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논의를 통해 본 남성다움
생물학적,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 능력과 감정 조절 능력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다는 신화는 과학의 이름으로 뒷받침되어 왔다.
몇몇 과학자는 남녀의 신체의 크기, 무게 및 근육의 힘과 두뇌의 크기 등을 비교하여 남성의 강인함과 지적 우월성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프로이드는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보다 우성이며 음경이 있어서 자신감과 만족감이 있다고 하였다. 남근기라 하여 네다섯 살쯤 된 남자 아이는 거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탓에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를 억제하고 아버지에게 가졌던 적대 감정을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로 바꾸는데, 이 과정에서 남자 아이는 아버지의 가치관을 택하여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며 공정성과 사회 정의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또한 정자는 능동적으로 헤엄쳐 난자의 세포막을 찢어 결합하지만 난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는 점을 들어 남성의 능동성과 우월성을 설명하였다. 여기서 능동성은 외부로 향한 활동성과 공격성으로 이를 남성다움의 특징으로 보았다.
골드버그도 고환에서 생기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남자 아이의 두뇌는 훨씬 센 자극을 받으며 여자 아이보다 더 강한 공격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공격성은 남성다움에 속하고 동정과 연민 같은 감정은 본질적으로 여성다움에 속하여 여성에게는 공격성이 없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호르몬 이외에 남녀간의 차이는 없으나, 이 남성 호르몬은 가부장 제도와 남성의 지배, 남성의 지위와 역할을 획득하고, 여성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세함을 남성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결국 생물학적 요인이 사회 제도를 불가피하게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양상이 다를 뿐이지 여성에게도 공격적이 충동이 있으며 단지 주위 환경에 따라 남성과는 다르게 공격성을 드러낸다. 직선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만을 공격성으로 규정하여 언어로 공격하거나 침묵으로 맞받아치는 것 같은 완곡하고 간접적인 대응을 공격 현상을 보지 못할 뿐이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가 심리적 성향을 결정한다는 논의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었다. 무엇보다 뇌의 크기와 지능과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것이 총괄적인 결론이다. 1901년 앨리스 레이는 뇌 무게는 지적 능력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 후 신경 해부학과 신경 생리학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뇌에서 아무 차이도 측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19세기 프랑스의 신경 외과 의사이자 자연 인류학자인 폴 브로카는 전두엽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뇌반구를 100으로 하여 남성이 427인 데 비해서 여성은 431이라고 밝혀, 실제 뇌의 크기, 모양, 지능을 감싸고 있는 전두엽은 여성이 더 크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과거에 힘과 완력이 필요했던 전쟁이나 근육의 힘에 의지했던 일들이 기계로 처리되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남성의 건장한 체구와 완력이 사회 생활이나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될는지는 의심스럽다. 프로이드조차도 후에 양성은 능동적인 목표와 수동적인 목표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하여 초기의 남녀의 심리적 차이와 특성에 대한 주장을 번복하였고, 남성의 특성은 가부장적인 사회 관습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남자든 여자이든 모두 두 개의 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남녀의 성격 차이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남녀는 두 개의 성을 모두 갖고 있다. 생식기관 조차도 한쪽의 성은 다른 한쪽의 성 기관을 축소시킨 형태를 갖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남녀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남자도 수동성을 보여 주고 여자도 능동성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심리학적으로도 남녀는 두개의 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인간은 독특한 유전적 체질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사람의 형태, 얼굴 특징, 신체적, 성적 발달 속도, 기질은 대부분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허약한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힘드는 활동을 잘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어린아이의 성향, 외모, 발달 속도는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공격적인 성향을 높이 평가하는 공동체에서 태어난 아이는 대부분 적극적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힘차게 투쟁하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나약한 아이라면 제대로 현실 생활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똑똑한 아이, 둔하고 못생긴 아이, 매력적인 아이, 약한 아이, 건강한 아이 등에 대해 제각기 달리 대한다. 그리하여 그 반응에 따라 어린아이의 자아가 다르게 형성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오늘날 어떠한 타고난 특성이나 유전적 기제도 인간의 심리적, 성적 차이를 미리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남성과 여성은 차이보다는 유사성이 훨씬 많고 오히려 동성끼리의 차이가 남녀 양성간의 차이보다 훨씬 큰 편이다. 생물학적 요소들이 남성이나 여성의 성 역할 행동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증거는 어느 과학적 연구에서도 그 타당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생물학적 요소들과 사회 문화적 환경 조건이 상호 작용하여 일정한 행동 유형을 만들어 낸다. 남녀 모두가 남성적, 여성적 행동 능력을 다 갖고 있으며, 그러한 생물학적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데는 일정한 환경적 조건이 필요하다.
와이젠슈타인의 말처럼 과학을 통해 남성의 우월성을 증명해 보려는 갖가지 학설은 남성과 여성의 성격이나 욕구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기보다는 사회에 맞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만들어 믿도록 해 왔다. 남성다움은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영향을 더 크게 받으며, 시대와 지역의 문화에 따라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양상이 다르다.
생물학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배경이 될 수는 있으나 한 사회에서 남녀를 차별하고 남성다움을 미리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남성다움을 뇌의 세포 조직, 호르몬, 생리학에서 증명해 낼 수 없었으며, 해부학과 생물학에서 증명된 사실만 가지고 사회적 역할을 남녀에게 서로 다르게 할당하거나 남성은 남성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