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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1자 16회산악회의 서울둘레길 6일차 산행 이야기.
2015.11.01자 10시35분에 5호선 고덕역 3번출구에서 만난 일행은 모두 7명이었다. 서울둘레길은 고덕역에서 도로를 따라 약100미터쯤 동쪽으로 걷다가 횡단보도를 건너서 우측 숲속으로 들어가니 바로 고덕동 야산 숲속이었다. 고덕동 야산은 해발고도가 낮은 숲속길이고 또 흙길이라서 걷기가 무척 편한 그런 길이었다. 둘레길이란 이름에 딱 맞는 정말 좋은 길이었다. 고덕동에는 이렇게 좋은 둘레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그런 길이었다. 그리고 고덕동 야산 숲속 둘레길 중간 중간에는 동쪽과 남쪽방향으로는 성내천이 표시되어 있고 그 반대 방향인 북쪽과 서쪽 방향으로는 고덕동이 표시되어 있었다.
(일행이 고덕역에서 도로를 따라 100미터쯤 가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우측
숲속으로 들어가니 거기가 바로 고덕동 야산 숲속의 서울둘레길이었음)(본
사진은 고덕동 야산 숲속의 서울둘레길 시작점 모습임)
(고덕동 야산 숲속 서울둘레길상의 표지판 모습.고덕역에서 일자산 가는길
을 표시하고 있음.)
(고덕동 야산 숲속의 서울둘레길 모습1)
(고덕동 야산 숲속 서울둘레길변에 있는 체육시설 모습)
(고덕동 야산 숲속의 서울둘레길 모습2.여기서도 일자산으로 가는 방향을 표
시하고 있는데 방향이 반대인 것은 표지판이 좌측이나 우측에 있어서 달라
져 보이고 있음)
(고덕동 야산숲속의 서울둘레길 모습3.이번에는 성내천 방향을 표시하고 있
는데 일자산-방이동생태보전지역-성내천순으로 둘레길이 이어짐)
(고덕동 야산 숲속의 서울둘레길 모습4)
또 고덕동 야산 숲속의 둘레길변에는 괴테의 시가 적힌 푯말도 있고 이해인의 시가 적힌 푯말도 보였다. 그 외에 다른 시인들의 시도 표말로 만들어져 있었다.
먼저 괴테의 시가 적힌 푯말을 보자
제목: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괴테-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내 가슴의 슬픔을 알아줍니다.”
이 싯구를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정이 많은 사람만이 사랑을 많이 줍니다. 정이 없거나 정이 적은 사람은 사랑을 많이 주지 못합니다. 매정한 사람에게서는 사랑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라는 뜻으로 나는 해석하고 싶다.
“홀로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을 등지고
멀리
하늘을 바라봅니다.”
나 혼자서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을 내려놓고 멀리 하늘을 바라봅니다. 기쁜 일이 있다고 그 기쁨을 즐길 수가 없어서 잠시 멈추고 냉정하게 생각해 봅니다.
“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알라주는 사람은
지금은 먼 곳에 있습니다.”
나에게 많은 정과 사랑을 주고 나의 깊이와 무게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지금은 이 세상에 없고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습니다.
“눈은 어지럽고
가슴은 찢어집니다.”
이렇게 나에게 많은 사랑과 정을 주고 나를 잘 이해해 주었던 그 사람은 떠나고 없어서 내게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희미해지고 많은 정을 생산해 주는 생각이나 가슴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군요.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내 가슴의 슬픔을 알아줍니다.”
인간에 대한 정이 많은 사람만이 내 가슴속의 어두운 정을 이해해 줄 겁니다. 인간에 대한 정이 적은 사람이나 매정한 사람에게서는 내 가슴속의 어두운 정이나 감정을 기대할 수가 없을 겁니다.
(고덕동 야산 숲속의 서울둘레길상에 있는 괴테의 시 표지판 모습)
이번에는 이해인의 시가 적힌 푯말을 보자.
제목 : 풀꽃의 노래 -이해인-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나는 늘 이 세상의 한곳에 정착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이리 저리 이동하면서 살지요. 나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서 불러주지 않아도 전혀 서운해 하지 않습니다. 바람에 날려가다가 떨어지는 곳이라면 거기가 어디든지간에 그곳에서 다시 내 생명을 키울 수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내가 하고싶은 말들이 많지만 그 모든 말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가 새로운 생명으로 응축시켜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할 준비를 합니다.
“너무 작게 숨어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아주 작은 형태로 숨어 있어도 그 숨은 모습이 불완전하지 않으며 내게도 고운 내 자신의 고유한 이름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나는 전혀 서운해 하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1년이나 2년 이상을 흙속에서 기다리는 법을 또 흥겹게 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오래전부터 자연으로부터 배워서 잘 알고 있기에 그저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어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나는 싱싱한 푸르름에 익숙해져서 살아가는 삶이기에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주지 않아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곳 저곳으로 바람에 날려 이동하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고덕동 야산 숲속의 서울둘레길상에 있는 이해인시의 표지판 모습)
일행이 고덕동 야산 숲속 둘레길을 종단해서 11시29분경에 도착한 곳은 천호대교에서 상일ic까지 이어지는 큰 도로였다. 이 큰 도로는 천호대로 같았다.
(고덕동 야산 숲속의 서울둘레길이 끝난뒤에 어어지는 상일IC-천호대교까지
이어지는 대뢰변 모습)
이 천호대로를 횡단해서 건너편 숲속으로 들어가니 그 숲이 바로 일자산이었다. 일자산의 서울둘레길은 정말 좋은 산책로였다. 고덕동 야산 숲속 둘레길보다 더 걷기가 편하고 더 좋은 길이었다. 우선 해발고도가 낮아서 경사도가 꼭 평지같은 그런 길이었다. 그리고 또 흙길이었다. 숲이 더 우거진 길이라서 공기도 더 맑은 것 같았다. 일자산은 경기도 하남시와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에 걸쳐 있으며 일자산 주변에는 감북동 고덕동 상일동 둔촌동 길동 초이동을 끼고 있으며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34미터라고 했다.
(일자산의 서울둘레길 모습1)
(일자산의 서울둘레길 모습2)
(일자산의 서울둘레길 모습3)
(일자산의 서울둘레길상에 설치된 일자산 안내표지판 모습)
일행이 일자산의 가장 높은 곳인 해발 134미터의 해맞이 공원에 도착하니 시간은 12시36분이었다. 이곳에는 고려말 선비인 둔촌이집 선생의 어록을 새긴 비석이 설치된 강동구 해맞이 광장이었다. 둔촌 이집 선생은 고려말 대학자로서 1368년 공민왕17년 신돈의 실정을 탄핵하다가 도망자 신세가 되어 전국을 전전하다가 한 때 이곳 일자산 둔굴이라는 곳에 은둔했으며 신돈이 죽은 후 복권되었다. 둔촌 이집 선생은 도망자 생활의 고난을 후세에까지 전하고자 자신의 호를 둔촌으로 개칭했는데 현재의 강동구 둔촌동이란 동명은 이런 이집선생의 호 둔촌에서 유래된 것이라 했다.
그리고 둔촌 이집 선생이 생전에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했던 어록을 비석으로 잘 만들어 이곳 해맞이공원에 설치해 놓아서 만인이 오가면서 볼 수 가 있는데 그 어록을 보니 둔촌 이집 선생은 “자손들에게 금을 광주리로 준다해도 그것은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느라”라고 읊펐지만 작금의 후배들이 이 전언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지는 의문이다. 즉 재물을 유산으로 주는 것보다는 공부를 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데 일반론으로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공부를 아무리 많이 시켜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일자산의 해맞이공원에 설치된 둔촌 이집 생의 어록비 모습)
(일자산 해맞이공원에 설치된 이집 선생의 어록비를 근접촬영한 모습)
(일자산의 해맞이공원에 있는 이집 선생의 어록비 후사면에 있는 이집선생의
약력 소개문 모습)
(둔촌 이집선생이 한 때 일자산에서 은신했던 굴이 있던곳이라는 표지판)
일행이 일자산 해맞이공원을 지나 내리막길을 타고 조금더 내려오니 숲속 아늑한 쉼터에 빈 탁자가 있어서 이곳에 앉아서 일행은 점심 겸 간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는데 이때 시간을 보니 12시40분경이었다. 각자가 가져온 음식들을 탁자에 쏟아놓으니 족발 사과 더덕구이 술 갓김치 떡 찐계란 커피 모찌떡 김밥 등이었다. 족발은 양이 너무 많아서 절반 정도는 다시 싸들고 가야 했다. 일행은 점심을 먹으면서 잡담을 즐기다가 13시40분경에 다시 산행을 재개했는데 점심 먹은 장소에 조금더 걸어 내려오니 바로 큰 도로변이었다.
(일행이 일자산에서 점심 겸 간식으로 즐긴 음식들)
(일자산 서울둘레길이 끝나는 지점 모습.바로 여기서부터 서울둘레길은 다시
방이동생태보존지역까지는 도로변으로 이어짐)
이 큰 도로는 서하남ic입구사거리에서 보훈병원과 천호대교쪽으로 이어지는 큰도로변이었다. 일행이 이 큰도로를 횡단해서 도로변을 걷다가 도착한 곳은 방이동생태환경보전지역이었다. 서울둘레길은 이렇게 일자산을 지나니 다시 도로변으로 이어지다가 방이동생태환경보전지역으로 연결되었다.
(일자산 서울둘레길이 끝나고 서하남IC입구사거리-천호대교로 이어지는 도
로 모습1
(일자산 서울둘레길이 끝나고 서하남IC입구사거리-천호대교까지 이어지는
도로 모습2)
일행이 서울둘레길 구간인 방이동생태환경보전지역으로 들어서니 시간은 14시20분경이었다. 둘레길 우측으로 생태환경보전지역을 관찰할 수 있는 통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통로 좌측에는 방이생태환경학습관 건물이 있고 통로 우측으로는 습지였다. 생태환경보전지역 일부를 구경하고 다시 둘레길로 나와서 조금 더 걸었더니 바로 성내천변이었다.
(서울둘레길상에 있는 방이동 생태보존지역내의 생태학습관 건물모습)
(서울둘레길상에 있는 방이동생태보존지역 종합안내도 조감도 모습)
(방이동 생태보존지역의 관찰통로와 주변 습지 모습)
(방이동생태보존지역내의 습지 모습2)
성내천의 폭은 30미터쯤 되었다. 물이 흐르는 폭은 좁은 곳은 약 5미터쯤 되고 넓은 곳은 10미터쯤 되어 보였다. 성내천의 흐르는 물속에는 팔뚝보다 더 커 보이는 잉어들이 버글 버글했다. 성내천 강둑과 물이 흐르지 않은 성내천 고수부지는 주민들의 산책로였다. 이 산책로를 따라 성내천을 타고 한강쪽으로 내려가다가 오금1교 오금2교 오금3교를 지나 좌측으로 올라서니 바로 지하철 5호선 올림픽공원역이었다. 일행이 올림픽공원역에 도착해서 시간을 보니 14시53분이었다.
(서울둘레길상에 있는 성내천 모습1)
(서울둘레길상에 있는 성내천 모습2)
(서울둘레길상에 있는 성내천 모습3)
(서울둘레길 상에 있는 성내천 모습4)
15시경은 귀가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일행은 올림픽공원으로 들어가서 공원내부를 산책했다. 들어갈 때는 동2문으로 들어갔다가 체조경기장 옆을 지나 벤치에서 휴식을 즐기다가 다시 남2문쪽를 거쳐서 올림픽공원 장미광장문쪽으로 나와서 부근에 있는 숯불돼지갈비 마포집이란 식당에 들려 석식으로 돼지갈비에다가 술 한 잔씩 걸치면서 잡담을 즐겼다.
17시20분경에 숯불돼지갈비 마포집 식당 바로 옆에 있는 5호선 방이역으로 나와서 해산함으로써 16회산악회의 6일차 서울둘레길 산행을 마감했다. 이렇게 해서 또 즐거운 하루를 창조했는데 금일 석식대 67,000원을 b씨가 쏘아버려서 오늘 모금액 50,000원은 산악회통장 기금에 적립하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공원 내부 모습1)
(서울올림픽공원의 장이광장문에서 장미광장을 바라본 모습)
(일행이 서울둘레길산행을 마치고 석식을 즐겨던 돼지갈비집 모습).끝.
* 경비사용내역.
1.2015.11.01자 이월액 : 673,200원
2.2015.11.01자 모금액 : 50,000원
(7-2)세대*1만원=50,000원
-1명은 금일 석식대 쏜 사람.
-1명은 조기 귀가자
3.2015.11.01자 자산총액 : 1+2=723,200원
4.2015.11.01자 경비지출액 : 0원
석식대 67,000원은 B씨가 쏨.
5.2015.11.01자 자산현액 : 3-4=723,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