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은 답관체 시편이라고 한다. 8절 씩 22개의 덩어리, 총 176절
22개의 히브리어 자음을 시작 되는 22개의 덩어리의 첫 머리에 놓는다.
정교한 시이지만, 내용이 단순하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 율법이고,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율법의 다른 표현들(이음동의어)은 1절에서 16절까지 10개가 나온다. 율법, 증거, 법도, 율례, 계명, 판단. 말씀, 규례, 도, 길
[시]119: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완전하다는 것과 온전하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온전하다는 것은 완전해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어상으로보면 ‘복이 있다’(아쉬레)라는 말로 시작한다.
[시]119:2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법정에서 증거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증언도 증거에 속한다. 누군가 증언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이 없는 말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증언하신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전심으로라는 말은 신명기적인 단어이다. 마음속의 모든 것을 다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마음속에 간절함이 있으면 설교가 달 것이다.
[시]119:3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참으로라는 말은 느낌표를 대신한다. ‘진실로’라는 말과 같다. 도란 길이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따라 산다.
[시]119:4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여기서의 명령이란 강력한 명령이다. 주인이 종에게 하는 명령이고, 종이 주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 때는 죽음이 온다.
지킨다는 말은 단순히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이 지키는 것이다.
‘지킨다’는 말은 하고 싶어서 시도한다는 말과는 큰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가끔 목표를 세운다. 다이어트를 한다든가, 금연을 한다든가, 술을 끊겠다든가, 영어를 배우겠다든가, 성경 일독을 하겠다든가, 새벽예배를 빠지지 않겠다, 하루 30분 기도하겠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건강을 위해서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단지 건강 유지를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성공할 수 없다. 아직 건강하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집에 들여다 놓은 러닝머신이나 실내 자전거들이 빨래걸이나 코트 걸어 놓는 것으로 사용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만약 1년 내에 10kg을 감량하지 않으면 사형을 당한다거나 한 달 내로 10kg을 감량하지 않으면 1kg당 천만 원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고 하면 전력을 다해서 다이어트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시도하다가도 ‘이번 생은 이렇게 살지 뭐’라는 허무한 말로 끝을 내게 되는 것이다. 어떤 목표를 세우든지, 그 목표는 절박한 것이 되어야 한다.
내가 영어를 잘 배우지 못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 한국에 살면서 영어가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 배우기를 결심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절박함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살면서 영어할 일도 없는데...’라고 하면서 흐지부지하게 되었었다.
성경을 일독 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사람들도 ‘내가 읽어봐야 뜻도 잘 모를텐데, 설교나 듣지 뭐.’라고 생각하며 끝장이 나고, 기도를 결심한 사람들도 ‘기도만 하고 있으면 뭐가 되나.’라고 하며 끝장이 난다.
지킨다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함이 들어 있는 말이다.
[시]119:5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길을 굳게 한다는 말은 평평한 땅으로 가게 해 달라는 말이다. 다른 시편에 나오는 ‘내 발을 반석위에 두십시오.’라는 말과 같다. 이스라엘 지형은 평평한 곳이 별로 없다. 전투를 할 때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군인들이 실력을 발휘한다.
[시]119: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율법을 하나님의 법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면 율례는 하나님의 법을 실천에 옮길 실천적 세부사항을 의미하고, 규례는 모든 법에는 형법이 존재하듯, 하나님의 처벌의 면을 강조하는 율법의 명칭이다.
주의한다는 말은 정신을 집중한다는 말이다.
부끄럽지 않는다는 말은 심리적인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때에 죄인으로 판명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시]119: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여기서 판단이라고 번역된 말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배우는 것이고, 배운 후에 진정한 감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119:8 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나를 아주 버리지 마십시오’라는 말은 극심한 고난 중에서 하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여기서의 청년이란 길을 찾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산을 올라갈 때는 길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으로 향해 닦여진 길, 사람들이 이미 걸어올라 간 길을 따라 올라가야 안전하다.
성도가 성도 아닌 사람들과 이 세상을 어우러져서 사는 것은 매우 힘들다. 서로 생각하는 것이 틀리고 믿는 것이 틀리고 섬기는 것이 틀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길은 하나님의 진노로 끝나지만, 성도의 길은 하나님의 칭찬으로 끝난다. 율법은 성도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시]119: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율법을 따라 살 수 없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우리가 말하는 죄란 하나님의 관계가 잘못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두었다는 말은 옷 속 깊은 곳에 숨겨 놓았다는 것이다. 귀중한 것일수록 가장 비밀한 곳에 넣어 둔다. 중국 사람들은 허름한 옷을 입고 다녀도 지갑 속에 오만원 짜리 지폐를 가득 넣고 다닌다. 어디를 가도 깊숙한 곳에 넣어 둔 현금 다발이 있으니 든든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은 돈을 좋아한다고 곡해하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만 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깊숙한 곳에 믿을만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3장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시]119:12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율법을 내게 가르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찬송하겠습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겠다.
[시]119:13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입술로 선포한다는 것은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낭송한다는 것이다.
[시]119: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여기서 ‘같이’라는 말은 ‘보다’라는 말로 번역될 필요가 있다.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보다 더 율법을 즐거워합니다.’
[시]119:15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나의 조부는 내가 청년이 되었을 때까지 살아계셨다. 조부와 함께 한 방에서 자는 날이 많았는데, 늘 뭔가를 중얼거리고 계셨다. 그것은 유교 경전이었다고 기억된다.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기 전에는 길을 찾는 사람들은 유교의 가르침에 의지했다. 유교경전에서 말하는 인의예지신, 사랑과 의지, 예의와 지식, 신념이라도 길로 삼고 걸어가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시]119:16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주의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주의 말씀들이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말 속에 살아간다. 거짓말과 좋지 않은 말 속에 살아가면 즐겁지 않고 패배자가 된다. 우리가 비록 세상 사람들과 뒤섞여 살아도 세상 사람들과 같은 레벨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부정적인 말, 경건하지 않을 말을 해도 거기에 동조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