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목사의 주간 칼럼 [Ptr. Josiah, Han Column]
“하향표준화의 교회를 넘어서(인분 교수 사건을 보며)”
최근 “인분 교수” 사건이 사회의 이슈가 되었다. 기독교 재단으로 운영되는 한 대학에 자신의 신앙이 기독교라고 말하는 한 교수가 자신의 제자에게 행한 폭력과 고문 등의 엽기적인 행각은 “저 사람이 정말 대학의 교수인가? 저런 사람이 정말 크리스천이란 말인가?”라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결국 이번에도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기독교가 아닌 개독교”가 되었다.
살다보면 관계 안에서 본의 아니게 신자들이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고, 또한 매스컴이 그 진의를 왜곡하여 기독교가 욕을 먹는 일이 종종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정말 이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팔을 안으로 굽히려 해도 정말 이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왜 크리스천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될 모습들이 종종 드러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평가로 우리가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무엇보다 한국교회 형성의 근간이 문제였다.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의 시대를 거치면서 적극적으로 목회자와 성도들의 신앙을 하향표준화 시켰다.
한국교회가 목회자와 성도들의 신앙을 하향표준화 시킨 것은 오로지 교회성장을 위해서였다. 무엇이든지 하향표준화를 시키면 그 영역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교회는 더 많은 사람들을 담기 위하여 신앙의 내용과 기준 그리고 신앙적 삶의 수준을 낮게 설정했고, 그 기준과 내용과 삶이 낮은 만큼 교회 안에 정말 자기 마음대로, 자기 멋대로의 신앙을 신앙으로 여기는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그러한 신앙의 내용도, 기준도, 삶도 없는 한국교회 형성의 모습에 대한 결과가 바로 오늘날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기독교인의 신앙과 삶은 정말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 많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신자나 비신자나 교회나 세상이 다른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는 어떤 신앙의 내용을 가져야만 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향 표준화된 신앙을 넘어서 우리의 신앙을 상향표준화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유아기를 지나 청년의 때로 그리고 장성한 어른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책임과 의무가 커진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신자들이 많다.
아!!! 우리의 신앙을 어찌할까? 하향표준화에 멈춰 서 있자니 신앙의 정체성도 없고 왠지 부끄럽기만 한 것 같고, 상향표준화의 신앙으로 나아가자니 책임과 의무가 있어서 또 싫기만 하구나... 어찌할꼬! 우리의 신앙을, 어찌할꼬! 우리의 교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