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대기자]
최근 발생한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40대 여성이 전 남편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은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참사나 다름없다. 가해자 김씨는 20년 넘게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3년 전 이혼했지만 그 후에도 끈질기게 피해자를 찾아다니며 폭행과 살해협박을 일삼아 왔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보듯이 피해자 보호조치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다.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겼을 때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1년 전 칼을 들고 찾아온 전남편에게 살해위협을 받은 날에도 경찰서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으나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무겁게 처벌하긴 어렵다”는 설명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긴급임시조치’를 할 수 있고, 법원도 판사의 결정으로 ‘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다. 긴급임시조치 시 경찰은 퇴거명령을 내리거나 100m 이내 접근금지, 전화통화 금지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어겨도 처벌이 과태료에 그쳐 가해자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피해자를 쫓아다니며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사회적 무관심과 당국의 허술한 피해자 보호망 속에서 가족들이 겪었을 공포와 고통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피해자의 딸은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아버지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이니 영원히 사회와 격리시켜 달라는 글을 올렸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형을 내려 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가정폭력은 줄지 않고 있다. 경찰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가정폭력 사범으로 검거된 16만 4020명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1%도 안 되는 1632명이었다. 가정폭력 재범률은 2015년 4.1%에서 올해는 6월까지 8.9%로 높아졌다. 지난해 여성긴급전화 1366에 걸려온 가정폭력 상담전화도 18만건이 넘는다. 남편이나 남성 연인에게 살해된 여성만 작년 한 해 85명이었다.
가정폭력이 흉포해지는 것은 사회가 각박해진 탓도 있지만 법의 미비와 당국의 소홀한 대처도 그 못지않은 문제다. 가정폭력의 경우 가족관계의 특수성 탓에 피해자가 침묵하거나 재발의 우려가 많은 만큼 적극적 구속수사 등 공권력의 강력한 법적 대응을 통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정폭력은 가정문제가 아니며, 사회문제이자 중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
가정폭력으로 또 다른 희생양이 생기는 참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법적 제도적 미비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가정폭력은 상대적 약자인 여성과 아동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상습적인 가정폭력범을 피해자와 분리하고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한 폭력범도 강력 대처하도록 관련 법규도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