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경찬의 불교문화 한 토막]
매주 목요일 불교문화에 대한 짧은 글을 올립니다.
41. (8) 대비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아미타부처님, 관세음보살
< 충남 부여 무량사 극락전 >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님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십니다.
서방 극락세계에 아미타부처님 좌우로 두 보살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은 관음전에 별도로 모실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지장보살, 아미타부처님, 관세음보살
< 충남 서산 개심사 대웅보전 >
대세지보살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욱이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이 자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충북 보은 속리산 법주사 원통보전 >
관세음보살은 관자재보살, 관음보살 등으로 부릅니다.
범어로는 아바로키테쉬바라(Avalokiteśvara)입니다.
이를 어떻게 풀이하는가에 따라 관세음보살, 관자재보살이라고 번역합니다.
‘세간의 소리를 다 살펴보기’에 ‘관세음보살’이라고 하고,
‘지혜로 살펴봄으로써 자재로운 묘한 결과를 얻은 이’,
또는 ‘살펴봄에 자재하다’는 의미에서 관자재보살이라고 합니다.
한편, 경전 번역할 때 당시 당나라 왕의 이름자(이세민)를 쓸 수 없으므로
관음이라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 충남 천안 각원사 대웅보전 관세음보살 >
또 관음보살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자비를 위주로 하기에 대비성자(大悲聖者),
세상의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에 구호고난자(救護苦難者) 또는 구세대사(救世大士),
두려움을 없애주기 때문에 시무외자(施無畏者)라고 합니다.
또는 관음보살은 원만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원통대사(圓通大師)라고 합니다.
이는 [능엄경]의 이근원통(耳根圓通)에서 유래하였다고도 봅니다.
‘중생들의 음성을 살펴 해탈을 얻게 하고, 중생들은 이근(耳根)이 총명하므로 소리를 통해 그들을 진리의 세계로 이끄는 것을 수행으로 삼기’ 때문에 이근원통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관음여래라고도 합니다.
<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홍련암 >
이러한 관음보살이 머무시는 곳은 보타낙가산입니다.
경전에 의하면 바다와 관련된 지역입니다.
[대당서역기]에 의해 인도 남동부 쪽 바닷가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관음신앙과 관련된 사찰은 바닷가나 내륙에 있더라도 물과 관계된 곳에 위치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동해로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홍련암, 서해로는 강화 낙가산 보문사, 남해로는 남해 금산 보리암이 3대 관음도량으로 유명합니다.
< 전북 부안 내소사 관음전 관세음보살 >
6관음, 7관음 등 다양한 모습의 관세음보살이 있습니다.
천수관음보살,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천 개의 손과 눈은 관음보살의 대자비와 방편을 상징합니다.
1천이란 말은 역시 무한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관음보살의 대자비가 한량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며,
또는 ‘보문(普門)’의 의미로 방편이 한량없다는 의미입니다.
< 경북 경주 석굴암 십일면관세음보살 입체탁본(경주박물관) >
십일면관음보살은 본 얼굴을 제외한 11면의 얼굴이 머리 위에 또 있습니다.
자애로운 모습, 성난 모습, 흰 이를 드러내고 미소짓는 모습, 큰소리를 내면서 호탕하게 웃는 모습, 부처님 모습 등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비심으로 중생에게 다가가는 다양한 방편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32응신 가운데 몇 분
< 강원 양양 낙산사 보타전 >
관음보살은 중생 제도를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부처님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고, 나아가 스님, 어린 아이, 부인 등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그에 알맞은 몸을 나타내어 제도합니다.
이를 33응신, 또는 32응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32 또는 33이란 한정된 숫자가 아니고 무한수를 나타냅니다.
어린 아이(동남)의 모습으로 나타난 관세음보살
< 경북 포항 황해사 >
이처럼 관음보살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어느 때 어느 곳에라도 중생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투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속에 관음보살의 모습이 함께 하고,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관음보살의 응신 아닌 것이 없습니다.
어쩌면 바로 옆에 있는 이가 바로 관음보살인지도 모릅니다.
충북 제천 정방사 관세음보살
참고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