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하이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2년 가까운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땐 시간이 다 해결해줄 것이라고, 다 지나가고 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고통에서 해방되고도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어떤 길이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기에 이리저리 방황하던 중 우연히 ‘여성주의 타로 상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또 ‘가치성장과 치유센터’에서 마더피스 타로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육 기간은 1월 13-17일 4일간이었고, 내 생일은 1월 16일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을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교육을 신청했다.
1월 13일, 교육 첫째 날. 같이 교육을 받을 동료들과 선생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날. 나는 페미니스트이면서도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이자 고정관념이 있는데, 문을 열자마자 그 모습과 기운을 가진 사람이 세 명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앗... 오늘도 너무나 열심히 일해버린 나의 편견에게 치얼스-. 서로 굳이 물어보진 않아서 페미니스트가 몇 명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나는 1년 전 이맘때쯤부터 가장 많이들 쓴다고 하는 유니버설 웨이트(Universal Waite Tarot)를 인터넷으로 공부했고, 친구들에게 타로를 종종 봐주던 터라 타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더피스 타로는 순서, 인물 카드, 의미와 해석 등 여러 면에서 전통 타로와 달랐다. 심지어 마이너 카드 중에는 그림과 완전히 달라서 교육 시간에 배워놓고도 나중에 봤을 때 처음 보는 것 같은 카드도 있었다.
유니버설 웨이트에는 서구 백인 남성이 주로 등장하며 성별 이분법적이고 여성 차별적인 내용이 많았다. 마더피스 타로는 인류학자 카렌 보겔과 비키 노블이 처음 만들 때 세계 이곳저곳에 있는 부족 사회 여성의 모습을 카드에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 카드를 살펴봤을 때부터 아직 배우지 않았음에도 이유 모를 주술적인 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카드에 나와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의미와 상징들은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카드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통찰력은 나와 나의 내면세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육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틈틈이 쉬는 시간을 가지며 진행됐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4일 연속으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치거나 에너지가 너무 소모되지 않도록 자신과 서로를 돌봐가며 진행돼서 오히려 충전하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차와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수업 중에 졸지 않도록 교육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수업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두 가지 있다. 나는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내가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거나 100% 공감하지 못해줬던 것이 늘 안타까웠고, 그것이 나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돌보지 않고 남을 돌보는 것은 나를 다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는 것은 결국 나를 소모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여성주의 타로에서 주도권은 상담자가 아니라 내담자에게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유니버설 웨이트로 친구들에게 타로를 봐줄 때 나는 항상 답을 맞히려고 했다. 과거에 어땠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다 내어주면 내가 내담자가 가져야할 주도권을 빼앗게 된다. 이런 방식은 내담자가 가진 내면의 힘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결국 나는 타로를 봐주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을 다 받고 나서 나는 ‘여성주의 타로 상담’을 배우러 온 주제에 4일 내내 상담을 받으며 오히려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과거의 나, 혐오하는 나, 힘들어하는 나, 이런 여러 ‘나’들을 놓지 못하는 나, 놓아버린 나. 30시간 내가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수업이 끝나고 수많은 ‘나’들과 함께 집에 가는 밤길은 여신 아프로디테가 밝은 빛으로 서쪽하늘을 지켜주었다. 밤에는 태양이 없다. 비어있고 고요하고 정지되어있다. 마더피스 타로를 배우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나의 공간에는 밤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달의 여신은 달의 에너지로 하늘을 뒤덮고’ 나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밤의 에너지는 나의 정신을 맑게 한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첫댓글 와아~~ 맑은 정신이 가슴에서 흘려나왔나봐요!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 글이 너무 좋아 끝나지 않길 바라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는데, 하이의 글이 그러네요. 글이 아니라 시를 읽고 삶을 읽는 듯 했어요.
하이는 정말 훌륭한 학습자예요. 상담자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잘 정리해서 가져가다니... 박수를 보냅니다!
설날, 이렇게 큰 감동을 줘서 고맙습니다! 하이의 여정을 지지하고 응원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