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든 오랜 시간 그 일에 집중한 분들의 이야기는 계피가 진하게 녹아있고 잣이 둥둥 떠있는 시원한 수정과와 같이 철학적입니다. 왜 하필이면 수정과냐고 하시겠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계피가 좋다는 말을 듣고 시원하게 내놓는 아내가 고마워서만이 아닙니다. 평생 나무를 공부하신 지인께서 역사와 철학을 오가며 수정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계피나무와 잣나무)
온 나라가 감염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지만 덕분에 덤으로 얻은 시간에 소원했던 사람들을 만나 이런 저런 배움을 얻고, 모처럼 책읽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습니다. 죄송하게도....
중국에 매우 도전적인 진출을 꾀하던 한 대기업에서 함께 강의를 한 인연으로 알게 된 ‘수정과’같은 분이 계십니다. 울창한 숲 속에 자리잡은 연수원에서 강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 소탈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시던 모습보다 훨씬 더 소탈한 분이었습니다. 소위 대한민국에서 나무를 가장 많이 아는 분이라고 해서 처음엔 조금 의아해했습니다. 내가 알기론 이 기업이 나무와 관련된 사업은 없는 것 같은데....
40여 년 동안 목재 수입에 관한 일을 하시면서 지구를 100바퀴나 돌아다니신 분, 그 분이 목조건축과 목조가구를 제작하는 목수와 만나 목공소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나무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나무... 인류의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이 물질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일상에서 너무 쉽게 자주 만나 그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나무가 평생을 나무와 함께 했던 한 장인에 의해 이제서야 서서히 드러납니다.
영국왕실이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주문제작한 마차의 벽면에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 국왕의 권력남용을 제한하기 위해 채택한 마그나카르타가 피나무로 조각되어 붙여졌다는 이야기, 톨스토이의 고향의 전나무들... 그리고 그 전나무로 제작한 책상과 숲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그의 작품의 배경들과 영향, 달빛에 걸린 전나무를 크리스마스 즈음에 발견한 루터의 고백 ‘신이 전나무에게도 이처럼 아름다운 빛을 선사했는데, 하물며 자녀인 우리 인간에게랴....’ 크리스마스 트리의 유래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선교사에 의해 전해진 제주도의 구상나무가 미국과 유럽에 그들의 전나무를 대신해서 트리로 사용되고 있다는 대목에선 왠지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가 나무와 관련되있다는 이야기에서...한종수 작가님이 꾸준히 올려주시는 페니키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지중해 연안에 찬란한 문명의 흔적을 유산으로 남긴 것은 나무를 깍아만든 갤리선 때문이라는.. 무기와 사치품을 제작하기 위해 제련과 유리공장에 막대한 땔감이 필요했던 유럽의 많은 문명국들이 목재의 남벌과 부족으로 그 화려한 지위를 내려놓게 되었다는 이야기며 국민소득 2000불 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벌거숭이 산이 현재 세계에서 국토대비 산림비율이 세계4위인 나라로 바뀐 것과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발전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평가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특히
전설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안도 다다오의 이야기는 오랫 동안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고베 지진으로 거의 폐허가 된 도시재생을 위해 그가 가장 먼저 공을 들인 것은 나무를 심었다는 겁니다. 그의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는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나무심기 운동을 병적으로 추진하는 그의 의도가 의미심장합니다.
“풍경이 사라진 사회는 삭막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사회와 무관하지 않죠. 나무는 숲을 만들고 숲은 풍경을 만듭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풍경은 수많은 문학과 철학에서 말하듯 선한 인간관계를 만듭니다.”
2년 전 미국 동부의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인주의 한 도시이서 휴양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퀘이커 교도들이 관리하는 방대한 숲들과 그 숲에만 들어서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행복했던 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분명 제가 선한마음이 더 필요했기에 이런 경험을 주신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 만큼은 아니지만 세계 곳곳을 정신없이 다니면서 제가 볼 수 없었던 나무와 그 나무로 이루어진 숲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나무와 숲이 주는 풍경을 가슴에 담으려고 노력해보렵니다.
김민식 지음 ≪나무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