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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웅장한 그림들이 멋집니다 차분하게 컴퓨터로 열어보세요,
다음~카페~자유인산악회 들어오셔서 열람하시면 우리들의 추억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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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뱃길>- 고려시대에 시작한 굴포천~저력의 정신으로 경인운하 STORY- 01, 24년 11월 10일 최기준(벗)- 한문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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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인천광역시 서구 정서진남로 95 (오류동) 인천광역시 서구 오류동에 있는 정서진은 강원도 강릉에 있는 정동진의 대칭개념으로 광화문을 기준으로 정 서쪽에 육지가 끝나는 나루터이다. 정서진은 원래 강화도에 위치한 낙조대 별이었으나 인천광역시는 이후 정서진의 위치를 새로 정하기로 했고 협의 끝에 경인아라뱃길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에 정서진을 정했다. 정서진 광장에는 상징 조형물로, 흰 돌덩어리처럼 생긴 노을종이 있는데 노을종은 서해안의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낸 조약돌 형태로 제작되었다. 포토존이기도 한 정서진 표지석 이외에도 산책로, 해넘이 전망대, 휴게 쉼터 등이 있다. 정서진은 경인아라뱃길 수향2경으로 꼽힐 정도로 낙조가 아름다워, 서해의 새로운 낙조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매년 12월 31일에는 한해의 마지막 해를 넘기는 정서진 해넘이 행사가 개최된다.(대한민국 구석구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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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西津 (정서진) - 정 호 승 벗이여 지지 않고 어찌 해가 떠오를 수 있겠는가 지지 않고 어찌 해가 눈부실 수 있겠는가 해가 지는 것은 해가 뜨는 것이다 낙엽이 지지 않으면 봄이 오지 않듯이 해는 지지 않으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벗이여 눈물을 그치고 정서진으로 오라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히 노을 지는 정서진의 붉은 수평선을 바라보라 해넘이가 없이 어찌 해돋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해가 지지 않고 어찌 별들이 빛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들 인생의 이 적멸의 순간 해는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찬란하다 해는 지기 때문에 영원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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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경인 운하 아라뱃길: 한강과 서해를 안전하면서도 빠른 뱃길로 연결시키려는 경인아라뱃길 개척 노력은 과거부터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최초의 경인 아라뱃길 개척시도는 800여 년 전인 고려 고종 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각 지방에서 거둔 조세를 중앙정부로 운송하던 조운(漕運) 항로는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염하를 거쳐 서울의 마포 경창으로 들어가는 항로였으나, 염하는 만조 때만 운항이 가능했고 손돌목(강화군 불은면 광성리 해안)은 뱃길이 바다 유속이 매우 빠르고 험하다고 합니다. 이에 안정적인 조운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당시 실권자인 최충헌의 아들 최이는 손돌목을 피해서 갈 수 있도록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직접 연결하기 위해 인천시 서구 가좌동 부근 해안에서 원통현(일명 원통이 고개)과 지금의 굴포천을 거쳐 한강을 직접 연결하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운하를 시도하였지만, 원통현 400m 구간의 암석층을 뚫지 못해 결국 운하건설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운하건설이 계속 추진되었으나, 인력과 기술의 한계로 좌절되어 오다 현대에 들어서 지난 1966년 서울시 영등포구 가양동에서 인천시 서구 원창동 율도까지 총연장 21km, 수심 4m, 하폭 90m의 운하 건설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인지역의 급격한 도시화와 지역개발로 이역시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87년 굴포천 유역의 대홍수로 큰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하자 방수로를 신설하여 홍수량 일부를 서해로 방류하는 내용의 굴포천 치수대책을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굴포천 유역(인천 계양ㆍ부평, 경기 부천ㆍ김포 등)은 40%가 한강 홍수위 이하의 저지대로 평상시에는 하천물이 한강으로 흐르나, 홍수시에는 한강수위가 굴포천 수위 보다 4m 이상(100년 빈도) 높아 자연배수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홍수피해 방지를 위해서는 서해로 직접 방류하는 방수로건설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방수로만 건설할 경우 홍수 발생시에만 사용하는 임시수로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방수로시작점(굴포천유역)에서 한강 쪽으로 조금만 더 연결해주면 홍수대비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운하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홍수예방을 위한 대량수송로 확보와 평상시에는 운하로 사용하기 위해 '95년도부터 경인운하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민자 사업자까지 선정하여 사업이 탄력을 받는 듯하였으나, 이후 계속되는 환경단체의 반대와 경제성 논란 등으로 사업은 수년간이나 계속 지연되었고, 이런 와중에도 굴포천유역의 홍수피해가 계속되자 경인운하사업은 잠정보류 되고 임시방수로공사만 우선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 오랜 기간 동안 경인운하 사업계획 및 타당성에 대한 재검토가 계속되었고 두 번에 걸친 용역수행 결과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DHV: B/C 1.76, KDI : B/C 1.07)을 얻게 됨에 따라 '08년 국가정책조종회의에서 민자 사업에서 공공사업으로 전환하여 사업시행자를 K-water로 변경, '09년 드디어 첫 삽을 뜨게 되었고, '11년 마침내 국민들 앞에 경인아라뱃길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출처: 우리강 이용 도우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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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뱃길이란? 아라뱃길의 ‘아라’는 우리 민요 ‘아리랑’의 후렴구 ‘아라리오’에서 따온 말입니다. 아라뱃길은 서해와 한강을 잇는
우리 민족의 멋과 얼, 정서와 문화가 흐르는 뱃길로써 대한민국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글로벌 명품 뱃길’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아라뱃길은 서울시, 김포시, 인천시에 걸쳐 흘러갑니다. 행주대교(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인근 아라 한강갑문에서부터
시작하는 물줄기는 김포시를 지나 인천시 계양구를 거쳐 인천시 서구를 통해 바다로 나아갑니다.
►경인 아라뱃길은 한강 하류에서 서해로 연결되는 대한민국 최초의 뱃길입니다.
수변을 따라 펼쳐지는 수향 8경, 파크웨이 등 다양한 친수공간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녹색 패러다임을 창조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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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아라뱃길 수향8경(水鄕八景): 치산치수(治山治水) 산천을 가뭄과 홍수에서 예방하기 위해 재해예방책 사업이다, 그렇게 경인 아라뱃길은 치산치수를 위한 사업에서 경인아라뱃길 운하 정책으로 발전하였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랜 숙원사업이 결실을 보게 된 경인 대운하 탄생이다, 아라뱃길 탄생 한강과 서해 바다을 잇는 거대 사업,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수변의 창조물처럼 치산치수를 잘 다스리는 정책문화가 활성화 되어 재해 없이 인류의 발전 속으로 함께 숨을 쉬기를 바라면서 경인 아라뱃길 수향8경(水鄕八景)이라 불리는 수려한 경관과 빼어난 아름다움을 주는 八景(8경)을 배우고 알아보고자 한다, 자유인 한문희, ►제1景~제8景: '수향'은 물길이 아름다운 지역이나 하천 주변의 마을을 의미하며 제1경과 8경은 진행형 이라 합니다. 아래자료는 아라뱃길 정책팀 자료입니다, ►제2景: 경인항 인천터미널 주변 항만친수시설 부지 내에 높이 15m의 섬을 조성하여 서해 낙조와 어우러진 섬마을 경관을 재현할 계획이다. ►제3景: 검암·검단지역을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인 시천교를 중심으로 수상무대, 수변스탠드, 분수 등 도시 워터프론트로 조성 등등, ►제4景: 리버사이드파크는 아라뱃길 협곡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 암벽을 이용한 폭포, 협곡전망대 등등, ►제5景: 만경원은 김포평야를 배경으로 한국적 경관을 연출하여 전통누각, 전통담장, 소나무 등등, ►제6景: 두물머리생태공원은 굴포천과 아라뱃길이 만나는 합류부로서 약 20만㎡의 천변저류지를 활용한 생태공원이다. 다양한 수생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데크를 조성하여 자연학습 및 생태체험 등의 활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제7景: 한강과 아라뱃길을 잇는 관문인 김포터미널에 수상레저 활성화를 위해 대중적 마리나 테마파크와 물놀이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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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부터 시작한 굴포천 운하(아라뱃길) <동국여지지(東國與地志), 대동지지>의 산수편에서 굴포천에 대해 설명하기를‘고려때 최이가 도랑을 파서 바다와 통하게 하려 했으나 중지했고 본조의 김안로가 다시 시작했으나 역시 이루지 못했다’고 돼있다. 예전의 대량운송의 수단은 조운(漕運)이었다. 특히 조정의 재정은 각지방에서 세곡(稅穀)으로 충당했거니와 조선시대 경상도 10만석, 전라도 10만석의 세곡을 수송해 경창(京倉)에 보관해 1년의 재정으로 썼던 것이다. 조운은 30척(1척에 800~ 1000석)을 선단으로 편성해 서해를 거쳐 강화해협인 손돌목을 지나 한강을 거슬러 삼개(마포나루)로 들어갔다. 이러한 수송과정에서 태조 4년(1395)에 16척, 태종 3년(1403) 30척, 수부(水夫) 1천여명, 태종14년(1414) 66척과 20여명의 수부, 세조원년(1455) 54척이 침몰하고 인명의 손실을 당하는 해난사고가 3노트의 빠른 물살과 물결이 소용돌이치는 손돌목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매년 일어나는 해난사고를 없애고 수송거리를 단축시키고자 굴포운하(掘浦運河)가 계획됐으나 인천 원통(圓通)고개의 높이와 암벽 앞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그 후 이명박 대통령 당시(2012. 5.25) 경인아라뱃길을 완공 개통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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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하는 바른 사고력(思考力),
긍정의 세상으로 바른 세상을 지향하며,
자유인 백두대간종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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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악 소스
<audio src="https://blog.kakaocdn.net/dn/uSbTc/btr8vtNb3eg/66j8K4KOYbJPCVQJtu01z0/tfile.mp3"
autoplay loop>"저 구름 흘러가는 곳 - 김동진 작곡, 남택상-연주"</audio>
♬저 구름 흘러 가는 곳 -작곡: 김동진, 김용호 작사,
음악 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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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름 흘러 가는 곳 -작곡: 김동진, 김용호 작사,
역시 한문희 총대장님 답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멋진 풍경을 아름답게 표현하시고 역사적인 내용까지 곁들여 이해를 도와주시고.
잘 봤고 잘 읽었고 감사!
계양대교 아래를 지나면서
위대한 산 줄기 漢南正脈이 이렇게 生을 마치는구나
,라고' 생각에 잠기니 안타까운 脈의 소중함이 무너졌습니다,
아~ 한남정맥이 있어 산줄기를 거슬러 문수산까지 갈 수 있었는데
이제 맥을 이어 갈 수가 없군요
육로가 인위적으로 절단되어 김포시가 金浦島가 되었으니
이제는 행정구역도 변경되는게 맞는건지
지도 지형도 상에는 분명 金浦島라 해야 하는데...........
한남정맥이 없어지고 새로운 탄생 아랏뱃길 운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