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혼이 살아 있는 곳
서울 경교장(京橋莊)
서울시 종로구에 새문안로 29(평동 108-1). 강북삼성병원 내에 있다.
사적 제465호(지정일:2005.6.13.)로 백범 김구(金九) 선생님이 8.15 광복후 중국에서
귀국해 1945년 11월부터 1949년 6월 26일까지 사용했던 개인 사저이다.
현재 <경교장>으로 복원되어 관람객들을 맞이 하고 있다.
최창학의 사저 → 백범 김구 거처 → 최창학에게 반환 → 타이완 대사관 →
미국 특수부대가 주둔(6·25전쟁) → 삼성재단매입(1067) → 강북삼성병원 본관 →
<경교장> 복원해 시민에게 개방(2013.3.2.) *최창학=일제강점기 성공한 기업가
. 2001.4.6. 서울유형문화재 제129호
. 2005.6.13. 사적 제465호로 승격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하였던 역사적
장소이다.
이승만의 이화장(梨花莊),김규식의 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건국 활동의 중심을 이룬 3대 요람이다. 1938년 금광으로 돈을 번 최창학(崔昌學)이 건축
면적 396.69㎡, 연면적 945.45㎡(지하1층, 지상2층)규모로 지었으며, 1930년대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다.8·15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京橋;
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건물은 단아한 2층 양관으로 전면 분할의 비례가 아름다우며, 1층의 좌우창을 원형으로
돌출시켰고, 그 상부를 의장의 중심체로 하였다. 현관 2층부에는 6개의 붙임 원주를
사용하여 5개의 들임 아치창을 냈다.
김구가 반탁·건국·통일 운동을 주도할 때에는 흔히 '서대문 경교장'이라고 일컬었으며,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되었다. 또한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집무실에서
안두희(安斗熙)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두산백과사전 참조인용)
해방과 김구 선생님 귀국
경교장 위치
5호선 서대문역 4번출구에서 5분거리. 강북삼성병원 내 위치.
주변에 경희궁, 농업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경찰박물관이 있고
역사의 거리 정동길 따라 이화여고를 지나 덕수궁이 근거리에 있다.
광화문과 경복궁 접근이 용이하다.
서울 경교장은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3.3.2 시민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월요일은 휴관합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가지이나 오전에는 자유관람이고 오후부터는 시간대별로 구분해 제한 관람합니다.
회사 인근에 위치한 강북삼성병원에서 정기검진하는데 지난 6월 7일에 진료대기시간을 이용해 관람했습니다.
역사적인 장소가 복원되어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복원을 위해 수고하신 서울시, 강북삼성병원, 실무자 모든 분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