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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Francisco, & Monterey
샌프란시스코 하면 1982년때 정광호가 18가 + Castro에서 가죽옷 사업을 할때
자주 가서 봤던 생각이 납니다. San Jose의 이태완이랑...그때는 30대 초반이라
많은 꿈을 가지고 미국 이민 초창기 생활할때입니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 강연수가 살고 있습니다. 강연수가 L.A. 내 사무실에 가끔
놀러 왔었습니다. 학창시절에 김성기랑 강연수가 친했다고 합니다.
멀리 Bay Bridge(베이 브리지)가 보입니다. 산프란시스코(스페인어: San Francisco)
또는샌프란시스코(영어: San Francisco, 문화어: 쌘프랜씨스코)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중부의 서해안에 있는 상공업 도시로 미국에서 14번째로 큰 도시이며 캘리포니아 주에서
4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옛 이름은 예르바부에나(Yerba Buena)이며,
한자명은 상항(桑港), 구금산(舊金山)입니다
Golden Bridge(금문교)입니다. 인구는 약 80만 명(2008년)으로 샌프란시스코 반도 끝에
자리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또한 미국 대도시 중에 뉴욕에 이어 2번째로 과밀한
도시입니다 태평양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금융의 중심지입니다
미국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가 샌프란시스코입니다. 나역시 샌프란시스코가
살고 싶어 하는 도시입니다. 우선 쾌적한 공기가 좋습니다. 바다가 있으니까 언제나
바다공기가 불어옵니다. 두번째는 집들이 아름답습니다. 다양한 문화가 있기때문에
관광객들이 항상 붐빕니다.
금문교는 옛날 스페인과 교전을 하여 해군동상이 있습니다.
1776년에 스페인이 이곳에 처음으로 정착했으며1848년의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로
인해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1906년의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도시가 크게 파괴되었으나 빠르게 재건되어
지금에 다다랐습니다. 침수해안인 샌프란시스코 만을 바라보며, 샌프란시스코는
해류의 영향으로 연중 따뜻하지만 안개가 자주 낍니다.
금문교(Golden Gate Bridge) 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태평양 연안 제일이라고 하는 천연의 항구를 가지고 있어 태평양 여러 나라와의 무역량이 많습니다. 특히 곡창지대가 있기에 곡물들을 Oakland항구를 통해 수출합니다. 또 대륙횡단 철도의 기점이기도 하여, 항공과 더불어 교통의 요충이기도 합니다. 넓은 캘리포니아 협곡을 후배지로 식품가공·석유정제·철강제품·출판·인쇄업이 왕성합니다. 가파른 언덕길로 유명하며, 케이블 카가 있습니다. 유명한 건축물로는 골든게이트 교, 앨커트래즈 섬의 앨커트래즈 감옥 등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사 가장 로맨틱한 건축물 팰리스 어프 파인 아트( Paace of Fine Art), 순수미술 궁전이라는 말과 같이 건축울이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 궁전이 아닌 궁정은 1915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파나마-퍼시픽 국제 박람회(Panama-Pacific Internation Expo)의 전시장으로 처음 지어졌는데 다른 대부분의 가건물은 박람회 직후에 철거되었지만 남아있는 건물들은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서 보존되었습니다. 임시로 지은 가건물은 금방 심하게 닑아서 할수없이 1965년에 원래의 건물과 같이 재건축하였고 근처의 인공 호수, 산책로, 그리고 지진 보강 공사가 2009년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웨딩촬영과 야외 결혼식을 이곳에서 많이 합니다. 영화 "The Rock" 1996년 숀코네리가 알카트라즈를 탈옥하여 이곳에서 딸을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팰리스 오브 파인아트 바로 옆에는 과학 전시관인 잌스프로토리움 (Exploratorium) 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나들이로 관광객들과 지역주민들에게 인기있는 장소이고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결혼식 장소이기도 합니다. 디즈니랜드에는 소형 복제 건물로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1900 년대 초 저명한 건축가 버나드 랄프 매이벅 (Bernard Ralph Maybeck)이 로마와 그리이스 양식으로 1915 년 건축하였습니다. 작은 인공 호수 (lagoon)를 둘러 건축된 팰러스 어브 파인아트는 1,100 ft (340 m) 길이의 퍼걸러(정원에 덩굴 식물이 타고 올라가도록 만들어 놓은 아치형 구조물) 중앙에 원형 건물의 있는 형태입니다. 호수는 넓은 수면이 주위의 멋진 건물들을 반영하도록 만든 유럽의 고전 스타일을 본 땃습니다.
장식으로는 그리이스의 문화의 상징인 “미를 위한 투쟁 (The Struggle for the Beautiful)”을 나타내는 원형의 엔태블러처 (entablature: 기둥 위에 걸쳐 놓은 수평 부분)가 있습니다.
원형의 지붕 아래에는 Robert Reid의 오리지날 벽화를 담고있는 8개의 커다란 삽화가 있습니다. 4개는 구상과 예술의 탄생을 나타내고 4개는 캘리포니아의 골드 (.퍼피, 귤, 금, 그리고 밀)를 나타냅니다. 최근에는 호주산 Eucalyptus 나무와 백조와 오리 그리고 거위 거북이, 개구리, 래쿤(raccoon)들이 서식합니다.
1873년 8월 1일부터 다니기 시작한 케이블카는 샌프란시스코에게 사는 시민들에게는 교통수단으로써, 관광객에게는 샌프란시스코의 관광명물로서 인기가 많은 교통수단 입니다. 위험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과거의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전차의 구동부는 현대식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흔히 이렇게 구식 시스템을 이용하면 도시 교통흐름에 상당한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시민에게는 교통수단으로써 한 몫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Cable Car 를 내리니까 경찰관이 반갑게 맞이 합니다.ㅎㅎㅎ케이블카 정류장은 길에 정류장 부근에 갈색과 백색의 정지 사인이 있는 교차점이나 레일이 황색으로 칠해져 있는 곳인데, 정류장 도중이라도 승차하고 싶은 경우에는 손을 흔들어서 신호를 하면 정차해 줍니다.
티켓은 각 케이블카 출발지에 'SFPD'라고 쓰여 있는 은색 부스에서 구입해도 되고, 아예 승차 후에 차장에게 지불해도 되며 이동이 잦은 여행객의 경우 샌프란시스코 시교통국에서 나오는 One day pass나 Weekly pass를 이용해도 좋습니다. 좌석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가의 좌석과 창이 없는 좌석, 또는 탑승보드의 어느 곳에나 승차할 수 있으며 총 승차 인원수는 차장이 판단하므로 차장이 '스톱(Stop)' 하고 말하면 다음 케이블카를 기다려서 타는 것이 좋습니다.
내릴 경우에는 모든 역에 캐이블 카가 정차하는 것이 아니므로 목적지 정류장에 가까운 지점에서 운전사나 차장에게 미리 말을 하여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종점에서는 자동으로 차를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동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두 팔로 차를 돌리는 운전사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Cable Car에서 내리는 곳에 쇼핑 몰이 있는데 정응진이가 부사장으로 있는 Forever 21(의류점)가 눈에 띕니다. 성탄계절이라 Brass 연주를 합니다.
롬바드 스트리트의 유명세는 언덕에 보여있는 관광객들로 증명이 됩니다. 꽃으로 단장된 길은 세계에서 제일 구불구불한 길(The Crookedest Street.)입니다...
이 길은 경사가 너무 심해서 한블럭의 길을 10번 턴을 해야 지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China Town에 가니 중국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기판이 한국장기판과 조금 다릅니다.
트랜스아메리카 피라미드(:Transamerica Pyramid)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고층 빌딩입니다. 지상 48층, 260m의 마천루로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자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높은 빌딩입니다.
설계는 윌리엄 페레이라 (William Pereira)가 하였습니다. 건물의 높이 260m로, 총 46층입니다. 트랜스아메리카 코퍼레이션의 본사였지만 현재는 본사를 이전하였습니다. 1969년에 착공하여, 1972년에 완성했습니다. 같은 샌프란시스코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센터 (현재 이름 555 캘리포니아 스트리트)를 제치고 미시시피 강을 기준으로 서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되었습니다. 하지만, 2년 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Aon 센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빌딩입니다. 27층에 있는 전망대는 9·11 테러 이후 폐쇄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북미에서 가장 오래되 었으며 아시아를 제외한 지역에서 가장 큰 중국 타운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1850년대 부터 1900년대까지 중국 남부 관동성의 타이산이나 중산에서 오는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항구였습니다. 당시 차이나타운의 상점 점원, 식당 주인, 그리고 고용인력들은 대부분이 타이산에서 온 남자들이 었습니다. 많은 중국인들은 Central Pacific Railroad (현재 Union Pacific Railroad) 같이 노동인력을 필요로 한 커다란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또한 다른 이민자들은 1849년 골드러쉬를 통해 부자가 되려 광부일을 하였습니다.
1850 년에 형성되었으며, 영화, 음악, 사진 그리고 문학에 이르는 각종 인기있는 문화의 장소로서 쓰여지고 있으며 중국 본토를 제외한 지역에서 가장 커다랗고 뛰어난 중국 인의 활동지입니다.
일본인의 이민역사는 1868년 153명이 하와이로 노동이민으로 건너간 것이 최초입니다.작은 일본 마을속으로 여행하는 느낌이 드는 재팬타운속에는 책방 ,일본특산품 ,다이소 ,식료품가게가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고베나 교토같은 분위기 때문에 재팬타운이 '마음속 오아시스'라고 말합니다
몬트레이 (Monterey) 카운티는 중부 캘리포니아의 해안의 최북단을 아우르는 지역입니다. 이 곳에는 카운티의 이름과 똑 같은 몬터레이 시가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데, 예술과 풍부한 해양문화의 거점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몬트레이 베이 아쿠아리움 (Monterey Bay Aquarium)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피셔맨스 워프 (Fisherman's Wharf), 캐너리 로우 (Cannery Row) 등도 꼭 한번 둘러볼 만 합니다. 이외에 연례적으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합니다.
1700년대 후반 몬트레이 일대는 주니페로 세라 신부 (Father Junípero Serra)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데, 몬트레이 시의 기초를 닦은 것도 사실상 세라 신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몬트레이는 캘리포니아가 미국에 넘어가기 이전, 즉 스페인 식민지 시절과 멕시코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캘리포니아의 주도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식민 시절만 해도 이 도시의 이름은 Monte Rey 혹은 Montery 등으로 오늘날과는 조금씩 다르게 불리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인근의 카멜 (Carmel) 시에 있는 미션 카멜 (Mission Carmel)은 원래 세라 신부에 의해 이 곳 몬트레이에 세워졌다가 자리를 카멜로 옮긴 것으로 기존의 채플은 로얄 프레시디오 채플 (Royal Presidio Chapel)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을 좋아해서 일년에 한번씩 꼭 방문하는 Montrey의 Pacific Grove입니다. 이 바닷가를 거늘면 모든 시름이 다 없어지는 힐링 장소입니다.
한 때 몬트레이는 캘리포니아의 주도였던 만큼 여러 가지의 '최초'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최초의 극장과 벽돌집, 공립학교, 공공건물. 공립도서관, 활자신문 등이 등장한 곳도 바로 몬트레이 시에서 였습니다.
몬트레이 시는 1,900년대 초반까지만 특히 미국 서해안 어업의 전진기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수많은 고깃배들이 쉴새 없이 몬트레이 항구를 들락거렸으며, 이 때 캐너리 로우 (Cannery Row) 같은 통조림 공장 지대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예술인, 작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이 도시 특유의 풍부한 예술과 문화를 일궈내게 되었습니다. 한 때 이 곳에 살았던 유명 작가로는 노벨문학자 존 스타인벡 (John Steinbeck)을 필두로 로빈슨 제퍼스 (Robinson Jeffers), 헨리 밀러 (Henry Miller),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대자연의 힘으로 캘리포니아 해변을 따라 달리는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Pacific Coast Highway)를 특징으로 하는 몬트레이 반도가 탄생되었습니다. 몬트레이 반도는 파도와 바람으로 형성된 절벽으로 된 해변과 모래언덕, 바위로 된 해안가, 깊은 만 등을 특징으로 합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존 스타인벡의 소설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오래된 고기잡이 마을인 몬트레이는 이 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곳입니다. 매년 9월이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축제로 전 세계 약 500여 명이 참가하는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벌이 3일 동안 열립니다.
한때 고래잡이와 정어리 통조림으로 유명했던 몬트레이는 캘리포니아 최초의 주도이기도 하며 1850년 이전의 건축물이 40여 개 이상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몬트레이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는 캐너리 로우(Cannery Row)의 몬트레이 베이 아쿠아리움입니다. 캐너리 로우에는 1930년대와 40년대에 번영했던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 있었고 존 스타인벡의 1945년 소설인 통조림 골목(Cannery Row)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획으로 인해 50년대에 대부분의 통조림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그가 말했던 불행은 사라지고 대신 상점과 레스토랑이 들어서며 활기 넘기는 거리로 바뀌었습니다.
‘스타인벡 컨트리’라고도 불리는 근처의 살리너스와 주변 경관은 1939년 발표한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로 잘 알려진 존 스타인벡이 태어난 고향입니다. 존 스타인벡 박물관은 그의 인생과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물건을 전시하고 있으며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을 상영하기도 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스릴 넘치면서도 매력적인 골프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대양을 마주하고 있는 페블비치 골프장은 골퍼라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스파이글라스힐(Spyglass Hill)과 스패니시베이(The Links at Spanish Bay)와 함께 3대 캠피언십 코스로 불리는 페블비치는 1919년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1940년대 후반 가수인 빙 크로스비(Bing Crosby)는 그의 프로암 토너먼트를 여기서 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월 둘째 주말에 페블, 스파이글라스, 그리고 근처의 프로피힐 골프장에서 열리는 AT&T 페블비치 내셔널 프로암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홀로 바위에 200년이 넘도록 살아 온 Lone Cypress 나무는 몬추레이의 상징이며 자연의 신비함을 느낄수 있습니다.
이 싸이프러스나무는 1982년에 이태완 장인댁에 놀러왔을때 당시 모습 그대로 제자리에 지키고 있습니다.
해풍으로 나무들이 뒤틀리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새단장한 우아한 페블비치 로지(Lodge at Pebble Beach)에서는 최고의 골프 경험을 선사합니다. 161개의 객실에는 벽난로가 있으며 태평양의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리는 페블의 18번째 페어웨이 우측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해안선을 감싸고 있는 최신식 숙박시설인 스패니시베이 인(Inn at Spanish Bay)은 앤틱 가구와 대리석 샤워 등을 특징으로 하는 269개의 호화 객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곳이 골프장입니다.
카멜 (Carmel)은 예술가의 도시입니다.
처음부터 예술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1900년대 초
샌프란스시코의 대 지진 이후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이 도시가 예술가들을 위한 도시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중심 거리엔 고급식당과 예술 갤러리, 상점들이 많은데 간판 하나도 모두 도시전체의 미관을 고려하여 관리됩니다.
카멜의 집들은 사진을 찍으면 바로 동화의 삽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도 아름답고 예술적입니다. 1700년대에 지어진 스페인 선교회의 카멜미션 또한 이 도시의 볼거리입니다.
이곳 Carmel(카멜) 시의 전 시장이 크린트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영화배우였습니다. 크린트이스트우드가 이곳 출신입니다.
카멜 시의 Tuck Box(과자상자) 가게는 마치 동화에 나오는 집 같습니다.
이곳 Tuck Box(과자상자) 이름의 영국식 찻집입니다.
내가 즐겨 찾은 Pacific Grov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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