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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후 다섯 번째 주일
성경 ; 삼하6:1-5,12-19, 엡1:3-14, 막6:14-29
제목 ; 그분의 사랑에 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기 파리채입니다. 중국제입니다. 이 손잡이 안에 충전식 배터리
가 들어 있어서 충전을 해가지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스위치를 누른 채로 앉아
있거나 날아다니는 파리모기를 가까이 대거나 휘두르면, 이 철사 선에 흐르고
있는 고압이 충격을 줌으로써 파리나 모기를 잡아 죽이는 것입니다.
인터넷 옥션에서 15,000원을 주고 샀습니다. 교대로 사용하려고 두 개를
샀습니다. 모양도 그럴싸할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아주 작동이 잘 되었습니다.
날아다니는 파리도 신나게 잘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권사님이 한 번 사용해
보더니,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자신도 하나 구입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
다. 그래서 저는 두 개를 더 샀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배터리가 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겉모양
은 이처럼 그럴싸하게 잘 만들어놨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배터리는 저질이었
던 것입니다. 처음 사용할 때에는 아무 이상 없이 작동이 잘 되었습니다. 그러
나 얼마 가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중국제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이처럼 눈속임으로 물건을 만
들어내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벌써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값이
싸니까 다시 중국제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제 경험으로는
대부분의 중국제가 값도 저렴하고 겉모양은 아주 그럴듯하게 잘 만들고 있지
만, 그러나 눈속임이 많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중국제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도 아직은 겉포장만 아주 화려하게 잘 되어
있을 뿐, 실상 그 속 알맹이가 형편없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속이
없는 제품일수록, 겉포장에 적혀있는 문구가 더 요란하고 그럴 듯합니다. 가짜
에 가까울수록 최고의 제품인 것처럼 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도 겉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다른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허우
대도 좋고 얼굴도 미남형으로 잘 생긴데다가 말솜씨도 참 좋은데, 그 인간성은
아주 형편없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
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몸매는 S라인이고, 얼굴도 곱고 예쁜데, 그 속이
텅텅 비어있는 여자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물론, 몸매도 좋고 얼굴도 예쁜데다가 인간성까지 좋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
겠지요. 그렇지만, 그 겉모습은 어떠하든지 간에, 그 인간성이 좋고 예의가 바
를 경우,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말솜씨가 좀 없더라도,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고 애쓰거나 약속을 잘 지킨다면, 그 말솜
씨 없는 것이 그다지 큰 허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릇과 상자의 모양이나 질이 좀 형편이 없더라도,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알차고 실속이 있을 경우, 겉에 드러난 것이 별로 큰 문제가 안 된
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첫인상이나 겉모습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
다. 그래서 사람이나 물건을 처음 대했을 때, 그 겉모습이나 첫인상이 보기 좋
아야 좀 더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보
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겠습니까?
그렇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그 진면목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든지 물
건이든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이나 물건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
니다. 요컨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그럴
싸해보이던 사람이 나중에는 크게 실망을 주는 경우도 있거니와, 반면에 처음
만났을 때에는 인상이 별로 안 좋았는데 차츰 날이 갈수록 호감이 들고 신뢰
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김포시 여성회관에서 김포시 시립 어머니 합창단 정
기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지휘했던 분이 이번 공연에서도 지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시립 어머니 합창단 지휘자는 항상 고정되어 있기 때
문입니다.
지금 지휘를 맡고 있는 분은 말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때에, 그
분이 말수가 적은 것은 어쩌면 언변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해에 앙코르를 받았을 때에 했던 그 멘트를 이번에
도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냥 그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 멘트가 워낙 간단
했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외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정해진 곡목을 다 부른 후에, 첫 번째 앙코르 받았습니다. 그 때에, 지휘
자는 “그렇잖아도 앙코르 곡을 미리 준비했습니다.” 이 말 한 마디만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두 번째로 앙코르를 요청하자, 지휘자는 다시 “앙코르 곡을
하나 더 준비한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지휘자
는 다른 말은 일체 하지 않고 그냥 합창을 지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말씀
드렸듯이, 이 두 마디는 작년에 했던 그대로입니다. 그만큼, 지휘자가 구변이
없거나 말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지휘자에
대해서 변호 아닌 변호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내가 볼 때에, 시간이 지
날수록 지휘자가 참으로 순수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
로 말해서, 사람이 참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제 아내에게는 안 좋은 사람
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 말하는 품새를 보아, 그 지휘자가
정말 순수한 사람인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 지휘자에게 아주 실례가 되는 말입니다만, 그는 키도 작을 뿐만 아니
라, 얼굴도 그리 잘생긴 편이 아닙니다. 거기에다가 말솜씨까지 눌변이니, 겉
으로 보아서 사람들에게 큰 점수를 얻을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
니다. 그러나 일 년이 넘도록 그 지휘자를 겪어본 제 아내가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을 보아서, 그 지휘자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체나 성격, 그리고 인품 등은 부모로부터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반대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가 스스로
원해서 추한 얼굴이나 나쁜 성품을 지니고 태어났겠습니까? 그 자신의 의지와
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좋은 성품을 지니게 된 사람도 있거니와,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체적인 좋은 조건과 좋은 성품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해서 반
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안 좋은 조건 속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보십시오. 인물이 좋
습니까? 그 음성이 좋습니까? 그 눈은 단추 구멍보다 작고, 그 음성은 듣기가
참 거북할 정도로 아주 투박하고 파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국의 대통령
이 되어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게 된 신체적인 조건이나 성품 등은 우
리 맘대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즘 성형수술이 유행입니다만, 일
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짓입니다. 물론, 돈이 많더라도, 온전한 정신
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데다가 돈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그 해답
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온갖 영적인 복을 주께 속한 우리에게 베푸셨
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타고나기는 엄청 부족하게 태어났을지
라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간으
로 거듭 태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 속한 자가 될 때에 그런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께 속한 자가 되어 살 경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책임지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저것 하늘에 속한 것들을 우리 속에 넣어주십니다. 그 결과, 우리의 속사
람이 변하여 하나님께 속한 자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에는 ‘주님께 속한 자’라는 말이 아주 여러 번 나
옵니다. 우선, 3절에는 ‘주님께 속한 우리에게’라고 되어 있고, 4절에서는 ‘주
님의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하나님의 가족’, 6절에서는
‘주님의 사람’, 10절에는 ‘주님 안에서’, 11절에는 ‘주님의 것’이라고 되어 있
습니다. 13절에도 ‘주님의 사람’, 14절에서 다시 ‘주님의 것’이라는 표현이 나
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께 속한 자에게 베푸시는 영적인 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4절의 말씀을 보면, ‘주님이 보시기에 한 점 흠이 없는 거룩한 자로 만
드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속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에 싸여서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6절에서는 ‘우리에게 은총과 사랑을
쏟아 주님의 사람이 되게 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 8절에서 사도 바
울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주님께 속한 자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갖게 하
는 풍성한 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께 속한 자인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0절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 안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게 하시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언
제나 함께 하신다는데, 우리가 왜 염려하고 걱정하겠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주님께 속한 자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께 속한 자가 되면, 육신의 부모로
부터 처음 태어날 때에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태어났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1.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주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히 주님께 속한 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언제나 주님께 속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하늘의 복을 누리
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하늘문은 열심히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고 했습니
다. 그런고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그 복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그 복을
받고자 열심히 애쓰고 노력하는 자가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6장에는,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이전에도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법궤를 운반하던 도중, 웃사가 법궤를 만졌다가 즉사하는 사건이 발생
하는 바람에, 그만 그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법궤를 임시로 모셔두었던 오벳에돔의 집이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
는 소식을, 다윗이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분노를
거두시고 은혜를 베푸시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
게 되었던 것입니다. 법궤를 멘 사람들이 오벳에돔의 집에서 나와 여섯 걸음을
옮기도록 아무 일도 없자, 다윗은 법궤를 내려놓도록 한 다음, 그곳에서 하나
님께 감사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법궤운반이 다시 계속되자, 다윗은 춤
을 추면서 그 뒤를 따랐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 법궤는 하나님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법
궤를 모시고 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법궤
를 다윗이 살고 있던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간절히 사모했기에, 그처럼 법궤를 옮겨왔던 것입
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함께
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날
경우,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곁을 떠나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버리시는 경우가 절대로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많이 짓고 잘못을 하더라도, 하나
님께서 먼저 우리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워낙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실수를 거듭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누구를 원망
하거나 탓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비관하거나 좌절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어
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잘못했다 싶으면
그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품어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고 그 죄를 뉘우치지 않을 경우,
그것은 곧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떠나
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어떤 죄를 짓게 되더라도 하나
님의 크신 사랑을 믿고 의지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를 크게 나무라지
않으시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마귀가 갖가지 감언이설로 우리를 유혹해서 하나님
과 우리 사이를 떨어지게 하려고 획책하더라도, 그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버리시는 일은 절대로 없
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주님께 속한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인 것입
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실 뿐만 아니라, 좀 더 아름답고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
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복을 베푸시고자 준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2.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감사하고 감격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살
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그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
절의 말씀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친히 보시기에 한 점 흠이 없는 거룩한 사람으
로 만들려고 작정하셨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는 그분의 사랑
속에 싸여 있는 것이다(현대어성경)’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에 싸여 살아가고 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를 언제나 항상 보호하여 주시
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속사람은 물론
이요, 겉모습까지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일
쑤 우리의 입술로 불평을 하거나 불만하면서 살 경우, 더군다나 주님을 찬양해
야 할 우리의 입술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허물을 말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는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오히려 마귀가 그 마음을 사
로잡아서 더욱 불평하면서 짜증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강원도 태백에 계시던 토레이 목사님에게 어떤 부인이 찾아와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집회에 많이 참석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
가 영 실감나지 않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도 실감나지 않는데, 왜 그럴까
요?”
이 말을 들으신 목사님께서는 그 부인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
니다. “부인, 오늘부터 집에 가서 다른 기도는 하지 말고 한 가지 기도만 계
속하십시오. 하나님께 부인 자신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한 주간만 계속 기도하
십시오.”
그래서 목사님의 충고에 따라, 그 부인은 집에 돌아와서 이 기도만을 계속
해서 했습니다. “하나님, 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십시오.” 이 기도를 계속 하던 중, 그녀는 마침내 자신
의 모습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추하고 불결한 모습,
곧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마침내, 부인은 자기의 죄악을 보며 절망한 채 일 주일 만에 토레이 목사
님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죽고 싶은 마음뿐입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이때, 토레이 목사님은 그 부인에게 “이제부터는 주님의 십자가를
보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 부인은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두 번째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보여 주십시오.” 한참동안 이 기도를 계속하자, 그
부인은 십자가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내 자신이 내 죄의 문
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완전히 포기하고 절망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
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고, 그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써 내 죄
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으며, 그로 인하여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되었다는 사실
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러 가지로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그 부족하다
는 것이 크게 흉은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그 키가 작다는 것이 흉은 아니듯이,
우리가 지금 인격적으로나 자질 면에서 부족하다는 것이 죄도 아니고 흉잡힐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키가 성장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흉이
되듯이, 우리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이 모습 이대로 그냥 계속 있게 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갈수록 아름답게 변화되어야 합니
다. 하나님과 항상 함께 살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
다. 그런데, 하나님은 주님께 속한 자와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께 속한 자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그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
지 말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는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없애주시기 위하여 그 아들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예수를 믿고 주님께 속한 자가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모습
은 차츰 변화되어서 주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에 싸여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온전히 주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