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 화폭 같은 시
― 안경라 시집 『아직도 너를 기다려』에 부쳐
나태주(시인)
1.
실상 나는 이런 글을 쓰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주된 장르가 시이고 평생 시만 써온 사람이므로 문학적 이론이 없고 분석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논리적이면서 설득력 있는 글을 쓰기에 부적절한 입장이다. 더구나 나이까지 많이 든 사람이라 시의 현장을 제대로 살피기에 또한 버거운 사람이다.
그러함에도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까닭은 오로지 개인적인 요구와 필요 때문이다. 독자분들께서는 이 점을 십분 살피면서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한다.
내가 이 시집의 주인공인 안경라 시인을 만난 것은 그다지 오랜 세월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2017년 7월, 미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하면서부터이다. 그때 나는 재미시인협회의 조옥동 회장의 초청으로 유성호 교수와 함께 미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재미시인협회 연례 세미나에 연사로 초청되었던 것이다.
여러 차례 찾은 미국이다. 그때마다 미주지역 교포 문인들의 문학단체의 문학행사에 연사로 가게 되었는데 지역도 한정되어 한결같이 L.A였고 만난 분들도 그쪽 분들이었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반복적으로 만나면서 미주지역에서 한글로 글을 쓰는 분들이 참 대단한 분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 덩치 크고 힘센 나라, 미끄러운 영어의 세상 속에 살면서 떠나온 고국을 잊지 못하여 한글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애국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한없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하든지 이분들을 좀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인을 돕는 일은 몇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발표 지면을 확보해주는 일과 시집을 내주는 일과 문학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 대종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동행한 유성호 교수와 협의했다. 우리가 이번에 미국에 왔다 간 기념으로 문학상을 하나 만들어봅시다. 그렇게 의기투합하여 만든 것이 해외풀꽃시인상이다.
어차피 미국의 시인들을 상대로 하는 상이니까 상의 주관을 재미시인협회와 공동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2017년부터 해외풀꽃시인상을 제정·시상하게 되었다. 모집과 시상은 재미시인협회가 맡고 재원조달은 내가 맡고 원고의 심사는 유성호 교수와 나의 딸이기도 한 나민애 평론가가 함께 하는 것으로 했다. 바로 그 상의 제1회 수상자가 안경라 시인이었다.
2.
시인의 시집 서문을 보면 이 시집이 9년 만에 내는 시집이라 했다. 그만큼 뜸을 들이면서 정성껏 쓴 시들이라 하겠다. 동료적 입장으로 볼 때, 이렇게 시집을 내고 시 앞에 엎드려 고뇌하는 시인들을 보면 스스로 묻게 된다. 왜 시인은 시를 쓰는가? 그리고 시집을 내는가?
대답은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하다. 시, 바로 그것이 아니면 문제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시인들은 시를 쓰는 것이다. 또 그렇게 쓴 시들이 소중하기 때문에 시집을 내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감정이 문제이다. 인간은 의외로 감정의 지배를 많이 받는 생명체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도 감정이 시켜서 하는 일이다.
어쩌면 시인들에게는 시를 쓰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삶 가운데서도 가장 값지고 보람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빠르게 변하게 되어 있다. 인간의 삶은 순간순간 흘러서 과거에 편입된다. 다만 기억으로 남는다. 그것을 우리는 추억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 추억을 감정적인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이다. 그런 점에서 안경라 시인의 이번 시집은 9년 동안의 자서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국땅에서 살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일들. 마음의 옹이 같은 것들. 그것들을 고스란히 내려놓은 문장들이 바로 이 시집이리라. 그런 입장과 안목에서 잠시 시집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3
시집을 읽으면서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시편들은 종교에 관한 것들이다. 종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편향적인 것이다. 영혼의 문제이며 내세에 대한 문제이다. 그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말할 문제가 아니다. 신념이라면 신념이고 환상이라면 환상이다.
각본이 다시 짜여지고
당신은 주연 나는 중년의 제자
새벽 세 시
닭이 세 번 울기 전
나는 또 그렇게 하겠지요
죽음이 에워올 때 당신을 모른다고
천년 하고 또 천년 넘도록
처음 그 눈빛 내 몸에 담고 살아왔다지만
검은 불꽃 튀기는 모닥불 가 사람들
세 번씩이나 다그쳐 물어 오면
나는 여전히 당신을 알지 못한다 배반해도
이천 년 전의 그 눈빛으로 나를 다시 보아 주실 건가요.
이것은 「눈빛」이란 제목의 작품 후반부이다. 시의 제목 아래에 ‘누가복음 22장을 읽고’란 부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고 또 그것은 예수님이 로마 병정들에게 잡혀가시던 날 밤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스승 예수를 배반한 베드로의 인간적인 유약함과 모순에 대해서 쓰고 있음이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다만 이것은 베드로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시인 자신의 문제이고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이다. 배반과 모욕 앞에서도 끝까지 용서해주시고 감싸주시는 절대자의 한없는 사랑! 그에 대한 눈물겨운 감사! 그것이 바로 신앙이 출발이요 귀결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당신을 알지 못한다 배반해도/ 이천 년 전의 그 눈빛으로 나를 다시 보아 주실 건가요.’ 이런 물음은 나의 물음이고 또 나의 대답이 필요한 대목이다. 안경라의 신앙시는 그만큼 절실하며 다급하다.
백 년 허리 위에서 나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지상에서의 무수한 그리움
또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태초의 뼈 하나 얻어 심겨진 오래된 눈물
봄 오면 귀향하는 벚꽃처럼 당신도
내 생명의 갱신을 위해
천년 건너 천년 가슴 어느 언저리쯤 오고 있는 중입니까.
이 글 역시 신앙시로 읽혀질 만한 작품이다. 제목은 「기다림」. 얼핏 인간끼리의 ‘기다림’으로 읽혀지지만 그보다는 신을 기다리는 내용이다. 어떤 기다림이든 기다림은 현재 여기에 없는 그 무엇을 원하는 마음이므로 간절하고 애가 타는 그 어떤 감정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시의 문장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 기다림은 다급하고 날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기다림은 그냥 기다림이 아니고 그리움을 바탕에 깔고 있는 기다림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누군가를 애타게 보고 싶어서 생기는 마음. 시인은 그리움의 마음으로 기다리는 존재를 현실 속에서도 볼 줄 아는 혜안을 얻는다. ‘봄 오면 귀향하는 벚꽃’이 바로 그 정체. 그렇지 않고서는 끝내 시의 느낌이 이토록 평온하고 달콤하기까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인의 몸을 찔러
피로 물들였는데도
장미는 그 가시의 이름을
온전히 제 몸에 섞어
죽을 때까지 함께 사는구나
오, 나의 주인이시여
당신도 이와 같아서
사람 가시 나를 품고
천년 하고도 천년 전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 가는군요.
「가시」란 제목의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절대자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을 내려놓고 스스로 마음의 평정을 얻으면서 구원을 만난다. 인내를 통한 승리이며 신과의 동행에서 오는 환희이다. 신앙시로서 백미라 할만한 작품이다.
4.
안경라 시인의 시집 가운데 그다음으로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오는 시는 이웃과 가족에 관한 작품들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비와 꽃」의 어머니. 「초경」의 딸아이. 「그냥」의 막내. 「노숙자」의 홈리스. 「제일 좋은 때」의 어머니. 「나 누구예요?」의 어머니. 「미쳤다」의 남편. 「아흔아홉 번째 아침」의 어머니. 「네가 행복하다면」의 아들. 「우울한 똥」의 아이. 「명언 두 줄」의 큰 오라버니. 「어여쁜 신부야」의 울보 신부. 「사랑한다는 말로 이별을 하고」의 어머니.
이렇게 작품 제목만 열거해봐도 대번에 알 수 있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시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맡은 배역이 있게 마련이다. 안경라 시인은 여성이므로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누나이거나 동생,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그 배역일 것이다. 그 많은 배역들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살아온 것이 안경라 시인의 인생일 것이다.
(A) 낮잠 드신 구순 어머니
꽃이 입술을 다문 고요한
오후 한나절
꽃잎을 떠난 나비 한 마리
어머니 심장 속에서 날갯짓하는가 보다
가슴 절벽을 뚫고 깊은 향기,
들숨
날숨
처음부터 꽃이셨던
어머니!
(B) 불면의 노모 입 다문 귀 옆에서
환갑을 넘긴 독신 아들
이제 그만 주무시라는 독백이
열 번보다 더 길게 밤을 보내고 있다.
(C) 내년 생신 카드엔 이렇게 써야겠네
어머니!
이 봄, 어머니도 살아 계시니 좋은 때입니다.
(D) 이국 하늘을 이고 집으로 돌아오며
어머니 까만 눈동자처럼
반짝이는 별들에게 물었다
나, 누구예요?
나는 누구예요?
(E)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지요
지상에서 눈물 한 방울 떨어지면
천상에서는 백 송이의 꽃이 핀다지요
오래전부터 사랑한다는 말로 이별을 준비하신 어머니
오늘 소녀처럼 곱게 단장을 하고 떠나십니다
세상의 문을 닫고 영원한 안식의 나라 문을 열고 가시는 길
어머니 가시는 길 꽃길 되소서
가장 크신 사랑의 손 잡고 가소서
바람과 구름과 새, 햇살과 꽃과 달빛
이런 것들과도 친구가 되는 나라에서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오래오래 평안하소서.
인용한 문장들은 모두가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들어간 작품들이다. (A)에서는 어머니에게서 ‘꽃’을 발견하고 (B)에서는 ‘불면’을 만나고 (C)에서는 ‘좋은 때’를 말하고 (D)에서는 ‘치매’를 보다가 끝내 (E)에서는 그 어머니와 ‘이별’을 하게 된다. 이별이라 하지만 슬픈 이별이 아니라 아름다운 이별이다.
인생에서 노년과 죽음은 괴롭고 힘든 시기이지만 피할 수 없는 생명의 과업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 기간과 그 일을 어떻게 견디고 넘기느냐에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살가운 피붙이가 있다면 훨씬 수월하게 건널 수 있는 강물일 것이다. 안경라 시인은 한 어머니의 좋은 딸로서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어 어머니와 동행함으로 아름다운 이별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딸, 이러한 이웃, 부러운 일이고 감사한 노릇이다.
5.
이 시집에는 인용하고 싶은 좋은 시들이 많다. 하지만 결론 삼아 두 편만 더 시 전편을 인용해볼까 한다.
급성간염으로 힘들었던 여학생 때
큰 오라버니는
야 임마, 그렇게 아플 때 시를 써 봐
사랑하는 사람 만나 스물 넷에
나는 재미동포가 되었다
이십여 년 만에 친정 가서
큰오빠 미안해요 그동안 자주 소식 주지 못해서
아냐 괜찮아, 너만 잘 살면 돼.
―「명언 두 줄」 전문
짐짓 심상한 것 같지만 많은 내용이 숨어 있는 글이다. 인생 삽화다. 단 두 줄. 단 두 마디의 말. 그렇지만 그 말은 인생을 바꾼 말이고 또 인생을 종합 정리한 말이다. 20년, 30년을 사이에 두고 메아리처럼 울리는 말이다. 멀찍이 인생을 바라보며 인생을 다스려주는 말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힘이 있는 말인가!
산책을 하다가
수국 한 대궁 꺾어 오며 미안해 미안해
누군가 아버지를 이 땅에서 데려가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수국처럼
나는 그 누군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꽃의 눈물은 말라서 투명하고
내 기억은 나이 먹어 이별을 이해하네.
―「수국을 꺾으며」 전문
이 작품 역시 평범한 것 같지만 범상하지 않은 작품이다. 생명이 외경에 대해서 쓰고 있고 숨겨진 미세한 사실에 대한 소중함을 말하고 있음이다. 적어도 인생을 바라보는 겸허함과 깊이가 없으면 도달하기 어려운 세계다.
안경라 시인의 시는 어느 작품을 읽든지 그 작품의 수준이 고르다는 데에 우선 신뢰가 간다. 옹골차다. 한편도 허술한 시가 없다. 거의 모든 작품이 성공해 있다. 그뿐 아니라 말법이 바르고 신선하다. 이 점은 특히 시인으로서 중요한 점이다. 오래 외국에 거주하면서 한국어권에서 멀어지다 보면 생동감 있는 한국어를 구사하여 시를 쓰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극복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고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그다음으로 말해주고 싶은 점은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것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고 소중한 일이다. 그것 자체가 희망이고 하나의 사랑과 같은 것이다. 태평양 바다 건너 이렇게 좋은 감성과 안정된 목소리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는 것은 다같이의 축복이고 감사다. 부디 이번 시집에서 멈추지 말고 더욱 멀리, 더욱 오래, 앞으로 나아가주시기 바란다. 당신의 진경(進境)을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