 신앙의 유산이 아니다.
6~8절
6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안수받을 때를 생각하라고 한다. 불 일듯하다라는 말은 불이 계속해서 타오르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데, 열정을 북돋운다는 뜻이다. 안수는 직분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사는 디모데가 받은 직분과 그것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뜻한다. 7절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다. 디모데의 두려움은 어린 나이 때문이기도, 또는 거짓 교사들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디모데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능력의 영으로 함께 하신 다는 것을 기억하고 담대함을 회복해야 한다. 8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를 증언하는 것과 그를 위한 바울의 투옥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바울이 복음으로 인해 고난받고 감옥에 갇힌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을 위해 바울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라는 표현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