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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기사람장기학당 원문보기 글쓴이: 원님나팔
장기읍성의 입구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지키고 섰다. 한 달 전에 처음으로 장기읍성에 올랐을 때 처음 인상이 "으응? 이렇게 새것...?" 복원된 읍성은 너무 새것 같았다. 터만 남았던 읍성을 아마 최근 다시 복원한 것 같은데, 그 모습에 아쉬움이 컸다. 입구에 서 있던 안내문을 옮겨본다.
읍성은 지방의 관아와 민가의 취락지를 함께 둘러서 쌓은 성인데, 장기읍성은 산정에 있으면서 읍치로서의 기능을 갖추고 있어 읍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기록에 의하면 고려 현종 2년(1011)에 동으로는 왜적, 북으로는 여진족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토성으로 처음 쌓았고, 조선시대 세종 21년에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성의 형태는 타원형으로 둘레가 1,440m이며 3개의 성문과 옹성, 그리고 치성을 갖추고 있으며 4개소의 우물과 2개소의 연못이 있다. 성내에는 교육기관인 장기향교와 동헌터가 남아있는데 동헌은 면사무소 안에 이전하여 보호하고 있다.
과연 여진족까지 방어할 목적까지 있었을까 싶긴해도 침입자가 있으면 훤히 보일 만큼 탁 트인 위치에 놓여있다. 날씨가 맑으면 저 멀리 동해까지 보일텐데, 안개가 자욱해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너른 평야에는 구름 그림자가 지난다.
읍성의 벽을 따라 산딸기 밭에도 꼬맹이들의 고사리손까지 동원하여 수확이 한창이다.
심심한 장기읍성에 멋을 주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 바람빗으로 머리를 빗었나.
중간중간 성벽이되지 못하고 쌓인 돌무더기들, 그리고 저 멀리 이어진 읍성이 보인다. 만리장성 부럽지 않네 오늘은.
장기향교
그 밑으로 마을 가운데 있는 장기향교(포항 장기면 읍내리)가 나타난다. 저번에 굳게 잠겨 있었으니 오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조선 태조 7년에 창건되었으며, 임진병화 때 소실되어 선조 33년에 중건, 정조 9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한다.
마을을 통과하여 반대편 성곽까지 이르렀다. 모내기위해 물을 댄 논과 장기읍의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자꾸만 아쉬운 안개 낀 날씨, 산등성이 너머로 바다를 상상해본다.
장기읍성 저 꼭대기에서 찍은 파노라마. 다섯 장의 사진이 얼기설기 어설프지만 1.5키로 남짓의 읍성 둘레길이 보인다.
중간중간 끊긴 길. 여기서 끊긴 길은 더 이어지지 않아 산딸기 밭을 지나 나가야했다.
출처 : http://kaykim.tistory.com/204
첫댓글 가까있어도 가보지못했네요.
딸기먹고싶어요.
나도 산딸기좋아하는데ㅠㅠ
작년 이맘때 경철과 합동라이딩할때 저곳을 지나면서 한박스1만원주고 사먹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