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검지가 없다
1.당신이 주인입니다
가을을
드리고 싶습니다
호접지몽胡蝶之夢
아
이 가을
당신이
주인입니다
2.지음
갈대에
바람 같은
연잎에
연꽃 같은
당신은 내 친구
아직도
나에게는
거문고 6섯 줄이 있에
3.비 오는 날
토굴에 앉아
화두를 품고 있다
청개구리 개굴개굴
학 한마리 비에 졌고있다
기다리세요
알 까면 분양해 드리겠습니다
ㅡ4. 예언
이제 우리는
새 품종의 인간이 필요하다
사랑 없이도
교합 없이도
생산 되는
새 품종의 인간
머지않아
생산공장에서
양산될 것이다
5.부활
봄볕이
지구를 쪼고 있다
봄봄봄
새 생명
깨어나는 소리
6.검지가 없다
검지에는 뿌리가 있다
뿌리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으로
다시 미 군정으로 제주4.3사건으로
여순 사건*으로 뻗어 내렸다
좌와 우
밤과 낮을 가르는
손가락질 하나로
무고한 수많은 양민이 죽었다
손가락질 하나로
생때같은 두 손자를
졸지에 잃은 할아버지는
검지가 없다
《ㅡㅡㅡㅡㅡ
ㅡ.여순 사건*
1948년에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 · 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일으킨 사건.
●.고흥 봉덕리 (삼불리) 여순 사건 희생자 명단
ㅡ..희생자 명단 <8인>
<기일: 음력 10월 20 일>
1.김성택 (김호길 친형)
2.김양수 (김진용 부친)
3.오인택 (오기택 친형)
4.2 (김봉채 친형)
5.유기순(유종표 친형)
6.유기만 (유종표 친형)
7.김창석 (김창문 친형)
8.오문택(오상록 부친)》
7.고추밭
징그럽다 삼복더위
풋고추 툭 부질러
된장 찍어
폭염 쌈해야지
고추밭에
젊은 녀석들
백주에 고추 다 내놓고
축 늘어져 졸고 있다
매운 것
몇 개면 돼
호박 덩굴 요 녀석
길게 손 내밀고
슬금 슬금 기어들어오고 있다
이놈아
임자가 여기 있다
고추 아무나 따면 안 돼
8.향우회
종각역 용채네 식당
낯익은 얼굴들 하나 둘 모여든다
뉘 집 물색이지?
긴가민가 손을 붙잡고 요리조리 뜯어본다
서울에 뿌리박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고향 갈매기들
길쌈 잘하는 국무
노래 잘하는 꾀꼬이
힘 잘 쓰는 정불이
돼지 잘 잡는 억덕우
골고루 아제, 놀부
묏일 잘하는 종열이
선소리꾼 종순이 아제,
그 자손들
어찌 그손들 뿐이랴
꽹과리에 상모 돌리고
징 장고 큰북 작은북
날라리 피리 광대 깃발로
하나가 되었던 보고 싶은 얼굴들
괭이자루로, 톱자루로,
멍에로, 지게로, 빗자루로
제 몫을 다해 고향을 지켰던 그리운 고향갈매기들
인구 절벽, 이 절명의 시대에
내고향 三佛里는 누가 지키지?
갈매기 운다
9.내 이름 석자
내가 엄마였지
그래, 천년수 만년수 병현 병석 엄마였어
내가
아내었지
그래, 아내었어
그래,
그런데 말이야
어느 날 내 둘째 만년수가
뜬금없이
"김 부업 여사님" 하고 부르지 않겠어
김부업?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보았던
그 이름
한참을 두리번거려봐도 아무도 없었어
나밖에는
까맣게 잊고 살았던
내 이름 석 자 김부업
10.낚시
빙판 위 산천어는
살려달라 팔닥 팔닥
강태공 저 아저씨는
월척이다 야단법석
정금산 무명 거사
가부좌 틀고 앉아
삼생을 보고 있다
바람아
어느 곳에
낚시를 던져야 하나
11.생사(生死) 없는 그자리
눈이 부신 한기(寒氣)
그 질곡의 삶속에서
피워낸 서리꽃
그 한(恨)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그 한(寒) 파고 들면 알 수 있을까
몇삽 파고 들면
그속에 모닥불이 숨어 있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천둥번개가 있고
봄의 死月 숨어 있겠지
서리꽃에서 초목의 죽음을 보는 것은 봄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고
서리꽃에서 내생을 보는 것은 지금 내가 윤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생사(生死)없는 그자리 찾고 있다
12.희생은 단풍의 이름으로 다시 붉게 돌아와
인묵 김형식
낙엽
지울 수 없는 저 상처
저 이슬방울도
저렇게 곱다는 것은
티가 없이 저렇게 하나인 것은
꼼짝없는 끔찍한 일방적인 희생이야
누가 태양의 활시위에
살을 재어 쏘아댔는가
울컥 토하는 비릿한 심장의 선혈이 아니고서야 저리 붉을 수가 없지
분명 영롱한 저 이슬방울도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된 원혼들의 눈물이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