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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재 목사
오늘 읽어 드린 전도서 말씀에 보면, 모든 것에는 정한 때가 있다는 사실과 그러나 하느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고 하였으며, 그렇게 하신 까닭은 사람으로 하느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에서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를 알려고 자세히 연구하여 보았으나 그가 얻은 결론은 그것은 신비의 세계요, 사람의 지혜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요, 다만 경외심(敬畏心)을 가지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만이 합당한 일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전도서 기자는 자연의 때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현상 속에서 주기적인 시간의 흐름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에 따라 우리 생애 속에서도 주기적인 시간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는 낮과 밤이 있어서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생활을 하면 건강하지만, 그렇지 아니할 때는 우리의 몸은 병들게 마련입니다.
일년에는 사계절이 있어서 봄에는 만물이 소생하여 싹이 나고 여름에는 왕성하게 모든 생물이 자라고 가을에는 열매를 거두고 겨울에는 모든 생물이 위축되어 휴식으로 들어갑니다. 이 계절의 흐름을 민감하게 잘 따라야 농사가 잘 되고 풍성한 추수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도 이 사계절에 잘 순응시켜 나갈 때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애도 일정한 흐름이 있어서 그 흐름을 잘 따를 때 우리의 생애는 보람있는 생애가 될 것입니다. 한참 기억력이 왕성할 시기에 부지런히 공부하고 3,40대에는 열심히 일하고 5,60대에는 일한 결실을 거두고 70대에서는 자기의 생애를 정리한다면 짜임새 있는 생애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는 이런 전체적인 흐름뿐 아니라 또 다른 때의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에 보면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살다보면 고난 당할 때도 있고 즐거운 때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마치 바다의 조수가 밀려올 때가 있고 나갈 때가 있는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가 이런 생의 때를 잘 파악한다면 보다 역동적인 삶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전도서는 허무를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보다 큰 하느님의 세계를 발견하면서 하느님의 역사가 역동적이어서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도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인간의 삶은 마치 파도가 출렁이는 것과 같이 오르내리면서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한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삶이 성장한다는 것은 계속 올라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내려가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 깊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내려감을 올바로 이해할 때 우리의 삶은 건강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내려감도 성장이다
우리는 살다보면 우리 마음의 조수가 밀려 나갈 때가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실망과 비애를 느낍니다. 하느님의 손에 온전히 자기의 생을 맡기는 참된 성도일지라도 때로는 모든 것이 우울하게 보이고 하느님의 영원하신 빛이 희미하게 비추인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하심과 능력의 온전하심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기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서에 보면, 엘리야 예언자가 한번은 갈멜산상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하느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준 일이 있었고, 또 그가 기도하므로 삼년 반 동안 내리지 아니하던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능력을 행사한 엘리야였지만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고 하자 광야로 도망을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기진(氣盡)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하고 쓰러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예언자였지만, 그에게도 이와 같이 조수가 밀려 나간 때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누구보다도 하느님과 깊은 신앙의 관계를 맺은 예언자였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확실하게 받고 있었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조수가 밀려나간 때가 있었습니다.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 (20:14,18)
시편에서 우리는 많은 시인들이 탄식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13: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42:5)
이런 모든 예를 통하여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생활에도 밀물 때가 있고 썰물 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이 거짓되고 헛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얻은 후에도, 상당한 신앙의 경력을 가진 후에도 신앙의 썰물 때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고통이 다가오고 실망과 좌절을 맛보며,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에 눌릴 때가 있습니다. 이래야 좋을지 저래야 좋을지 갈등하면서 밤을 지새울 때가 있습니다. 당장 모든 것을 다 집어치우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낙심하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바로 그런 썰물의 시기야말로 보다 크게 성장하기 위한 준비의 때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말해주는 것처럼 고난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보다 크게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어린 아이들이 병을 앓고 나면 그만큼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있어서 썰물의 시기는 바로 우리를 지금보다 더 자라게 만들어주는 밑거름이 됩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도 마찬가지로 의심과 갈등을 겪을 때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됩니다. 아무런 의심도 갈등도 경험하지 못한 신앙은 작은 폭풍에도 곧 무너지는 모래 위의 집처럼 허약한 신앙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역동적으로 성장하려면 실패와 좌절, 고난과 아픔, 의심과 갈등을 잘 극복하여야만 합니다. 전도서가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영생으로 도약하기 위하여 움츠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허무를 올바로 깨달을 때 영원한 생명을 향하여 도약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은총의 때를 기다려라
이러한 고난의 때를 만나면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조수의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조수가 밀려나갈 때가 있는 것과 같이 반드시 밀려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은총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분명히 은총의 때가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시 102:13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다." 사 49:8
이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박국 2장 3절에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기술자가 한번은 대양의 만(灣)을 가로지르고 있는 무거운 다리를 들어올리는 작업을 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에게는 그것을 들어올릴 만한 크레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리 밑에 거대한 부함(浮艦)을 수없이 동여맨 후 때를 기다렸습니다. 서서히 조수는 큰 힘을 가지고 밀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점차 다리가 들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어려운 짐도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있으며, 이 힘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들도 은총의 때를 기다려 그 힘을 받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조수의 때를 기다리는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강하고 담대하여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시 27:14
너는 하느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느님의 선하심과 그의 은총을 확신하면서 그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 때를 알지 못하여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탄식하여 부르짖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 때가 늦어지고 알 수 없다 하여도 의인은 성실함으로 그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왜 우리에게 이런 썰물의 때를 주셨는지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도 그것을 알려하지 말고 선을 행하며 은총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다"고 전도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어려운 때에 잠잠하고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다급하게 인간의 방법을 강구한다 하여도 그것은 헛수고에 그치고 맙니다. 조급하지 말고 기다리면서 우리의 마음에 하느님의 선하심과 그의 위대하심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에 위로와 평강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급해도 겨울에 벼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지고 굶을 지경이 되어도 봄을 기다려 파종하고 여름에 가꾸어 가을에 거두어들입니다.
겨울과 같이 찬바람이 몰아치는 때에는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입니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반드시 봄은 오고야 마는 것처럼 우리의 슬픔의 때는 반드시 은총의 아침을 만나 기쁨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그의 노여움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이를 깨달아 알 때 우리는 현재의 괴로움과 번민을 능히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에게 은총의 때가 오고, 봄의 계절이 왔을 때 우리는 이 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그 능력을 힘입어 아름다운 역사를 이룩하여야 할 것입니다. 호세아 10장 12절에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였고, 이사야서 55장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농사철에 때를 놓치면 농사를 망치듯, 은총의 때를 잃으면 우리는 주의 역사를 이룩할 수가 없으며, 게으른 종으로 책망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은총의 때를 잘 이용한 사람들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때를 놓쳐 버린 사람입니다. 은총의 조수가 밀려 올 때 부지런히 바다에 배 띄워 일 해야할 것입니다. 언제나 때를 놓친 사람들은 후회하게 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하였습니다. 해가 떠 있을 때 부지런히 일해야지 해진 다음 불을 밝혀가며 일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열매를 거두어 들여야 하겠습니다.
자연 현상과 우리의 생애 속에 리듬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 생활에도 때의 흐름이 있습니다. 이 때를 잘 파악하여 지혜롭게 처신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건전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신앙의 썰물 때는 조용히 기다리며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의 선하심과 크심을 생각하고, 신앙의 밀물 때가 되면 부지런히 일하여 좋은 결실을 이룩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신앙의 갈등을 느끼며 낙심되는 일을 만난 분이 계십니까? 조용히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의 은총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하느님은 은총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성실함으로 기다리면 하느님은 밀물처럼 은혜를 부어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뜨거운 감격과 은총의 기쁨을 체험하는 분이 계십니까? 부지런히 행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기도하시며, 열심히 성경 공부하고, 열심히 봉사하십시오. 밀물처럼 밀려오는 은총의 물결을 타십시오. 그러면 나의 능력 이상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이룩할 것입니다.
썰물 때나 밀물 때나 거기에 하느님의 신비한 역사가 깃들여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총과 더불어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역동적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지만, 죽을 때가 있으면 또한 부활할 때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침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은 계절적으로 수확을 끝내고 겨울을 맞이하는 때입니다. 우리가 가을을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고 하여 조용히 들어앉아 책을 읽는 계절로 생각하여 왔습니다. 여름 내 들떠 있던 우리의 삶을 차분하게 정리하며 독서와 명상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도시의 삶은 이런 계절의 변화에 별로 개의치 아니하면서 살아가기에 어찌보면 그 삶이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보다 역동적인 삶을 이루려면 하느님의 때를 따라 일할 때와 안식할 때를 분별하면서 그 흐름을 바르게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의 은총의 때를 분별하면서 역동적인 삶을 이루어 마침내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힘쓰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