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수필 월평
진정한 사랑과 안온한 인정
한국산문 월평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오늘을 소중히 아낄 줄 알고, 어제를 부끄럼 없이 얘기 나눌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문학도 필요하다. 수필의 멋은 냉철한 이성과 논리보다는 오히려 안온한 인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삶의 잔잔한 연민과 따뜻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다루게 작품들은 하나 같이 우리가 풀어야 할 진정한 사랑에 대한 해답을 준비하고 있기에 소중하다고 하겠다. 옛 가마솥처럼 은근하면서도 쉽게 식지 않는 사랑이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감상해 보자.
유병숙의 <그림이 있는 정원>이란 작품에 제일 먼저 주목하게 됨은 아마도 수필의 평가 요소 여섯 가지 중에서 '가치성'의 기준 때문일 것이다. 문학 작품은 결국 독자를 이끌어야 한다. 감동을 주어야 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어야 한다. 이 작품의 강점은 '구족화가'를 제재로 다루어서인지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는 점이다. 구족화가가 그린 소나무를 보고 감동을 받은 작가는 수필 속에서 구족화가가 되기까지의 스토리를 감동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우리에게 사랑의 소중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삶의 권태가 찾아들 때 한 번쯤 광천에 있는 수목원 '그림이 있는 정원'을 찾아가 볼 일이란 작가의 권고가 살갑다. 아버지와 장애인 아들의 치열한 삶이 아버지가 가꾼 소나무숲과 아들의 소나무 그림으로 잘 형상화되어 있어 감동을 준다. 주어진 운명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받아들인 그들 부자의 모습이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나무를 닮아 있었다는 마지막 결구 문장은 인간이 위기에 처했을 때 취해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잘 말해준다고 하겠다.
문윤정의 <나의 장례식과 스승의 장례식>은 웰다잉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수필이다. 우리 인간사를 지배하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다면, 아마 사랑과 죽음일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스승의 마지막 가는 길에 제자로서 인간적 도리를 다 하는 모습이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스승의 마지막 저서인《신화 읽는 시간》을 읽고, 죽음을 예감한 스승을 추모하며, 작가는 작년 이맘 때 치룬 자신의 '장례식’을 떠올려 본다. "스승의 영혼이 담긴 저서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무수한 공명과 울림을 주고 있으니 육신만 사라졌을 뿐, 스승은 죽은 것이 아니다."라는 멘트로 작가는 어떻게 죽느냐보다 어떻게 살아 왔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내비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랑이다. 이 수필에는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 이루어내는 사연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어 감동을 준다. 수필을 감동에 이르게 하는 요로에는 글쓴이의 인간미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을 이 수필이 증명하고 있다.
이마리나의 <내 안에 네가 있다>도 감동을 주는 수필이다. 인간의 여러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희생과 헌신일 것이다. 이 글에는 아들의 간을 이식받은 남편의 고뇌를 지켜보는 작가의 체취가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남편이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소생한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는 이야기와 퇴원을 앞둔 남편이 케익을 자르며 아들에게 전하는, '내 안에 네가 있다'는 말이 이 수필에서 단연 돋보이는 대목이다. 간이 필요한 아버지에게 간을 바치는 아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독자의 누선을 자극하는 가치 있는 사건이다. 이런 아들의 용기 있는 결단을 수필화한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수필은 아들에게 미안해하는 남편을 위한 작가의 선물이다. 수필이 자기 삶의 한 가운데 녹아 있는 삶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선양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때, 이 수필은 그 역할에 충분히 값하고 있다고 하겠다.
임정화의 <노자와 진딧물 전성시대>는 삶의 관조, 그 본질을 향한 투시작업이 빛나는 수필이다. 작가는 어느 날, 수목원으로 가는 길에서 가느다란 줄기에 꿀을 발라 깨 범벅이 된 풀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깨가 아니라 진딧물들이다. 작가는 이들의 공생 관계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발견하지만, 이 수필을 이끌어나가는 핵심 코드는 그 통통한 진딧물들을 보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고혈을 빠는 탐욕스럽고도 못된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허둥대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영혼을 구할 정신은 과연 무엇인가를 겨냥하고 있다. 대립되는 것은 영원히 대립되는 것으로 남지 않고, 오히려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역동적으로 변해간다는 닐스 보어의 생각을 긍정하는 것은 만물의 자생력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확언은 주제의식의 구체화다. 이 수필의 가치는 사물의 본질을 보는 혜안에서 나온다고 하겠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신음하는 섬의 내막을 문학화한 박후영의 <굴업도>, 번쩍이는 외관에 정신을 빼앗기는 남정네의 가벼운 시선에 실소를 담아낸 엄현옥의 <이상한 승부>, 평창 봉평골을 기행하면서 허 생원의 그림자를 더듬고, 수미상관의 기법으로 글을 멋지게 마무리한 안명자의 <메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외모나 외관 중시 풍조를 비판하며 내면이 아름다운 삶을 강조하는 박상주의 <샹그릴라 신드롬>, 두 편의 시를 발단과 결말에 놓고,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말미암아 부부관계의 위기까지 갔던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낸 <시 두 편의 세월>도 진지한 성찰을 안겨주는 좋은 작품이다. 이들 수필들이 기억의 저편 모습을 서정어린 그림으로 펼쳐 보이는 것은 감동이 내부적으로 연소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