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두째 손자 杆이 쓴 일대기 복사한 화면.
16世 贈 嘉善大夫 吏曹參判 行 公州牧使 諱 堥
先祖考 墓表 陰記 草
府君 姓 鄭, 諱 堥, 字 哭而, 系出迎日, 新羅 諫官大夫 諱 宗殷之後. 入我朝有 諱 洪 知議政府事, 諱 淵 贈 左議政 行 兵曹判書 於府君爲 九世, 八世祖. 高祖 諱 珙 縣監, 曾祖考 諱 忠邦 蔭補 察訪, 不仕祖 諱 洛 成均生員 贈 執義, 考 諱 碩基 贈 左承旨而 學行聞. 妣 贈 淑夫人 南原梁氏 贈 參議 諱 應淸之女. ♣ 府君 以崇禎 辛巳 正月 二十三日生, 七歲而 孤自成 童力學 己酉生員. ▶壬子 冬 筮仕 軍資監, 參奉 歷 陞 繕工監奉事, 尙瑞院直長 內贍寺主簿. ★ 丙辰 冬除 雲峯縣監. 庚申 秋 罷還 邑人竪碑 追思 凡七處. 辛酉 夏 拜 宣惠郎廳, 秋除 和順縣監. 丙寅 秩滿遞付 宗親府 典簿 道臣而治行 最著褒聞. 戊辰 拜 咸陽郡守. 辛未 陞拜 南原府使 以前守 仞任見遞. 癸酉冬 復拜 南原 以前任 雲峯時事 罷職. 甲戌除 江華經歷. 丙子冬 拜 淮陽府使 留相狀請 仞任, 丁丑 春丁 淑夫人 葬於 任所 返葬于 礪山居廬 墓下. 己卯 服闋除 公州牧使 前後 所莅輒. 有頌德之碑 皆如 雲峯焉. 甲申 冬 報瓜捲還于 礪山 黃山村. 乙酉 正月 感疾 二十九日 棄世, 是月除 軍資監. 四月 葬于 公州 國士洞 艮坐之原. 後 四十二年 丁卯 以先考 推恩, 贈 嘉善大夫 吏曹參判. ♠ 初配 贈 貞夫人 咸陽 朴氏 乃亨之女 有一男 二女, 男 夏臣 先府君 夭, 女適 都事 沈鳳瑞 進士 洪麟祚 並無後. 再娶 贈 貞夫人 漆原 尹氏 遇泰之女 一男 夏顯 後府君 夭, 三聚 贈 貞夫人 豐川 盧氏 瀕之女 有一男 一女 男 夏彦 大司諫 女適 佐郞 金范甲. 側室 子 夏盛, 夏喆, 夏慶 女適 趙敏夏. ▶ 夏臣 以從姪 檍 爲後. 夏顯 以從姪 橚 爲後, 女適 李一吾. 夏彦 有 四子五女, 樹 進士 早殺, 杆 今僉正, 柱 今縣監, 楞 早殺. 女適 進士 朴師邵, 士人 李址華, 任希翼, 朴培源, 進士 沈匡之. 夏盛 子 橒. 夏喆 子 櫟. 夏慶 子 檀, 松, 栢, 檜. 檍子 魯榮, 復榮. 橚子 斗榮, 今直長 奎榮. 樹 以杆子 祖榮 爲後 今 進士. 杆子 祐榮. 柱子 祉榮. 金范甲子 澤厚, 山厚, 女 進士 李 孝, 士人 尹晩基, 餘 不盡錄. ▶ 三夫人 墓與 府君墓 同崗而, 朴氏墓 在左, 尹氏墓 在右而, 離祔 盧氏墓 在外 階下之右, 皆 府君 遺意也. ♠ 嗚呼! 府君之 棄世 今爲 八十年餘矣. 先考 旣晩生 四歲而孤, 家事零替 旣長每以 先世文獻 之無徵爲, 至恨今宜 何所巧據也, 府君之居 家行宜當 官處事雖 有及聞於 先輩舊人 然非不肖 所敢立言 祗叙世系 歷官如右 云.
不肖 孫 杆 謹撰.
선조고 묘표 음기 초
부군 성 정, 휘 무, 자 곡이, 계출영일, 신라 간관대부 휘 종은지후. 입아조유 휘 홍 지의정부사, 휘 연 증 좌의정 행 병조판서 어부군위 구세, 팔세조. 고조 휘 공 현감, 증조고 휘 충방 음보 찰방, 불사조 휘 락 성균생원 증 집의, 고 휘 석기 증 좌승지이 학행문. 비 증 숙부인 남원량씨 증 참의 휘 응청지녀. ♣ 부군 이숭정 신사 정월 이십삼일생, 칠세이 고자성 동력학 기유생원. ▶임자 동 서사 군자감, 참봉 력 승 선공감봉사, 상서원직장 내섬사주부. ★ 병진 동제 운봉현감. 경신 추 파환 읍인수비 추사 범칠처. 신유 하 배 선혜낭청, 추제 화순현감. 병인 질만체부 종친부 전부 도신이치행 최저포문. 무진 배 함양군수. 신미 승배 남원부사 이전수 인임견체. 계유동 복배 남원 이전임 운봉시사 파직. 갑술제 강화경력. 병자동 배 회양부사 류상장청 인임, 정축 춘정 숙부인 장어 임소 반장우 려산거려 묘하. 기묘 복결제 공주목사 전후 소리첩. 유송덕지비 개여 운봉언. 갑신 동 보과권환우 려산 황산촌. 을유 정월 감질 이십구일 기세, 시월제 군자감. 사월 장우 공주 국사동 간좌지원. 후 사십이년 정묘 이선고 추은,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 초배 증 정부인 함양 박씨 내형지녀 유일남 이녀, 남 하신 선부군 요, 녀적 도사 침봉서, 진사 홍인조 병무후. 재취 증 정부인 칠원 윤씨 우태지녀 일남 하현 후부군 요, 삼취 증 정부인 풍천 盧氏 빈지녀, 유일남 일녀, 남 하언 대사간, 여적 좌랑 김범갑. 측실 자 하성, 하철, 하경 녀적 조민하. ▶ 하신 이종질 억 위후. 하현 이종질 숙 위후, 녀적 이일오. 하언 유 사자오녀, 수 진사 조살, 간 금첨정, 주 금현감, 릉 조살. 녀적 진사 박사소, 사인 이지화, 임희익, 박배원, 진사 침광지. 하성 자 운. 하철 자 櫟. 하경 자 단, 송, 백, 회. 억자 노영, 복영. 숙자 두영, 금직장 규영. 수 이간자 조영 위후 금 진사. 간자 우영. 주자 지영. 김범갑자 택후, 산후, 녀 진사 이 효, 사인 윤만기, 여 부진록. ▶ 삼부인 묘여 부군묘 동강이, 박씨묘 재좌, 윤씨묘 재우이, 리부 로씨묘 재외 계하지우, 개 부군 유의야. ♠ 오호! 부군지 기세 금위 팔십년여의. 선고 기만생 사세이고, 가사영체 기장매이 선세문헌 지무징위, 지한금의 하소교거야, 부군지거 가행의당 관처사수 유급문어 선배구인 연비불초 소감립언 지서세계 력관여우 운.
불초 손 간 근찬.
번역문
선조고 묘표 음기초; 돌아가신 할아버지의묘 비석 뒷면에 새기는 글을 씀.
♣ 돌아가신 할아버지(杆의 先祖考, 堥)는 성이 정씨고, 이름은 堥(무)요, 자는 곡이 이요, 출신은 영일이요, 벼슬이 신라 간관대부인 이름 종은의 후손 이다. 조선시대의 종은 선조의 후손으로 지의정부사 이신 洪(홍)과, 추증 벼슬로 좌의정이고 현직은 병조판서이신 淵(연)으로, 선조고이신 堥(무)의 각각 9세조와 8세조이다. ▶ 7.6,5세조는 서술이생략 / ♠고조는 이름이 공이요, 현감을 지냈다. 증조는 이름이 충방이요, 음직으로 찰방을 했다. 조고는 이름이 락으로 벼슬이 없고 성균관 생원이다. 추증으로 사헌부 집의와 좌승지이신 선고 석기는 학행으로 이름을 날렸다. 선비(무의 모친)는 증 숙부인 남원 양씨요, 참의로 벼슬을 추증받은 양 응청의 딸이다. (무 선조고부터 대와 세를 기세 함). 부군(간의 선조고 이신 무(堥)는 1641년 숭정신사 정월 23일 태어났다. 7세때 고아로 자수성가하여 어려서부터 힘써 공부하니, 1669년 기유년 29세에 생원이 되었다. 3년 후 1672년 임자년 겨울 서사, 군자감, 참봉을 거쳐 선공감봉사, 상서원 직장, 내섬시 주부를 하셨다. 1676년 병진년 겨울 운봉현감을, 1680년 경신 가을에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동안 사람들이 비를 세워 기린 곳이 7군데나 되었다. 1681년 신유년 여름 선혜낭청, 가을에 화순현감(능주목사)이 되었다. 1686년 병인 종친부 전부로 일할 때 최고의 포상도 받았다. 1688년 무진년 상께서 듣고 함양군수로 보냈다. 1691년 신미 남원부사로, 1693년 계유 겨울 남원부사로 연임 중 운봉현감의 사건에 연루 파직이 있었다. 그러나 1694년 갑술 한해가 저문때 강화경력으로, 1696년 병자 겨울 회양부사로 갔다. 이때 나라에 청하여 1697년 정축 숙부인(석기 배) 남원 양씨를 파주에서 여산으로 반장하고 여묘살이가 다 되던 해 1699년 기묘 공주목사로 갔다. 이 때 목사시절 송덕비가 많이 생겼는데, 운봉현에 다 있다. 1704년 갑신 겨울 여산의 황산촌으로 오게 되었는데, 다음해 1705년 을유 정월 병이 나서 이달 29일에 돌아 가셨다. 이해 4월 공주 국사동 간좌 언덕에 나라의 도움(군자감 ; 군대의 군수품 조달)으로 장례하였다. 이 후 42년이 지나 1747년 정묘 선고(夏彦; 杆의 부친)가 추은 하니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이다. ◆ 첫 부인은 증정부인 함양 박씨 박내형의 딸로, 1남 2녀를 두었으니, 1남은 하신으로 모친보다 어려서 먼저 죽었고, 1녀는 도사 심봉서에게, 2녀는 진사 홍린조에게 출가 하였으나 모두 자식이 없다. 둘째 부인은 증정부인 칠원윤씨 윤우태의 딸로, 1남 하현이 있으나 모친을 먼저 잃고 어려서 나중에 죽었다. 셋째 부인은 증정부인 풍천노씨 노 빈의 딸로, 1남1녀가 있으니, 1남은 대사간 하언, 1녀는 좌랑 김범갑에게 시집갔다. ▶ 측실의 자, 하성, 하철, 하경이 있고, 하경의 누이는 조민에게 시집갔다.
♠ 하신에게는 조카 억이, 하현에게는 조카 숙이 후사로 양자되고, 하현 1녀는 이일오에게 출가했다. 하언에게는 4자 5녀로, 1남 수는 진사로 일찍 죽고, 2남 간은 현재 첨정이요, 3남 주는 현재 현감이요, 4남 릉은 일찍 죽었으며, 1녀는 진사 박사소에게, 2녀는 사인 이지화에게, 다음 임희익, 다음 박배원, 다음 진사 심광지에게 시집갔다. ▶ 하성에게 아들 운, 하철은 력, 하경은 단,신,백,회 4아들이 있다. ★ 억은 2자 노영 복영이 있고, 숙은 2자 두영과 현재 직장벼슬인 규영이 있고, 수는 동생 간의 큰 아들 1자 조영을 양자로, 간은 2자 우영이 있다. 주는 1자 지영이 있다. ♣ 김범갑(하언의 사위)의 2자 택후, 산후가 있고, 2녀는 진사 이 효, 사인 윤만기에게 시집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기록을 못 한다.
▶ 3부인의 묘는 부군묘와 같이 있다. 박씨는 좌, 윤씨는 우, 노씨는 아래 계층의 우측에 자리 하고 있으며, 부군이 이와같이 묻어 달라 유언했다. 참으로 슬퍼요! 부군(간의 조고)이 돌아 가신지 지금 80년이나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4살 때 고아로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이미 오래되여 선조 세계와 관련된 문헌은 징구할 아무것도 없으니, 매우 한탄스럽다 하겠다. 부군이 살던 집에 어디서도 찾아 낼 방도가 없다. 선배와 잘 아는 이로부터 어느 소문도 듣지 못하고, 비록 나라 관청에 있다 하나, 알 수가 없지만 우(이와같이)와 같이 우리의 세계와 선조의 이력을 감히 찾아서 공경하며 서술 기록하여 일러 둔다.
◐ 불초 손 간 근찬 / 조상의 어진 뜻을 이어 받지 못 하는 손자 간이 삼가 글을 쓰다.
첫댓글 유물연구사학자님이 좋은자료를 해석하셧습니다. 축 건강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