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총선 전에 오염수 방류해달라' 보도 후폭풍
정부 측은 부인했지만 "정치권 부분은 언급 안 해"
여당에서 일본 측에 전달했을 가능성 여전히 남아
아사히 상대 정정보도 요구, 법적 대응 일절 안 해
"윤 정권 행태 보면 '조기 방류 요청' 하고도 남아"
"제2의 총풍 사건"…국회 국정조사‧청문회 주장도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왼쪽)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일일 브리핑에 참석해 일본 언론이 보도한 한국 측의 '내년 총선 영향 최소화를 위한 오염수 방류 요청 관련한 보도'에 대해 "정부가 요청한 사실이 없다"라고 밝히며 보도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2023.8.18. 연합뉴스
정부‧여당이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의식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조기 방류를 일본 측에 요구했다는 아사히신문 보도의 후폭풍이 가시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일단 보도 내용을 부인했지만 대통령실과 관계 부처 등을 상대로 제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했는지는 의문이다. 총선을 앞둔 당사자인 국민의힘 일각에서 정부와는 별도의 경로로 일본 당국에 그런 요구 사항을 전달했을 수도 있다. 아사히신문이 심각한 오보를 낸 것이라면 국내 언론을 상대로 해왔듯이 정정보도를 요구하고 요란한 수사 및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하는데 정부‧여당은 미동도 없는 상태다.
이런 미심쩍은 행태에 대해 야권에서는 강한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분명한 해명을 촉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윤석열 정권이 일본을 상대로 온갖 굴욕 외교와 야합을 벌인 실상을 감안할 때 '총선 전 오염수 방류'를 요구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불신이 깔려 있다.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일본 오염수 관련 일일 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 측에 조기 방류를 요청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이런 내용의 보도나 주장은 자제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한 기자가 "정부 차원에서는 여당의 요청 사실을 모르는 것 아니냐"고 묻자 "제가 정치권 부분은 굳이 언급을 안 했다"고 답변을 애매하게 피해갔다.
해당 아사히신문 기사는 "윤 정권과 여당 내에서는 당면한 현안인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의 처리수(핵오염수) 방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총선거에 악영향이 적은 이른 시기에 실시하라고 요구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 의향은 일본 쪽에도 비공식적으로 전달되고 있어 일본 정부의 판단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돼 있다. 핵오염수 방출을 요구하는 주체가 '윤 정권과 여당'이기 때문에 박구연 차장의 "정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브리핑이 거짓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국민의힘에서 따로 일본 측에 요구했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8.18.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19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는 무엇 하나 제대로 점검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법이 없다. 도대체 '조기 방류 요청' 여부에 대해 정권의 어느 범위까지 사실관계를 파악한 것이냐"면서 "박 차장의 설명대로라면 여당은 여당대로 이에 해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부는 우리 야당과 언론에는 추상같은 칼끝을 들이대면서 일본 정부와 언론에는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못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적당히 뭉개고 넘어갈 심산이라면 국민적 저항과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재명 대표는 전날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여당이 총선을 의식해서 핵 오염수의 조기 방류를 요청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나왔다"며 "대통령실은 한일 양자회담에서 오염수 문제는 논의 안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결국 대통령실 발표와 일본의 보도 중에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서 이 문제를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일본의 오염수 투기와 역사 왜곡에 대해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일 정상회의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오늘 회의에서 의제로 되지는 않았다"고 말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상태임을 재확인시켰다.
박찬대 최고위원도 "아사히신문 보도가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정부와 국힘당이 우리 국민의 생명과 건강, 관련 산업의 존망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정치적인 유불리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윤석열 정부와 국힘당은 우리 국민의 80%가 넘게 반대하는 일본의 핵 폐수 해양투기에 대해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일본에 항의하기는커녕 핵 폐수 투기를 반대하는 국민을 괴담론자로 몰아갔다"고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민주당 후쿠시마원전오염수해양투기저지총괄대책위원회는 보도자료에서 "국민의 안전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과 맞바꿨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도 다르지 않다"고 했고, 민주당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회도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 그 끝은 도대체 어디냐"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용서받지 못할 만행"이라고 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명칭 '처리수')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20일 도쿄 경제산업성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방류 시점을 밝히지 않았으나, 지난 4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방류 계획의 안정성을 긍정하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절차상 기시다 총리의 최종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2023.07.21. EPA 연합뉴스
정의당은 '제2의 총풍 사건'이라고까지 규정했다. 이재랑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부·여당이 우리 바다와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를 오염수 투기를 독촉한 것을 넘어 심지어 국내 정치를 위해 오염수 투기를 이용하려고까지 했다는 것"이라며 "국내 정치를 위해 타국과 결탁해 국익을 내다 버리길 각오한 일본판 '총풍 사건'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사히신문의 보도는 국익을 흔든 중차대한 거짓 뉴스를 발설한 셈"이라며 "그러나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부·여당은 '총선을 위해 매국을 했다'는 맹비난을 들어도 입도 뻥끗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국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보도였다. 충분히 후쿠시마 오염수 조기 방출 요청을 하고도 남을 행보를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보여줬기 때문"이라며 "해당 보도는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과거사 언급은 하지 않고 일본과는 파트너라고 외친 직후 나왔다. 윤석열 정부의 일본 관련 모든 행보가 일본 언론마저 대한민국 정부를 우습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되돌아 봐야 한다"고 짚었다. 또 "대통령실 당무 개입 논란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보다 총선 의석수를 중요시 여긴다는 의구심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역시 외면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진보당에서는 국정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혜규 대변인은 "정부‧여당의 해명이 석연치 않다"면서 "국정조사나 청문회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진실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정치적 야욕을 염두에 두는 몰지각한 행태를 드러낸 셈이지만 정부‧여당의 해명은 지금까지 부실하다"며 "핵오염수 방류를 용인하고, 정치적 계산으로 조기 방류까지 요구했다면 정부‧여당이 지켜야 할 제1의 책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8.18. 연합뉴스
한편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저지를 위해 유엔 인권이사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야 4당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시민단체·종교계와 함께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오염수 해양 투기는 국경을 넘는 바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 국가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인접 국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며 진정서 제출 사실을 전했다.
진정서에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임명한 환경, 건강, 식품 분야 특별보고관들이 오염수 투기가 가져올 인권 침해를 조사하고, 국제사회에 의견을 제출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특별보고관, 실무그룹, 독립전문가 등을 임명해 특정 국가의 인권 상황이나 특정 주제의 인권 문제를 살피는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들은 진정 내용 등을 검토해 인권 침해 사안이 발생했다고 판단하면 관련 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내 입장을 묻거나 추가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