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문답서
전재성 편저
2559 . 10 . 12
제 10 장
환경철학과 불교
451. [문] 인간중심적이고 이원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지배주의에 의한 자연의 파괴는 본질적으로 남성중심적인 가부장 제적인 전통과의 결탁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하는 에코페미니즘에 대하여 불교는 어떠한 입장을 지니고 있습니까?
[답] 에코페니니즘이 주장은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성경의 “네 이웃이나 아내나.... 그의 여종이나 ....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 는 주장으로 보아 서양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남성위주의 사회적 전통을 이어받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고 동양에서 유교적 윤리도 역시 “부부유별(夫婦有別) , 여필종부(女必從夫), 부창부수(夫唱婦隨), 남존여비(男尊女卑), 의 남성중심적 사화전통을 계승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부장제적인 남성중심주의가 근대과학의 출현과 더불러 개발프로젝트에 자연에 대한 지배와 폭력이라는 형태로 내재화되었고 그래서 자연과 여성은 모두 생명의 출산과 보호라는 자신의 가치를 박탈당하고 도구화되고, 상품화되고, 타자화되고 있다고 에코페미니즘은 주장하는 것은 타당한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과 자연의 합일을 강조하는 본질주의적 페미니즘은 지구여성이라는 영성주의적이고 여신숭배적인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성주의적 여성운동은 여성의 권리와 자연물의 생존권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생태주의의 신인동형적 사고방식은 인도의 여신숭배가 파괴의 여신인 깔리여신의 숭배로 귀결되었듯이, 받드시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여신숭배를 합리화하는 것은 여성의 모성애적 본능 이외에 “여자가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는 삶을 죽음의 세계로 흡수해버리는 성향을 방기한 데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깔리여신은 자애로운 모성과 잔인하고 파괴적인 특성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깔리여신은 파괴적인 측면에서는 자신의 아이들마져 삼켜 버립니다.
특히 마하깔리는 위대한 검은 여신으로 피를 흘리며 늘어뜨린 혓바닥, 칼과 방패, 사람의 잘리운 머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생태파괴의 절멸주의적 충동은 여성에서부터 근원하는 남성적 가부장제주의가 아닌가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이원론적 위계질서가 역전된다고 해서 자연은 생존권이 보장된다는 원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불교는 생물학적인 여성이라 할지라도 경험적 실체속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 길들여진 육체'로서 사회적인 권력관계의 그물망에 의해서 형성되는 연기적인 육체로서 파악하는 구조주의적인 에코페미니즘에 동조합니다.
초기불교는 남성에 대한 이원론적인 여성과 자연의 일치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신토불이(身土不二)등의 인간과 자연의 일치에 관해서는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생명체들과 더불러 업력에 의해 윤회하는 상호가능적 자아로서 이원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불교는 기본적으로 여자만이 갖는 괴로움을 “① 시집가서 친부모와 본가를 떠나기, ②월경, ③분만, ④남자에의 봉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여성의 생물학적인 조건과 사회적인 조건에 관해 명확히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②와 ③은 자연적인 본질로서의 여성의 고통에 관해, ①과 ④는 사회적인 행위자로서의 체화된 여성의 고통에 관한 설명입니다
에코페미니즘에서는 여성의 자연적 본질은 지구적 자연과 일치되며, 지구영성과 여신숭배의 토대를 마련해주는데 비해 초기불교는 여성의 생물학적인 본질 자체를 괴로움으로 보고 있으며, 거기에서 형이상학적인 신인동형론을 도출하지는 않습니다.
초기불교에서의 여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훗날 대승불교에서 그 사상적인 해결책을 찾게된다.
대승불교에 따르면, 여성의 자연적 본질에서오는 고통은 대승본생십지관경에 의하면 잉태하고 힘들게 낳고 키우는 것은 여성의 도덕적 탁월성 즉 공덕으로 전환됩니다.
이러한 공덕의 힘이야말로 본질주의적인 에코페미니즘의 원동력이 되지 않으면 않됩니다.
그리고 대승밀교에와서 사회적 행위자로 체화된 여성의 고통은 모든 생(生)의 태장으로서 모든 생명력의 담지자일뿐만 아니라 모든문화의 원동력으로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이때 여성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남성에 대한 이원론적 위계질서의 역전이 아니라 연기적 그물망에 대한 통찰을 여성화한 반야모 (지혜의 어머니 )의 사상에 입각한 상징적 체계로 나타난다는 측면에서 적어도 그 이념은 구조주의적 페미니즘의 체계와 유사성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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