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백파] ☆ 낙동강(洛東江) 1,300리 종주 대장정
생명의 물길 따라 인간의 길을 생각한다! 강은 드디어 바다가 되어 하늘과 만나게 되나니!
* [프롤로그] — 낙동강(洛東江) 종주 대장정(從走大長征)에 들어가며
일찍이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말하기를 “천하의 형세를 보면,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고, 물은 본디 다른 근원으로부터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天下之形勢 山主分而脈本同其間 水主合而源各異其間)” 하였다. 사실, 연면한 산맥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모든 산들은,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며 장엄한 기운으로 뻗어가고, 그 산곡에서 솟아나는 수많은 물줄기는 큰 강을 이루며 유역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젖줄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산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고, 물의 정령을 마시고 생명을 이어간다. 그러므로 산과 강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며 인간의 삶의 터전인 것이다.
☆… 나는 일찍이 1970년부터 지금까지 50여 년 간 산(山)을 올랐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하여 전국의 산을 오르며 생명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우리의 산하가 우리 육신의 숨결이며 우리 영혼의 고향임을 깨닫게 되었다. 백두대간을 중추로 하여 펼쳐지는 산과 강에서 인간의 생명이 살아가고, 곡절 많은 인생의 드라마가 우리의 삶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땅은 한없이 미덥고 은혜로운 산하가 아닐 수 없다. 착하게 산 선인들이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천지신명'으로 섬기는 까닭이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도 산은 하나의 ‘철학’이 되었다, 높은 산에 올라 하늘을 우러르고, 천지의 장엄함과 인간의 호연지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제 낙동강을 타고 내리는 대장정은 스스로 낮은 곳을 지향하며 대지와 인간의 숨결을 온몸으로 품어 보고자 함이다.
☆… 2020년 8월 2일 일요일, 서울에서 출행하여, 8월 3일 오전 10시 태백시 황지(黃池)에서 낙동강 종주를 시작했다. 이제 멀고 먼 낙동강 물길을 따라가는 대장정에 든 것이다.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 물과 하나가 되어 조용히 삶의 길[道]을 가고자 한다. 그리하여 금반「낙동강 종주 대장정」에는 노자(老子)의 말씀 ‘上善若水’(상선약수)를 화두로 삼는다. 노자『도덕경』제8장에 나온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공을 다투지 않고, 모두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므로, 도(道)에 가깝다. … 낮은 땅에 처하면서도 마음은 깊은 심연으로 향한다. 남과 함께 하면서 늘 한마음이 되고, 말로 하면 (말없이) 미덥다. 다스리면 잘 다스려지고, 일을 하면 큰 능력을 발휘하며, 움직이면 늘 시의(時宜)에 맞는다. 애당초 남과 다투지 않으니 … 허물이 없다.”
上善若水。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夫唯不爭 故無尤
☆… ‘물’은 노자(老子) 철학의 정수(精髓)이다. ‘물’은 생명 그 자체이면서 그것이 지니고 있는 물성이, 곧 천지자연의 이치이고 인간이 살아가야 할 도리인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낙동강은 태생적으로 내 목숨의 근원이요 삶의 터전이었다. 내가 태어나 약관이 되기까지 나의 뼈대를 키운 것은 낙동강 물줄기였다. 물은 생명이요, 강은 생명의 길이다. 그래서 이번 ‘낙동강 대장정’은 생명의 고향을 찾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이면서, 지난 50여 개 성상, 출향의 삶을 살아온 나의 인생역정을 사유하는 길목이고, 나아가 남은 생애를 생각해 보는 은연하면서도 절박한 마음의 요구이다. 이 여정은 한여름 비정한 폭양의 세례를 받으며 … 어기차게 살아온 애틋한 나의 생애를 강물에 풀어보는, 요컨대, 내 생애 진지한 순례(巡禮)의 길이다.
* [머나 먼 물길, 낙동강 1300리] —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도도한 흐름
* [낙동강(洛東江)]
☞ 낙동강은 태백시의 서쪽으로 뻗어가는 백두대간(白頭大幹)과 태백시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낙동정맥(洛東正脈) 사이의 모든 산곡의 물들이 모여 흐르는 장강(長江)으로, 한반도 남동쪽에 위치한 강이다. 낙동강 지킴이 대구대 지리학과 오세창 교수에 의하면, 강의 총 길이는 510 km(1300리), 유역면적 23,384 ㎢로, 본류 한정으로 한강보다도 긴 남한에서 가장 긴 강이며, 한반도 전체에서는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은 제3의 강이다. 하지만 압록강과 두만강은 국경선이 지나는 강이라서 일부 구간을 중국 및 러시아와 공유하고 있으므로, 전 구간이 순수 한반도 안에만 위치한 강들 중에서는 낙동강이 제일 긴 강이 된다. 영남권의 낙동강은 남한에서 한강(수도권), 금강(충청권), 영산강(호남권)과 함께 4대강으로 꼽히기도 한다.
* [‘낙동강(洛東江)’ 이름의 유래]
☞ 낙동강(洛東江)은 경상북도 상주시의 옛 이름 중 하나인 낙양(洛陽)에서 온 것으로, 상주[洛陽]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뜻으로 '낙동강(洛東江)'이 되었다. 현재에도 이 흔적은 남아 있어서, 상주에 '낙양동'이라는 행정구역이 있고 ‘낙동면’도 있다. 지금은 경상도가 남북으로 나뉘지만 조선 시대에는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로 나누었는데 그 경계선이 낙동강이었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 이름을 상류 지역의 이름을 따서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낙동강도 바다에 접하는 하류 쪽으로 김해 지역에 위치한 금관가야를 뜻하는 다른 말인 '가락'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럴 듯해 보인다.
* [낙동강 발원지(發源地) 문제]
☞ 낙동강의 발원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원래 큰 하천은 숱한 지류들이 모인 물줄기이므로, 각 지류들의 발원지가 모두 큰 강의 발원지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중 가장 먼 최상류의 한 곳을 발원지로 정한다. 지리학계에서는 강 하구로부터 물줄기의 중심선을 따라 올라가 가장 먼 곳에 있는 발원지를 대표로 삼고, 이를 최장(最長)의 발원지로 규정한다.
이런 기준을 따르면 낙동강의 최장 발원지는 황지천의 상류인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梅峰山) 천의봉(天衣峯)에 있는 ‘너덜샘’인이다. 학계에서는 이곳을 낙동강의 발원지로 인정한다. 그런데「동국여지승람」(1486년)를 비롯하여 한국의 여러 고서에서는 태백시 중앙에 있는 ‘황지(黃池)’를 낙동강의 발원지로 기술하며, 지금도 태백시에서는 ‘황지’를 낙동강의 발원지로 인정한다. 발원지를 인정하는 기준이 지리학계와 사람들의 전통적인 생각이 서로 다르다. 에메랄드 빛 황지(연못)은 청정하고 풍부한 수량이 한결같이 솟아나 옛날부터 신령스러운 곳이라 여긴다.
황지에 비해 ‘너덜샘은 정말 병아리 눈물처럼 작은 샘이다. 그러나 사실 황지보다 훨씬 상류에 있으며, 태백시보다 고지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황지천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지리적으로는 황지가 낙동강의 발원지일 수가 없다. 발원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상징적인 발원지로 삼고 싶어 하는 대상이 논란이 있다는 것이지, 지리적으로는 논란 대상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강의 발원지는 강 하구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가장 고지대에 존재하는 물줄기 끝이므로, 그보다 더 높이 존재하는 좌우 봉우리 및 능선부에서 모인 물들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정도가 강의 발원지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그만큼 물을 끌어 모으는 유역이 작다는 의미이므로, 어지간하게 특수한 지질구조이지 않는 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발원지는 많지 않다.
☞ 평생을 낙동강을 사랑하고 연구하고 답사하고, 낙동강을 정화하는 데 일생을 바치고 있는 대구대학교 지리교육과 오세창 교수가, 1996년 7월에 낙동강의 실제 발원지 ‘너덜샘’을 찾아, 그 푯말을 세우고 그 근원을 밝힌 바 있다. 이후 낙동강은 태백의 ‘너덜샘’에서 부산의 ‘을숙도’까지 ‘낙동강 1300리’임을 규정하게 되었다. 다음의 글은 오세창 교수가 직접 써서 신문에 게재한 글의 전문이다.
* [오세창 교수의 「낙동강의 뿌리」](1996.11.03. 수요일, 영남일보)
백두대간 태백산의 꿋꿋한 정기를 받아, 강원도 태백시에서 남으로 유유히 흘러 찬란한 가야, 신라 및 조선의 유교 문화을 꽃피워온 영남의 생명줄 1천 3백리(525kn) 낙동강의 발원샘은 어디일까.
강의 발원지는 공자가 자로에게 훈계한 말로 ‘원래 양자강은 민산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시작될 때에는 물이 겨우 술잔을 띄울만한 것이다.(昔者 江出於岷山 其始出也 其漂可以濫觴)’ 즉 중국 제1의 장강도 술잔을 띄울 정도의 작은 샘에서 시작되니, 물을 마실 때는 근원을 생각하라는 교훈이다.
금년도 7월 경상북도 개도 1백주년을 기념하여, 자연사랑 ‘낙동강 1300리회’와 해양소년단이 낙동강의 뿌리인 발원샘을 찾아 푯말을 세우고 성역화하였는데, 바로 태백시에서 사북읍 고한으로 넘어가는 천의봉 해발 1,200m 지점, 태백시 화전동 뒷산 계곡의 ‘너덜샘’이다. 돌이 많이 흩어져 덮인 비탈이라는 뜻에서 ‘너덜샘’으로 명명하였으니, ‘황지(黃池)’는 단지 역사적 문헌적 발원지라면, 이곳은 진정한 현대의 지형적 발원샘이다.
10여년 전 광산촌 사람들의 식수원으로 이용된 이 ‘너덜샘’은 지금도 차고 시원하며 맑은 물이 사시사철 쏟아져 탐사대원들이 발원제를 올리고, 낙동강이 하루 빨리 맑고 깨끗해져 물고기들이 뛰어놀 수 있기를 기원하며. 한 모금씩 샘물을 들이키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조선의 실학자 이익도『성호사설』에서 '영남의 큰 물 낙동강은 사방의 크고 작은 하천이 일제히 모여들어 물 한 방울도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이 없다. 이것이 바로 여러 인심이 한데 뭉치어 부름이 있으면 반드시 화합하고 일을 당하면 힘을 합치는 이치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지류들이 모여 줄기차게 흘러 영남인의 굳은 기상과 의리를 낳고 산수가 아름다워 인심이 좋은 고장임을 밝힌 게 아닌가. … 물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우리의 뿌리를 족보로 찾듯이, 낙동강의 발원샘이야말로 영남인의 생명의 원천이니, 물을 마실 때마다 그 근원을 떠올릴 일이다.
* [태백시 삼수령(三水嶺)] — 한강, 낙동강, 오십천 발원지의 정점(頂點)
강(江)의 발원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자리한 산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모은 강물은 산에서부터 비롯되어 흐르기 때문이다. 태백시에는 낙동강, 한강, 오십천의 발원지가 있다. 그리고 그 발원지의 정점(頂點)이 되는 산봉이 있다. 지형적으로 세 강의 발원지의 정점이 삼수령이다.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금강산-설악산-오대산-대관령을 경유하여 뻗어 내린 백두대간은 태백시의 권역에 이르러 매봉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함백산-태백산으로 남하하고, 또 백두대간 구봉산에서는 동남쪽으로 낙동정맥이 분기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도 삼해(三海)로 물길을 가르는 분수령을 이루는데, 이곳이 삼수령(三水嶺)이다. 삼수령은 매봉산과 구봉산 사이의 고갯마루이다. 삼수령의 높이는 약 935m. 태백시내(평균 해발 700m)에서 35번 국도(태백-강릉)를 타고 고갯마루[三水嶺]에 이른다. 백두대간 삼수령 북쪽 금대봉 아래에 있는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이다. 검룡소의 물은 골지천이 되어 정선 아우라지를 거쳐 남한강에 합류하여 서해에 이르고, 매봉산 아래 너덜샘(혹은 황지)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사이를 남류하는 황지천이 되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천천동굴(하천수가 바위를 뚫어 생긴 동굴)인 구문소를 지나 안동-상주-대구로 이어지는 낙동강이 되어 남해에 이르고,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동쪽의 산곡에서 발원한 도계천은 오십천이 되어 동해에 이른다. 삼수령에는 하늘을 찌르는 날카로운 ‘삼수령 금속조형탑’이 있고, 그 옆에 ‘三水亭’(삼수정)이 있다.
* [낙동강의 경로(經路)] — 모든 생명을 살리는 젖줄, 우주적 생명으로 이어지는
장장 1300리를 흘러온 ‘낙동강(洛東江)’이 여기 남해에 이르러 비로소 바다가 된다.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흐르는 강이 지향하는 것은 ‘바다’였다. 강이 지천을 품고 하나가 되듯이, 세상의 모든 강을 포용하는 바다는 하나의 바다다. 하나인 망망대해(茫茫大海) — 그러나 지구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바다는 드디어 ‘하늘[宇宙]’과 맞닿는다. 하늘과 땅, 하늘과 바다는 끊임없이 교감하면서 물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태양]이 작용하여 변화무쌍한 변용을 거듭한다. 물의 정령(精靈)이 대기가 되어 순환하니 그것이 바로 천기(天氣)가 아닌가. 이렇게 대지와 바다를 품고 있는 '하늘'은 우주적 생명의 표상이다. …강원도 오지의 작은 샘에서 솟은 물 한 방울이 바로 우주적 생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