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면 인터넷을 열어서 화면을 훑어본다. 관심 있는 내용이 있으면 클릭해서 내용을 살펴본다.
요즘 MZ세대들은 유튜브도 보고 SNS 등 여러 가지를 한다지만 필자가 주로 보는 것은 뉴스 등에서 제목만 쭉 훑어보는데 눈이 띄는 제목이 있었다.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 ⓒ파이낸셜뉴스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듯이 뭘 어쨌다는 말일까? 기사를 열어 보았다.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 배우는 것이 검사 일의 매력"이라고 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서울서부지검 하보람 검사(변호사시험 4회·사진)가 영화 불법 다운로드를 유도하고 합의금을 뜯어낸 사건을 수사해 지난 5월 23일 대검찰청 우수 사례로 선정됐다는 파이낸셜뉴스의 인터뷰 기사였다.
하보람 검사. ⓒ파이낸셜뉴스
하보람 검사는 영화 불법 다운로드 사건를 수사하면서 '저작권법 위반 사건 수사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했다고 한다. 하 검사는 이 과정에서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이 조사했다. 영화업계 여기저기 연락해서 '어떻게 물어봐야 뭐가 나오는지'부터 물었다."라고 했다.
하보람 검사는 이번 수사를 통해 배운 저작권법 수사 노하우를 담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각 지방검찰청에 배포했다. 하 검사는 "내가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 품을 들이고 비효율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수사를 하다 보니 '다른 검사님들은 나처럼 무익한 시간 낭비를 안 하시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만들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하보람 검사 인터뷰 기사. ⓒ파이낸셜뉴스
하보람 검사가 저작권법 수사 노하우를 담은 '체크리스트'를 만들면서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 품을 들이고 비효율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수사를 하다 보니” 다른 검사님들은 자기처럼 무익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했다.
하보람 검사는 체크리스트를 만든 노하우를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라고 했는데 내용을 살펴보니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라는 비유는 아닌 것 같다. 하보람 검사는 맨땅에 헤딩하기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가 아니라 “티끌모아 태산”이나 “마부위침(磨斧爲針)”이 더 어울리는 비유가 아닐까 싶다.
맹인모상. ⓒTV조선 광화문의 아침
“장님 코끼리 만지기” 즉 맹인모상(盲人摸象)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만 가지고 전체를 아는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맹인모상(盲人摸象)은 불교 경전인 ‘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진리에 대해 말하다가 대신을 시켜 코끼리를 한 마리 몰고 오도록 하였다. 그러고는 장님 여섯 명을 불러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코끼리에 대해 말해 보라고했다. 제일 먼저 코끼리의 이빨(상아)을 만진 장님이 코끼리는 무같이 생겼다고 했다. 코끼리의 귀를 만졌던 장님은 코끼리는 곡식을 까불 때 사용하는 키같이 생겼다고 했다.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 마치 커다란 절굿공이같이 생겼다고 했다.
코끼리 등을 만진 장님은 평상같이 생겼다고 우기고, 배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장독같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꼬리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굵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주장하며 서로 시끄럽게 떠들었다. 이에 왕은 “보아라.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저 여섯 장님은 제각기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코끼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진리를 아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니라.”
그러나 우화는 우화일뿐 맹인모상에 나오는 사람처럼 코끼리를 두고 평상 같다느니 밧줄 같다느니 일부만 보고 자기가 옮다고 왈가왈부하는 시각장애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심청이와 심봉사. ⓒ지식백과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장애인을 여러 가지 용어로 부르다가 1981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현재는 15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중에서 시각장애인은 예전부터 장(杖)님이라고 했다. 시각장애인을 지팡이를 짚은 님이라고 높여 부른 모양이다. 그리고 소경이라고도 했다. 소경(少卿)은 고려 시대 종4품 벼슬 이름이다. 시각장애인 중에서 소경 벼슬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각장애인의 직업이 안마와 경읽기인데 평민이 양반집에 드나들기 위해서는 소경이라는 벼슬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장님 소경 외에 봉사라고 불렀다. 봉사는 조선시대 종8품 벼슬 이름이다.
조선시대 관직은 정(正)9품과 종(從)9품으로 모두 18품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이 드라마에서는 처음 관직이 종9품 참봉(參奉)이었고 그 다음이 종8품으로 내의원 봉사였다. 허봉사.
고려시대의 소경과 달리 조선시대에는 실제로 참봉이나 봉사를 제수(除授) 받는 시각장애인이 더러 있어서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을 봉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심청전에서도 심청이 아버지를 심봉사라고 불렀다.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고 모 방송국 라디오 프로에서 ‘심청전’을 하고 있었는데 한 애청자가 시각장애인을 왜 봉사라고 하느냐는 항의가 있었단다. 그러자 방송국에서는 심봉사를 심맹인으로 고쳐 불렀는데 심맹인이 되자 재미가 없어서 중도 하차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부산맹학교. ⓒ부산맹학교 홈페이지.
1981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장애인단체에서는 장애인의 바른 용어를 권장하고 비하 용어나 차별 용어를 순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장애인복지법에서 공식 용어임에도 일부에서는 아직도 맹학교를 고집하고 있다. 동창회에서 학교 이름 바꾸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란다.
장애인단체는 물론이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절름발이 불구 병신 장님 소경 벙어리 등의 차별 내지 비하용어 사용의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장애인에 대한 비하 소지가 있는 용어,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장애 관련 속담 표현 등의 관행은 그것이 장애인의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떠나서 개선되어야만 한다"라고 밝혔다.
요즘도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서는 벙어리, 봉사 등 장애인 비하 용어가 버젓이 사용되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
기자나 검사가 장애인복지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장애인 비하용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에도 오래전에 사장된 장님이라는 장애인 비하용어를 들고나오다니 어이가 없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한국언론진흥재단
덕분에 한국기자협회에서 제정했다는 ‘인권보도준칙’을 찾아 보았다.
‘인권보도준칙’ 제3장 1항에 ‘언론은 장애인이 자존감과 존엄성, 인격권을 무시당한다고 느낄 수 있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가.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표현에 주의한다.
나. 통상적으로 쓰이는 말 중 장애인에 대해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는 관용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 장애 유형과 장애 상태를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는다.
라. 장애인을 보장구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수동적 존재로 묘사하지 않는다.
마. 동정 어린 시각이나 사회의 이질적 존재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한다.
바. 장애를 질병으로 묘사하거나 연상시킬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전에 사용하던 '밥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은 식모(食母)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식모가 부정어로 쓰이면서 식모가 사라지고 가정부가 되었다가 파출부가 되었다가 가사도우미로 불리다가 요즘은 메이드라고 하는 것 같다.
한때 장애인(障礙人)은 장애자(障礙者)라고 했으나 어떤 사람이 왜 놈 자(者)를 붙이느냐 사람 인(人)을 붙이라고 항의하는 바람에 장애인이 되었다. 기자 학자 봉사자 노동자 등 여러 군데 자(者)가 사용되고 있는데 왜 유독 장애자(障礙者)를 비하의 뜻으로 해석했을까,
당국에서도 시끄러운 것은 질색이고 장애인이 원하니까 1989년 12월 30일 ‘장애인복지법’개정에서 장애인(障礙人)으로 못을 박았다. 따라서 모든 법조문이나 안내판 등을 다 바꿔야 하는 백해무익한 것 같지만, 이로부터 장애자는 비하용어가 되었다. 현재 장애인(障礙人)이 공식 용어이자 법률 용어이다.
이처럼 말은 살아있어서 시대에 따라서 생성 활용 소멸되기도 하는데 시대에 따라서 대중이 용납하면 괜찮은 말이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비하 용어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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