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어쩔 수 없는 선택, 모로코
I. 처음 내린 곳
a. 아프리카로...
바르셀로나에 사는 친구 '마놀로' 집 결혼식에 초대까지 받아 와 있던 인야는, 이래저래 분분하기만 했다.
왁자지껄한 결혼식 분위기에 젖어 며칠을 지내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점점 불안하고 쫓기기까지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 편은,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했던 반면... 하루하루 다가오는 '모로코'행의 부담은, 그를 사지로 몰아가거나 구렁텅이에 빠져가는 위기감에 젖게 했던 것인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그러니까 뭐가 뭔지도 모를 혼동에 빠지게 하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스페인은 떠나야만 할 처지였고, 또 어쨌거나 '모로코'로 가는 방법이 최선이겠기에... 자신에게 놓여진 그 '아이러니의 세상'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곳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상황...
'아! 내가 왜, 하필이면 그 나라로 가야만 한다지? 안 가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차례 들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기도 했기에...
'이것도 운명인가?' 하는, 자포자기에 빠지고도 있었다.
아무리 빠져나오려고 해도, 갈수록 더 깊은 곳으로 침잠해가는 자신......
인야는,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사실 모로코행을 결정한 뒤로, 인야는 현지인 하나라도 알아 놓고 가려 애를 써왔다. 적어도 '믿을 만한 모로코인' 한 사람 정도는 알고 가야, 자신의 안위와 연결이 될 것 같은... 너무나도 절실한 생각에서였다.
주변 스페인 사람들 중에도 모로코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 더러 있긴 했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역사적으로 옛 무어족의 침입 등을 이유로... 모로코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어서, 그들을 통해 얻는 정보는 그저 피상적일 뿐이었다.
그러다 바르셀로나의 누리아에게도 그 얘길 하게되았는데, 누리아 역시 자신이 아는 모로코인은 없다면서도...
자신의 아르헨티나 친구 아들이 스페인 남부 까디스(Cadiz)에서 사업을 하는데, 모로코인을 상대로 하는 일이라... 그쪽을 통해 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다리를 건너 에싸위라(Essaouira)에 사는 한 사람을 소개받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어쨌거나 그 현지 모로코인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에싸위라행은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가 말하는 집세였다. 두어 후보지 가격을 보내왔는데, 하나는 600유로, 다른 하나는 450유로라는 것이었다.
스페인 사모라 지방 시골에서도 한 달 집세가 250유로였는데, 물가도 싸다는 모로코에서 그 두 배가 넘는 가격이라니,
'말도 안 돼.' 하고, 인야는 그 건은 거의 포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인야의 사정을 잘 알게 된 마놀로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며, 자신이 알고 있던 한 모로코인 노동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람블라 까딸루냐 62번지, 그가 일한다는 주소였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야는 그 사람을 찾아갔다.
그를 만났는데, 사람은 참 착하게 보였다.
그런데 막상 얘기를 나눠보니, 그는 모로코 북부 지역 사람이어서... 인야가 가려는 모로코 남쪽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인야가 궁금해하는 건 별로 안중에도 없이, 그저 자기 얘기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야는,
"당신을 만나, 모로코에 대한 얘기를 들을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정중히 하고 헤어졌는데,
그렇게 별 소득 없는 만남을 끝으로, 더는 기댈 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래도 갈 거라면, 그냥 '관광객'이라고 치부하고 맘 편하게(?) 가 보자.' 하는, 어쩌면 자신 내부의 저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던 생뚱맞은 배짱(?)이 고개를 내밀어... 자신을 다독여보기도 했지만,
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을 길이 없었고, 도대체가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글쎄, 아무리 나에게 나쁜 기억을 안겨준 모로코인들이라지만, 그 나라 사람들 전부가 다 나를 잡아먹으려들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은 있었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바로...
'그래도, 왜 하필 그 나라로 간다는 거지?' 하는 불안감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았다.
'이럴 땐, 누군가와 함께 간다면... 조금이라도 의지하면서 갈 수 있을 텐데, 나는 그럴 수조차 없는 혼자니......' 하는 생각도 들어, 평소와는 달리 외롭다는 생각마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외로운 것도 웬만한 게 아닌, 처절하도록......
그래도 모로코로 가야 할 순간은, 이제 수정할 수조차 없게끔...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는,
'그래, 모든 걸 다 포기(?)하자. 아니, 그런저런 미련 같은 것도 다 내려놓고, 그저 나에게 닥치는 상황에 따라... 되는 대로 대응하자......' 하고 그 어떤 '희망(기대?)' 같은 것도 갖지 않기로 했다.
떠나는 날 새벽 네 시쯤 눈이 떠져서,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아 인야는... 자신의 인터넷 까페에 마지막 글(모로코로 간다는 안내)을 올린 뒤, 전날 찍었던 사진 정리도 한 뒤 샤워를 했다.
그런 뒤 가방을 다 챙기고 나도 아직 7시도 되기 전이었다.
마놀로가 공항까지 데려다주기로 해서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늘 잠을 설치는 인야에게는 남은 시간이 아깝기까지 했다.
아침이 돼 가면서, 이 집에서는 여전히 새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싱그럽게 들려왔다.
'이제 모로코로 가기만 하면 된다. 허기야, 그건 또 다른 시작이겠지만......'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초조하고 불안해서 정신 둘 곳도 없었는데, 자신이 너무 덤덤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관광객으로 가는데, 뭐... 대단할 일 있겠나?' 하는 심정이었고, 난생 처음 가 보는 모로코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거리는 가까웠지만... 대륙을 바꾼 '아프리카'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야, 대단하네? 내가 아프리카 땅에도 발을 들여보고?' 하는 생각이 들면서는,
피식!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굳이 '아프리카'네 뭐네 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나에게 벌어지는 상황에 나를 맡기자.' 하고 있었다.
이제 스페인에서의 일정은 다 마쳤다. 그러니, 어떤 (익숙해 있던)관습이나 굴레에서는 벗어나는 셈이기도 하니... 이제부터는 새로운 '자유'일 것이었다.
'그래, 겁먹을 일 없이... '새로운 자유'를 즐기기로 하자......'
그리고 결국 인야는, 모로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인야는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졸음이 불같이 밀려들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일정에 너무 지쳐있었던 것이었을까?
정말 누가 죽인다 해도 잠을 자고 싶을 정도로 녹초가 돼 있었고, 그대로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비행기가 덜컹거리는 충격에 눈을 떴고, 자신은 어쩐지 썰렁한 공항을 달리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그렇게 모로코에 도착한 것이었다.
''마라케시'? 그게 무슨 뜻일까?' 우선 인야에게 든 생각이었다.
마라케시 공항은 한 마디로 어설펐다. 그만큼 이 나라의 산업이나 관광, 경제, 여러 면에서 허술하고 또 불안하다는 말이기도 할 터였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릴 때도 '관세지역'이 아닌, 공항 활주로 아스팔트에 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아무런 보안(밀입국 탈출에 대한 대비) 시설 없이, 그저 비행기 계단으로 내려왔으니까.
그러면서 느낀 후끈한 열기에,
'아, 이래서 아프리카인가 보구나!'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름도, 그 공기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입국 수속도 참 단순했다.
인야는 이미 스페인어로 되어 있던 입국신고서를 기입했었는데, 검사원이 호텔 주소를 기입하라고 요구했지만...
"난생 처음 와 보는 이곳에, 내가 어느 호텔로 갈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하고, 스페인어와 영어로 띄엄띄엄 대답을 했지만, 도통 통하지가 않았다.
그러자 검사원도 스스로 답답했던지, 자신이 어느 호텔 이름을 불러주면서 인야에게 직접 기입하라고 했지만...
영어로 하는 발음 자체가 이상해서,
인야는 도대체 그가 뭐라고 하는지조차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무튼 그런 절차를 거쳐, 덜렁 마라케시 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앞이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