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서울 법련사 (송광사 서울분원) 창립 50주년 기념 특별전
여래의 바다 (Sea of Buddha) -한국불교미술의 원류를 찾아서
전시회 주역 김기홍 교수
글 전현자 (본지 한국취재기자)
서울 법련사(회주 현호 스님) 부설 불일미술관 은 법련사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중국 북조 시대와 수·당대에 제작된 성보를 만날 수 있는 특별전 ‘여래의 바다’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전 시회의 부제는 ‘한국불교미술의 원류를 찾아서’ 이 전시회는 6월 1일 일반공개를 시작하여 11월 30일까지 진행되었다. 이 전시에는 김기홍 박 사가 수집해온 90여 점의 성보가 전시되었다. 김 박사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 하였고 동 대학원에서는 미술사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학부재학시인 1976년부터 10 여년간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에서 근무하였 다.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미국을 비롯한 여래 대학에서 한국미술사와 중국미술사를 강의했 으며, 미주대륙에서 발견되는 중국 초기 불교 조각들을 30여년에 걸쳐 수집하여 200여점으 로 이루어진 반야컬렉션을 완성하였다. 이분야 의 개인컬렉션으로는 전세계에서 으뜸이라 할 이 방대한 컬렉션은 2017년서울대학교박물관 과 협력하여 미국에서 한국으로 옮겨졌다.
–편집자 주
기 자 미국대학 교수님을 한국에서 인터뷰 하게 되 어 반갑습니다.
‘미륵반가사유상’의 원류인 불상이 전시되어 있는 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기홍 교수 한국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금동미륵 반가사유상’은 국보78호, 83호로 하나는 백제지역, 하나는 신라지역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작 품들과 연관성이 있는 작품을 선택하다보니 6세기 중후반에 해당하는 동위(534-550)와 동위을 뒤이 은 왕조인 북제(550-577)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반가사유상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제작시기를 밝혀주는 명문은 이 반가사유상에 남아 있지 않지만 같은 시대에 제작되어 현존하는 유사한 작품들에 근거하여 제작시기가 어렵지 않게 추정됩 니다. 그 이유는 양식의 변천이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2점의 금 동반가사유상의 제작시기를 대략 7세기 초로 본다 면이번에전시된작품은적어도50년이상앞섰다 고 하겠습니다. 당시 북조왕조와 한반도의 백제, 신 라사이의 긴밀한 외교와 통상관계를 감안하면 중국 으로 부터의 불상양식이 한반도에 빠른 속도로 전래 되었을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단독상으로 제작된 이 반가사유상이외에도 이번에 같이 전시된 여러 작품에서도 한국 반가사유상의 원 류를어렵지않게찾아볼수있습니다. 또다른예를 들면, 충남 서산의 ‘마애삼존불’이 북제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마애불의 중심부에는 부처님께 서 서계시고 부처님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상 이,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불상은 대개 부처님 단독상이거나, 3존불, 5존불 형태인데 서산 마애불은 대칭이 다릅니다. 오른쪽에는 보살, 왼쪽은 오른쪽의 대칭이 아닌 반가 사유상으로 되어있습니다. 가운데 모셔진 부처님은 현재를 상징하는 부처님이시고, 반가사유상은 성불하기 직전의 미륵부처님의 모습입니다. 일반적인 대칭구도를 따르지 않은 서산마애불의 파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특이함은 한화면속에 당시 백제인들이 소망을 집약적으로 함축하여 표현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습 니다.
반가사유상은 결국 미륵부처님을 뜻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타나실 미래의 부처님을 상징합니다. 미륵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에 나타나실 부처님 으로 되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56억 7천만년에 나타나실 부처님이라고 경전에 밝히고 있 습니다. 비록 56억년이라는 시간은 다가오지 않았지 만 미륵반가상이나 미륵불의 제작은 새로운 부처님 께서 하루빨리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원인 것 입니다. 서산마애불의 좌우 비대칭의 특별함은 현재와 미래를 나타내는 부처님! 그리고 그 중간을 이어주는 보살이라는 것입니다. 보살은 부처가 될 수 있음에도 현실세계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석가모니부처님! 미래의 미륵부처님! 그리고 미륵 부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보살님께서 중생들을 교화한다는 것으 로표현된마애불의구도는대단한것이라할수있 습니다.
백제 무령왕릉은 1971년 전혀 도굴되지 않은 채 온 전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무령왕릉은 한국 고미 술사는 물론 동아시아에도 막대한 자료가 되는 중요 한 것입니다. 무령왕의 손자인 위덕왕께서는 북제와 긴밀한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백제와 북제는 많은 왕래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불상은 물론 조각가들도 왕래가 있었을 것으로 잠작합니다. 그리고 태안의 백화산에 있는 ‘태안 마애불’도 중요합니다. 태안 마애불도 북제불상양식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기 자 미륵상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기홍 교수 5세기 중후반에서 6세기 초까지의 기간 에 조성된 북위시대의 위대한 불교미술 유산인 운강 석굴에서 미륵보살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륵보살의 모습은 두가지 형 태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의자에 앉아 늘어뜨린 두 다리를 정강이 부분에서 교차시키는 소위 교각의좌 상의모습이고둘째는우리가잘알고있는반가사 유상의 형태입니다. 교각의좌상의 미륵은 미륵상생 경에 나오는 도솔천에 머무르고 계신 모습이고 반가 사유상은 인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셔서 출가후 성 불하기 직전의 모습인 미륵 하생경에 나오는 모습입 니다. 미륵 상생경에는 미륵이 부처님의 천상세계 중의 하나인 도솔천에 머물고 계신다고 설하여져 있습니다.
열반하신 뒤 천상의 세계에 남아 있는 모습이 교각 의좌세의 부처님입니다. 교각좌의 미륵상생상은 아 직 한국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습니다만, 백제지역에서 만들어졌었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제 가 멸망 할 때 당나라 군대에의해 너무 처참히 파괴되어 부여를 비롯한 백제의 모든 지역에서 불교유적이 다 파괴되괴 약탈되었습니다. 간혹 남아 있었다고 해도 몽고 침략시에 파괴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미륵하생경에는 미륵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석 가모니 부처님처럼 출가해 깨달음을 이룰 것이라 되 어 있습니다.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 고 3번의 법문으로 온세상을 교화한다고 되어 있는 데 미륵사유상은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기 직전의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륵반가사유상은곧이루어질중생의희망을표현한것이라할수 있습니다
기 자 불상들을 어디서, 어떻게 모실 수 있었는지요?
김기홍 교수 전시된 석가모니 불, 미륵불등, 모두 돌 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청동이나 황동으로 만든불상 들은 저의 수집품중 극소수 입니다. 금속으로 만든 것은우선복제가어렵지않기때문에작품의진위 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반면에 석조 조상들은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어도 완벽한 복제는 불가능합니다. 불상은 예배대상을으로서의 신의 모 습이기도 하지만 또한 예술작품으로서의 조각품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과 삶의 지난한 문제 의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을 형샹화한 객 관적 실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댕이나 미켈란젤로 의 조각품들은 대부분 인간의 모습이거나 그리스 신 화에 나오는 신(神)들의 모습이지만 결국 인간의 모 습입니다. 그러나 불상은 인간의 모습을 닮긴 했어 도 예배의 대상이 되는 가장 신성(神聖)스러운 모습 입니다. 신성(神聖)을 인간(人間)의 모습에 담아 그 두 세계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기 자 수집에 원칙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요?
김기홍 교수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움! 이 한 가지가 원칙입니다. 아무리 오래 된 것이라 해도 아름답지 않으면 구하지 않았습니다.
기 자 어디서 모실 수 있었는지요?
김기홍 교수 주로 미국과 캐나다의 동부지역에서 구 입했습니다.
기 자 고미술을 연구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김기홍 교수 제가 1976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2학년이었습니다. 한국미술사 강의를 나오신 가헌 최완수 선생님께 발탁되어 간송미술관의 학예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부터 입니다. 간송미술관의 학예연구실에서 은사이신 최완수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회화와 서예분야의 한국고미술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찰을 탐방하며 불교미술에 대한 연구와 공부를 또한 할 수 있었습니다. 최완수 선생님께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셨던 한국미술사의 거목이신 혜곡 최순우 선생님의 제자이셔서 저 또한 그 학맥을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사이신 최 완수 선생님께서 한국 불교 미술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불상 연구의 선구적인 학자이다보니 저 또한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기 자 고미술을 소르본느에서 공부하신 이유는 무 엇인지요?
김기홍 교수 1985년도에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박사 학위는 1990년에 취득했습니다. 유학을 간 이유는 당시에 서울대학교을 위시해 한국의 대학에서는 미
선생님께서 한국 불교 미술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불상 연구의 선구적인 학자이다보니 저 또한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기 자 고미술을 소르본느에서 공부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김기홍 교수 1985년도에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박사학위는 1990년에 취득했습니다. 유학을 간 이유는 당시에 서울대학교을 위시해 한국의 대학에서는 미술 사학과는 있었지만 박사과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 자 죠지아 사바나 예술대학교의 교수님이신데 학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기홍 교수 지금은 퇴직 한 상태입니다.이 불상들이 서울대와 협조해 옮겨 논 뒤부터 너무 큰 일이 되어 교수직에 전념 할 수가 없어 퇴직을 해야 했습니다. 사바나 대학에서의 강의는 2003년부터 2018년까지 했고 그 전에는 하와이 대학에서 조교수로 있었습니다. SCAD (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은 미국내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 대학중의 하나입니다. 각 분야에 순수, 응용 미술, 그리고 그래픽, 사운드, 애니메이션, 인테리어 등 많은 프로그램들을 갖고 있는 규모에서나 교육의 질적인 면에서서나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뱓는 예술학교입니다. 분교Satellite)캠퍼스가 아틀란타, 프랑스 라코스테, 홍콩에 있습니다.
기 자 전시를 법련사에서 하시게 된 인연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기홍 교수 1983년, 프랑스로 유학 가기 전 송광사에서 6.25 전쟁으로 불탔던 전각과 불상들을 다시 만드는 8차 중창불사가 있었습니다. 구산 큰스님께서 방장스님이셨고 주지스님은 구산스님의 상좌이신 현호스님이었습니다. 그때 불상제작의 감수를 간송 미술관의 최 완수 선생님께 맡기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불상의 근원부터 시작해 인도, 중국, 한국의 불상들을 다 아시는 대가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송광사 불상의 감수를 맡으시면서 제자인 저에게 도안을 맡기셔서 새로 짓는 대웅전 주존불의 도안을 맡게 되었습니다. 북조시대의 불상을 기초를 두고 도안을 했고, 주조장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그 인연이 전시회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송광사 분원인 법련사가 올해 창립 50주년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절이 법련사라 생각하시면 되는 절입니다. 송광사는 불법승을 대변하는 한국의 3대 사찰중 하나로 보조국사등 16분의 국사를 배출한 사찰입니다. 근래의 중요한 스님으로는 구산큰스님과 법정스님이십니다. 그 두 분 스님께서 앞장서시어 만드신 절이 법련사입니다. 법정스님과 법련사의 회주이신 현호스님께서 고 김우중 회장님의 도움을 받아 법련화 보살님께서 시주하신 한옥을 현대적 건물로 만드셨는데, 좌우 양쪽에 불일 미술관과 서점을 만드셨습니다. 미술관을 만드신 이유는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마음이셨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문학과 예술을 통한 불법 전달의 일환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근래에 법정스님의 본뜻이 쇠락되어 전시관이 전시물 없이 닫혔을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 스님의 뜻을 기려 제가 만든 중국초기불상컬렉션의 중요함을 잘 아시는 현호스님과 저의 은사이신 최 완수 선생님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이번 뜻깊은 전시를 열 수 있었습니다.
기 자 교수님은 누구십니까?
김기홍 교수 부처님의 이름없는 심부름꾼 입니다.
때: 2024년 7월 9일
곳: 서울 법련사 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