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태(가명·51) 씨는 젊은 시절
전기회사에 근무했습니다.
20년 전 일을 하다가 고압 전기선에 감전이 되면서 심하게 다쳐
어깨 밑으로 양팔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급 장애판정을 받고는 세상을 원망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절망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방사선 치료비 눈덩이
할 수 있는 게 없어 속만 태울 뿐당시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생계가 막막했으나 산재 보상금으로 나온 돈으로 집을 구입해 월세를 받으며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출산 후 자녀양육과 남편 간병으로 힘들었지만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1급 장애인인 남편을 보살펴야 했고, 어린 아이를 양육하느라 일도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생활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세입자들의
전세금으로 생활하다가 전세금을 돌려줄 돈조차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5년을 살다 보니 남은 건 사채와
카드 빚뿐이었습니다. 결국 2006년 집이 경매처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뿐인 딸아이는 공부도 잘하며 바르게 커 주었고, 힘든 생활이었지만 규태 씨의 세 식구는 서로를 의지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보조를 받으며 차츰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규태 씨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보건소에서 수술비 일부를 지원받아 수술은 했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에 규태 씨는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암환자에게
스트레스는 독약이라며, 아내에게 치료비는 걱정 말라고 했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내년 3월까지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겨우 두 달 치료 받았는데 병원비가 벌써 200만 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이제 막
수능을 친 딸아이에게 마음의 짐이 되기도 싫고, 평생 고생만 한 아내에게 치료비 걱정 없이 병원을 다니게 하고 싶지만 규태 씨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막막할 따름입니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세 식구가 생활하기에도 빠듯합니다. 의료비도 전액 지원되는 것이 아니기에 급한 대로 이웃의 도움도 받고 빌리기도 해서 지금까지 병원비는 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지난해
등록금이 없어 수능을 잘 치고서도 대학에 보내지 못했던 딸아이에게 같은 아픔을 또 안겨서는 안되는데….
추운 겨울이 지나야 봄이 찾아오고 어두운 밤이 지나야 아침이 찾아오듯 꽃잎도 다 떨어진 후에 열매가 열립니다. 이처럼 역경을 겪은 후 좋은 날이 찾아오며 슬픈 날이 지난 후 기쁜 날이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규태 씨의 인생은 추운 겨울, 어두운 밤, 슬픈 날들이었지만 꽃피는 봄과 기쁜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희망을 가져 봅니다.
△정숙정 서구 부민동주민센터(051-240-6521)
△지난 20일 자 영희 씨 이야기 86명의 후원자 306만5천1원.
↓ 이렇게 됐습니다
지난 6일자 정수 씨 이야기
정수 씨의 사연에 여든여섯 분이 정성을 모아 주셔서 396만 원이라는 거액의 성금이 정수 씨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성금 모금기간 후원금을 보내고 싶다는 분의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 왔고 치주염으로 고생을 해서 본인도 그 고통을 잘 안다며 본인이 사용하고 있는 치료용 치약을 보내준다고 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또한 기사를 접한 관내 A
치과에서 정수 씨의 치주염 치료 및
발치 후 보철 치료까지 전액 무료로 해 주시기로 해 정수 씨는 현재 매주 1회씩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들이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고 상상도 못했던 큰 성금이 전달된 날. 노령의 정수 씨 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동사무소를 방문했습니다. 소중한 분들의 사랑으로 아들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고 본인 역시도
관절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열두 번도 넘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평생 보내주신 분들의 사랑을 잊지 않겠노라 하시며 끝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