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당은 보좌신부님의 보고(寶庫)다. 우리 본당의 주임신부는 4년에 한 번, 보좌신부는 2년에 한 번씩 바뀐다. 지난 연말에 김요셉 보좌신부님이 떠나고 이가브리엘 보좌신부님이 오셨다. 신부님이 새로 오시면 우리는 궁금한 게 많다. 안에 숨겨진 영적 성스러움으로부터 겉으로 들어난 세속적인 것까지 모든 게 궁금하다. 그 궁금증은 신부님의 생각과 말과 행동, 나아가서 미사 강론 하나하나가 목마른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신부님은 강론으로 신자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해왔다. 그만큼 미사의 앙꼬는 강론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새로 신부님이 부임하시면 몇 차례 강론을 들어본 뒤에 내가 참례할 미사시간을 정한다. 미사참례 때마다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시쳇말이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미사 전례는 나라에 따라 말만 다를 뿐 미사 경본의 기도문과 규범은 같다. 가톨릭이 하나라는 말은 미사의 고유 의식이 동일하다. 가톨릭 신자는 세계 어디를 가나 같은 전례로 진행되는 미사가 결코 낯설지 않다. 해외취재 때 세계 어디를 가나 미사참례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세례성사를 받고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그것은 곧 강론의 퀄리티와 울림을 식별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강론을 듣는 신자들의 자세가 강론의 질과 표현, 길이에 따라 그 반향을 달리한다. 마음을 흔드는 공감과 지루함에 견디지 못해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강론이 영혼을 울리는 감동이냐 아니면 진부 하느냐로 갈린다. 나는 미사 때 강론에 몰입하기 위해서 앞자리에 자리 잡는다.
그만큼 복음 선포와 강론에 귀 기울이고 때로는 강론을 들으며 메모한다. 요셉신부님과 가브리엘 신부님의 강론은 평균 7~8분, 길어도 10분을 넘지 않는다. 미사는 한 시간 이내에 모두 끝난다. 젊은 날 같은 직장의 미카엘 선배가 “신자는 강론을 먹고 일주일을 산다.”고 한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미사는 정해진 경문에 따라 진행되지만 성가와 기도, 그리고 묵상이 곁들여지는 경건함이 이어진다. 감옥 같은 심지어 지옥 같은 삶에서도 스스로의 발견을 통해 기쁨이 솟아난다. 이번에는 구정 이튿날이 주일이었다. 새해 인사를 나눈 뒤 강론이 시작되었다. 우리 본당 보좌신부님은 세 아들을 둔 가정의 장남이다. 동생은 일란성 쌍둥이로 빼닮았다고 한다. 동생 신부는 지난 연말에 사제서품을 받은 풋풋한 새 신부다.
구정의 세시풍속으로 말문을 연 강론은 부침개를 부치는 어머니를 도우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 정겨운 이야기로부터 해외원조주일을 맞아 ‘예수님의 진복팔단’이 내 안에서 어떻게 살아 있는지 살펴보자고 조용조용 말씀하셨다. 신부님은 어릴 때부터 문현동에서 살았다고 한다. 광안역에서 지하철로 일곱 역이 떨어진 곳이다. 그곳의 18평짜리 좁은 다세대 주택에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분과 이모,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와 세 아들까지 여덟 식구가 함께 살았다고 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음식을 장만하고 그 음식을 담아둔 창밖의 소쿠리 곁을 오가며 찌짐과 동그랑땡을 슬쩍슬쩍 집어 먹었던 일이며 좁은 집에서 할머니의 기도와 보살핌 속에서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았던 어린 시절이 새삼 그립다고 했다. 신부님은 그런 사랑의 가정에서 티 없이 맑게 자라나 신학교에 갔단다.
그리고는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7년 동안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돈 많고 높은 자리에 있는 권력자들의 상습적인 병역기피나 면제와는 달리 군복무도 마쳤다. 요즘 들어 나는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을 생각한다. 크리스챤이 된 뒤로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살려고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언젠가 한 번은 죽어야 하는 만큼 당당하게 살자는 게 평소의 소신이다. 이번 설에 가족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나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는 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병원이 아닌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다.”고 강력히 희망했다. 나는 그런 생각이 고희를 넘기고 만성신부전증으로 투석치료를 받으면서부터 더 굳어졌다. 나는 웰다잉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법)이 보장하는 존엄한 죽음에 지지를 보낸다.
치료효과가 없는 단순한 연명치료인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부착을 거부하는 의향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내년부터 발효되는 웰다잉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법)에 따라 치료효과가 없는 단순한 임종과정의 연장보다는 연명치료중단 의향서가 인간적이다. 틈날 때마다 가족들에게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며 내 삶을 돌아본다. 나는 잘 먹고 잘 사는 Well-Being 보다 Well-Dying 의 ‘존엄한 죽음’에 의미를 둔다. 흔히 죽음 뒤의 문제는 산자의 몫이라고 한다. 그러나 죽음도 본인이 준비해야할 삶의 연장이고 스스로의 몫이다. 나는 지난해부터 죽음의 준비로 죽는 자신과 살아남을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집을 짓기로 했다.
흔히들 나이 들어서 집을 짓거나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집을 짓기로 한 것은 ‘집에서 죽고 싶다’는 나의 오랜 염원과 이에 동의한 딸, 사비나의 도움으로 나의 사후에 살아갈 아내를 위한 준비로 초가삼간(草家三間)을 물려주고 싶다. 지난해 광안동 주택지에 80평 남짓한 대지를 구입했다. 땅을 사들이고 몇 달 뒤에 땅을 물고 소방도로가 개설되고 말끔히 포장을 했다. 서울의 몇몇 설계사로부터 자문을 받은 뒤에 부산의 지움건축사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했다. 첫 시안이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나왔다. 그러나 공사비를 줄이고 실용성을 살린 3층 규모로 줄이기로 하고 설계도의 수정을 기다리고 있다. 입지의 선택은 투석치료를 받는 병원을 오가기에 6~7분 거리,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 안전한 곳을 택했고 엘리베이터를 넣어서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욕심을 부렸다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기에 좀 더 편리하고 쾌적한 서재를 갖추기로 한 것이다. 설계도가 완성되면 2월 말쯤 건축허가를 받아 이웃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늦어도 3월에 착공하여 7~8월경에 완공하면 9~10월경에 입주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축비용은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팔고 가진 돈을 들여서 한 푼의 대출도 받지 않기로 했다. 새로 지을 집은 성당과 지하철역, 그리고 시장과 은행으로부터 4~ 5분 거리에 있는 로케이션이 그만인 곳이다. 올해로 일흔다섯이 된 나는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여류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유고시집『충분하다』가 전하는 마지막 전언을 새해의 선물로 마음에 담았다. 어쩌면 나는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충분하다’는 미완성의 시적 감성으로 새집을 지으려고 한다.
첫댓글 공감합니다..멋지시네요..^^
그렇게 보이십니까?
저는 절실합니다.^^*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드네요.
새집에서 건강되찾으시고 장수하시길 빕니다.
네,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햐을 팔지 않는다는 매화가 피기 시작했어요.^^*
참 좋은 집이 지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돈이 많지않아 단층 20평을 땅바닥에 딱 붙여서 지었습니다.
다리 아플 때 층계 못 오를 것을 생각해서지요.
청소하기 힘들 것 같아서 원룸 형태로 지었는데 살면서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동네에서 제일 작아서 좋고, 복잡한 구조 아니어서 청소하기 편하고, 사철 편안해서 좋습니다.
집은 편리하고 소박해야죠.
제가 지으려는 나의 집은 살아서는 요람이고 영원히 잠들 자리라는 의미입니다.
주변과 어울리면 두욱 좋겠구요. 감사합니다.^^*
호스피스봉사활동을 하면서 Well-Dying 의 중요함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모두 언젠가는 그분 앞으로 돌아가지만 어떻게 준비하고 가느냐는 참
절실함에도, 느적느적 거리기만 합니다. 다시 한번 고삐를 잡으렵니다.
Well-Dying의 시작과 끝은 '인간의 존엄성'이 아닐까요?
죽음이 순간의 사건이나 슬픔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고 의지입니다.
저는 집에서 죽어 리아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눈을 감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길 기도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지난 번 엘사 언니를 뵙고 얘기들을 때 그 용기와 지혜가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어요. 햇살이 비치는 예쁜 3층 집을 그려봅니다. 소망이 이루어지고 ' 충분하다' 라고 느끼시도록 기도합니다.^^
욕심 없이 천천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충분함이 깃들도록 짓겠습니다.
요즘은 팔린 아파트를 비워주고 이사할 준비와 설계사와의 미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도 그리움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요양원에 보내지 말라.'
고 당부하신것, 무척 부럽네요.
코에 줄 꼽아 수명연장 하는 것은 정말 싫다고 애들에게 말은 했지만, 요즈음 요양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가는걸 보면~~
죽을 집을 짓는다구요?
저도 봄에 이사를 갑니다.^^
왠지 거기서 사는 날까지 살다가 제발 요양원에 안가고 가족의 품에 안겨 수명을 다해,
주님의 품에 안길수만 있다면 하는 염치없는 꿈도 꾸어봅니다.
예, 누구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겠죠.
만남과 헤어짐을 내 정든 집에서 맞고 싶습니다.
바흐의 무반주첼로모음곡을 들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