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곳을 처음 찾은 때는 재수를 하던 1970년, 늦여름쯤이었을 것이다.
있는 대로 처져 있던 내가 안돼 보였던지 기분 전환 하자면서 친구가 데려간 곳은 명동 YWCA,
예전의 직원 식당을 개조한 재미난 다방이었다. 그 다방 이름은 '청개구리'였고,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의 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백 원 내면 1원을 거슬러주었으니까 입장료는 99원이란 얘긴데, 돈을 내면 입구에서 신주머니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그 신발 주머니에 신발을 넣어 들고 더듬거리며 들어가니, 초록빛 카펫이 깔린 실내에는 벌써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말하자면 의자가 있는 입식이 아니라 앉은뱅이식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집 안방처럼 편하게
신발주머니를 하나씩 끼고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장기판, 바둑판이 구석에 놓여 있어서 두고 싶은 사람은 두고 훈수도 거들고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면 듣기도 하고 보기도 했는데, 그것조차 관심이 없으면 한구석 차지하고 책을 읽거나
같이 온 친구들과 히히덕거리면 되었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바닥보다 한 뼘 가량 돋아 있는 스테이지도 있었고, 그 위에서 누군가 노래도
하고 팬터마임을 하기도 했다.
마이크도 없이 모든 게 생음이었다. 미리 짜여진 프로그램이 없는 듯 무작위 무순으로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스테이지 임자였고, 사회자 역시 일단 먼저 시작한 사람이 그날의 사회자가
되는 식이었다.
첫날 내가 본 그 스테이지에서는 누군지 모를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 위로 조명이
비치고 있었는데, 손님 중의 한 사람이 셀로판 색종이를 붙인 조명기 뒤에서 천천히 원반을
돌려대고 있었다.
또한 서울대 미대의 도비두 외에도 '청개구리'엔 대학생 고정 출연자들이 있었다. 이화여대
방의경, 서울 음대 김광희, 숙대를 갓 졸업한 이채임, 경희대 응원단장인 김윤태, 서강대 임문일 등등.
그리고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하는 동아방송의 '3시의 다이얼'과 '0시의 다이얼', 문화방송의
'별이 빛나는 밤에' 동양라디오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기독교방송의 'YOUNG 840'과'꿈과
음악 사이'등의 쟁쟁한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들이 자주 '청개구리'에 들러서 섭외를 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그때만 해도 드문드문 매스컴을 타던)많은 통기타 가수들을 '청개구리'에서
처음 보았다. 송창식, 윤형주, 서유석, 투코리언즈, 어니언스, 쉐그린, 뚜와에무와, 라나에로스포 등…….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다. 그리고 노래가 하고 싶어도 설만한 무대가 없었다. 노래하는 모든 이들이
선망하던 '오비스 캐빈', 그 다음으로는 이종환 씨가 관계했던 '금수강산', 조선호텔 건너편에 있던,
이름을 잊어 버린 무슨 살롱 정도가 무대의 전부였으니까 관객들의 대부분이 대학생이어서
분위기도 진지했던 '청개구리'로 가수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청개구리라네... 개굴 개구울♬~" (양희은이 김민기를 처음 만났을 때...)
서울대 미대생 두 사람이 통기타를 메고 스테이지 위로 척 올라섰다. 둘 다 장발!
킬킬대다가 사회자가 이름을 부르자 마지못해 무대에 오르는 듯, 남들일랑 저어기 물렀거라 싶게
자신만만했고 약간 건방져 보이기조차 했다. 그 듀엣의 이름은 '도비두'라 했다네.
한 사람은 미소년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에 비하면 못났다! 그런데 그 못난 사람의 눈빛이
아주 빛났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다. 조명쪽으로 고개를 쳐들고 노래를 했는데 조명 탓인지 눈빛이
더욱 빛나 보였지.
그가 김민기였네.(물론 그땐 난 그의 이름을 몰랐다).
그의 노래는 나에게 혁명이었고 노래를 하는 모습, 그 빛나는 눈빛, 그리고 그 놀라운 기타 솜씨,
당장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