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념처경은 사마타의 명상주제를 포함한 21가지 주제로, ‘사마타에 기반한 위빠사나 수행’ 또는 ‘순수한 위빠사나 수행’을 설한 경이다.
대념처경에서 설한 위빠사나 수행은 각 주제를 통해 근접삼매로 5가지 장애(감각적 욕망, 성냄,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가르침에 대한 회의적 의심)를 극복하는 마음청정을 이루어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머물고, 사성제를 통찰하여 해탈에 이르는 수행이다.
즉, 대념처경은 21가지 수행 주제를 몸과 느낌과 마음과 나머지 담마로 나누어, 각 담마(성품 또는 법)의 상태가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사성제를 통찰하여 해탈에 이르게 하는 수행을 설한 경이다.
여기서 5가지 장애는 근접삼매에 의해 일시적으로 극복되는 것이며, 특히 가르침에 대한 의심은 기본적 의심의 극복을 말한다.
가르침에 대한 회의적 의심은 이어지는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원인과 조건을 파악하는 위빠사나 지혜가 일어나야 수행이 증장되기 위한 의심이 극복되며, 수다원이 되어야 의심이 완전히 극복된다.
원인과 조건을 파악하는 위빠나사 지혜에 의해 의심이 극복되면 ‘작은 수다원’에 이르렀다고도 한다.
21가지 각 주제에서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근접삼매를 이루고 그 주제에 대해 일어나고 사라짐을 계속 관찰하는 수행을 ‘순수한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한다.
21가지 주제 중에서 사마타 명상주제에 해당하는 주제로, 그 주제에 집중하여 근접삼매를 이루고 그 주제에 대해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는 수행을 ‘사마타에 기반한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한다.
앞 포스트의 출입식념경에서 설한 위빠사나 수행은 ‘사마타에 기반한 위빠사나 수행’이지만, 호흡을 기반으로 하여 몸 상태를 공부짓고 느낌 상태를 공부지으며 마음 상태를 공부짓고 법(담마) 상태를 공부짓는 수행이므로, 대념처경에서 말하는 위빠사나 수행과는 좀 다르다.
대념처경은 21가지 각 주제에서 각 주제의 여러 상태가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출입식념경에 따른 위빠사나 수행은 호흡-신념처, 호흡-수념처, 호흡-심념처 및 호흡-법념처라고 할 수 있지만, 대념처경에 따른 위빠사나 수행은 신-신념처, 수-수념처, 심-심념처 및 법-법념처라고 할 수 있다.
즉, 출입식념경에서는 호흡에서 몸을 관찰하고, 호흡에서 느낌을 관찰하고, 호흡에서 마음을 관찰하고, 호흡에서 법(담마)을 관찰하는 반면에, 대념처경에서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고,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법(담마)에서 법(담마)을 관찰한다.
대념처경의 21가지 주제는 몸과 느낌과 마음과 나머지 법(담마)으로 분류하여, 신념처, 수념처, 심념처 및 법념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신념처에 해당하는 주제는 들숨날숨, 네가지 자세, 네가지 분명한 알아차림, 32가지 몸의 형태, 사대를 분석함,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이다.
수념처에 해당하는 주제는 느낌의 관찰이다.
심념처에 해당하는 주제는 마음의 관찰이다.
법념처에 해당하는 주제는 장애(5가지 장애)를 파악함, 무더기(오온)를 파악함, 감각장소(육입처)를 파악함, 깨달음의 구성요소(칠각지)를 파악함, 진리(사성제)를 파악함이다.
몸에서 몸을 관찰한다는 것은 몸의 범주에 속하는 각 주제에서 몸의 각 상태가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한다는 것은 느낌의 범주에 속하는 주제에서 느낌의 각 상태가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한다는 것은 마음의 범주에 속하는 주제에서 마음의 각 상태가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법(담마)에서 법(담마)을 관찰한다는 것은 나머지 담마의 범주에 속하는 각 주제에서 담마의 각 상태가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거친 상태인 신념처로 시작하여 사념처 수행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반드시 신념처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행자의 성향과 기질과 근기 및 상황에 따라 수념처로 시작하여 수념처를 위주로 수행할 수도 있고, 심념처로 시작하여 심념처를 위주로 수행할 수도 있으며, 법념처로 시작하여 법념처를 위주로 수행할 수도 있다.
수행자는 사념처 수행을 하는 중에 주의기울임에 따라 신념처와 수념처와 심념처와 법념처의 대상으로 적절히 바꾸어 담마(성품)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는 수행을 할 수 있다.
모든 21가지 주제에서 담마(성품)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는 중에 각각 사성제로써 노력하여 해탈 또는 열반에 이를 수 있다.
그럼 어떻게 사성제로써 노력하여 해탈 또는 열반(유여열반)에 이르는가?
“각 상태를 파악하는 마음챙김은 ‘괴로움의 진리(둑카 삿짜)’이다.
그 마음챙김을 일어나게 한 이전의 갈애는 ‘일어남의 진리(사무다야 삿짜)’이다.
이 괴로움과 일어남이 생기지 않음이 ‘소멸의 진리(니로다 삿짜)’이다.
괴로움을 철저히 알아 일어남을 버리고 소멸을 대상으로 가지는 성스러운 도가 ‘도의 진리(막가 삿짜)’이다.”
이와 같이 사성제로써 노력하여 해탈 또는 열반(유여열반)에 이른다.
법념처에서 ‘사성제의 파악’을 주제로 하는 경우에는,
“사성제를 파악하는 마음챙김이 ‘괴로움의 진리’이고, 사성제를 파악하는 마음챙김을 일어나게 한 이전의 갈애가 ‘일어남의 진리’이며, 이 괴로움과 일어남이 생기지 않음이 ‘소멸의 진리’이며, 괴로움을 철저히 알아 일어남을 버리고 소멸을 대상으로 가지는 성스러운 도가 ‘도의 진리’이다.”
이와 같이 ‘사성제의 파악’을 주제로 하는 경우에도 사성제로써 노력하여 해탈 또는 열반(유여열반)에 이른다.
모든 위빠사나 수행은 사성제로 귀결되어, 사성제로써 노력하여 해탈 또는 열반(유여열반)에 이르게 된다.
앞 포스트에서 설명한 출입식념경의 마지막 네 단계도 사성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이 대념처경도 마지막 법념처의 주제가 사성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사성제를 사성제로써 노력하여 해탈 또는 열반(유여열반)에 이르게 된다.
대념처경의 모든 21가지 각 주제에서도 각 주제를 사성제로써 노력하여 해탈 또는 열반(유여열반)에 이를 수 있다.
즉, 모든 위빠사나 수행은 해탈 또는 열반(유여열반)에 이를 때까지 마지막에는 ‘사성제로써 노력’해야 하거나, ‘사성제를 사성제로써 노력’해야 한다.
사성제로써 노력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괴로움이다(또는 괴로움이 있다),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또는 괴로움의 일어남이 있다, 괴로움의 소멸이다(또는 괴로움의 소멸이 있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또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 있다)>라고 파악하는 것과 함께,
<괴로움은 철저히 알아져야 한다, 괴로움의 일어남은 버려져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은 실현되어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닦아져야 한다>고 파악하면서,
<괴로움은 철저히 알아졌다, 괴로움의 일어남은 완전히 버려졌다, 괴로움의 소멸은 완전히 실현되었다,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완전히 닦아졌다>라고 파악되는 상태가 될 때까지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첫댓글 대념처경 공부할려니 머리가 어지럽네요...우리가 생각으로 보면 고통이지만 법으로 보면 고통이 아니잖아요..... 어쨌든 노력해야죠 가만히 있다고 저절로 되는 건 아니니까.......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