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등사 나부상 ,#이색 전등사 시, #정화공주, #전등사 수미단, #강화8경, #강화 나들길 3코스,
#강화도, #강화도 관광지, #전등사, #아도화상, #삼랑산성, #전등사 대웅보전, #천년고찰
#아도화상, #전등사 명부전, #전등사 관음전, #전등사 약사전, #전등사 극락암, #전등사 대조루,
#전등사 철종, #진종사, #종해루, #강화 1경, #천년고찰, #정족산, #정족산성, #전등사 죽림다원
.
#[강화군 여행] 오소부코처럼 식욕과 감성을 자극하는 건축의 백미 천년고찰 전등사/죽림다원(후편) ...........20
.
👌꼭 전편과 후편을 다 보시라...
.
#[강화군 여행] 오소부코처럼 식욕과 감성을 자극하는 건축의 백미 천년고찰 전등사/죽림다원 ...........20
.
◼2편 三聖閣[삼성각]
유랑자는 이제 극락암을 지나 삼성각으로 향한다. 보통 삼성각엔 산신탱과 칠성탱과 독성탱을 모신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예로부터 토속 신앙으로 산악숭배 관념이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일찍부터 신성한 곳으로 믿어지는 산에
제사를 드리고, 산에는 山神[산신]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이 신앙 전통들은 선사시대부터 수천 년간 자연환경과 조상들이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며,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신라 때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다섯 산, 곧 동 토함산, 남 지
리산, 서 계룡산, 북 태백산, 중 팔공산을 五岳[오악]으로 지정하여 국가가 주재하는 제사를 올렸으며 이는 고려나 조선시대
까지 지속되었다.
.
.
▶三聖閣 柱聯(삼성각 주련)
靈山昔日如來囑 (영산석일여래촉): 옛날 영산에서 부처님의 위촉으로
威振江山度衆生 (위진강산도중생): 이 강산의 중생 제도하기 위해 위엄 떨치셨네!
萬里白雲靑嶂裡 (만리백운청장리): 만 리 뻗어 있는 흰 구름과 푸른 산봉우리 뒤에서
雲車鶴駕任閒情 (운차학거임한정): 구름수레 타고 한가로이 지내시네!
.
.
.
이런 전통 신앙의 산악숭배가 사원 내부에 자리 잡은 것이 산신각이다. 또 있다. 산신[삼성]각이 항상 절집 맨 위에 자리한
까닭이 있다. 본시 불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토속 신앙이 워낙 강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자 불교에서는 불교
이외에 토속 신앙을 포용하고 융합하는 과정에서 민심을 끌어들여 불교를 뿌리내리고 전파하게 되었다.
.
이는 불교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대중의 현실적인 염원을 수용하려는 노력이 반영된 결과이다.
하여 獨聖[독성]탱은 山神[산신]탱, 七星[칠성]탱과 합쳐 三聖閣[삼성각]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이를테면 이 세 신앙은 본
래 불교 밖에서 유입된 것으로, 각기 다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그 유래를 보면….
.
▶三聖閣[삼성각]
.
.
.
▶山神[산신]: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예로부터 산을 신성시하는 산악숭배 신앙이 발달했다.
.
*‣山神[산신]: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이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예로부터 산을 신성시하는 산악숭배 신앙이 발달했다.
사찰이 주로 산에 위치하면서, 산신은 사찰을 보호하는 호법신으로서 불교에 수용되었다. 산신은 종종 호랑이를 거느린 노
인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
*‣七星[칠성]:북두칠성을 신격화한 신앙으로, 중국의 도교 사상에서 유래했다. 칠성은 인간의 수명과 복을 관장한다고 믿
어져 무병장수나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
*‣獨聖[독성]:홀로 깨달음을 얻은 성인을 뜻하며, “那畔尊者[나반존자]”라고도 불린다. 이분은 부처님 없이도 홀로 진리를
깨달아 말세의 중생에게 복을 내리고 소원을 들어준다고 여겨져 개인적인 소망을 빌기 위해 찾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三聖閣[삼성각]은 불교가 대중의 求福[구복] 신앙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기존의 토착과 민속신앙을 불
교 안에 수용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
.
▶獨聖[독성]:홀로 깨달음을 얻은 성인을 뜻하며, “那畔尊者[나반존자]”라고도 불린다.
.
.
.
*鼎足山史庫址[정족산사고지]
유랑자는 취향당[현재는 요사채로 씀]을 지나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史庫[사고] 지로 향한다, 본시 사고지란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藏史閣[장사각]’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璿源寶閣[선원 보각]’이 있던 곳이다.
본시 정족산사고는 적장산, 오대산, 태백산과 함께 조선 후기의 실록 보관소가 되었다.
.
강화 유수였던 黃欽[황흠]은 1707년에 사고를 고쳐 지었고, 그 앞에 별관을 지어 翠香堂[취향당]이라 이름하였다. 그때부
터 정족산사고는 실록은 물론 왕실의 문서까지 보관하는 譜史權奉所[보사권봉소]로 정해졌다. 본시 취향당 이란 이름은
英祖[영조:1694~1776)는 1726년에 직접 전등사를 방문해 ‘취향당’ 편액을 내렸다.
.
.
▶翠香堂[취향당]: 1726년(영조 2년) 영조가 직접 전등사에 와서 취향당의 제액을 쓰고 1749년(영조 25년) 중수불사(重
修佛事)에는 목재를 시주하여 이때 현재 대조루(對潮樓)의 모습으로 지었다.
.
▶1707년(숙종 33년)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를 관리하는 사찰이 돼 전등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경기도 서부 일대의 사찰을 관장하는 수사찰(首寺刹)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
.
1747년 이후 정족산사고의 관리 및 유적을 점검하기 위해 방문하거나, 강화도 전체 유적 조사를 지시했다는 기록이 있으
며, 1749년에는 영조가 시주한 목재를 사용해 전등사를 중수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 사고지는 서울 춘추관, 충주, 전주,
청주 등 네곳에 보관했던 史庫[사고] 중 3곳의 사고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전주 사고본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가 묘향산
사고로 피난했다가 마리산 사고로 옮겨졌다,
.
이 마리산 사고본의 잔존실록들을 삼랑성이 있는 守護 寺刹[수호 사찰]인 전등사로 옮겨왔고, 보관, 관리해 왔으므로 오늘
에 전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수백 년 전에도 사고를 대비해 여러 곳에 분산배치 보관하였음을 볼 수 있는데, 오늘
에 우리는 어떠한가?
.
▶1909년 보관 중이던 실록을 서울로 옮겨 史庫(사고)로서의 지위를 잃었으나, 강화와 개성의 사찰을 관리하는 본산으로
승격되었다.
.
▶1605년과 1614년 큰 화재로 타버렸으나 재건하여 1621년에야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1678년(숙종 4년) 에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왕실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었고, 1719년(숙종 45년)부터는 주지승을 도총섭(都摠攝)
으로 임명하여 우대하였다.
.
▶보물 제1908호 묘법연화경 목판이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
▶함명수, 생멸감각(2025)
.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고 한방에 정부가 마비되는 모습을 보면서 참,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썩어빠진 공무원들의
愚昧[우매]함에 답답함을 금치 못한다. 그들 주제에, 야근 했다고 돈 빼먹는 주제에, 어디 이 뿐인가? 가당치도 않은 것
들이 연휴, 공휴일 날은 잘 찾아서 처먹고 놀기는 잘하면서 이런 대비 하나 못 했다는 핀잔과 욕은 당연히 먹어도 싸다는
생각이다.
.
아무튼 현재 사고는 문이 굳게 잠겨있었으며 -그리고 오늘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藏史閣[장사각]’에서는 현
대 작가들의 미술품 전시 중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보물 제1908호 묘법연화경 목판이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현재 정족산 사고본 실록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있다고 한다.
.
▶노순택, 검은 깃털(2020년) 남풍리
.
▶정원철작, 38선 풍경(2024)
.
▶진종사(眞宗寺)라는 절 이름을 전등사(傳燈寺)로 바꾸었던 정화 공주는 본래 충렬왕의 왕비였으나, 고려가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되면서 원나라 제국대장공주에게 밀려 둘째 비로 강등당하여 제국대장공주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하며 살았
던 비운의 여인이다.
.
▶(좌) 박동진작, 붉은산수(2023), (우)박동진작, 푸른산수(2023)
.
▶김이오(2023)
.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전등사는 일제 강점기 때,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만해 韓龍雲[한용운:
1879~1944]과 滿空[만공:1871~1946)스님이 수행 또는 주지로 있었으며, 두 스님의 제자인 春城[춘성:1891~1971)
스님도 주지로 있었던 사찰이다. 또한 시인 고은도 이 절집의 주지로 있었다.
.
▶1866년 병인양요 때 피해를 보기도 하였는데, 그 당시 정족산성 외부의 암자와 건물들이 프랑스군의 방화로 사라지고,
불상과 법전 등 문화재가 약탈당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곳이 관군과 프랑스군의 교전 지였다.
.
▶근대 개항 전, 전등사는 병인․ 신미양요 등 국란에서 나라를 수호하는 국방상 요충지 역할을 했다. 또한 창건 이래 많은
인사들이 꾸준하게 찾는 수도권 최고의 호국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
*300년 팥배나무
유랑자는 이제 史庫[사고] 나와 남쪽으로 향한다. 도중에 팥 배나무를 만난다. 자연환경이 담을 두루 듯 전등사 대웅전을
바라보며 평지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1870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사고와 유사시 한양 방어를 위해 정족산인
지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1907년 방화로 소실되기까지 모든 풍상을 견디며 전등사를 바라보고 묵묵히 서 있는 이 나무는
늦은 가을에는 빨간 열매로 아름다움의 운치를 더한다.
.
2009년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11개의 건물을 둘러싸고 있던 담장 밖에서 자생하여 자란 것으로 보이는 이나무는 생태적
환경이 적지로 수형이 수려하고 약 300년 된 수령은 보호의 가치가 높다. 나무의 특징은 잎과 열매가 아름다워 관상용으
로 쓰이며 열매가 붉은 팔 알같이 생겼다고 하여 팥배나무라고 한다.
.
.
.
*월송요[템플스테이]
유랑자는 이제 스님들의 숙소이자 종무소인 적묵당을 패스하고 ‘월송요‘로 향한다. 월송요는 템플스테이를 하는 장소이다.
이를테면 잃어버린 나를 찾는 곳, 이라고나 할까, 머리를 비우고 마음속 깊은 곳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호
텔급 휴식형 ’템플스테‘이다.
.
산사의 낮과 밤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는 또한 오리지널 절밥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그러나 가격대는 만만찮다.
.
.
▶강화도 남부 정족산 정족산성 안에 있는 사찰로 원래는 경기도 사찰이었으나, 1995년에 강화도가 인천광역시로 편입된
뒤로는 인천 소속 사찰이 되었다. 전라도와 더불어서 전국에서 불교의 세력이 약한 지역인 인천 내에서 인천을 대표하는
사찰이기도 하다.
.
.
.
"월송요" 개별 화장실과 샤워부스가 있는 객실이고 성인 인당 12만 원이다. 개별 화장실 있는 강설 당은 성인 9만 원, 독채
건물의 전등각 성인 20만 원으로 가격이 각각 달랐는데 대부분 ‘월송요’를 많이들 이용하는 편이다.
.
※참고로 법복을 주며 모든 짐은 배낭으로 준비해 주시고 캐리어는 안된다.
.
개인 칫솔과 폼클렌징 수건은 꼭 챙겨가야 한다!
※구비 되어 있는 물품: 드라이기 / 샴푸 / 린스/ 바디워시/ 치약 / 비누
전기포트도 있고, 냉장고에는 생수 한 병이 들어 있다.
.
.
▶월송요는 초 현대식 샤워 시설을 갖춘 템플스테이 숙소였다.
.
.
▶국난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지키고 무수한 문화유적을 간직한 호국 고찰 전등사 경내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등
보물(7점), 인천시 문화재 10점 유산 남아 있다.
.
▶인천 강화도에 있는 ‘전등사(傳燈寺)’는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사찰로 알려졌다.
.
.
*無說殿[무설전]이다.
그동안 현대 한국불교가 시도한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인 법당의 디자인으로 건축된 현대판 법당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대식으로 지은 법당으로 지하층이 아닌 1층으로 각종 행사를 주관하며 비좁은 법당 대신으로 기도하며 정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
먼저 특징이 있는데 보편적으로 법당은 금색으로 된 불상이 있는 반면에 이곳 無說殿[무설전]에는 금색이 아닌 흰색 불상
을 모시고 있다. 유랑자도 무순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의아한 법당이 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사찰도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
.
.
조상의 솜씨로 만들어진 건물과 불상, 탱화를 보존하는 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 같다. 강화도 전등사 무설전은 그리스 조각처럼 흰빛을 띤 부처님과 프레스코 기법 후불탱으로 또 다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친근하게 만든 수백 개의 불상이 이를테면 아이돌 불상?
소형 아미타불로 동자 스님 얼굴의 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이를테면 오백나한전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곳 무설전에는
千佛[천불]의 부처님을 모셨다.
.
.
.
▶무설전: 본존불 얼굴은 석굴암 본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지만, 문수보살엔 남성 아이돌 이미지, 보현보살엔 여성 아
이돌 이미지를 부여해 젊은이들이 호감을 느끼도록 했다고 한다.
.
.
광화문 세종대왕상 제작자로 잘 알려진 조각가 김영원[1947~] 전 홍익대 교수가 청동으로 불상을 조성한 후 자동차 도색
에 쓰는 흰색 우레탄 도료로 칠했다고 한다. 또한 불화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석가모니 제자 대신 바이올린을 켜는 선
녀상도 등장 하는가 하면 천정에는 단청 대신 燈籠[등롱] 프레임에 분홍색 등을 넣은 꼬마 연등 999개의 연등을 달아 놓은
모습도 좀 색다르다.
.
왜? 그런데 1.000개의 등이 아니고 999개일까? 나머지 1개는 천장 전체 큰 사각형이 하나의 연등을 상징하여 1.000개째
연등을 완성한 것이라 한다. 이는 디자이너 이정교 홍익대 교수의 작품인데 "천장에 聖[성]과 俗[속], 내 마음과 남의 마음
간의 結界[결계]를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무설전에는 가운데에 모신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로부터 지장보살, 보현
보살을 모셨고 우측으로는 문수보살,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
.
▶본존불 뒤의 後佛畵[후불화]는 오원배 동국대 교수가 프랑스 유학 시절 배운 프레스코 기법을 이용해 부처와 십대제자
등이 등장하는 벽화를 그렸다.
.
.
*마당 가득 차향이 머무는 곳! 한옥 카페 전등사 竹林茶園[죽림다원].
느긋한 마음. 슬로시티, 느림의 미학을 즐기며 전등사를 돌아보았더니 어언 2시간이 넘었다. 다리도 아프고 피곤이 밀려올
때쯤 만나는 차향이 머무는 곳 한옥 카페 죽림다원에 다다른다. 정족산 기슭, 三郞城[삼랑성] 남문 宗海樓[종해루]를 향하
는 길목[동문에서 출발함], 포근한 차향이 산사를 은은하게 메운다. 국화꽃 향기와 각종 약재의 냄새가 오묘하게 어우러지고,
찬바람에 떨어지는 잎새를 위로하듯 풍경 소리가 겨울의 적막을 깨운다. 10월의 전등사는 고즈넉하다.
.
기울어진 햇살은 곱게 물들어가는 수목을 따라 걷고 풀꽃은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은 산사를 비집고 내려앉아
노란 색감을 덧칠할 시간이다. 유랑자는 한 조각의 바람 끝을 따라 코를 벌름거리며 차향을 쫓는다. 달그락거리는 茶器[다
기] 소리와 사찰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가 뒤섞여 산사의 여백을 풍요롭게 채우는 곳이 이곳 죽림다원이다. 아름드리나무
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은 카페!. 竹林茶園[죽림다원]! 유랑자는 들어가 자릴 잡는다. 아~~ 모든 게 한가롭고
또한 여유롭다.
.
▶전등사에 방문한다면 전통찻집인 죽림다원을 지나치지 말자. 고요한 공간 속 고소한 차 한 잔의 여유는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
▶竹林茶園[죽림다원]
.
▶입구 현판은 茶爐經券[다로경권] 추사 글씨의 복제품이다. 뜻은 찻물을 끓이는 화로가 있고 경전이 있는 곳. 즉 차를 달
여 마시는 것은 정신을 맑고 깨끗하게 하려는 일이요 경전을 읽는 것은 이러한 정신으로 깨우침을 얻으려 불법을 닦는 길
이라 가르치는 것 같다. 참으로 운치 있는 말이다.
.
.
본시 차를 마시는 시간에는 서두름을 멀리하게 된다. 특히 사찰 안에서 음미하는 차는 더욱 그렇다. 사찰이 건네는 경건함
과 소박함을 마주하며 마시는 차는 내면의 고요한 음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다.
전등사 죽림다원에서는 찻잔에 세 개의 향을 담아낸다. 포근하고 은은한 차향이 있고, 목탁 소리와 어우러진 여백의 향이
있고, 그리고 나부상의 달콤한 연꿀 향이 있다. 전등사 가을은 이렇게 빼곡한 잎사귀 틈바구니로 서서히 스며들어 아침 물
안개 가득한 정족산 계곡 숲속을 파고든다. 그리고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은 고요한 숲의 분위기에 생동감을 더한다.
.
천년고찰 산사가 유랑자에게 내미는 차 한잔 마시며 마음을 내려놓고 고즈넉한 공간의 여백을 갈색 풍경으로 덧칠해 감상
하는 순간 난 작은 행복을 만끽한다. 난 나뭇잎에 들어 있는 바람과 햇빛과 별빛과 달빛의 이야기를 가을밤으로 연결 지어
본다, 차가운 달, 빈산의 진리, 서운 대종사의 이야기가 가득한 전등사 절집 마당이다. 천년고찰 전등사 바람을 엮어 오미
자 수정과에 쑥송편 한입 넣으니, 죽림다원에 가을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사랑의 인연을 노래하는 죽림다원 나부상 연인의
향기가 깊이 배어 나오니 첫사랑과 재회를 꿈꾸며 유랑자는 깊은 차향과 사랑에 빠져본다. 竹林茶園[죽림다원]은 25여 년
전에 문을 열었다. 죽림다원은 점차 규모를 키워가며 본격적인 찻집으로 모습을 바꿨다.
.
▶블루리본 서베이(Blue Ribbon Survey)란 우리나라 최초의 맛집 평가 기준으로 만드는 "블루리본"이다. 2005년 국
내 최초로 발행한 국내 맛집/카페 가이드로 그해 11월 가이드북으로 발행되었다. 2025년 기준 20주년을 맞이하였다. 리
본 (수록) 을 받은 곳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한 번 방문할 만한 곳이다.
.
*리본 1개를 받은 곳은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
*리본 2개는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
*리본 3개는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곳,
★하물며 이 죽림다원은 2022~2025까지 연속으로 5개나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
▶죽림다원 내부도 아주 아름답다. 천장 장식의 색감이 죽림다원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 풍광과 대비되는 모습이 무척 예
쁘다.
.
.
.
전등사에서 굽어보면 죽림다원의 마당과 한옥 특유의 단청과 서까래가 운치 있게 어우러진다. 전등사는 불교를 넘어 한반
도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오늘날 전등사의 풍경은 고요하고 아름답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기나긴 역사를 오
롯이 품은 전각은 아담하면서도 차향과 더불어 단정한 자태를 뽐낸다. 혹여 전등사에 방문한다면 전통찻집인 죽림다원을
지나치지 마시라. 고요한 공간 속 은은한 향기가 가득한 차 한 잔의 여유는 마음을 가볍게 만들기 때문이다.
.
그리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과 찻잔, 다기, 도자기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인테
리어가 있어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더해준다. 전통찻집에 들러 우리 고유의 차 한잔을 마시는 마음의 여유!. 이것이 바로 현
대인의 스트레스를 잠깐이나마 풀 수 있는 청량제일 것이다.
.
.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만들어진 수제 차는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맛과 향을 자랑하며, 강화 여행을 더욱 풍성
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대추차와 쌍화차가 이곳의 인기 메뉴이니 꼭 한 번 맛보시길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
▶강화도 전통찻집 죽림다원에서 자연 속 여유를 즐기며,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수제 차의 매력을 꼭 경험해 보
시길 바란다.
.
*전등사 부도전
여기는 부도전으로 전등사의 역대 조사들의 부도를 모셔둔 곳이다. 보편적으로 다른 사찰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부도전
은 덕이 높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부도탑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 부도전 역시 2기의 탑비도 보이고 부도도 있
는데 전등사의 역사와 깊이를 생각하면 생각보다는 숫자가 적다는 느낌이 든다. 구성 요소는 일반 탑들과 마찬가지로 기단
부ㆍ탑신부ㆍ상륜부로 돼 있지만, 불탑과 달리 상륜부가 간단하게 장식됐다.
.
형태는 보통 팔각원당형, 방형, 석종형[복발형] 등으로 구분된다. 이곳에는 서운 대종사 탑비와 부도를 비롯해 그동안 전등
사를 거쳐 간 스님들의 부도 3기가 더 세워져 있다. 二木堂[이목당] 瑞雲[서운] 큰스님은 1903년, 경북 칠곡군에서 태생이다.
사실 역대 고승들의 부도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유랑자는 부도 앞에 서서 바
람에 실려 오는 소나무 향을 맡으며,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느껴본다.
.
.
.
특히 중앙 정면에 자리 잡은 서운 대종사 부도는 조선시대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알려진 보물 제388호인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 탑을 그대로 본떴다. 부도전 양쪽 앞에 있는 쌍사자 석등도 무학대사 탑 앞에 있는 석등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이다. 아마도 서운 대종사를 기리는 사람들의 정성이 무학대사 탑을 모사한 것이리라. 서운 스님은 아흔셋에 다음과 같은
열반송을 남겼다.
.
*비록 형상 없지만 두드리면 곧 신령스러움 있고
심독으로 화탕지옥에서 평생을 지냈다.
이제 몸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니
차가운 달, 빈 산이 진리의 몸이로다.
.
.
유랑자는 잠시 죽림다원에 들러 따스한 차 한잔 마시고 잠시 부도전에 들렀다가 다시 삼랑성의 남문인 宗海樓[종해루]에
들렀다. 동, 서, 북에는 홍예문만 남아 있었으나, 유일하게 남문에만 門樓[문루]가 있어 절 입구의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다.
.
유랑자는 남문을 보고 다시 동문을 향해 오른다. 차가 거기에 주차해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들어섰던 동문을 나서며 가볍
게 둘러본 전등사 탐방과 정족산성 길을 끝마친다.
.
.
유랑자는 동문을 나서며 사찰의 일주문이나 입구에서 흔히 보게 되는 각우야운 스님이 저술한 자경문에 나오는 경구가 새
삼 머리에 떠오른다.
.
三日修心千載寶[삼일수심천재보]:사흘간 마음을 닦으면 천년의 보배가 되고,
百年貪慾一朝塵[백년탐욕일조진]:백 년간 재물을 탐해도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
.
▶삼랑성의 남문인 宗海樓[종해루]
.
.
.
◼강화 1경 호국기도 도량 전등사 찾아가기
*주 소: 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운영시간: 연중무휴(입장료 무료)
*하절기 : 오전 8시30분~오후 6시30분
*동절기 : 오전 9시~오후 5시30분)
*주 차: 동문주차장(3,000원),
-동 문 공영주차장(1일 2,000원)
*남문주차장(소형), 09:00 ~ 17:30 ( 카드결제 가능)
*전 화(종무소): 032-937-0125
*템플스테이 사무국 : 032-937-0152
..
.
.
.
*https://cafe.daum.net/b2345/9toB/2367
.
.
◼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
◼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
.
◼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
.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
*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