典律通補 跋 발문(跋文) 1786년, 정조10 구윤명(具允明)
우리 성상(聖上) 9년 을사년(1785, 정조9) 9월 모일에 《전율통보》를 수정하는 일로 천신(賤臣)에게 입시(入侍)할 것을 명하셨다. 신이 이 책을 편집했던 것은 작은 상자에 보관해 두었다가 개인적으로 참고하려고 한 데 지나지 않은데, 지금 공적인 글이 되어 간행하게 되었다. 이에 한 글자만 잘못되어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니, 그 일이 어찌 중대하고도 어렵지 않겠는가. 다행히도 성상께서 마치 귀에 대고 일러 주듯 마주 보고 명하듯 강령을 제시해 주시니, 신이 실로 성상의 뜻을 여쭙고 하교를 받든 뒤에야 감히 산삭하고 정리하여 몇 권(卷)으로 묶었다.
대개 《경국대전(經國大典)》이라는 책은 법률을 주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악과 문물에 관해서도 살필 만한 게 많다. 《속대전(續大典)》과 《대전통편(大典通編)》도 그러한데 때때로 엉성하여 치밀하지 못하고 간략하여 상세하지 못하니, 《경국대전》에서부터 이미 이런 점이 없을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연대가 점점 내려오면서 증빙할 만한 고사(故事)를 찾기도 어렵고 조항이 더욱 많아지면서 문적(文蹟)을 다 갖추지도 못하였으니, 끝까지 널리 찾아 한결같이 상세하고 꼼꼼하게 파악하고자 한들 그것이 쉽겠는가. 그래서 상고하고 또 상고하고 살피고 다시 살펴서 차라리 의심스러운 것은 빼고 확실하지 않은 것은 뺀다는 교훈을 따랐지만, 끝내 스스로 자신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이 때문에 간행하기에 이르러서도 감히 손을 떼지 못하고 밤낮으로 두려워하며 편히 먹고 쉴 수도 없다.
아, 공정한 법은 나라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두 차례 정리를 거쳐 《대전통편》을 완전한 전서(全書)로 삼고 이 책으로 보완하도록 하였으니, 준거로 따를 만한 법령을 신중히 정하고 그때그때 적용할 제도를 갖추게 되어 원류(源流)가 서로 통하고 표리(表裏)가 서로 도울 수 있게 되었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대명률(大明律)》을 합하여 하나로 만든 것으로 말하자면 어느 벌이고 삼가지 않음이 없는 뜻이 지극하고, 〈별편(別編)〉을 덧붙여 돕도록 한 것으로 말하자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열거하지 않음이 없는 도가 극진하다.
《대전통편》이 완성된 뒤에 이어서 이 책을 편수하도록 명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법은 백성과 함께하는 것이다. 반드시 저울처럼 공평하고 사시(四時)처럼 미더워야 백성의 뜻이 정해져 형벌을 쓰지 않을 것을 기약할 수 있다. 한때의 수교(受敎)로 굳이 후대의 법으로 삼을 것까지 없는 것은 생략한 뒤에야 선조를 빛내고 후손을 이끌어 줄 수 있고, 좋은 규정과 훌륭한 법으로 금석을 삼을 만한 것은 굳게 지킨 뒤에야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제도가 정해질 수 있다. 이 또한 성상의 뜻이어서 정치와 교화 중에 자주 드러난 것이다. 아, 성대하도다. 명을 받들어 권말에 적으며 다른 말을 할 겨를이 없고 두 손 모아 절하며 이와 같이 말할 뿐이다.
병오년(1786, 정조10) 8월 모일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행(行)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능은군(綾恩君) 신 구윤명(具允明)은 교명을 받들어 삼가 발문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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