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인간 역사 가운데 발생한 문명과 문화의 단절
인간의 문명과 문화란 무엇인가?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며보았던 것처럼 인간의 문명과 문화는 죄와 연관된다. 가인 계열의 자손들은 기술문명과 예술 문명을 발달시켰다. 가인은 견고한 성을 쌓음으로써 토목기술을 발전시켰으며 동과 철을 통한 도구를 만들게 됨으로써 과학 문명을 발달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관악기와 현악기를 통해 예술 문회를 발달시켰다. 또한 라멕은 두 아내를 취함으로써 퇴폐 문화를 도입하게 된다. 창세기 4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라멕의 말은 한 편의 시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문학 작품의 발전이 있었을 것을 짐작케 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금 유념해야 할 바는 문명과 문맥 관련된 그 모든 것들이 가인 계열의 자손들에게서 생겨나고 발전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아벨은 물론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셋(Seth) 계열의 자손들에게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셋 계열의 하나님의 아들들01 가인 계열의 사람의 딸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과 통흔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문명과 문화에 직접 연관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1) 노아 홍수와 문명의 단절
하나님께서는 결국 대홍수를 통해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죽이는 심판을 하셨다.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까지 지구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되었다. 나아가 바다 밑에 았던 땅들이 솟구쳐 올라오게 되었는가 하면 산과 들이 바다 속으로 꺼지기도 했다.
나아가 지진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지각 변동으로 말미암아 지하에 있던 것들이 지상으로 분출되고 지상에 있던 것들이 땅속으로 묻히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지상에 있던 많은 도시들과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산물들이 땅속으로 묻히게 되었을 것이며 죽은 자들의 시체도 상당 부분 지하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홍수가 끝이 나고 방주에서 내렸을 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들이 그 전에 살던 눈에 익은 익숙한 마을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될 곳은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던 낯선 땅이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대홍수로 인해 폐허된 도시나 문명의 찌꺼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대홍수 후 그 전의 문명의 산물들 가운데 무엇이 남아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 노아의 가족들은 준비된 방주에 오르면서 많은 도구들과 물건들을 실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그에 대한 소설 같은 상상력을 통원해 본다. 그것이 실제는 아닐지라도 나름대로 의미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형편을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노아와 그 가족은 그 동안 쓰던 중요한 물건들을 방주에 가득 실었을 것이다. 냉장고,텔레비전,오디오 세트,컴퓨터 등을 실었을 것이며 어쩌면 타고 다니던 자동차도 방주에 실었을지 모른다. 방주에서 식사할 전기 밥솥과 밥그릇,주전자, 물컵 ,숫가락, 젓가락 등을 실었을 것이다. 또한 집안에 있던 곁옷,속옷,이불 등 모든 것들을 실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망치나 못,바늘,칫솔,치약,비누까지 모든 생필품들을 챙겼을 것이다. 어쩌면 가지고 있던 돈과 그동안 저축해 두었던 예금통장까지 챙겼을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아무리 많은 물건들을 방주에 싣는다 해도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눈에 값지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일반적인 값어치의 따른 순서대로 불펼요하고 무의미한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즉 평소에 값나가지 않고 그다지 귀중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던 물건들이 도리어 중요한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가장 귀중했던 보석이나 돈,예금통장은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값비싼 돈을 주고 샀던 컴퓨터,텔레비전,오디오세트, 전기 밥솥,자동차등은 아무런 쓸모없는 것들이다. 당장 전기가 없으니 사용할 수 없고 휘발유와 도로가 없으니 자동차를 움직일 수도 없다.
그리고 의복이나 이불,칫솔,치약,비누 등 소모품은 얼마가지 않아 그냥 통이 나고 만다.
그나마 그릇이나 망치, 못, 바늘 등은 상당 기간동안 나름대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닳아 없어지기도 했을 것이며 분실하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 사이에 자녀가 태어났을 때 부드러운 속옷을 찢어 기저귀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며 인구가 불어나는 것에 비해 홍수 전에 방주에 실어 보관했던 물건들은 하나씩 사라져 감으로써 노아의 후손들은 마치 “원시인” 처럼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소위 “신화”와 같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게 된다. 좀 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자. 노아를 비롯한 여넓 명은 홍수전의 모든 삶의 양식에 대한 분명한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뀐 환경 가운데서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 겪을수록 홍수이전의 화려했던 기억들이 더욱 간절하게 떠올랐을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다음 세대이다. 홍수 2세대는 홍수 이전의 인간들의 삶에 대해 아무런 경험이 없다.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세대가 그들에게 그 전의 문명과 문화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 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야기로 전해들은 그런 미경험 세계를 그들이 제약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홍수를 경험했던 세대는 아직 과거 문명에 대한 상당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 준비한 물건들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그들 가까이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방주를 가리키면서 홍수에 대한 설명을 했을 것이며 부서진 텔레비전과 오디오 세트를 통해 옛날의 형편을 들려 주었을것이다. 또 한 한쪽구석에 버려져 있는녹슨 자동차와 부서진 컴퓨터를 가리키며 과거 문명 사회를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쓸데없는 화폐와 예금통장을 보여주며 과거 사회에 대한 생활 구조를 설명했을지도 모른다. 홍수 2세대들은 부모들의 이야기와 그런 증거들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과거 사회를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홍수 3세대들의 형편은 그와 전혀 다르다. 인구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노아의 자손들은 한곳에 모여 살수 없어서 멀리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흩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우리의 눈으로 본다면 영락없는 “미개인들”로 생각될 것이다. 그들은 의복이 없어서 옷을 제대로 입지 못했을 것이며 신발이 없어서 맨발이었을 것이다. 양식이 부족해 굶주리기도 했을 것이며 그들의 삶은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미개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에게는 홍수 이전의 문명 사회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보여줄 수 없다. 단지 부모들의 구전을 통해 신화 같은 옛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따름이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아무런 신빙성없는 옛날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입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는 온갖 내용들이 덧붙여져 끊임없이 변형되어 갔을것이다.
그러나 실제가 아닌 그런 이야기는 그들에게 단순한 신화였을 뿐 그렇게 관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노아홍수 이전의 문명은 단절되고 후기 문명이 서서히 시작된다. 노아 홍수는 인간 역사에 있어서 초기 문명과 후기 문명을 완전히 단절시키는 기능을했다.
노아 홍수와 문명의 단절 문제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홍수 이전에 귀중품이었던 것이 홍수 이후에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홍수 이전에는 없으면 안될 것 같았던 유용한 물건들이 홍수 이후에는 귀찮은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런 형편을 상상하며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가?
오늘날 우리의 삶도 그와 유사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보배처럼 여기는 것들이 실상은 무용지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유용하게 생각하고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을 값어치 있게 생각하게 되면 진정으로 값어치 있는 것에 대한 인식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올바른 사고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참된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