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2007.3.2.금
전주 막걸리 이야기
전주는 몇 년 전부터 막걸리 전성시대를 맞았다. 해만 떨어지면 전주 시내 막걸리집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전주시내 막걸리집에는 막걸리 먹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사이다나 요구르트를 섞어먹는 것이 한때 유행이었다. 요즘은 깔끔하고 뒷맛이 개운한 ‘맑은 술 막걸리’가 인기다. 이 방법은 막걸리를 냉장고에 일주일 정도 보관하여 침전물을 가라앉힌 뒤 위쪽 술만 떠 마시는 것이다.
왜 전주가 최고의 막걸리 도시가 되었을까. IMF가 터지면서 세상사는 것이 힘들어졌다. 주머니에 술 한 잔 마실 돈 조차 없었다. 이때 삼천동 우체국 골목에 처음으로 막걸리 집이 하나 들어섰다. 이집은 막걸리 한 주전자에 안주를 한 상 가득히 차려주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자연스레 이 부근에 막걸리집이 늘어났다. 모두 장사가 잘 되면서 결국 오늘날 삼천동 막걸리촌이 형성된 것이다.
전주의 막걸리는 생막걸리다. 소주처럼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멸균처리를 하게 되면 몸에 좋은 영양분이 파괴되고 맛이 떨어진다. 그러나 전주는 막걸리 소비가 많기 때문에 굳이 멸균할 필요가 없다.
막걸리는 서민의 술이다. 서민들이 생활고에 찌들어 힘겨울 때 생각나는 것은 가격이 저렴한 막걸리다. 막걸리는 주로 농민들이나 도시 노동자들이 요기 겸해서 먹던 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막걸리가 화이트칼라는 물론 젊은 층과 여성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전주에서 성업 중인 막걸리 전문점은 100여 곳에 이른다. 삼천동 우체국 골목을 비롯 효자동 전일여객 부근, 서신동 국민은행 일대, 경원동 동부시장 일대, 평화동, 우아동, 송천동 일대 등 곳곳에 집단촌을 이루고 있다. 막걸리 거리 혹은 막걸리 타운인 셈이다.
푸짐한 안주로 유명한 전주 막걸리 집은 1980년대 초를 고비로 줄어들었다. 그러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하나 둘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전주 막걸리집은 술만 시키면 공짜로 안주가 계속 나와 “이렇게 팔아도 남느냐”며 손님이 오히려 주인을 걱정해 준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속도다.
요즘 막걸리 집은 과거와 다르다. 우선 실내가 쾌적하다. 안주는 삼계탕이나 돼지고기 찜까지 무료로 나오는 등 서비스 경쟁도 치열하다.
기존 소주나 맥주를 주로 팔던 주점들도 막걸리 전문점으로 업종을 바꾸고 있다. 일부 대형 음식점도 막걸리집으로 바꾸고 있다. 그래서 50평이 넘는 대형 막걸리집도 계속 늘고 있다.
전주시는 전주 막걸리를 관광 자원화하고 육성하기 위해 ‘막(MAC) 프로젝트’를 들고 나왔다. 막프로젝트라는 말은 ‘막걸리 프로젝트’를 줄인 말이다. 이 사업이 나온 것은 당연히 전주 막걸리의 폭발적인 인기 때문이다.
전주시는 100여 개 소의 막걸리 전문 판매업소와 2개소의 막걸리 제조업체에 대한 사이버 홍보와 안내 표지판 설치 등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막걸리 판매업소 간판을 표준화하고 ‘막걸리 축제’ 등을 통해 막걸리 타운을 관광코스로 개발할 방침이다.
최근에는 우리밀로 빚은 전주 막걸리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밀 막걸리 공급을 늘려 전주 막걸리의 주류를 우리밀 막걸리로 삼을 방침인 것이다.
한편 전주시내 일부 유명 막걸리 집과 예술인은 자매결연을 추진한다. 막걸리 업소를 대상으로 예술인과 1대1 결연을 하는 것이다. 자매결연을 하면 예술인은 이곳에서 공연이나 작품 전시회를 열수도 있다.
문제는 갈수록 막걸리 업소들의 생존경쟁이 살벌해진다는 점이다. 고객잡기 쟁탈전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안주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류 한정식 식단보다 더 화려한 안주를 무료로 내 놓는 대형업소도 늘고 있다.
막걸리 업소는 대부분 영세하다. 영세한 막걸리 업소가 최고의 안주를 내놓는 대형 막걸리집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실제로 경쟁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는 막걸리집이 속출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주 시내 막걸리집 상당수가 함께 망할 것으로 우려된다. ‘어떤 장사든지 잘 된다고 소문이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드는 풍토가 문제’다. 앞으로 전주 시내 막걸리 업소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 정복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