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렌다. 란타우(Lantau Peak, 鳳凰山)를 보자 대번에 든 생각은 타볼 만하겠다는 것이다. 제법 덩치 있고 생긴 것도 호탕하다. 934m의 높이보다 늠름하고 힘 있는 산세는 한국 산꾼들의 입맛을 다시게 하며 묘한 설렘을 가져왔다. 40분 전으로 돌아가 산행을 시작한 곳은 ‘팍 콩 아우’다. 선셋봉(869m)과 란타우봉 사이의 안부로, 퉁충길이 지난다.
- ▲ 홍콩 란타우피크의 트인 능선길. 민둥산이라 산행 내내 시원한 경치를 볼 수 있다.
- 홍콩의 산악 가이드인 선창(55)씨가 들머리로 안내한다. 가파른 능선 계단길과 우리나라의 둘레길 같은 산 아래를 도는 사면길로 나뉜다. 둘 다 란타우 정상으로 이어지지만 사면길이 경치가 더 좋다며 일행을 이끈다. 산행은 김유복 경북연맹 부회장을 비롯해 김규태(경북산악구조대장), 윤석민(대전연맹의 전무이사), 정오승(광주시연맹), 이인식(대구YMCA산악회), 정규봉(구미연맹 사무국장), 박정헌·천성구(서울시연맹 이사)씨와 여러 매체 기자들이 함께했다.
입구에는 등산 안내판과 이정표 같은 시설이 있다. 고즈넉한 오솔길이다. 산 분위기는 우리나라와 별 차이 없다. 사면 따라 이어진 편안한 둘레길이다. 나무가 점점 낮아지더니 왼쪽 산 아래로 해변이 나타난다. 예쁘장한 풍경이지만 흐린 날씨 때문에 선명치 않다. 란타우를 만난 건 둘레길과 능선이 만나는 곳에서였다.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트인 능선 앞에 느닷없이 뻥 뚫린 경치가 나타났다. 무게감 있는 산의 위세에 산행이 몸에 익지 않은 이들은 기가 질렸고, 산꾼들은 미소를 머금었다.
- ▲ 정상으로 이어진 오름길. 아열대기후인 이곳의 여름에는 그늘이 없어 산행이 어렵다(왼쪽). 바위 아래의 성모 마리아상(오른쪽).
- 발 빠른 사내들은 기다렸다는 듯 능선을 따라 오르막에 몸을 던진다. 억새와 나무가 섞여 있어 먼 곳 경치를 걷는 내내 볼 수 있다. 산의 덩치는 크지만 살결은 부드러운 흙이라 발걸음이 가볍다. 능선이 방향을 꺾어 요동칠 즈음 거대한 두꺼비 모양의 바위와 만난다. 육산에서 만나는 바위라 더 눈에 띈다. 다가서니 바위 한쪽에 성모마리아상이 있다. 독특한 건 반대편에는 관음보살상이 있다는 것이다. 홍콩의 다문화적인 특징이 드러난다.
드문드문 나무가 있지만 3km 떨어진 정상으로 가는 길이 훤히 보일 정도로 민둥산이다. 경치는 어디 할 것 없이 시원해 사진기자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 댈 만한 곳이 널렸다. 현지 가이드인 선창씨는 란타우 트레일 전체는 총 70km로 매우 긴 코스라고 한다.
오늘 가는 코스는 그 중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란타우봉 정상을 오르는 구간이다.
- ▲ 트인 능선길 곁으로 운해가 스쳐간다(위). 란타우 피크 정상에 선 시도연맹 관계자들(아래).
- 홍콩은 크게 육지인 구룡반도와 홍콩섬, 국제공항이 있는 란타우섬 등으로 나뉘는데 란타우봉은 섬의 최고봉이다.
홍콩 면적의 반 이상은 산과 해안선 같은 자연이다. 도심에서 불과 20~30분만 이동하면 산과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산이 대부분인 만큼 다양한 트레일 코스가 있다. 홍콩섬을 동서로 잇는 홍콩 트레일(50km)과 구룡반도를 동서로 횡단하는 맥리호스 트레일(100km), 란타우섬을 순환하는 란타우 트레일(70km), 홍콩섬에서 구룡반도를 종단해 신계 지역에 이르는 윌슨 트레일(78km) 4곳이 대표적이다. 부속된 산길까지 합하면 홍콩에는 400km가 훨씬 넘는 긴 트레킹 코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현지 가이드는 트레일을 찾는 사람이 홍콩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고 한다. 홍콩 사람들이 산을 잘 찾지 않는 것은 기후 때문이라고 한다. 홍콩은 여름에 습도가 85% 이상을 기록하고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어선다. 게다가 이곳처럼 민둥산이 많아 햇볕에 노출돼 있고 12월 초인 현재도 20도가 넘는 더위라서 산을 찾는 것은 고행을 자초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홍콩의 겨울인 1~3월이 산행하기엔 제일 좋은 시기다.
12월임에도 뙤약볕이 작열하는 민둥산 줄기가 어려운 숙제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하나씩 옷을 벗기 시작한 사람들은 긴 소매를 걷어 올렸다. 산에 대한 사전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등산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이미 마실 물이 동났다. 산악연맹의 대장급 산악인들이 이들을 도와가며 산을 오른다.
- ▲ 아시아 최장의 케이블카인 ‘옹핑 360’(위). 산행 날머리인 포린사(아래).
- 훤히 뚫린 오르막 등성이를 오르다 뒤돌아보니 둔중한 덩치의 대동산(SUNSET PEAK·869m)이 배경 그림처럼 서 있다. 억새 줄기 위로 걸어온 길이 꼬불꼬불 하얀 선을 그었다. 저 뒤에서 걸어오는 일행의 모습도 그림의 일부가 된다. 시원하면서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늑한 풍경 속을 걷는다. 볕을 피할 지붕이 있는 벤치에 모여 쉰 다음 오른다. 체력 차가 큰 만큼 사람 사이의 거리도 멀어진다.
정상이 다가올수록 가팔라지며 더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억새가 우거져 황금빛을 띤 산등성이는 산 이름처럼 봉황의 날갯짓 같다. 구름이 빠르게 흘러왔다 흘러간다.
- 하늘을 나는 봉황의 날개 곁으로 구름이 스쳐 지나는 것이다. 구름은 능선에서 장난치듯 슬쩍 산을 훑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커다란 봉지가 양쪽에 묶여 있는 긴 막대를 어깨에 메고 산을 내려오는 청소부들도 스쳐 보낸다. 구름이 희뿌옇게 차 있어 전망이 선명치는 않지만 북쪽으로 고층 아파트 숲이 보인다. 인구 밀도가 높은 만큼 어디든 조금이라도 평지가 있으면 초고층 빌딩을 쌓아올린다.
홍콩에 민둥산이 많은 것은 “산불이 잦아서”라는 이유도 있고, “옛날부터 민둥산이었고 나무가 자라기에 토양이 부적합해서” 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가이드인 선창씨는 전문 하이킹가이드인데, 외국인들에게 산을 안내하거나 산에서 홍콩 사람들이 제를 지내는 것을 돕기도 한단다. 홍콩은 점과 풍수지리를 믿는 경향이 심해 초고층 건물도 풍수지리를 따져 설계한다.
2시간 가까이 같은 빛깔의 오르막이다 보니 풍경이 비슷해 보인다. 속마음을 눈치 챈 듯 운해가 밀려와 능선을 숨겼다가 열었다가를 반복한다. 정상은 꼭대기다운 성취감을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너른 터다. 정상 표지판과 이정표, 비바람을 막아주는 작은 대피소,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작은 바위들이 주변을 메우고 있다. 사방으로 다른 경치지만 눈여겨볼 만한 재미가 있다.
- 하산은 서쪽으로 계속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다. 운해가 밀려와 앞에 간 사람들을 부지런히 지운다.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도와가며 오르느라 끈끈해진 사람들이 부지런히 꽁무니를 쫓아간다. 바위 계단을 30분 넘게 내려서자 산등성이 너머로 거대
한 청동좌불상이 보인다. 산 너머에서 이렇듯 보일 정도면 굉장히 큰 불상일 것이다.
공원 입구가 가까워지자 나무 기둥이 기념비처럼 수두룩하게 꽂힌 모습도 보인다. 8자 모양으로 꽂혀 있는데 무한대를 상징하는 38개의 나무다.
날머리인 포린사에 내려오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청동좌불상은 무게 202톤, 높이 34m의 거대한 규모다. 중국이 홍콩 반환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불상으로 이어진 길은 26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이 숫자의 광동어 발음이 ‘행운이 온다’는 뜻과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해발 고도 440m 산 능선 위에 포린사가 있다. 하산은 ‘옹핑 360’이라는 아시아 최장인 5.7km의 케이블카를 타고 한다. 20여 분간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와 바다 위를 지나 공항 근처의 옹핑빌리지에 닿는다.
보너스 트레일 Guide
홍콩을 대표하는 코스 ‘드래곤스 백’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하이킹 코스
드래곤스 백(Dragon's Back)은 타임지가 아시아 최고로 꼽은 트레킹 코스다. 산의 모양이 용의 등골처럼 요동친다고 해서 ‘드래곤스 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콩섬 남부에 위치한 드래곤스 백은 정상인 ‘섹오 피크’가 284m다. 해발고도가 낮은 만큼 짧은 코스로 산행할 경우 4.9km에 2시간 정도로 부담 없는 산책 코스다.
‘드래곤스 백(Dragon’s Back·龍脊)’은 홍콩섬을 일주하는 홍콩 트레일의 일부이며 가장 하이라이트라 불리는 마지막 8코스다. 드래곤스 백은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수목이 우거지지 않아 먼 곳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 ▲ 드래곤스 백 트레일에서 본 섹오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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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스 백 트레일은 홍콩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하이킹 코스 중 하나다. 섹오도(石澳道)에서 출발, 토테이완(土地灣) 정자 옆에 있는 길을 따라 섹오피크 정상에 오른 뒤 능선길을 따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남중국해와 주변 섬들을 볼 수 있다.
란타우 트레킹 정보
팍 콩 아우~(2.3km·50분)~능선 삼거리~(3.4km·2시간)~란타우 피크~(1.4km·50분)~포린사
란타우 피크 산행은 7km에 4시간 정도로 짧다. 그러나 민둥산이라 뙤약볕에 노출되어 있고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챙이 넓은 모자와 식수를 충분히 준비하는 게 좋다. 경치는 대부분 비슷한 편이므로 코스를 더 길게 잡는다고 해도 산행의 감흥은 비슷하다. 능선이 워낙 뚜렷해 길 찾기 어려운 곳은 없다. 다만 산행 출발지인 팍 콩 아우 고개에서 능선을 탈지 둘레길로 갈지 결정해야 한다. 약간 돌아가지만 경치는 둘레길이 나은 편이다. 둘레길은 1시간 뒤에 능선길과 다시 만난다. 날머리인 포린사는 관광지다. 식당과 기념품 판매점이 있고 청동좌불상과 공항 근처의 옹핑빌리지로 내려서는 케이블카가 있다.
여행 팁
홍콩은 아열대 지역이라 날씨가 덥고 습하다. 쾌적한 시기는 10월부터 3월까지며 겨울인 12월 말부터 2월까지는 평균 최하기온이 14도다. 홍콩 달러는 종류가 다양하다.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중국은행 3곳에서 도안과 색깔이 다른 지폐를 발행하기 때문이다. 홍콩에서는 광둥어, 영어가 무리 없이 통한다. 호텔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택시기사에게 보여주면 목적지를 설명하기 쉽다. 전기의 경우 한국과 달라 어댑터를 따로 준비해야 하지만 호텔에서 준비해 둔 것이 있으므로 불편한 점은 없다.
홍콩 전철 MTR은 아침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운행하며, 홍콩섬 동쪽의 주거지부터 구룡 반도의 신계까지 넓게 뻗어 있다. 버스는 수백 개의 노선이 있으며 영국의 영향을 받아 2층버스가 많다. 거리에 담배꽁초나 휴지를 버리면 6개월의 금고형이나 비싼 벌금을 물어야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주야를 막론하고 안전한 도시로 간주되고 있으나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며 가급적 현금이나 귀중품을 적게 지니는 것이 좋다. 자세한 내용은 홍콩관광청 홈페이지(/www.discoverhongkong.com/kor)에서 확인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