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망봉(國望峰 481m)은 문수지맥 용두산 남쪽에 위치한다.
조선중기 퇴계 선생의 조부인 판서(추증) 이계양(李繼陽)공이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제단을 만들어 30여년 동안 제사를 올리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던 봉우리이다.
이후 그곳엔 국망봉 ‘단비(檀碑)’가 세워졌다.
정상에는 당시 의식을 거행하던 제단과 바위에 국망봉이라고 새겨진 글자가 있고, 용두산 아래에는 고려시대의 사찰로 알려진 ‘용수사’와 온계마을에는 ‘태계태실’이 있다.
또한 안동호변에는 도산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용두산(龍頭山)은 남쪽으로 국망봉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청량산과 이웃하고 있으며 서남으로 위치한 새지산과 함께 안동호를 바라보고 있다.
이퇴계 선생 조부가 온혜에 마을터를 정할 때 산의 모양이 용머리를 닮아 용두산이라 하였고, 또 용수사의 뒷산이라 용두산이기도 하다.
이 길은 ‘안동선비순례길(전체 91.3km)’ 9개 코스 중 8코스의 ‘마의태자길’과 겹친다.
이곳은 신라가 망하자 태자였던 김일이 고려로의 귀부를 거부하는 세력을 이끌고 끝까지 신라부흥을 일으켰던 흔적이 전설로 남아 있다.
마의태자가 매일 올라가 망국의 땅을 바라보았다는 용두산 중턱의 마의대, 마의태자의 한을 담고 있다는 달래재길 등 신라부흥을 꾀했던 흔적들이 빼곡하다.
문수지맥은 백두대간 박달령 옆 옥돌봉(1,244m)에서 문수산(1,207.6m)으로 남하하며 용두산과 학가산(874m)을 거쳐 내성천에 이르는 114.5km의 산줄기이다.
먼저 들리는 퇴계태실은 1454년(단종 2)에 퇴계선생의 조부인 계양공(繼陽公)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황의 할아버지인 이계양(李繼陽)이 세웠는데, 1930년대 전면개축이 있었고, 뒷날 몸채 중앙의 돌출된 방에서 이황이 태어났다고 하여 퇴계태실이라 불렀다.
침천정(枕泉亭)은 조선 후기 운산 이휘재(李彙載) 선생이 1834년에 용계고택의 별당으로 세워 유생들에게 강학을 한 장소로 병인양요 땐 의군을 모집 양인을 성토한 곳이다.
이중린(李中麟 1838~1917) 선생은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의병으로 그의 조부가 이휘재이다.
그곳에서 항일운동을 했던 운포 이중린은 옥살이를 하고, 외척 국정농단 때 조정과 불화로 4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침천정과 용계고택은 운산 이휘재선생의 학문세계와 운포 이중린선생의 애국정신이 함께 숨 쉬는 곳이다.
용수사(龍壽寺)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용두산 자락에 남향으로 앉아 있다.
통도사의 말사로 1181년(고려 명종 11)에 건립되었고, 경북 유형문화재인 ‘안동 용수사 대정삼년명 금동고’와 문화재자료인 ‘안동 용수사 금호비’가 있다.
귀가시에는 도산서원을 들릴 계획이다.
도산서원은 사적 제170호, 상덕사 및 삼문은 보물 제211호, 전교당은 보물 제210호로 지정되었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직접 설계하여 지었다고 한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본산이 되었다
참가회비: 25,000원(떡 및 뒷풀이)
예약문의: 총무 010-8819-8536, 010-3945-9438
산행문의: 대장 010-9208-0812
산행코스: A: 침천정-국망봉-문수지맥-한티-갈림길-용두산-용수사-일주문(주차장 4시간 30분)
B: 일주문 삼거리-능선-용두산-용수사-일주문 주차장(3시간 30분)
※ 도산서원 탐방
<임의로 그렸으므로 다소 틀릴 수도 있음>
<개념도>
개념도
문수지맥
선비순례길
국망봉
국망봉단비
용두산 새 정상석
예전 정상석
선비순례길
용수사
퇴계태실 고택의 중앙으로 나온 곳이 당호가 된 '퇴계선생태실'이다.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원'의 현판은 1575년에 선조임금께서 사액하신 것으로 명필 한석봉 친필이다.
들머리이기도 한 침천정
우리 버스(해운대고속관광, 010-4845-1336)는 아래의 장소에서 대기한다.
차량 이동경로: 구)송월타월 옆 동래역 방면(08:00)-만덕 육교-덕천동 부민병원(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