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학년도 수능 생활과 윤리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기출 제시문 번역 오류
1. 에리히 프롬의 정신분석학, 사회심리학
고교 <생활과 윤리>의 2단원 '생명, 성, 가족 윤리'에서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배운다.(2016학년도 9월 모의 평가, 수능 출제)
그런데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프롬이 논한 내용 중 '인간과 사회의 성격'을 심화시킨 저작으로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속편이라고 불린다.(프롬 인생론 7쪽)
따라서 생활과 윤리에서 배우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학문적으로 올바르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비롯한 프롬의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적인 '인간의 성격(특히 사랑에 대한)'을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이 프로이트로 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에리히 프롬의 정신분석학 이론은 프로이트와는 큰 차이가 있다. 초기 에리히 프롬은 '자연과학적 사고를 도입하여 인간의 심리적 성향을 '성적 본능'의 조직적 반사로 이해한 프로이트의 입장'을 수용했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의 본능이론(1920년대의)이 인간의 행위가 성적 본능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할 수는 있지만, 개인을 넘어서 그가 속한 '사회, 세계'의 특징적 기능(경제, 정치, 문화 등)들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이론적 한계'를 깨닫는다.
1930년대 이후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심리적 성향은 성적 본능의 직접적인 산물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경제 등의 영향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 이후 프롬은 기존의 프로이트적 정신분석을 넘어서, 인간과 사회의 심리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사회심리 분석)을 수행했다. 프롬의 연구 결과로 나온 책들이 바로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사랑의 기술>(1956), <소유냐 존재냐> (1976) 등이다.
2. 에리히 프롬 이론 '마케팅 지향성'의 오역.
'마케팅 지향성(Maketing orientation)'이란 프롬의 저서 <자기를 찾는 인간>(독일어 원제: 정신분석과 윤리Psychoanalyse & Ethik), 영문판:Man for Himself, an inquiry into the psychology of ethics)에서 소개한 개념이다.
그런데 에리히 프롬의 사회 심리학 및 윤리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 조교였던 '라이너 풍크'에 따르면, 에리히 프롬의 사회적 성격 이론 중 '마케팅 지향성(Maketing orientation)'은 종종 '시장 지향성(Maket orientation)'으로 잘못된 번역되곤 한다.(라이너 풍크,「사회심리분석-에리히 프롬의 사상적 단초 및 그 현대적 의미」, 51p)
프롬의 '마케팅 지향적 성격'은 칼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주의가 인간관계에 미치는 소외효과, 상품의 물신 숭배적 성격'에 대한 프롬의 재해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프롬은 '마케팅 지향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인간이 '불리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자유와 개성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의 사회적 성격 지향성에 자신을 맞추어 동질화되고자는 성격(일종의 물화)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는 프롬이 지적하는 '네크로필리아(인공물을 포함하여 살아있지 않은 것을 살아 있는 것 보다 더 선호하는 정신 성향)과도 연결된다. 프롬은 20세기 후반 서구 사회를 '네크로필리아'가 지배하며, 모든것을 상품화하고, 물화(物化)하는 사회로 분석한다.
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 5장 '도피의 메커니즘'에서 지적한 '자동인형적 순응'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개념이다.(자동인형적 순응은 아래 인용문을 참고)
에리히 프롬은 '마케팅 지향성(Maketing orientation)'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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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지향성'이란 일종의 사회적 성격으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생산방식이 갖고 있는 이러한 경제적 요구에 사람들이 스스로를 동조"하여 "인간 스스로가 상품이며 교환가치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형성"되는 성격지향성을 의미한다. (프롬, 1941)
"이러한 마케팅 지향성에는 시장 경제적 생산 방식의 주요 요건들이 반영되어있다."(프롬, 1941)
"각 개인이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는 것", '개인은 자신이 속한 문화가 요구하는 인성 모델에 스스로를 완전히 맞추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지며, 다른 사람이 그에게 기대하는 그대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 존재했던 불일치는 사라지고 혼자 있다거나 무기력하다는 의식적 두려움도 사라진다. 이 메커니즘은 일부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보호색에 견줄 수 있다. 이런 동물들은 주위 환경과 너무 비슷해보여서 거의 구별할 수가 없다. 자신의 개별적 자아를 포기하고 자동인형이 되는 사람은 주위에 있는 수백만 명의 다른 자동인형과 똑같기 떄문에, 더 이상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가 치르는 대가는 비싸다. 그것은 자아의 상실이다" (프롬,<자유로부터의 도피> 5장 '도피의 메커니즘' 中 '자동인형적 순응', '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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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16학년도 수능 생활과 윤리 20번 문항 제시문 번역 오류
2016학년도 수능 생활과 윤리 20번에 출제된 제시문에서는 프롬의 '마케팅 지향적 성격' 개념을 '시장형 성격의 사람'이라고 번역했다.
에리히 프롬이 '마케팅 지향성(Maketing orientation)', '마케팅 지향적 성격(The marketing character)' 라는 용어를 통해 분석한 사회의 심리적 병리는 '시장적 교환'이라는 의미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포괄한다. 혹은 반대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라는 의미보다는 훨씬 구체적이다. 이런 점에서 '시장형 성격의 사람'이라는 번역은 풍크가 지적했듯 적절한 번역이 아니다. (Marketing ≠ Market)
4. 제시문의 원전 번역이 잘못된 원인은 한국어 번역서들의 오역에 있다.
수능 제시문에 실린 프롬의 원전 번역은 '마케팅 지향적 성격'을 '시장형 성격'으로 잘못 번역했다.
영어 원전을 살펴보자.
원전에는 'The marketing character' 라고 정확히 표현되어있다. 또한 프롬은 3번 각주로 'Man for Himself(한글 번역 <자기를 찾는 인간>)'에서 '마케팅 지향적 성격'과 관련 논의를 더 자세하게 논의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The Art of Loving> 한글 번역본들을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검토할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흥신문화사, 권오석 번역의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황문수 번역의 <사랑의 기술>
종합출판 범우, 정성호 번역의 <사랑의 기술>
청목 스테디북스, 설상태 번역의 <사랑의 기술>
흥신문화사, 권오석 번역의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황문수 번역의 <사랑의 기술>의 40p
종합출판 범우, 정성호 번역의 <사랑의 기술>
청목 스테디북스, 설상태 번역의 <사랑의 기술>
'The marketing character'에 대한 적절한 번역어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마케팅'이 등재된 만큼 '마케팅적 성격, 마케팅 지향적 성격'으로 번역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cf) <고려대한국어사전> '마케팅' [명사]: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체계적인 경영 활동.
5. 글을 마치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에리히 프롬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라이너 풍크 선생이 지적한 'The marketing character'를 'The market character'로 잘못 번역한 사례는 한국어 번역본으로부터 전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2016학년도 수능 제시문으로 <사랑의 기술>을 출제할 때 한국어 번역본을 적당히 짜집기 하다가 오역 여부를 인지하지 못 한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된다. 또한 비전공자의 출제가 의심된다. 풍크 선생이 여러 차례 지적해온 흔한 오역 사례가 수능 제시문에서 발견된 점을 생각해볼 때, 에리히 프롬을 전공한 교수님께서 출제 하셨다고는 믿기 어렵다.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 수능을 출제하는 기관이 이런 오류를 범했다는 점이 아쉽다.
'오역'이 제시문에 실리는 오류는 생활과 윤리 전반에 걸친 문제다. 이 2016학년도 수능 20번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제시문 이외에도 교육청, EBS 수능특강/수능완성, 사설 문항 등에는 제시문에 '학문적으로 잘못된' 표현, 개념어를 싣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에리히 프롬', '라인홀드 니버'와 같은 주류 윤리학의 연구 대상이 아닌 학자들의 제시문에서 이런 오류가 자주 발견된다.
평가원/수능/교육청/EBS에 출제된 문항에서 종종 발견되는 학문적 오류는 생활과 윤리의 과목 정체성을 위협한다. 개인이 문항을 출제하는 경우는 차치하더라도, 평가원과 EBS처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에서 문제를 출제하는데 한국어 번역본에 실린 오역을 그대로 수능/평가원/EBS 문항의 제시문으로 출제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잘못되었다.(그 이외의 오류들도 문제다.)
평가원/EBS'는 문항을 출제할 때 '원전(원문)'에 근거하여, '해당 학자 전공자'의 검수를 거쳐서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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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카페에 올라오는 소중한 글들을 보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카페에서 최근 수능/평가원에 출제된 '오류'들을 검토하는 비판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윤리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비판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 논의에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2016학년도 수능 20번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수능 제시문 번역 오류를 검토한 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첫댓글 아 감사합니다.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현돌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정말 유익한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도 좀 더 분발해서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지이충완행 선생님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윤리 교육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