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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2015.10.18.
묵상 나와 비슷한 영혼을 찾습니다.
신앙고백
찬송 138 만왕의 왕 내 주께서
기도 조경희 목사(염성섭 집사,이정숙저도사)
성경말씀 이사야 43:22~25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미안해요
찬송 사랑합니다. 나의 에수님
광고 어린이집 리모델링 공사(시청 접수), 새신자 유경숙 권사, 한영채장로
헌금위원 조경희 목사, 사원 단체복 착용
팀장회의 매월 셋째 주일, 직원총회 매월 첫 주일(결근시 감산처리)
찬송 89 샤론의 꽃 예수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잖아요.
어제 새벽에는
하얀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이런 새벽이면 조심조심 하면서 요양원에 옵니다.
그래서 힘들게 요양원에 도착해서
헉헉 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기도 詩를 써서 엘리베이트에 붙혀 놓았습니다.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당신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이제
헉 헉
숨이 막혀요
오늘도
하얗게 입힌 새벽안개
후~
후~
걷어내며
조심조심 걸었잖아요
그런데
눈물이 나네요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당신도 아프고
나도 아파서
이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하늘만 바라보고
웃고 있어요 l새벽편지에서
22절입니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으며
23절,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재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24절,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시는 데도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죄를 짓고도
잘못을 하고도
뻔뻔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가슴이 애가 탑니다.
24절입니다.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그래서 이렇게
지금도 날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소주 한 잔 마시고
술 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말고
모두 내 생각대로입니다.
너무나 편하게 살아갑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까?
저는 노숙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조금만 힘들고 복잡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루하루를 소주 한 잔 마시고 취하면 그만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천사입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김성오 집사님도 착하고 착하기만 합니다.
어제도 제 곁에 다가와 집을 찾지 못하겠다며
헤멜 때
저는 슬펐습니다.
오규석이란 45인가 젊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새벽 2,3시부터 해롱해롱 거립니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라도 하는 것인지
용케도 소주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소주병을 화장실에도 숨 켜 두고
침대 밑에도 숨 켜 두고 삽니다.
이런 친구와 3년이 넘도록 함께 살았습니다.
지금 6년을 함께 살고 있는 김성오 집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술 한 번 마시면 한 달 내내 끝장을 봅니다.
그러다 결국 뇌진탕으로 쓰러지신 것입니다.
오규석이 이 친구도 제가 방언기도까지 받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운전면허증이라도 따게 하면
술을 마시지 않을까? 해서
3개월여 운전학원까지 보냈습니다.
마치 고3생 수험생을 돌보듯 전주 운전면허 시험장까지
모셔가고,
모셔오고,
수차례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떨어지고
실기 시험에도 떨어지고
마치 사법고시라도 보는 듯 힘들게 취득했습니다.
그런데 1주일도 못가서
술에 취해 나 권사와 싸우고 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는데
경찰관이 찾아 왔습니다.
오규석이 주소가 우리 교회로 되어 있습니다.
객사했다고.
정말 개 버릇 남 못 준다는 말이 맞습니다.
우리 교회를 떠나면 죽는다고
제가 여러 차례 말했음에도 술 취한 인생들이라
들리겠습니까?
지금도 우리교회에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진인섭 어르신을 전남 광양에서 모셔 왔습니다.
저는 전남 광양을 태어나서 처음 갔습니다.
얼마나 장대비가 쏟아지는지
초행길이라 힘이 들었습니다.
제 차 뒷 자석에 앉아서 오는데
술 이야기
캬바레 가서 춤 춘 이야기뿐이었습니다.
캬바레에서 춤은 혼자 췄겠습니까?
예쁜 여자들만 골라서 함께 췄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세상을 전혀 모르고 살았지만
경우가 다를 뿐
우리 인생살이가 다 이렇지 않겠습니까?
우리 이정숙 전도사님은 기도은사가 있으신 분입니다.
엊그제 아침 일찍 찾아와
11월 첫 주일에 친구들하고 놀러 가기로 했으니
직원 총회를 당기든지 물리든지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참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정숙 전도사는 남편인지 저편인지 남자들 때문에
눈물을 동이 동이 몇 동이 흘렸던 분입니다.
그러면서 주님 아니면 어떻게 살았겠느냐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주일날 놀러 가겠다는 것입니다.
저와는 인생이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낼 모레면 60이지 않습니까?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그러니 뭐라 말하겠습니까?
우리 염 집사님은 얼마나 똑똑하십니까?
공부도 저보다 많이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의사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일 날 예배에 참석치 못하실 때는
반드시 저에게 말씀 하시고 가십니다.
목사님, 이러이러해서 주일 예배 참석치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목사, 전도사, 집사, 권사님들이
기도 차례인데도
찬양을 해야 하는데도
헌금 위원인데도
맘대로 입니다.
저는 밤이 새도록 예배를 준비해서 예배를 드리려 하는데
기도 차례, 기도 위원이 자리에 없는 것입니다.
찬양 하는 분이 자리에 없는 것입니다.
헌금위원이 자리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임 국장은 목요일이면 들떠 있습니다.
금, 토요일이 휴무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와 휴일을 지내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낚시를 하면서 인생을 깊이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낼 모레면 50입니다.
천년만년 나와 함께 살 것도 아니지만
젊음을 흥청망청 살면 말년이 외롭고 괴롭지 않겠습니까?
어제는
항상 다니는 길인데도
꽃 향이 제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 봤습니다.
걷다가
걷다가
무심코 보았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꺾어 화병에 옮겨 두었습니다
들국화 한 송이 웃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눈을 들어
가을을 보았습니다
들국화가 지천입니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말만 늘어놓고
들국화 한 송이 꺾어다
드리지 못 했습니다
미안해요 / 새벽편지에서 미안해요
우리의 삶은 이렇게 미안하기만 합니다.
들국화 한 송이 꺾어다 드리지 못하고
말만 늘어놓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랑의 실천에 야속하기만 합니다.
1주일이면 168시간입니다.
168시간 중에 1시간도 예배를 못 드린다면
어떻게 성도라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내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말뿐 아니겠습니까?
22절입니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으며
23절,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재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24절,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이렇게 우리가 인색합니다.
받을 줄만 알았지
베풀고
나누고
드릴 줄은 모르지 않습니까?
매일 마시는 물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평소에는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가을 햇살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우리 어르신들은 깨달았을 것입니다.
1시간 가을 햇살을 쪼이기 위하여
우리 요양원 앞에 휠체어 타고 앉아 계시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봄이면
병아리들이 담장 밑에 옹기종기 모여 햇살을 받는 풍경입니다.
우리가
좋은 요양원에서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함께 자고
함께 일하고
함께 사랑을 나누고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떠나보면
우리 요양원이 참 좋은 요양원이었구나?
어제는 결혼 예식이 두 차례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이 축의금만 전달하고
요양원에서 책을 읽으며 가을을 보았습니다.
높고 푸른 하늘
황금 들녘
틈틈이 휠체어를 타고 다가와
목사님 식사했느냐 묻는 우리 유정순 어르신
그리고 지나가면서 목사님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우리 선생님들
모두가 저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오후 나절에 책을 끼고 요양원을 나서는데
버스정류장에
우리 교회를 떠났던 성도가 숨바꼭질하듯 보이는 것입니다.
전혀 여기에 있을 성도가 아닌데도 기웃기웃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노랫말처럼
우리 함께 있을 때 잘 살아 보게요.
25절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대하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매일 새벽안개를 걷어내며 조심조심 살지만
아직도 허물이 많습니다.
매일 실수투성이입니다.
잘한다고 하지만 서운한 직원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오정옥 선생님은
부족한 저를 잘 섬기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대기 발령을 했습니다.
이철재 어르신 중환자실에 갔습니다.
보호자들 원망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정옥 선생께서 식사를 드리다가 응급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목욕을 시키는데도 찬물을 짝짝 끼얹더라고.
우리는 부끄럼 없이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지만
보호자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증환자실 접견을 마치고
보호자들과 함께 점심을 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사망했을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명의 은인 아니겠습니까?
공치사를 떨었습니다.
평소에 제가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저와는 신뢰가 형성 되었던 것입니다.
보호자께서 저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작은 오해들을 걷어내고 왔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실수가 한 생명을 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돈 때문에 이 일을 하겠습니까?
오늘 오신 유경숙 권사님은 미용실을 운영했고
보험사도 다니셨습니다.
남편은 택시 기사입니다.
자녀들도 결혼하고 이제 부러울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이제는 좋은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며 오셨습니다.
얼굴도 얼마나 미인입니까?
지금도 거리에 나가면 총각들이 따라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나이를 잘 먹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품격이 있어야 될 터인데
나이를 잘 못 먹어서 천박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만 많아지고,
속닥속닥 이간질만 하고,
여잔지?
남잔지?
사람인지?
이렇게 구질구질한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더 이상 만나기조차 꺼려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여기에는 한 분도 없습니다.
전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5절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좋으신 주님께서 이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더럽고
추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채찍을 맞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멜깁슨 감독이 만든
The Passion of the Christ 영화를 보았을 때
얼마나 아팠습니까?
채찍에 맞을 때마다
예수님 살쩜이 뚝뚝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은 울었습니다.
아무런 죄도,
아무런 허물도 없이 사셨는데도
이렇게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시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형제들까지도,
목숨처럼 사랑했던 베드로 제자들까지도
비아냥 거리며
혹, 나도 당할까 두려워 떨면서 따라갈 때
예수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지금 그 영화를 떠 올려도 눈물이 납니다.
제가 연세대에서 신약학 김상현 교수님 강의를 들을 때
이 영화에 대하여 토론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는 장면이 좀 과장 되지 않았을까?
고증학적으로 검증이 된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혹독하게 더 맞으셨으면 더 맞았을 것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죄값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 값이
훨씬 더 크고, 더럽고, 추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사람의 얼굴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22절입니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으며
23절,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재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24절,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이제
주님의 은혜에 감사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드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나눌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사랑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25절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사랑한다고 말만 늘어놓고
들국화 한 송이 꺾어다
드리지 못 했습니다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