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드 본드’는 또 뭐랑께? - 국민 돈 끌어다 돌려막기?
연일 가계부채의 심각성으로 경제면이 시끄럽습니다.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가 부동산 시장폭락으로 은행의 부동산대출자산이 붕괴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역시 부동산시장의 침체로 가계부채 문제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대출자산이 위험해 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제는 정부도 더 이상 관리수준이 아닌 퇴로를 찾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찾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지난 주 6월 21일 금융위 보도자료에 따르면 ‘커버드본드 특별법 제정을 위한 T/F 제1차 회의’를 개최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25일 금융위 간부회의에서 금융위원장은 재차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가계부채 T/F(태스크포스)’의 기능을 확대, 개편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주문내용으로 크게 두 가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자영업자, 다중채무자, 저소득층과 같이 한계상황에 다다른 가계의 부채문제에 대한 관리와 조기경보 시스템을 갖추는 것, 두 번째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담보가치 부실화가 금융회사의 건전성 위기로 전염되지 않기 위한 대출구조 변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전자와 같이 한계상황에 이른 채무자들의 경우 소득이 늘지 않는 이상 과다한 채무를 갚을 방법이 없습니다. 조기경보 시스템을 갖춘들 채무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해결할 방법이 없기에, 장황한 말들을 나열해 놓지만 사실상 대책 없음이라고 봐야 할 것이죠. 그 다음 부동산 담보대출의 경우, 담보물에 대한 가치 하락과 일시상환 압박이 더해져 채무자들의 급격한 투매가 발생할 시, 담보가치 추가 하락의 악순환으로 인해 스페인처럼 대출자산이 급속히 부실화 될 우려가 큽니다. 그러므로 일시상환 압박을 줄여주기 위해 채무자의 대출을 장기대출로 차환해주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커버드본드’라는 생소한 채권이 등장하는 것이죠.
보시다시피 이 ‘커버드본드’의 투자자는 은행이 발행한 이 채권에 대해서 두 가지 청구권을 갖습니다. ‘커버드본드’의 기초자산인 부동산담보물과 발행기관인 은행의 다른 자산들(예금, 국채 등등)입니다. 예를 들어‘ 커버드본드’의 기초자산이 되는 부동산담보물이 경매로 넘어갔다고 가정합시다. 투자자는 이 채권으로 10억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만약 6억 밖에 건질 수 없게 된다면 나머지 4억에 대해서 이 채권을 발행한 은행이 대신 물어주게 되는 겁니다. 은행이 위기에 빠져도 채무변제의 우선권이 있기에 안전하게 모든 돈을 돌려받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름이 무엇을 ‘커버한다’ , ‘보호해준다’라는 의미를 살려 ‘커버드본드(covered bond)’ 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확실한 보증이 있기에 채권수요가 많을 것이고, 그래서 은행은 채권금리를 낮게 발행할 수 있습니다. 은행이 자금을 싸게 조달할 수 있는 거죠. 투자자는 비록 금리가 조금 적더라도 안전하게 자산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안정적인 기금 운용을 목적으로 하는 연기금 등이 이에 많이 투자합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발생하여 채권의 기초자산이 부실해지면 하락한 자산가치의 변동분 만큼 고스란히 은행으로 전가되고 이것이 심화되면 은행위기로, 그리고 국가채무위기로 발전하게 됩니다. 지금 유럽을 보시면 이해되실 겁니다. ‘커버드본드’가 가장 활발하게 많이 발행되는 유럽에서도 경기침체로 인한 자산부실화와 은행의 위기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 유럽중앙은행 ECB의 지속적인 개입이 없이는 유럽계 은행들이 살아나갈 방도가 없는 상태입니다.
뒤늦게 이를 도입하려는 우리나라 경우, 은행이 그렇게 조달된 돈을 가지고 현재 일시상환 압박에 몰린 부동산 담보대출을 장기대출로 전환시키려는 것에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가계부채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사실 은행위기에 대한 대책인거죠. 장기대출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하우스푸어’들은 앞으로 10-20년에 걸쳐 평생 원금과 함께 이자를 꼬박꼬박 매달 갚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래 예시에서 보듯 수도권 5대 광역시 담보대출 평균이 1억 3700만원인데 연이율 5% 20년 장기대출 전환시 매월 90만씩 납부해야 합니다.
이마저도 60세 정년퇴직까지 직장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조건이 있는 경우나 상상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중간에 실직한다거나 생계의 어려움으로 추가대출을 받는다면 감당해야할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더구나 이 예시는 평균대출액인 경우라, 실제 평균보다 훨씬 많은 대출을 안고 있는 가구의 경우 매월 납부금액은 100만원을 훌쩍 넘을 것입니다.
이건 뭐 목에 빨대를 꽂아 평생 빨아먹겠다는 건데 왜 금융자본가들을 흡혈귀라 부르는지 실감하실 겁니다. 부채 총액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빚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짚어지게 되는 거죠. ‘금융대출자의 안락사’! IMF의 고금리 대출에 국민혈세를 갖다 바친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 다시는 이런 약탈적 금융이 반복되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지적해야할 문제는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현재, 과연 이 채권을 누가 살까라는 점입니다. 특히나 우리나라가 부동산버블이 심하다는 건 모두들 인정하는 바인데 말이죠. 그러다 보니 여러 연구소에서 언급하는 주체가 연기금입니다. 자금력이 400조에 육박하는 세계 4위에 해당하며 앞으로도 계속 자금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인데, 몇 해전 부터 연기금운영이 상당히 공격적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3일에는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사무소에 이어 런던사무소도 개설 되었는데요, 해외 사회간접자본이나 부동산투자의 비중을 더욱 높여 나갈 계획입니다. 그래서 이런 연기금의 기금운용 전략에 비춰본다면 연기금이 ‘커버드본드’에 투자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근데 가만 생각해 봅시다. 연기금의 원천은 국민들한테 진 빚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 이걸 뭐라 불러야 할까요? 국민 돈 끌어다 돌려막기??
하지만 연기금에 해외투자자까지 끌어들여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이는 거시적 대응책이라기보다 은행위기로 번질지 모를 상황에서 위기를 이연시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긴급책 일 뿐이죠. 부동산 버블붕괴를 겪었던 여타 다른 나라의 사례들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버블이 충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근본적인 해결이 없다는 것입니다. 버블은 버블이 꺼짐으로서 해결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현 가계부채 문제를 볼 때, ‘2003년 카드사태’와 다르게 자산가치의 폭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두고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채문제에 대한 해법?? - 거시적 정책대응
그렇다면 다가올 부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거시적 정책대응이 무엇일까 고민해 봅시다. 위 표는 부채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석들입니다. 여기서 ‘고성장’의 경우는 당연한 상식을 반복하는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일 뿐이고, ‘파산/채무조정’의 경우 현재 개인파산제도라는 것이 운용되고 있지만 채무자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최후수단으로서 그것도 아주 미시적인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됩니다. 자본주의 금융질서를 유지해야할 정부의 입장에서야 파산을 적극 장려할 이유는 없겠죠.
‘정부부채로의 이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위기극복을 위해 나섰던 방식이 바로 이건데, 정부가 나서 대신 부채를 짊어지는 방법이죠. 먼저 직접적인 구제금융 방식으로 민간채무자의 채무를 정부가 떠맡는 방식이 있습니다. 2007-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파산직전으로 몰린 금융기관들을 미국정부가 공적자금 투여로 파산을 막은 사례가 그런 예입니다. 당시 ‘페니메이’, ‘프레디맥에 2000억 달러, AIG 1730억,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으로 7000억 달러를 쏟아 붓습니다. 이는 모두 재정적자로 증가로 이어지면서 공화당과의 재정적자 감축논란으로 전이됩니다. 스페인, 아일랜드 구제금융도 정부가 은행파산을 막으려다 보니 정부지출로 감당이 안되서 구제금융을 하게 된 사례구요.
다음으로 경기부양책을 통한 방법입니다. 가끔 신문에서 보는 추경예산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방법입니다. 정부가 대신 국채를 발행하여 그 돈으로 지출을 하는 거죠. 그러면 경기부양 효과를 발휘하게 되고 민간부문의 소득이 증가하므로 부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대신 정부가 국채발행을 통한 부채를 떠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효과적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민간부문의 경기가 되살아나고 소득이 늘어나 세수확대를 통해 국채증가분을 메워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기부양효과가 미비할 경우 국가부채증가만을 야기할 뿐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흔히 일본의 버블붕괴 후 십여년간 벌어진 장기침체를 두고 그렇게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GDP대비 국가부채비율이 80년대 55%에서 2012년 현재 220%를 상회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저성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래 표에서 보듯 2차례 재정지출 확대로 경제성장률이 상승하지만 재정지출을 줄이자 곧이어 다시 급격한 침체에 빠집니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최근 벌어지는 유럽위기와 비교할 때, 최악을 상황을 견뎌낸 나름 성과가 있는 방법이었다고 재평가를 내리는 사례도 있습니다. 다른 채무위기국가들과 달리 국채 대부분을 국내에서 소화하고 있어서 대외적 여건의 불안정성에 의해 당장 국가채무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케인스주의자로 일컬어지는 ‘폴 크루그만’은 얼마전 ‘파이낼셜타임스’에 “서구 경제학자들을 대표해서 반성문을 쓴다”라며 이제 일본을 “반면교사가 아닌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만큼 유럽위기에 대한 정치지도들의 긴축 일변도의 잘못된 정책대응을 비판하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일본내 대표적인 케인스주의자 ‘오노 요시야스’도 재정지출을 충분히 적재적소에 배분하지 않아 비효율적이라는 공격의 빌미를 줬다며 문제는 실업으로 인해 활용되지 못하고 남아도는 노동인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조직해야 하는가라고 문제의 본질을 따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 민주당 정부는 지진사태의 여파로 그동안 약속했던 각종 복지공약을 철회하고 있으며, 더구나 복지재정 마련을 위한 소비세(부가가치세) (5%->10%)인상 때문에 첨예한 내부갈등을 겪어, 급기야 정권이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들이 재정압박의 한계에 직면했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아래 표에서 쉽게 설명 드리자면,
보시다시피 지금처럼 국내투자자들이 국채를 무한정 감당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경기침체인 상황에서 소비세(부가가치세) 2배 증액하는 급격한 증세조치를 취해야할 상황까지 몰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긴축조치는 소비침체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기에 재정압박을 해결하기는커녕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반복할 수도 있는 위험한 줄타기인 것입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일본 정부의 이런 모습을 보면, 과연 글로벌경제를 짖누르는 부채 문제와 저성장의 늪이 재정지출의 문제로 해결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던져준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자산버블 붕괴에 따른 경기침체와 달리 고령화에 동반한 경기침체는 재정, 금융 정책이 효과를 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회복에도 장기간이 소요된다고 보여지기 때문인데요, 아래 그림은 미국과 일본의 ‘생산인구/비생산인구’의 변화를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여러분이 보시듯 둘 다 자산버블의 정점 시기(일본 1990년, 미국 2008년)에 똑같이 최고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미국보다도 훨씬 더 가파르게 급락하고 있는데요. 2010년대 수준이 1950년대 수치와 같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으로서 대외적인 국채발행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정도이거나 대외투자순자산이 월등히 많거나 경상수지 흑자가 많은 국가 정도가 되야 국채를 꾸준히 소화해 줄 수 있는 여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그동안 버틴 것도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한 힘이 컸다고 보여지는데, 가령 유럽채무위기 해법의 핵심에 ‘독일역할론’이 제기되는 것도 현재 국채발행을 통해 대규모 재정지출을 할 여력 있는 경상수지 흑자 국가로는 독일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에서도 보듯 이런 대규모 재정지출이 장기적으로 경기회복을 보장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 소장의 경우 "새로운 성장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라며 “주택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역동적인 경제성장의 동력이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즉 장기불황과 저성장을 극복할 힘으로서 ‘재정지출’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닌 것입니다. 다만 현재 벼량 끝으로 몰린 상황에서 시간을 벌어 불균형을 개선할 가능성을 얻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죠.
결국 재정지출의 성패는 얼마큼 돈을 지출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 돈이 효과적으로 배분되어 고용을 통한 실물가치창출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두고 좌우될 것입니다. 자산가치 방어를 위한 부실자산 매입, 감세조치의 일환인 세금 환급, 각종 일회성 보조금 지급만으론 일본에서 반복되었던 ‘재정지출 무용론’의 역공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인플레이션’
그 다음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거시적 대응책으로 ‘고인플레이션’과 ‘긴축’이 남습니다. 흔히 말하는 ‘인플레 정책’이냐 ‘디플레 정책’이냐 라는 대립인데, 금융자본의 이해와 직결되는 사안이라 항상 민감한 쟁점들이 이룹니다. 인플레 정책은 말 그대로 화폐가치의 하락을 유도하여 빚의 총량을 줄여버리기에 채무를 줄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거론됩니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닌 이상 통화가치 저하로 인해 외환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나 쓸법한 방법이죠. 더구나 화폐가치의 하락은 금융자산가들의 이해와 대립되기에 금융질서를 쥐고 있는 세력들이 이 사태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중앙은행의 목표가 물가관리라고 하는데 물가는 현상으로 드러난 것 일뿐 사실 통화팽창을 조절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목적입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질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죠. 금융자본의 입장에서 만약 ‘인플레’와 ‘디플레’를 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화폐가치의 보존 혹은 상승을 의미하는 ‘디플레’를 택할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 금융자본의 입장과 대립하여 ‘인플레’ 정책을 강제한다고 한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플레가 일어난 다는 것은 중앙은행에서 공급된 본원통화(monetary base) -> 시중은행의 신용창조(대출) -> 통화량 증가로 이어진다는 건데 문제는 시중은행에서 더 이상 신용창조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가계는 과다한 부채로 오히려 빚을 갚아야 할 처지이고 기업은 돈을 쌓아두고 금융자산으로 굴리는 상황이기에 통화량이 증가할 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정부가 수년째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지만, 현재 통화팽창 속도는 떨어지고 있고 정부의 부채관리 대책 시행에 따라 더 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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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흔히 물가상승을 인플레하고 생각하나 이는 인플레로 인한 현상일 뿐 입니다. 물가상승은 통화팽창이 아닌 환율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가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라는 주장은 물가는 그대로 있으면서 대출자들의 이자부담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2000년대 미국의 부동산 버블시기 통화팽창이 급격했음에도 물가가 낮았던 이유도 중국으로부터의 저렴한 상품수입 때문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화팽창과 물가상승의 인과적 관계는 글로벌 경제하에서 뚜렷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DTI(총부채상한액)를 해제하라는 부동산 및 건설업계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실효성에 의문이 들기도 하며 이미 과도하게 쌓인 부채에 새로운 부채를 더 쌓아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LTV(주택담보비율) 60% 밑으로 떨어지는 경매가가 속출하는 경우가 발생해, 은행들은 담보재설정을 요구하거나 재조정된 LTV를 초과하는 대출금에 대해서는 먼저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완만한 ‘긴축’ - ‘금융대출자의 안락사’를 강요하는 현 단계
앞서 설명한 거시정책들의 어려움을 볼 때, 현 단계에서 정부가 ‘긴축’으로 커다란 방향성을 정해놓고 완급 조절을 위한 단계를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시간 좀 더 줄 테니 허리띠 졸라매 갚아라!” 라는 것이죠. 이는 지난 달 정부가 국가부채총액을 새로 계산된 방법으로 발표할 때부터 직감했던 건데, 연금부채를 국가부채에 넣으며 균형재정, 연금개혁, 부채관리 등등 ‘부채안정화’ 조치들을 앞으로 시행할 것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재정정책 확대방안에 대해선 선별적으로만 대응하겠다고 천명한바 부채해소를 위해서 ‘긴축’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강조할 듯 싶습니다. 유럽채무위기를 “복지병”의 문제로 호도하는 주류언론들의 태도도 그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거죠.
이는 6월 28일자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에서도 드러나는 바 박재완 재정부 장관이 스스로 “스몰볼”이라고 강조한 만큼 추경편성과 같은 국채발행 방식이 아니라 기존 기금의 운용 계획을 변경하여(20-30% 내 변경가능) 총지출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금융권으로의 위기 전염을 막기 위해 PF 부실채권 2조를 매입하는 방안이나, 중소형 건설사들의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3조원 규모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발행하기로 했습니다. 즉, 재정정책은 억제하면서 신용위기로의 확산에는 적극 대응하는 방식인 거죠.
종합해 볼 때, 지금 정부의 대책은 ‘금융대출자의 안락사’를 강요하는 단계로 봐야 합니다. 기업이든 가계든 급격한 파산은 막되 채무자의 역할을 끝까지 다하라는 것입니다. 한계채무자(영세자영업자, 다중채무자, 저소득층)들에게도 역시 ‘이자를 좀 싸게 해 줄 테니 끝까지 갚으라!’ 요구하고 있는 거죠. 27일자 신문에서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시중은행 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7등급이상 저신용자들을 위해 금리 10%대의 신용대출 상품을 개발하라고 주문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역시나 한계채무자들의 원금을 재조정하는 방식은 배제하고 연체이자에 대해서만 탕감하는 정도로 저금리 상픔으로의 차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다가올 부채대란의 모습은?
연일 가계부채 문제가 경제기사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집단대출의 연체율 급증”, “주택담보 대출 연체폭탄 째각째각“, ”은행권 프리워크아웃 본격 논의“ ..... 앞서 설명한 ‘커버드본드’, ‘부실자산 구조조정’ 등등으로 표현되는 ‘금융대출자 안락사-은행 숨통 틔어주기’ 정책이 부채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경제위기 조짐으로 확산된다면 다음 단계는 어떤 것이 될까요? 앞서 얘기한 거시적 정책대응책으로서 ‘급격한 긴축이냐 재정확대냐’를 놓고 한판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야말로 ‘죽거나 나쁘거나’겠지만, 80년전 케인스가 처방한대로 ‘금융억압’으로 발전할 지에 대해선 강한 회의가 듭니다. 왜냐하면 29일 유로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가장 먼저 환호하는 이들은 여전히 국적을 가리지 않는 금융시장의 ‘큰손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우리의 해법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검토해보고 싶습니다. ‘금융대출자의 안락사’를 강요하는 현 단계에서 그 탈출구를 함께 찾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