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0 쇠날 날씨: 아침에 비가 줄곧 오다 낮에 그쳐서 놀기 좋다.
아침열기(말놀이, 노래부르기)-뒷산가기-젖은그림 그리기-점심-청소-뒷산 고구마순심기-맑은샘회의-모두마침회
[젖은 그림 그리기]
어제 봄방학 하는 날 푸른샘 1학년은 노래를 부르고,
2학년부터는 악기 연주를 하기로 했다고 하니
아침열기 때 아이들 노래 부르는 소리가 힘차다.
말놀이도 우리가 익힌 동작을 넣어서 하자고 아주 열심이다.
3월에 모두 앞에 나가 발표하자고 할 때는 쑥스러워 안하겠다던 아이들인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할지 설렌다.
자연속학교도 다녀오고 이제 어엿한 맑은샘 어린이로
당당하게 언니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을지,
여전히 쑥스러워 소리가 작아질지 두고 볼 일이지만
그래도 기상과 기운이 씩씩해서 참 좋다.
“비오는 데 뒷산 갈까? 말까?”
“가요. 감자랑 채소 얼마나 자랐는지 봐야죠.”
“그럼 가는데 서둘러서 갔다 와야 돼요.
오늘 그림 그리는 공부는 1, 2, 3학년이 함께 젖은 그림을 그리기로 했어요.
젖은 그림은 물에 도화지를 적신 다음 색을 떨어뜨리거나
조금씩 그리는 건데 정말 색이 예쁘게 나와요.
한자말로는 습식수채화라고 하는데 젖은 그림 그리기란 말이 더 쉽고 알기 좋지요.“
“그거 어린이집에서 해봤어요.”
“그래요. 재미있을 거예요. 얼른 갔다 와서 준비해요.”
우산 쓰고 뒷산 가는데 비가 그리 많이 오지도 않고 거의 그쳐서 우산이 크게 쓸모가 없다.
풀들에 맺힌 빗방울들이 참 예뻐서 아이들을 불러 굴려보는데 빗방울이 참 예쁘다.
비가 와서 우면산 작은 골짜기에도 폭포가 생겨서 아이들을 부르는데 아이들도 멋있다 한다.
뒷산 텃밭 감자와 열무는 비가 와서 그런지 어제보다 더 자랐다.
앗 고구마순 몇 개 심으려고 했는데 깜박 안 가져왔다.
1, 2, 3학년이 모두 마루에 모여 젖은 그림 공부를 한다.
마루에 시와 그림내보이기에 쓰던 받침대를 놓고 아이들이 둘러앉았다.
최명희 선생이 물병 두 개에 물을 담고
노랑과 빨강 색을 떨어뜨려 아이들에게 물과 색이 섞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 속에서 색이 퍼져가는 게 곱다.
색과 물이 섞여가는 걸 보고 든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라 하니 아이마다 재미있는 말을 한다.
“액체 괴물 같아요.”
“무지개 같아요.”
“피 같아요.”
“물이 소용돌이 치는 것 같아요.”
“색이 용 같아요.”
앉아있는 대로 1, 2,3 학년을 골고루 섞어 네 사람씩 모둠을 짜고
바닥에 깔려있는 네 개 받침대 둘레에 앉은 다음,
모둠 이끔이가 두 가지 색과 붓을 씻을 물병을 모둠마다 놓았다.
받침대를 저마다 들고 앞으로 나오면
최명희 선생이 두꺼운 도화지(머메이드지)를 물에 담궈 적신 다음
받침대를 스펀지로 닦고 그 위에 도화지를 붙여준다.
그림 주제는 두 색을 써서 봄을 마음껏 표현하는 거다.
봄이 어려우면 자기 마음 가는대로 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도화지에 가득 색을 다 입히는데 물을 아주 많이 묻혀 붓을 많이 놀리면
두꺼운 도화지라도 종이가 떼처럼 일어난다는 것도 말해주는데 그다지 귀 기울이지는 않는다.
이미 재미있어 보이는 놀이가 있고 그리는 색의 변화와 번짐에 벌써 빠져든 아이들이다.
선생들도 아이들과 함께 앉아 그리며 아이들을 보는데
아이들마다 색을 쓰는 것, 붓을 놀리는 게 정말 다 다르다.
우리 동엽이는 붉은색을 정말 진하게 그려 넣고 있다.
우리 원서는 거침없이 붓을 놀리며 색을 맛보고 있다.
내 앞에서 같은 받침대를 쓰는 지은이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한다.
푸른샘 아이들도 기운대로 잘 하고 있다.
나는 노랑을 바탕으로 깔고 빨강으로 꽃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붓을 씻지 않고 색을 묻히다 보니 노란색 물병이 주황색이 되어버렸다.
할 때마다 붓을 잘 씻도록 꼭 챙겨야 할 일이다.
그래도 물 묻은 종이 위에 붓에 묻힌 빨강색을 툭 뿌리거나 칠할 때마다
퍼져나가는 물과 색의 조화가 예뻐서 자꾸 손이 간다.
물감이 번져나가면서 경계가 없어지고 따듯함이 묻어난다.
선이 아닌 면으로 그리는 느낌이 많다.
붓으로 쓱 선을 그리면 번져버림으로 선은 사라지고 면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정말 매력 있다.
발도르프 교육 예술 가운데 참 좋은 활동이다.
모두 마치고 붓도 씻고 바닥 정리를 한 다음 잠깐 쉬다 모두모여 느낌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젖은 그림을 가득 한데 모아놓고 둘러앉아 발표하는 아이들 모습이 그림처럼 예쁘다.
무지개를 그리고 싶었다, 선생님 하는 거 보고 따라했다, 꽃이 피는 봄을 그리고 싶었다,
해와 꽃을 그리고 싶었다, 그냥 그렸다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발표를 마치고 모둠마다 글쓰기를 하는데 겪은 일 쓰기와 시 쓰기 둘 다 자연스레 된다.
아이들과 젖은 그림 그리기를 줄곧 해 온
최명희 선생이 젖은 그림 그리기를 처음부터 끝가지 잘 이끌어주어
아이들이 신비한 색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사실 발도로프 교육예술 과정에서 배워 지금 우리 교육 과정에 넣어 하는 것 가운데
형태그리기와 젖은 그림 그리기가 있다.
형태그리기는 학교 초기부터 선 그리기로 수학 시간마다 하고 있고
낮은 학년부터 높은 학년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 활동이다.
발도르프 교육을 들여다보면서 살펴본 여러 교육 활동 가운데 오이리트미, 주기집중 수업도
특색이 있지만 젖은 그림과 선 그리기도 참 좋다.
우리 교육 과정을 잘 살려가며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발도르프의 표현예술교육 가운데
배울 것을 찾아 우리 교육과정을 풍성하게 가꾸면 좋겠다.
젖은 그림은 색과 색의 만남으로 색채에
살아 숨 쉬는 오묘한 생명력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예술 교육이다.
선이 주는 날카로움이나 나누는 경계를 넘어
색깔들이 번지고 섞이며 아름답게 바뀌고 어울리는 과정을 경험하며
아이들에게 연필이나 색연필들이 주는 선의 느낌과 달리
면과 면을 이어주는 부드러움으로 색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연필로 살아있는 그림 그리기를 하는 것과 함께 가면 참 좋은 미술 교육이다 싶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지학에서 “자연은 대우주이고 인간은 소우주다.” 말하며
색채론을 폈는데, “인간은 색 속에서 살고, 인간 안에 색이 있다.”란 말이 기억난다.
마른 종이가 아닌 젖은 종이가 주는 편안한 마음,
바탕이 되는 자주색, 청록색, 노란색으로 여러 가지 자연이 지닌 색을 만들어가는 과정,
색깔의 기운과 결을 따라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젖은 그림 그리기를 꾸준히 하면 좋겠다.
다음에는 젖은 그림 그리기에서 아주 중요한 재미있는 색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에 맞는 젖은 그림을 그리며 신비한 색을 찾고 만들도록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