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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그레이 S. 채프먼 |
나이지리아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in Nigeria(COCIN) 교단 교회의 주일 아침 예배는 군악대 스타일의 요란한 드럼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다듬지 않은 목재 서까래와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함석지붕 건물의 기다란 실내에서 유니폼을 입은 여성단Girls' Brigade[19세기말 아일랜드에서 처음 결성된 국제 기독교 여성 청년 조직]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나이가 어린 단원들은 왼쪽에, 나이가 많은 단원들은 오른쪽에 서 있다. 눈이 큰 아이가 젬베[서아프리카의 전통 북]를 치는 엄마에게 착 달라붙어 있다.
이 엄마 단원 옆에 있는 청년 드럼 연주자의 왼쪽 뺨에 선명한 흉터가 보인다. 8년 전,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조스Jos 남부의 이 기독교 농촌 마을을 습격, 이 복음주의 교회와 주변의 가정집들을 공격한 그날 얻은 상처다.
그날이 남긴 더 강렬한 흔적들도 있다. 다시 지은 집들은 하늘로 치솟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선인장 울타리를 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집들 너머, 벼와 옥수수가 자라는 들판 한가운데에 낡고 얇은 철제 십자가를 얹은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바닥에 길게 누워 있다. 이곳에 그날의 희생자 438명이 잠들어 있다.
이 집단 무덤에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요한계시록 6:10-11이 적혀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예언이 되었던 것일까. CT가 그곳을 방문하고 며칠 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그 인근 10여개 마을을 습격해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살해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 정부의 무대책과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몇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위협에 지칠 대로 지친 나이지리아 기독교 지도자들은 분노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그 묘지에 갔을 때, 경비 경찰관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그의 엉덩이에 라디오가 걸려 있었고, AK-47 소총이 덜거덕거렸다. 익숙한 노래가 허공을 울렸다.
Savior, Savior, (주여, 주여,) ●
Hear my humble cry; (저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소서)
While on others Thou art calling, (주께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Do not pass me by.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 한국 찬송가 인애하신 구세주여의 원곡 Pass Me Not, OGentle Savior's이나, 이 기사의 의미를 고려하여 새로 번역하였음―CTK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이 나라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이 노래로 그들의 미국인 형제자매들과 미국 정부에 호소하고 싶을 것이다. 국제 사회의 시선이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행하는 박해에 온통 쏠려 있을 때, 나이지리아에서는 또 다른 두 부류의 무슬림 극단주의자들―보코하람과 풀라니족―이 훨씬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하고, 삶의 터전에서 내몰았다.
글로벌 테러리즘 인덱스Global Terrorism Index에 따르면, IS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동안, 보코하람은 IS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추방했다. 그리고 현재는 풀라니족의 횡포가 보코하람을 능가하여 나이지리아에서 최대의 폭력 위협이 되었다. 풀라니족은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1300명이 넘는 나이지라아인들을 살해했다. 국제 위기 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에 따르면, 보코하람 희생자 수보다 6배 많다.
월드컵 응원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던 지난여름, CT는 나이지리아로 향했다. 그곳 “미들 벨트”라 불리는 5개 주에 걸쳐 있는 난민 캠프들을 방문하고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을 인터뷰했다. “미들 벨트”는 나이지리아에서 기독교 인구가 우세한 남부와 무슬림 인구가 우세한 북부의 중간 지대이다.
나이지리아는 오픈도어선교회 기독교 박해 국가 리스트(World Watch List) 14위에 올라 있다. CT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다들 이 나라의 순위는 더 위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쪽에서 수도 아부자에 진입하는 차량들은 거대한 문을 통과한다. 양쪽에 거대한 쌍둥이 탑이 세워져 있는 이 문에 “환영합니다”You Are Welcome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녹색과 백색으로 된 나이지리아 국기를 이 나라 지도 모양으로 오려낸 현수막이 두 탑 사이에 걸려 있다. 케이블로 양쪽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어 곧 둘로 쪼개질 것처럼 보인다.
나이지리아가 굉장히 종교적인 나라임은 누구나 목격할 수 있는 사실이다. 아부자 공황을 빠져나오는 대로변에 서 있는 대형 광고판 셋 중 하나는 이 나라의 한 초대형 교회 목사의 사역을 알리는 것이다. 저녁 시간 TV에는 초대형 교회 광고들이 월드컵 광고만큼이나 많이 나온다. 길가 상점에는 God’s Will Furniture(하나님의 소망 가구), Winning Divine Favor Lighting(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조명), God’s Son Chikun Feed(하나님의 아들 치쿤 사료) 같은 간판이 즐비하다.
나이지리아의 주유소에는 미국 주유소라면 세차장이 있을 만한 자리에 어김없이 작은 모스크가 있다.
아부자에서 조스로 가는 4차선 국도에 차령들이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라마단 기간이 끝나서 생긴 교통 체증이 아니다. 100명쯤 되어 보이는 한 무리의 무슬림 남자들이 서쪽 방향 차선을 가득 매운 채 오전 중간 기도를 하고 있다. 이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아래쪽에서는 무슬림들이 무리를 지어 모스크로 향하고 있다. 그들 옆으로는 기도용 매트리스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다. 흰색 교회 밴 한 대가 그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그 차에 선명한 문구가 적혀 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
이런 걱정스런 종파적 환경에서도, 나이지리아 그리스도인들은 주저 없이 전도를 말한다. 차량 뒷문에 선교missionary라는 말이 붙어 있는 교회 차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또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에서나 풀을 뜯고 있는 소떼를 볼 수 있다. 풀라니족이 방목하는 소떼다. 보코하람―이 이슬람 테러리스트 집단의 이름은 “서방의 교육은 죄”라고 느슨하게 번역할 수 있다―은 카메룬, 차드, 니제르 접경지대에 칼리파 제국을 세우겠다며 나이지리아 북동부 3개 주에 집결해 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인구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는 무슬림 유목민인 풀라니족은 나이지리아 전역에 걸쳐 있다. 급진주의자들이 되어 가고 있는 풀라니족이 나이지리아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현재는 심지어 기독교 지역을 여행하다가도 빈빈하게 보안 검문소를 마주치게 된다. 여자들과 아이들이 검문소 앞에 대기하고 있는 차량에 몰려들어 열려 있는 창문 너머로 바나나, 당근, 캐슈너트를 던져 넣고서는 물건 값을 요구한다. 바리게이트를 세우고 검문하는 군인들보다도 이 잡상인들이 여행객들을 더 잘 훑고 더 성가시게 만든다. (운전수가 목사인 것을 알자마자, 한 군인이 묻는다.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준다죠, 그죠?” 뇌물을 달라는 은근한 시도이다.) 많은 검문소에 이렇게 적은 현수막이 있다: “안전한 피난처 작전”Operation Safe Haven. 아이러니다. 보코하람에 쫓겨난 수많은 북부 그리스도인들이 나이지리아 기독교의 거점인 플래토 주와 그 주도인 조스로 몰려드는 이유가 바로 그런 안전한 피난처를 찾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안전한 피난처 대신에 그리스도인 피난민들은 거기서 풀리니 급진주의자들을 만나게 된다. 집단 묘지를 갖고 있는 조스의 그 나이지리아 그리스도의 교회처럼 말이다.
북부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교단들은 파괴된 자기네 교회와 생명을 잃은 자기네 교인들을 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복음주의 교단 셋이 가장 큰 공격을 받았다: COCIN, Evangelical Church Winning All(ECWA, 모든 사람을 얻는 복음주의 교회), 그리고 Church of the Brethren(EYN, 형제 교회). “세상이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다촐롬 다티리, COCIN 대표가 CT에 말한다. 50개 공동체에서 1000명이 넘는 그의 교인들이 풀라니족의 공격으로 집과 교회를 잃었다. “교회들이 끔찍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는 말한다. “사방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한밤중에 전화벨 소리가 울리서 깰 때가 많습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티리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설교를 하려고 애쓴다. “야고보서[1:2]를 자주 인용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그가 말한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기가 갈수록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매일 시험이 있었습니다. 시험이 끊이지 않습니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공식적인 이야기는 ‘폭력은 경제적인 것이다. 종파적인 것이 아니다’이다. 무슬림 유목민들과 그리스도인 농부들이 좋은 땅을 두고 벌이는 반복적인 충돌이라는 것이다. 사하라 사막이 남쪽으로 더 확장되고 유목민들이 보기에는 불공평한 목축금지법이 제정되면서 더 악화되고 있다고 정부는 말한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정부의 이러한 이야기에 완강히 반대한다.
“이야기가 틀리면, 해결책도 틀립니다.” 유누사 은마두, ECWA 사무총장은 말한다. “정부는 실체가 무엇인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실체는 테러리즘입니다.”
“나는 51살이고 평생 북부인으로 살았습니다.” 은마두는 말한다. 그는 카두나―이곳은 나이지리아의 무슬림 지도자, 소코토의 술탄의 근거지이기도 하다―에서 살다가 지난해에 조스로 이주했다. “기억할 수 없는 오래전부터 풀라니족은 우리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래요. 갈등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소떼가 농작물을 먹어치웁니다. 그러나 풀라니족은 막대기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AK-47 소총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누가 그 소총을 살 돈을 주고, 누가 그 총을 팔았을까요? 보코하람이 전략을 바꾼 것입니다.”
2015년에 미국 국무부 산하 국제종교자유위원회 대표단이 조스의 은마두를 방문했다. “그들이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물었습니다. ‘풀라니족 출신 대통령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풀라니족은 더욱 용기백배할 것이기 때문에, 풀라니족의 공격이 증가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말이 예언이었다면, 정말 예언대로 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도의 지식이 필요한 로켓 공학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간단한 분석일 뿐입니다.”
미들 벨트 전역에서는 ECWA, COCIN 같은 여러 교단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 코카콜라나 핸드폰 광고를 볼 수 있는 것만큼이나 많다. 두 번째로 흔한 광고판은 2019년 2월에 예정되어 있는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을 알리는 것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흔한 슬로건이다. 그것도, 무슬림 후보들의 선거 슬로건에서.)
차기 대선의 최대 관심사는 현 무함마두 부하리 대통령이 재임에 성공하느냐이다. 그는 풀라니족 출신이다.
기독교 진영에는 부하리 정부가 현 위기를 얼마나 철저하게 조사할 것인지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음모론이 퍼져 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풀라니족 급진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힌두 민족주의 총리 나렌드라 모디를 추종하는 인도의 힌두 급진주의자들이 그렇게 하듯이[관련 기사: 2016년 11월호 커버스토리 ‘놀랍다, 인도 기독교’].
지역 복음전도자인 불루스 에제키엘이 도고나와Dogonawa에 있는 집단 묘지에서 한 목회자를 안내하고 있다. 현재는 “뎀부르크”Dembrook라고 불리는 이 묘지에는 2010년 풀라니족이 학살한 500명 가까이의 그리스도인들이 묻혀 있다. 너무나 많은 주민들이 그 날의 슬픔에 병이 나는 바람에, 해마다 열리던 추도식이 취소됐다고 그가 말한다. |
다시 아부자. 정부는 나이지리아의 최대 모스크와 최대 교회의 중간에 대형 조형물을 세웠다. 횃불 모양이다. 북부는 금방 불길이 치솟을 것처럼 위태위태하지만, 수도 아부자는 놀랍도록 평화롭다.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위성도시들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그 위성도시의 하나인 그와그왈라다Gwagwalade에서 일요일 밤에 기도 집회가 열렸다. 조스에서 피난 온 200여명이 금식을 마치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이 기도회를 주최한 목회자들 중 하나가 소리친다. 이 ‘플래토 기도집회’는 COCIN 교단의 한 교회가 매년 여는 기도회다.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금식을 마친 회중이 오크라 스튜와 푸푸fufu[카사바와 바나나를 으깨 만든 아프리카 전통 음식]로 식사를 할 때, 지도자들은 무대 뒤에 마련된 목회자 사무실로 가서 피난민들이 또 새로 도착했다, 교인 중 누가 매복 공격을 당했다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지저스!” 한 지도자가 계속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는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욕처럼 들린다.
“이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가족이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크야우타 다물라크가 말한다. 아부자의 플래토 디아스포라의 대표이다. 회색 격자무늬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다. “이 어두운 밤이 길어질까 걱정입니다.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성경말씀 뿐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도울 것이라는 말씀 말입니다.”
이 기도회를 주최한 COCIN 교회 목사 아론 은디르음비타는 치복Chibok 출신이다. 2014년에 이 도시에서 276명의 학생들이 보코하람에 납치됐다. (#BringBackOurGirls(우리 여학생들을 돌려보내라) 운동에도 불구하고, 100명 이상이 아직 행방불명이다.) 그는 또한 2012년에 조스의 COCIN 교단 본부가 공격 받았을 때는 교단 대표 목사였다. 당시의 자살폭탄 차량의 잔해는 지금도 이 본부 마당에 그대로 있다.
스테파노스 재단Stefanos Foundation은 조스에 있는 폐교 한 곳을 보코하람과 풀라니족에 쫓겨난 북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임시 캠프로 개조했다. 스테파노스 재단의 마크 립도는 현재까지 5000 가정이 이곳을 거쳐 갔다고 말한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하셨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설명한다. 그 날은 주일이었다. 그는 지하실에서 1200명 앞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대예배실은 공사 중이었다). 그때 테러리스트의 밴이 오토바이를 들이받으면서 건물 겨우 몇 미터 앞에서 폭발했다. 은디르음비타 목사의 사무실과 집이 파괴됐고, 4명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가 네 명에 그친 것은 “기억이었습니다.” 그가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분석가들은 나이지리아가 이웃 중앙아프리카공화국처럼 될까 우려한다. 이 나라는 통제되지 않는 무슬림과 기독교 민병대들에 의한 보복 공격들로 사분오열됐다. 은디르음비타는 자기 나라가 이집트나 알제리처럼 될까 걱정이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가 말한다. “이 나라들은 한때 기독교 국가였다가 이슬람 국가가 되어버린 그런 지역입니다.” (현재의 나이지리아는 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가 대략 1억씩 인구를 양분하고 있지만, 2050년이 되면 무슬림 인구가 기독교 인구보다 7500만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퓨 리서치 센터는 예측한다.)
풀라니족의 공격이 급증한 2018년, 이러한 두려움은 나이지리아의 곡창 지대인 베누에Beune 주에도 팽배해 있다. 황토 길을 따라 끝없이 늘어서 있는 카사바와 얌 농장들이 초록빛으로 싱그럽다. 바리게이트들이 길을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멋진 전원의 드라이브가 되었을 것이다. 한때는 나쁜 도로가 가장 큰 문제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나이지리아 북동부의 종파 문제가 나이지리아에서 기독교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의 하나이 베누에 주에까지 파고들어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 한 선거 슬로건처럼, 이곳에서도 “한가하게 농담이나 하고 있을 때는 지났다.”
베누에 주의 수도인 마쿠르디에는 나이지리아의 풍요를 상징하는 대형 조형물이 도심 로터리에 서 있다. 그러나 이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농부들이 베누 주정부가 마련한 국내실향민 캠프 8군데에 피신해 있다. 지난해 목축금지법이 도입되면서 유목민들의 공격이 급증하면서 생긴 피난민들과 캠프들이다. 건물들 외벽에는 아직도 대나무 작업 발판이 그대로 있다.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쪽이 아직도 미완인 커다란 U자형 건물 안에 거주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남자들은 다들 (비가 내릴 때를 빼고는) 밖에서 잔다. 벽에 이런 낙서가 있다: “남자 된다는 것은 하루 일거리가 아니다.” 그나마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일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빈약한 옥수수 죽으로 점심을 마치고 CT와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다들 자기네 고향 집과 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집만 한 데는 없다고들 하지요.” 필립이 말한다. 42세의 ECWA 교인인 그는 아내와, 두 살부터 12살까지의 네 아이들을 데리고 풀라니족 공격을 피해 고향을 떠났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농사를 지을 수도, 학비를 낼 수도 없다.
피해 상태를 알려보려고 고향에 돌아갔던 한 부부 얘기를 이 캠프의 관리인이 CT에 들려주었다. 남편은 아내가 보는 앞에서 살해됐고, 그들은 캠프로 돌아가서 메시지를 전하라고 했다: “우리가 접수했다. 돌아오지 마라.”
지난 4월, 음발롬에서 대략 90분 거리에 있는 한 가톨릭교회가 공격을 받았다. 나이지리아의 가톨릭 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에서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호소했다는 소식이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바로 그날이었다. 그 교회로 향하는 좁고 지저분한 길을 따라, 습격으로 파괴된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마을들이 지나가는 자동차들보다 더 높이 자란 풀들 사이로 보인다. 밭으로 둘러싸여 있는 6〜10채의 오두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런 마을들이다. 마을마다 공터에는 작은 묘지들이 있다. 푸른색과 흰색 사각형 타일을 덮은 그 무덤들에 묻혀 있는 이들은, 조스의 그 집단 묘지에 묻혀 있는 사람들보다는 더 평범하게 죽은 이들이었기를.
나지막한 그 교회에는 대충 다듬은 목재 의자들이 12줄 성도석을 이루고 있고, 전면에는 작은 십자가가 있는 흰색 성서대와 녹색으로 덮인 재단이 있다. 앞 셋째 줄까지만 벽이 있다. 그마나 있는 얇고 초라한 함석 벽에는 총알구멍들이 나 있다. 살아남은 교인들이 교회 부설 학교 뒤에서 테러리스트가 돌진해 온 그 날을 회상했다. 주일 예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날 목숨을 잃은 두 명의 사제를 기억하는 배너가 걸려있다. 그날 목숨을 잃은 나머지 17명을 기리는 표지 같은 것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도망쳐갔던 근처 시장에는, 그날 이후 건물들이 빈집으로 남아 있다. 그 건물들 가운데 생긴 공터에 커다란 망고 나무들이 만든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빈데 고드원도 그 날의 공격으로 형제를 잃은 교인이다. 그는 8살에서 2살까지 네 아이들이 저녁 어린이 TV 프로그램을 보러 멀리 떨어진 곳에 갈 때 신신당부한다: “소를 보면 도망쳐라.” 이제 소는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소는 유목민들이 근처에 있고 다시 공격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28세의 농부가 말한다. “소를 보자마자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도망칠 겁니다. 이곳에 더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베누에에 가장 최근에 생긴 실향민 캠프에서 어머니들이 빈약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뒤로 아이들이 초가 지붕 아래에서 공부하고 있다. 마쿠르디 캠프는 이미 사람들이 넘쳐난다. 남자들은 비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바깥에서 잠을 잔다. |
마쿠르디 시를 둘로 가르는 거대한 베누에 강 위에 놓여 있는 다리들 중 하나를 막 건너면서, 나이지리아 기독교 협의회(CAN) 베누에 지회장인 이맘 오르크와르는 동료와 정치에 관해 논쟁을 한다. 둘은 미예티 알라 나이지리아 목축인 협회Miyetti Allah Cattle Breeders Association of Nigeria[풀라니족 유목인의 권익을 옹호하는 정치 단체]의 후원자인 부하리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하는지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소가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나라를 본 적 있습니까?” 그가 묻는다. 종종 풀라니족이 자행하는 살인은 도둑맞은 소에 대한 보복으로 여겨진다. 오르크와르는 풀라니족이 살아졌다고 주장하는 소가 진짜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얼마나 많은 농부들의 무덤이 있는지 똑똑히 보라고 말한다.
베누에에서 발행한 새해 첫날의 참극이 아마도 나이지리아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위기에 관해 알게 된 첫 번째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지난 4년 동안 일어난 47번째 공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이크 앙고우 주교는 말한다. 그는 나이지리아 오순절 연합회(PFN) 회장이다. 지도자들은 73명의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인근 집단 묘지에 예배당을 짓고 싶어 한다. “세상을 향한 호소”로써.
“사람들은 지쳐있습니다. 살아남은 한 사람이 73명을 묻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앙고우는 말한다. 그때 근처 TV에서 일본이 콜롬비아를 상대를 골을 넣었다. “그리고 23명이 죽었고, 그리고 17명이 죽었고, 그 다음에는 50명이 죽었습니다.” 그는 공격들과 끔찍했던 상황들을 계속 떠든다. 콜롬비아가 동점골을 넣었다. 앙고우는 눈길 한번 안 준다.
열 두어 차례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나이지리아 교회 지도자들은 회중에게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다른 쪽 뺨을 돌려대라고 권면한다고 말했다. 그런 인내의 이야기 하나가 있다: 레아 샤리부는 지난 2월, 답치Dapchi[나이지리아의 북부, 니제르 접경지대에 있는 소도시]의 한 과학기술대학교에서 보코하람에 납치된 여학생 110명 중의 한 명이다. 보코하람은 십대의 이 여학생에게 예수를 부인하라고 위협했지만, 샤리부는 거부했다. 그들은 샤리부를 가두었지만, 그녀는 그리스도인들의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폰 바탕화면에서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풀라니족의 폭력이 보코하람을 앞질렀고,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돌려댈 뺨이 없다고 말한다. 분노한 청년들이 풀라니족이나 그들의 소를 공격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집단 묘지가 필요할 정도로 잔인한 풀라니족의 폭력에 비하여 작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제 사람들이 끓어넘치기 직전입니다.” 아르카와르는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달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ECWA의 은마두는 보복 공격이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우리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그가 말한다. “나이지리아가 내전에 빠진다면, 서아프리카 전부가 사라질 겁니다. 그리고 이민 위기가 발행하면 유럽과 미국에도 끔찍한 재앙이 될 것입니다.”
“나는 종말의 예언자가 아닙니다.” 그가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종말에 아주 가까이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슬림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마르쿠스 가마체는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이 공존하는 실향민 캠프를 성공적으로 세웠다. “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전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형제 교단 가족들을 위한 캠프도 세웠다(아래). |
이웃 나사라와Nasarawa 주에서, 72세의 주교 마신은 CAN의 주 대표로 복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었다. 1만 4000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탱크 부대장이었던 그는 이 직책을 두 번이나 맡았었다. “나는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습니다. 대신에 나에게는 입이 있습니다.” 마신이 말한다. 그는 이 주의 수도인 라피아의 오순절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많은 실향민들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정부에 얼굴을 맞대고 말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그는 교인들에게 총에 의지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나는 그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을 다시 싸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말했다. “총이나 총알이나 칼 대신에 나에게는 종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록을 남겨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마신은 2018년에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공격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314개 마을이 포함되어 있고, 많은 공격 기록에 사진 증거들이 붙어있다. 지역 농부들이 수집한 자료들이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라피아에서 있었던 지난 5월의 가두행진 사진이 있다. 그 가두행진에는 수천 명이 참여했다. 사진 속 한 여성이 “레아를 석방하라”는 팻말을 들고 있고, 그녀 주위에는 풀 더미를 흔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유목민들은 풀을 찾는데, 교회에 무슨 풀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가 음발롬의 가톨릭 대학살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가 시위를 하는 이유는, 세계가 우리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데스크 뒤로 장식을 한 예루살렘 지도가 걸려 있다. 그 지도를 보면서 그는 항상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한다. 그리고 마신은 온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이지리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를 바란다.
현재 나이지리아 기독교 지도자들은 2019년 선거를 부하리와 그의 친 풀라니족 정부를 없앨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나이지리아 전역의 교회들이 교인들에게 다음 주일에는 “PVC”―투표자 카드Permanent Voter Cards―를 가지고 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어떤 교회는 투표자 카드를 지참해야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고 독려한다. 이들이 2019년 선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지이다.
PFN의 앙고우는 나이지리아 전국 그리스도인의 25퍼센트만이 PVC를 소지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그는 베누에 주에서는 90퍼센트까지 그 수치가 올라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것이 유일한 탈출구입니다.” 그가 말한다. “우리는 무기를 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법을 잘 지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2019년에 투표소에 꼭 나가야 합니다.”
한편, 많은 나이지리아 그리스도인들이 이 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데 헌신하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례가 있다. 보코하람과 풀라니족에게 쫓겨난 아이들을 위한 캠프가 그것이다. 이 캠프는 풀라니족 무슬림 출신의 한 개종자가 10년 전에 세웠다. 그녀는 이슬람을 버렸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핍박을 받았다. 그녀에게는 자기와 같은 난민 어린이들이 머물 곳을 마련하겠다는 비전이 있었다. 그 캠프는 이내 300명의 청소년으로 늘어났다. 이곳은 아이들에게 제자훈련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쉼터와 음식을 주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어린이들이 팀을 이뤄 최근 전국 성경 암송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이 캠프 너머로 옥수수와 감자가 자라고 있는 초록빛 농장이 마치 평화로운 바다처럼 안개 낀 지평선까지 뻗어있다. 그러나 캠프 디렉터는 최근 지평선 너머에서 풀라니족의 공격으로 발생하는 연기와 불을 피어오르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겁을 먹고 있습니다. 도망치려고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하나님께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부자 인근 ‘구르쿠 종교 연합 재정착 캠프’에 100명의 실향민 여성들과 아이들이 망고나무 그늘에서 배급을 받기 위해 모여 있다. 배급 꾸러미에는 옥수수와 쌀, 옷과 신발이 들어있다. 미국 대사를 비롯한 여러 명의 미국 관료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많은 국내실향민 캠프들 가운데서도 이곳에만 있는 한 가지 독특한 이유 때문이다: 이곳의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들은 함께 살기로 합의했다.
이 캠프의 설립자는 마르쿠스 가마체이다. 형제 교회 소속인 그는 미국 정부가 관심을 가질 것을 예상하고 이 캠프를 계획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집에 있는 60명이나 되는 실향민을 함께 돌볼 곳을 찾고 있었다. 그가 처음 찾아간 곳에서는, 그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무슬림들이 오기만 하면 죽어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한 곳을 찾았다. 큰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숲이었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비교적 안전한 장소이기도 했고, 실향민 농부들이 도시에서는 가족들을 위해 곡식을 기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마체는 또한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들이 함께 사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이 쫓겨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래야 전도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설교할 수 없지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말입니다.” 그가 말한다. “사람들이 옆에 있을 때 예수님의 사랑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청년 캠프에서 한 무리의 소녀들이 드럼 연주자와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디로 달려가야 할까”라는 가사 뒤에 다음 소절이 이어진다.
산으로 달려가네. 산은 말이 없네.
언덕으로 달려가네. 언덕은 말이 없네.
바다로 달려가네, 바다는 말이 없네.
나의 하나님께 달려가네. 나의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네.
이 찬송은 “죄인”에 관한 것이지만, 나이지리아 그리스도인들은 이 노래를 자신들에 관한 것으로 느낀다. ECWA의 1만 교회를 위한 올해의 주제를 보자: 고난 중에 기뻐하라. 베드로전서 4:3절에 기초한 표어다. “여러분이 고난 받을 때 여러분은 혼자 있지 않습니다.” 은마두는 말한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박해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박해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박해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뿐입니다.” 그는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집이 있습니다. 언젠가 거기에 가면 이 모든 박해가 멈출 것입니다.” CT
제레미 웨버 CT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