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눈
패딩 점퍼에서 오리 털이 찔끔 삐져나온다
나는 박 선생과 이 선생이 볼까 봐 그 이물이 나오지 못하게 다시 밀어 넣는다
강 선생이 파란 사각 테이블로 가져온 빵을 손끝으로 뜯어 먹는다
우리는 모두 선생이라 부르기로 했다
파스테르나크는 푸시킨의 사망일에 태어났습니다 톨스토이 <부활>삽화 화가와 피아니스트 사이에
나는 1212 군사 반란 일에 무일푼의 부모 밑에 태어났다
찔끔 삐져나올 때 누군가 볼까 봐 다시 나오지 못하게 집어넣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주먹을 쥐고 힘차게 울었을 것이다
어려운 사람과 어려운 습성과 어려운 세월이 계속될수록
다시 삐져나오는 오리털
구름 한 점 찾기 힘든 맑고 화창한 겨울날엔 어딘가로 난입하기에 좋다
태어나기에도 죽기에도
우루루 몰려가고 몰려오며 세를 불리기에도
그날도 그랬다
선생들은 모두 웃고 있다 나도 따라 웃느라
내 손에서 떨어진 빵가루가 옷에도 묻고 바닥에도 떨어지고 입가에도 묻는다
망원동望遠洞
찢어진 나의 눈은 보이지 않는 곳에 놓고
나는 멀리 보이는 것들을 본다
건물 벽을 오르는 건담
칠 벗겨진 삼일사우나
물웅덩이처럼 골목으로 움푹 들어간 고철상
여기가 핫 플레이스지
시를 쓰기도 연애를 하기에도
그래서 반쯤은 진실인 곳
찻잔에 떠 있는 조명은 외눈박이 태양과 같아
마실 때마다 흩어졌다 모여드는
형이 집행되는 순간에도 무죄를 주장하는 사형수와
원인모를 사고로 죽은 김주혁과
새벽마다 비질을 하던 자살한 문간방 힘찬이 엄마와
백댄서 힘찬이와
숲속 같기도 갯벌 같기도 한 이곳에서
찢어진 나의 시를 조각조각 다시 붙여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잘하는 사람이 좋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좋아
누군가는 잘하는 사람을 구하고
나는 그저 잘 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