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승현이가 양재기를 빌리러 왔다.
녀석은 요즘 우물 청소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하루하루 투명해 지는 물이 신기하고 잼나 다나
각시라도 만나러 가는 것 마냥 신나 우물로 가는 녀석에 장단지 위로 오월의 햇빛이 반짝 부서진다.
예년보다 두배나 비가 많이 온 봄이다.
전번에 신씨를 비 오는날 우산 쓰고 들 한복판에서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다가 그가 뜬 금도 없이 우물의 안부를 물어 보았었다.
글쎄 그게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우물의 안부를 물어 본거라기 보다는 정중히 우물의 방치에 대하여 자신의 불만과 불안을 기껏 표현 한걸 것이엇다.
왜냐 하면 그와 나의 집 가운데에 있는 잡 풀무더기가 몇년동안 방치 된 것이 우물이 라는걸 그도 나도 알기 때문인 것이다.
일년전
이사온 첫날 후레자식처럼 풀이 자라잇는 풀무덤 그곳이 우물일 거라는걸 직감으로 알았었는데
그리곤 이제껏 누구에도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지 않앗다.
매일 같이 그 우물에서 퍼올리는 수도 꼭지로 씻고 밥해 먹고 마시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지난 가을 내집으로 오는 파이프를 꽂는 일이 있을 때에도 업자를 시키고 그 뚜껑을 기어코 열어 보지 않앗다. 그 근처도 가지 않았다.
아주 잠깐 신씨로부터 그 우물속엔 큰 가재가 살고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 피식 웃은 적은 있었다.
어머닌
지금도 밥상 머리에서 한창때 네가 물지개를지지 않았으면 한 뼘은 더 자랏을 것이라고 쯧쯧 하신다. 나는 고등학교때 까지 물지개를 지었었다. 골목길과 산길 합쳐서 운동장 한바퀴 정도의 기럭지를 일년 삼백 육십 오일. 아침에 세 번 저녁에 세 번 물을 길렀다.
생각해보면 나의 지난 가난의 무게는 양 어깨에 출렁이던 딱 물지게 고만큼의 무게엿지 않앗을까.
우리집은 산속 물 없는 흙벽돌 집 이엿고 산아래 빨간 기와집은 산 주인 고씨 할머니네 집 이엿다. 고씨 할머니네는 굿 이 많았는데 달에도 몇 번씩이나 쟁쟁 괭가리 소리가 들리고 늦은밤에 시루떡이 찾아 왔었다.
우물은 고씨 할머니네 뒤곁에 있엇다.
한아름에 둥치의 밤나무가 빼곡히 담을 치고 녹색 문짝 안에 금빛 날이선 선왕당 한 채가 있고 그 바로 아래 한 겨울에도 이끼가 푸릇하게 살아 그 틈으로 하얀 김을 내뿜는 생김 하나 하나가 기가막힌 떡돌로 차곡히 쌓은 우물 이엿는데 한여름에도 그 주위엔 몸을 감싸는 냉기가 배어 잇었다.
글을 쓰고 잇는 지금도 그 음습한 공기에 팔뚝이 서늘하다.
비 그치고 말짱한 엊그제 그제
마당에서 나무 깍고 있는데 윗집 아주머니가 호미를 든채 역광으로 서 계셧다.
어 어쩐 일이세요.
저 자네 우물 보앗나.
우물요.
내가 할소린 아니지만 우물치기 한번해. 어제 여기 빗물이 몽땅 그리로 들어가던데 그거 다 누가 먹겠나 다 자네들이 먹는거 아닌가. 나는 상관없어 다 자네들을 위해서 하는 애기야 깨긋한물 먹으면 좋지 않겟나. 우물치기해. 자식같아 하는 소리야. 우물치기 해.
그러곤 순식간 이엿다
풀들이 들써지고 뚜겅이 열리는게 보엿다.
그러니까 우물치기를 한 것은
비가 많이 와서도 신씨 때문도 윗집 아주머니의 잔소리 때문만도 아니엿다.
내 기억의 뚜껑을 연건
순전히 멍청한 승현이 그놈 이엿다.
우물치기..
언젠가부터 고씨 할머니의 우물치기는 어린 내 담당이 되어 있었다.
울 아버진 명절에 당신이 가기 싫은 큰집일도 나를 보내고 재삿날도 나를 보내고 하엿는데물길러 먹는 품앗이 로도 어려 개벼운 나를 보내었던 건 당연 하다.
끼까 끼까
두레박을 타고 내려가는 모두가 그 끝을 두려워 하던 바닥을
가난한 아부지 덕분에 어린 나는 수도 없이 퍼내보고 밟아 보고 긁는 경험을 햇었던 거다.
그 미끄덩한 우물의 깊이로 매번 빨려 들때 마다 어린 나는 알지도 못하는 어떤 세상으로 떠러질 것 같아 무서웠고 두레박으로 건져 질땐 물지게 지는 환한 세상과 이걸 또 경험해야 하는 그 시간의 간극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또 두려웟고 다 나와선 정월 열나흘날 살어름이 다닥 다닥 얼은채 첨 보는 어른들에 알지도 못하는 언어로 빙 둘러쌓여 벌벌 엄마를 찾았엇다.
그러고 그 다음날은 영락없이 고씨 할머니는 쇠칼을 든 무당을 데려다 우물주위에 돌을 놓고 밥그릇에 쌀을 담고 초를 꽃아 굿을 하고 새끼줄을 쳤다.
수정같이 맑은 우물 펑펑 뚫으세
조상대대 자자손손 먹고살고 먹고살고
뚫으세 뚫으세
목을 축여 생명 주고 물이 넘쳐 식량 주고
아랫말 우물 윗말 우물 동구밖 우물
앗다 그 물 맛있다 꿀떡꿀떡 마시고
아들 낳고 딸 낳고 미역국에 밥먹자
지겨웠다.
맨날 나아 지는것없이 굿만하는 고씨 할머니가 그렇고 산밑에서 예고 없이 쟁쟁 들리던 괭괭 괭가리소리가 그렇고 매일같이 삼시세끼 동무들처럼 놀지 못하고 짊어져야 하는 물지게가 그렇고 반쯤차서 나를 쳐다보는 가난한 빨간 다라들이 그렇고 우물주위에 항상 있는 촛능과 날라가지 못한 검은 재가 그렇고 멈춰진 시간에 텅 떨어지며 느닷없이 깨우는 두레박소리가 그렇고 검은밤 산길 물지게 뒤를 쫓아오던 해석 안되는 발자국 소리들이 그랫고 매번 꿈꾸면 나타나는 우물속 맨 밑바닥의 환청들이 더욱 그랫으며 일년에 딱 한살 밖에 못먹는 우물맨 밑 바닥에 같힌 어린 나이가 또 지겨웠다.
하여간 그 모든 지겨움 기억 정중앙엔 언제나 세로로 길게 음습한 우물이 잇었는데 그것은 단지 형상 뿐 아니라 시퍼렇게 날선 어떤 물고기의 비늘처럼 살아 내가 근접하거나 무시할수 없는 기 같은 것을 발산 하고 쟁쟁 괭가리소리와 함께 춤추며 공존 하는 것 이엿다.
하여간 말하자면 이날까지 나는 그 딱히 무어라 할 수 없는 그 갈끄럽던 느낌에 대하여 이유를 캐 묻기는커녕 그저 덮혔다면 덮인체로 가고 만 싶엇었던거다.
그 뚜껑을 내가 스스로 열 일이 없었던 거다.
그것이 지난 저 작은 우물에 대한 방치의 이유가 될까.
얼떨결에 달려가 본 승현이가 뚜껑을 연 우물을 보자 난 실망 스러웠다.
시립병원에 끌려온 어느 노숙자를 보면 그럴까
그저 이 우물은 그처럼 초라하고 볼품이 없엇다.
생각만 하여도 찬 솜털이 날이 서는 고씨 할머니네 우물과는 딴판 이엿다.
이 미지근함이라니..
순간 억울도 하여 하늘 한조각 비출수 없는 탁함 속에다 얼굴을 들이밀고 그간 내가 우물에 대한 어떤 두려움? 버겨움?불편함?에 떨던 이유를 찾아 보려 햇지만 바로 코가 닫는 깊이가 더 이상 그것을 진행할수 없게 하엿다.
동네에 공장이 들어서고 고씨 할머니는 셋방을 놓기 시작하면서 그 수만큼 우물에 파이프가 꽂이고 어느날 뚜껑이 이 쒸어지고 두레박 대신 한일 자동펌프가 윙윙 돌앗다. 그래고 그때 까지도 나는 물지게를 지었엇는데 두레박질을 안한다는것은 편리하엿지만 공장다니는 사람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일찍 학교서 돌아와야 했다.
고씨할머니가 풍이 드시고 아들 자식들이 땅 문제로 싸움질을 하고 셋째딸 끝순이 누나가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가고 하고 나서는 아예 괭가리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정월 열나흘날 차갑게 우물안으로 나를 들이미는 일도 없어 졋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주 천천이 슬금슬금 벌어진 일들 이여서 그때는 나는 아무 변화도 느끼지 못하엿다.
단지 코 밑에 수염이 나고는 물지개가 더욱 무겁고 귀찮았으며 그 지겨움의 왕복의 횟수를 새는 일로부터 빨리 벗어만 나고 싶엇었다.
그리고 그 영원할 것 같앗던 일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바로 이루어졋다.
어머니가 부주돈으로 제일 먼저 한일이 고씨 할머니네 그 우물에 우리의 모타와 파이프를 꽂은 일이였기 때문이엿다.
처음엔 그저 고개만 들이밀고 말 생각 이엿다.
어차피 몇 년동안 방치된 우물이 한나절에 청소를 한다고 하여 나아질 리가 없다.
하지만 막상 닥친 우물의 주위는 참을수 없이 심하게 어수선 하엿고 모가 신나는지 승연이 녀석이 너무 열심이 여서 덩달아 나도 어쩔수가 없엇던 거다.
우물에다 닝개루 마냥 박아논 파이프 모두를 작동시켜 물을 빼고
작대기 하나에다 부러쉬를 박아 거대한 칫솔 맹그냥 만들어 치카 치카 돌들을 승현이가 닦고 나는 우물주위에 쓸려온 진흙과 마사토를 건지고 풀들을 걷어내고 지금은 흩어져 버린 돌담들과 물길의 흔적들을 하나 하나 찿아 내엇다. 곧 이어는 윗집 원경씨 까지 합세하게 되어 시멘트와 사모래 까지 퍼나르는 본위 아니게 미장까지도 하게 되었는데 그러는 동안
신씨도 다녀가고 윗집 아주머니도 다녀가고 재전거 끌고 오산 다녀온 윗집 아저씨도 다녀가면서 박스공장 김씨가 도랑에서 중태기 잡아 돌미나리 넣고 매운탕 한사발 끓여 놓는다고 다하고 함 잔치 함 하자고 옛날에도 우물치기한 날은 동네 잔치엿다고
갑자기 별생각없던 오월의 햇살이 부산 하게 되엇던거다.
고씨 할머닌 큰비가 오기전엔 꼭 사람을 사서 우물주위에 도랑을 다시 파고 비가 그치면 깨긋한 날을 잡고 나를 불러 우물치기를 하고 하셧는데 비 한방울 그속에 떨러지는걸 난리처럼 여기시는 분이 여서 아마 이처럼 황톳물이 우물에 스며 들어가는 일이 있엇다면 틀림없이 거의 정신을 잃으셧을 것이다. 언젠가는 셋방을 사는 사람이 참외 한조각을 담갓다가 호통을 맏고 짐을 꾸리는 일도 잇었다. 고씨 할머니 뿐 아니라 나의 어머니까지 우물에 지극 정성 이셧다. 물지게를 지고 나설때면 때면 옷매무새를 고쳐주시고 신발까지 바로 놓아주시는 것이 정말로 아주 가끔은 나도 우물속에 귀신 장군님이 있나보다 싶기도 하엿다. 어머닌 보름 날이나 제삿날이면 전날 밤을 새우시면서 까지 우물의 맑은 물을 기다리시고 물을 받아 부엌문 앞에서 빌고 산앞에서 빌고 하셨다 하지만 알다시피 나아지는 건 없엇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사와서
비오는날 산속의 모든 황톳물이 그 우물속으로 겨들어가고 우물주위에 소설죽 붉은 잔뿌리가 그리로 향하는걸 목격 하면서도 나는 보았어도 못보았고 뿐 아니라 방치되면 될수록 어떤 정신병자 같은 작은 흥분까지 느꼈다면 그것은 어쩌면 당신들이 지난 나를 가둔 그 우물에 대한 지극정성에 대하여, 집착에 대하여 그리고 내가 져 나른 지난 모든 지겨웠던 물들의 무게에 대한 반항과 보상 같은거 였을수도 있지 않앗을까.
하- 하여간 나는 물지게를 놓고는 그 이후 단한번 어떤 우물 속에도 고개를 디민적이 없엇다.
와 보인다 보여 보여요 빨리요
우물속의 승연이는 흥분햇다. 우물의 모든물이 빠지고 몇 양재기 씩이나 흙무덩이를 퍼내고 드뎌 샘이 보이는 것이 엿다. 흥분할만 하다. 물이 모타도 없는 어떤 작동도 없이 거꾸로 치고 올라 오는 것 이라니
맨날 줄줄이 수도 꼭지에서 나오는 물만 보다가 땅 틈에에 아주 작은 노래소리처럼 나오며 한키도 넘는 우물안을 고것이 다 채우고 고것으로 지가 쌀도 씻고 일나가기전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한다고 한다면 신비롭기 그지없을수 있는 것이다.
깨긋이 비워낸 우물은 처음과 많이 달랐다.
우물주위을 쌓은 큰돌과 작은 돌을 깊이 대로 배치하고 그생김새대로 쌓은 것이 빈틈이 없었고 흙과 풀을 걷어낸 우물 주위는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이 우물을 소중히 생각 하엿는지 많은 사람의 흔적과 시간을 볼 수가 있었지만 신씨가 있다던 큰 가재는 끝가지 없었다.
다녀간 동네어른들이 모두 종이공장 김씨네 집에 잇었고 벌써 한참 전부터 우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 우물이 군사 지도에도 나오는 대단한 우물이라는것과 예전엔 이동리 모든 사람들이 그우물을 길러 먹엇다든가 하는 애기와 어느 우물에도 흔이 가지는 지나가는 스님이 하는 말이 세상의 모든 물이 말라도 이물은 마르지 않는다는것과 물맛 하난는 끝네준다는 말씀 들이셧다.당연이 그 스님은 이름 없는 스님이다.혹시 물길던 지겨움에 대하여 누군가 말씀을 하실 것도 같앗지만 모두 지난 일 이여선지 그런 말씀은 없으셧다. 모두가 간만에 우물치기한 것에 대하여 조금은 들떠 있엇고 승현이와 원경씨도 큰일을 해낸것에 대하여 뿌듯한지 평상시와 다르게 목소리가 컷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나는 이상하게 우물안으로 내가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술자리 내내 들엇었는데 스스로 놀랍고 그 때 마다 소주가 땡기는 것이엿다. 그리고 한참동안 마시지 않던 소주가 벌컥 들어갓는데 달앗다.
술자리를 파하고 새로 우물치기한
말짱한 그 우물을 지나면서
몹시 그속으로 겨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화해 그 글자가 왜 떠 올랐는가.
다시 물지게가 지고 싶엇다. 함석 물통에서 찰랑이던 고씨 할머니 우물물이 꼭 무겁지 만은 않았던것만 같고 고것을 고대로 어깨에 메고 그길을 다시 하나둘 하나둘 다시 걷고 싶었다. 그리고 그 날밤 늦게 다시 우물가로 가서 나는 아직 굳지 않은 시멘트 위에다 돌끝으로 조그맣게 그 두글자를 써 버리고 다시 메꾸라이 시켜 버렸다.
우물치기하고 도데체 무엇에 대한 화해인지 그 대상이 딱히 명확하지 않은 것 이엿다.
언젠가 운전하던 길에 건물 몇 개가 들어차 붉은 지붕만 슬쩍 보인 그집
골골 하신다던 고씨 할머닌 우물치기 지금 나를 기억 하시기나 하실까.
영문도 없이 우물안으로 겨들어가던 어린 눈망울 두개를 기억 하실까.
첫댓글 우물물 마시러 다시 한번 가야겠군요. 삶의 무게였다는 우물과 승연이를 통해 그 우물을 다시 발견하셨다는 장도리님. 의도와는 무관하게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군요. 일전에 연락도 없이 찾아 죄송했습니다.
죄송하다니요.아닙니다.대접할것이 항상 없는 제가 항상 죄송 합니다. 아무때나 그렇게 오시는게 연락하고 오시는것보다 훨 저는 편하고 좋습니다. 또 놀러 오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