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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50:15
요셉의 마지막 행적에 주목하시라. 그는 평생 하나님과 동행했고 많은 믿음의 유산과 삶의 모범을 남겼습니다. 쓰임받는 도구가 되어 뭇 생명을 구하고 야곱 가족을 보호했습니다. 생의 끝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가? 공주야! 요셉이 완벽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고, 그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께 붙들린 생을 살았다. 모든 인간에겐 공과가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가 남긴 발자취가 후세에 귀감이자 걸어야 할 이정표로 제시하는 것 같다.
Pay attention to Joseph's last deeds. He was accompanied by God throughout his life, leaving behind many legacy of faith and examples of life. He became a tool to be used, saving lives and protecting the Jacob family. What do you think about as you look at the end of your life? Princess! Joseph did not have a perfect life, but some people criticize him. But he lived a life more obsessed with God than anyone else. Every human being has merit. The Bible seems to suggest that the footsteps he left behind are an example to future generations and a milestone to 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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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은 요셉이 복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형들은 요셉에게 사람을 보내어 아버지가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했다는 유언을 전한다. 그러고도 안심하지 못하여 종이 될 테니 살려달라고 직접 찾아가 애걸 한다. 너무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요셉의 용서를 믿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일이었다는 말도 새겨듣지 않았다. 은혜를 수용하는 것이 믿음이다.
After the death of his father Jacob, the older brothers think Joseph will take revenge. The older brothers send a man to Joseph to deliver a will that the father forgave his brothers for their faults and sins. Even then, he can't be relieved and will become a servant, so he goes directly to ask for his life and begs for help. He was so deeply guilty that he couldn't believe Joseph's forgiveness. He didn't even listen to the words that God did it for the salvation of this family. It is faith that accepts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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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표현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알 때, 형제들은 대 제국 애급에서 믿음의 걸음을 담대히 걸어갈 수 있다. 요셉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들을 보면서 요셉은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린다. 고독한 눈물이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 형들에게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용서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여 아주 간곡한 말로 그들을 위로한다. 인간 요셉의 아량과 관대함은 형제들의 우려대로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요셉이 의지한 하나님의 관대함은 변덕스럽게 사라지지 않는다.
The brothers are able to boldly walk through the steps of faith in the royal mourning when they know God's forgiveness and grace expressed through them. Joseph shed tears of sorrow as he sees his older brothers unable to accept Joseph's sincerity. It is a lonely tear. But he wakes up again and reminds his brothers of God's history of turning evil into good. Explain that forgiveness did not come from him, so he comfortes them with very earnest words. The generosity and generosity of the human being Joseph can disappear at any time, as the brothers feared, but the generosity of God that Joseph relied on does not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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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알 때,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용서의 은혜를 믿을 수 있다. 요셉은 훗날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으로 올라 갈 때 자신의 뼈도 가지고 가서 매장해달라고 유언한다. 애급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고 4대까지 자손을 보았지만 그의 본향은 애급이 아니라 가나안이었고, 그가 바라본 곳은 오늘 여기가 아니라, 죽음 너머에 있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창조와 생명으로 시작한 창세기는 죽음과 매장으로 끝난다.
When we know the history of God's providence, which has worked together to achieve good, we can believe in the ridiculous grace of forgiveness. Joseph will later ask Israel to take his bones and bury them when he ascends to the land of Canaan, as promised by God given to Abraham. He enjoyed all kinds of movies in Egypt and saw his descendants until the fourth generation, but his hometown was Canaan, not love, and the promise he saw beyond death. As such, Genesis, which started with creation and life, ends with death and bu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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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암울한 종말이 아니다. 모든 첫 창조가 죽음으로 끝나지만, 그 죽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가리키는 죽음 저편의 부활과 새 창조를 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 앞에서도 약속을 붙드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 마음을 두고 행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생을 마감할 것인가?
That doesn't mean a grim end. Every first creation ends with death, but that death shows that God's promise is directed at the resurrection and new creation of the other side of death. What is a belief that holds a promise even in the face of death? What should I do with my heart to end my beautiful life? Then, how will I end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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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이 요셉에게 용서를 구하다(15-21)
a.형들이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다:15
b.형들이 전달자를 통한 용서를 구하다:16-17
c.형들이 직접 용서를 구하다:18
d.요셉이 형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돌보겠다고 약속하다:19-21
요셉이 임종하다(22-26)
a.요셉이 110세를 살다:22-24
b.요셉이 유언하다:24-25
c.요셉의 몸이 입관되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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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형제들이(15a)
그 아비가(15b)
죽었음을 보고(15c)
말하되 요셉이 혹시(15d)
우리를 미워하여(15e)
우리가 그에게 행한(15f)
모든 악을 다 갚지나(15g)
아니할까 하고(1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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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에게 말을 전하여(16a)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16b)
돌아가시기 전에(16c)
명하여 이르시기를(1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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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같이(17a)
요셉에게 이르라(17b)
네 형들이 네게(17c)
악을 행하였을 찌라도(17d)
이제 바라건대(17e)
그 허물과 죄를(17f)
용서하라 하셨다(17g)
하라 하셨나니(17h)
당신의 아버지의(17i)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17j)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17k)
요셉이 그 말을(17l)
들을 때에(17m)
울었더라(17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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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18a)
요셉의 앞에 엎드려(18b)
가로되 우리는(18c)
당신의 종이나이다(1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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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19a)
그들에게 이르되(19b)
두려워 마소서(19c)
내가 하나님을(19d)
대신하리까?(1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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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나를(20a)
해하려 하였으나(20b)
하나님은 그것을(20c)
선으로 바꾸사(2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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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같이(20e)
만민의 생명을(20f)
구원하게 하시려(20g)
하셨나니(2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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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21a)
두려워 마소서(21b)
내가 당신들과(21c)
당신들의 자녀를(21d)
기르리다. 하고(21e)
그들을 간곡한 말로(21f)
위로하였더라(2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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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22a)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22b)
애급에 거하여(22c)
110세를 살며(2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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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의 자손(23a)
삼대를 보았으며(23b)
므낫세의 아들(23c)
마길의 아들들도(23d)
요셉의 슬하에서(23e)
양육되었더라(2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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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24a)
그 형제에게 이르되(24b)
나는 죽으나(24c)
하나님이 너희를(24d)
권고하시고(24e)
너희를 이 땅에서(24f)
인도하여 내사(24g)
아브라함과 이삭과(24h)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24i)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2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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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또(25a)
이스라엘 자손에게(25b)
맹세시켜 이르기를(25c)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25d)
권고하시리니(2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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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여기서(25f)
내 해골을 메고(25g)
올라가겠다 하라(25h)
하였더라(2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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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110에(26a)
죽으매(26b)
그들이 그의 몸에(26c)
향 재료를 넣고(26d)
애급에서 입관하였더라(2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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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의 불신_brotherly distrust
요셉의 눈물_Joseph's tears
요셉의 유언_Joseph's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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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창세기는 하나님의 인간 창조로 시작해 요셉의 죽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제 완벽한 첫 창조의 죽음 이야기를 통해 새 창조의 약속과 희망을 보아야 할 차례이나이다. 400년 후에나 될 약속을 확신하고 죽은 믿음의 선진들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임을 믿고 산 선진들의 하나님이여 찬양을 받으소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 요셉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대안이듯이 그리스도만이 우리 구원의 대안임을 고백하나이다. 이제 야곱도 죽고 요셉도 죽었지만 믿음은 약속을 믿고 끝까지 본향을 바라보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영원토록 변치 않으신 나의 구주를 믿고 오늘도 내일도 기꺼이 선한 싸움을 계속하게 도와주옵소서.
The long Genesis begins with the creation of God and ends with the death of Joseph. Now it is time to see the promise and hope of a new creation through the story of the death of the perfect first creation. Like the advanced faiths who died convinced of the promise that will not be made until 400 years later. Be praised, God of the developed who lived believing that "belief is the reality of what is desired and the proof of what is invisible." Just as Joseph, the Lord who turns evil into good, confesses that only Christ is the alternative to our salvation. Now Jacob and Joseph are dead, but I realize that faith is about believing in promises and looking to the end. Trust my Savior, who has not changed forever, and please help me continue the good fight today and tomorrow.
2026.5.31.sun.Clay
신학비평//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까? 요셉의 마지막은 단순한 성공한 영웅의 퇴장이 아닙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로 살았지만 끝내 애굽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의 악을 품고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상처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더 크게 보았습니다. 창세기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권력도 영화도 아니라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는 유언입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형들은 끝까지 요셉의 용서를 믿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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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은 은혜보다 기억력이 좋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행한 악을 너무 잘 알기에, 타인의 용서를 의심합니다. 그래서 요셉의 눈물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존재를 향한 슬픔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복수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까?” 인간의 상처를 심판의 자리로 바꾸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 신앙의 핵심입니다. 자기 인생의 판결권을 하나님께 넘겨드린 사람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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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요셉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의 과거보다 하나님의 미래를 더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용서는 감정의 너그러움이 아니라 섭리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인간의 관대함은 흔들리지만, 하나님 은혜의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평생의 고난 속에서 배운 것입니다. 긴 창세기는 창조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닫힌 결말이 아닙니다. 요셉의 관은 마치 출애굽을 기다리는 씨앗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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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조차 약속의 중간 과정일 뿐이라는 믿음, 그것이 창세기가 마지막에 남기는 희망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지금 눈앞의 애굽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가나안을 기억하며 사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도 묻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붙들고 생을 마감할 것인가? 재산인가, 상처인가, 명예인가, 아니면 약속인가? 요셉은 마지막까지 본향을 잊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는 오래 사는 데 있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방향을 잃지 않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