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 보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짧은 생각이 동기가 될 때가 많다.
수양관 관리목사로 있을 때 독자적으로 주보를 만들어 예배를 진행했다.
빈 칸을 채우기 위해 한 면에 '짧은 생각'이라는 소제목으로 매주 한 편씩 글을 올렸다.
그 주보를 보관하지 않고 대부분 폐기했는데 몇 개의 글이 남아서 지난 날을 회상하게 된다.
그 중에서 한 편의 글을 전재한다.
-짧은 생각- <박대천 물소리> 이관수 목사
수양관 앞을 흐르는 박대천 물은 대체로 부드럽고 잔잔하다.
여름폭우가 쏟아져 내리면 일시적으로 황토색 물이 굽이치며 소리를 높이지만,
멀리서 바라보기 때문일까 그 물소리는 대체로 조용하다.
나의 짧은 생각들을 이 물소리 처럼 잔잔하게 이 지면에 담아보고 싶다.
아직은 청정지역으로 알려져 있고 깨끗한 물에 서식한다는 다슬기(올갱이)가
널려 있기도 한 박대천은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젖줄이기도 하다.
박대천은 달천의 지류 중의 하나로서 후평리, 고성리, 도원리 등을 휘감아 흐른다.
도원리 입구에 있는 도원교(桃源 橋) 옆에 '지방2급하천 달천'이라는 파랑색 표지판이 높게 서 있다.
달천은 길이가 약 120여 km에 이르고 달강, 달래강 혹은 물이 달아서 한자어로는 감천(甘川)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부모를 잃은 오누이가 장성하기까지 함께 농사지으며 살았단다.
어느 여름에, 오누이는 강건너로 일하러 갔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강물이 불어났다.
집으로 되돌아올 때는 불어난 강물 때문에 할 수없이 옷을 벗어들고 건너오게 되었다.
오빠는 여동생의 물에 젖은 모습을 보고 성적충동이 생겼다.
강을 다 건너온 오빠는 심한 자책감으로 가지고 있던 낫으로 자기의 거시기를 뚝 자르고 피를 흘리며 죽었다.
이를 본 여동생이 "날 보고 달래나 보지, 왜 죽어!" 하며 통곡하다가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강을 달래강이라고 했더란다.
이 전설은 '달래고개'와 같이 근친상간을 금기시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설화라고 해석한다.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보은지역의 속리천을 지나 청원군 관내로 접어들면 '박대천'이라고 부르는데,
청원군 미원면 어암리에 있는 박대소(沼)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박대천 줄기에는 청석굴, 용소, 천경대, 옥화대, 금봉, 금관숲, 가마소뿔, 신선봉, 박대소 라는
<옥화 9경>의 빼어난 산수절경(山水絶景)이 경관을 자랑하며 볼거리와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박대천이 하마터면 저질 오염하천으로 변할 뻔 했다.
상주시가 허가한 '문장대 용화온천 개발사업' 때문이다.
달강 유역을 중심으로 생활터전을 삼은 괴산군민과 특히 직접적 피해를 받게 될
청천면민들은 교대로 용화에 나아가 감시와 개발사업 반대운동을 펼쳤고,
충청북도와 괴산군, 충주환경운동연합이 현지인과 연계해 법적투쟁을계속해 온 바,
환경파괴와 상수원오염을 이유로 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아 용화온천개발을 백지화 시켰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아름다움을 지키고 유지한다는 일은 고된 작업의 결과라고 보여 진다.
겉모습과 속내가 통합과 일치, 조화가 이뤄져야 진정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육체를 가꾸는 일만 아니라 지성과 영성 세 가지를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정족(鼎足=화로다리)처럼 균형과 조화가 필수라고 여겨진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1:31a)
이 말씀이 회복되는 그날을 고대하면서...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