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주澧州 약산藥山 유엄惟儼 선사
그는 강주絳州 사람으로서 성은 한韓씨이다.
17세에 조양潮陽 서산西山의 혜조慧照 선사에 의해서 출가하였고,
당나라 대력大歷 8년에 형악衡嶽의 희조希操 율사에게 구족계를 받고서 말했다.
“대장부가 마땅히 법을 여의어서 스스로 청정할지언정,
어찌 사소한 일로 세행細行을 일삼겠는가?”
그리고는 바로 석두를 뵙고서 비밀히 현묘한 종지를 깨달았다.
어느 날 대사가 앉았는데 석두가 보고서 물었다.
“그대는 거기서 무엇을 하는가?”
“전혀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가롭게 앉은 것이군.”
“한가롭게 앉았다면, 그것마저도 하는 것입니다.”
“그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천 명의 성인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석두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지금까지 함께 머물면서도 이름을 모르고
운運에 맡겨 서로 거느리면서 그렇게 가는구나.
예로부터의 뛰어난 성현도 알아채질 못하는데
예사로운 범부들이 잠깐 사이에 어찌 밝힐 수 있으랴.
從來共住不知名 任運相將只麽行 自古上賢猶不識 造次凡流豈可明
어느 날 석두가 이렇게 말했다.
“언어와 동작으로는 교섭하지 말라.”
대사가 대답했다.
“언어와 동작이 아닌 것으로도 교섭하지 마십시오.”
“이 속은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 속은 돌 위에다 꽃을 심은 것과 같습니다.”
석두가 옳다고 여겼다.
나중에 대사가 예주의 약산에 머무니,
대중이 구름같이 모였다.[자세한 어록은 다른 책에 있다.]
어느 날 대사가 경을 보는데, 백암柏巖이 말했다.
“화상은 원숭이 놀음을 쉬게 하실 수 있습니까?”
대사가 경을 탁 덮으면서 말했다.
“해가 어디쯤인가?”
“바로 정오입니다.”
“아직도 그런 문채文彩가 남았느냐?”
“저에게는 없다는 것도 없습니다.”
“그대는 몹시도 총명하구나.”
“저는 그렇거니와 화상의 높으신 뜻은 어떠하십니까?”
“나는 절름거리고 비틀거리는 등
백천 가지 추태를 부리면서 세월을 보낸다.”
대사가 도오道吾와 이야기를 할 때에 이런 말을 했다.
“명계(茗谿:道行 禪師)는 전생[上世]에 절찰(節察:순사)이었나 보다.”
도오가 물었다.
“화상께서는 전생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나는 뒤틀리고 여윈 채로 그럭저럭 살았다.”
“왜 그랬습니까?”
“나는 일찍이 다른 책을 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석상石霜이 따로 말하기를
“책은 일찍이 펼친 적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원주가 와서 아뢰었다.
“종을 쳤습니다. 화상께서는 법당에 오르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그대는 내 발우를 좀 들어다오.”
“화상께서는 손 없이 지낸 지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대는 그저 가사를 헛되이 걸쳤을 뿐이구나.”
“저는 그렇거니와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나는 그러한 권속이 두지 않는다.”
대사는 원두(園頭:밭을 관리하는 스님)가 나물 키우는 것을 보고 말했다.
“키우는 것은 막지 않겠다만 뿌리가 나지 않게 하라.”
“뿌리가 나지 않게 하라고 하시면 대중은 무엇을 먹습니까?”
“그대도 입이 있는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모든 경계에 미혹되지 않습니까?”
“듣게나. 그것이 어찌 그대를 장애하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경계가 그대를 미혹시키던가?”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길 가운데 놓인 지극한 보배입니까?”
“아첨하거나 왜곡하지 말라.”
“아첨하거나 왜곡하지 않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나라가 기운다 해도 바꾸지 않는다.”
어떤 스님이 두 번째 와서 의탁하기를 청하자, 대사가 물었다.
“누군가?”
“상탄常坦입니다.”
대사가 꾸짖었다.
“먼저도 상탄이더니, 나중에도 상탄인가?”
어느 날 원주院主가 대사에게 상당上堂을 청했다.
대중이 다 모였는데도 대사는 잠자코 있더니만,
그대로 방장으로 돌아가서 문을 닫았다.
원주가 뒤를 따라가서 말했다.
“화상께서 저에게 상당법문을 허락하시고서
어찌 방장으로 돌아가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원주야, 경에는 경사經師가 있고,
논에는 논사論師가 있고,
율에는 율사律師가 있는데,
어찌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가?”
대사가 운암雲巖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똥을 풉니다.”
“그것은?”
“있습니다[在].”
“그대는 무엇 때문에 왔다갔다하는가?”
“다른 것과 바꾸려고요.”
“어찌하여 한꺼번에 하지 않는가?”
“화상은 사람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지 않아야 하는데.”
“어떻게 말하리까?”
“짊어진 적이 있기는 한가?”
대사가 앉았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오뚝하게 앉아서 무엇을 사량思量하십니까?”
“사량하지 않는 것을 사량한다.”
“사량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사량한단 말입니까?”
“사량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니라[非思量].”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고향에 돌아가고자 할 때 어찌해야 합니까?”
“그대의 부모는 온몸이 붉게 부어서 가시덤불 숲에 누웠거늘,
그대는 어디로 돌아간다 하는가?”
“그렇다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고향으로 가야 한다.
만일 그대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대에게 음식을 끊는 법을 일러 주겠다.”
“말씀해 주십시오.”
“두 차례씩 상당하였으나 쌀 한 톨도 깨물어 터뜨리지 못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그대가 입을 열기 전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대사가 준포납遵布衲이 불상을 씻는 것을 보고서 물었다.
“이것은 그대가 씻고 있지만, 저것도 씻을 수 있는가?”
준포납이 말했다.
“저것을 잡아서 가져오십시오.”
대사가 그만두었다.
[장경長慶이 말하기를 “삿된 법은 유지하기가 어렵구나”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장경이 그렇게 말한
것이 손님 쪽에 있는가, 주인 쪽에 있는가? 대중 가운데에서는 이를 부처를 씻는 말이라고도 하고 겸해서 하는 말이라고도 하는데 결론적으로 선한 말인가, 결론적으로 선하지 못한 말인가?”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의심이 있으니, 스님께서 풀어 주십시오.”
“상당했을 때에 오라. 그대를 위해 의심을 풀어 주리라.”
저녁이 되어 상당했다. 대중이 모여서 좌정坐定하자, 대사가 말했다.
“오늘 의심을 풀어 달라고 청한 상좌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스님이 대중 앞에 나와서 서니,
대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붙들고서 말했다.
“대중아, 이 스님이 의심이 있단다.”
그리고는 놓아 버리고 방장으로 돌아갔다.
[현각이 말하기를 “그에게 의심을 풀어 준 것인가?
풀어 주었다면 어디가 푼 곳인가? 의심을 풀지 않았다면
상당할 때에 의심을 풀어 주겠다고 하지 않았던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반두(飯頭:공양을 담당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가?”
“3년 있었습니다.”
“나는 전혀 그대를 모르겠는데…….”
반두가 어쩔 줄을 모르다가 화를 내고 떠났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몸과 목숨이 급한 곳이 어디입니까?”
“잡종雜種을 심지 말라.”
“무엇으로 공양하오리까?”
“물건이라 할 것이 없다.”
대사가 공양주供養主를 시켜 교화 다니는 스님을 조사하게 하였다.
감甘 행자가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 스님이 대답했다.
“약산藥山에서 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
“교화하러 왔습니다.”
“약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행자께 무슨 병이라도 있으십니까?”
감 행자가 은전 두 냥을 던지면서 말했다.
“만약 사람이 있으면 돌려보낼 것이고, 사람이 없으면 그냥 두십시오.”
대사가 스님이 너무 빨리 돌아온 것을 괴이하게 여기니,
그 스님이 말했다.
“불법佛法을 물어서 은전 두 냥을 얻었습니다.”
대사가 그 스님에게 그 이야기를 다시 하게 하였다.
그 스님이 말을 마치자, 대사는 그 스님에게 빨리 행자의 집으로
돌려주게 하였다. 행자는 스님이 돌아온 것을 보고서 말했다.
“스님이 오셨으니, 은을 보태서 시주하겠습니다.”
[동안同安이 대신 말하기를 “그런 물음을 알고 있었다.
끝내 약산에서 왔다고는 말하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대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허虛와 실實을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네.”
“외람스럽습니다.”
“시험 삼아 나를 헤아려 보라.”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운암雲巖이 나중에 동산에게 묻기를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라고 하니,
동산이 대답하기를 “화상의 생일을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대사가 불佛자를 써 놓고 도오道吾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글자인가?”
도오가 말했다.
“불佛자입니다.”
“말 많은 중이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자기 일을 아직 밝히지 못했으니,
화상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대사가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한마디 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그대들이 말끝에 즉각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약간은 견주겠지만,
만일 다시 사량思量이 끼어든다면 도리어 나의 죄가 된다.
그러니 우선 입을 다물고 서로 누를 끼치는 것을 면하는 것만 못하다.”
대중이 밤에 뵈러 왔을 때에 등불을 켜지 않고 대사가 말했다.
“내게 한 마디[一句]가 있는데,
특별히 송아지가 새끼를 낳아야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이때에 어떤 스님이 말했다.
“송아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스님께서는 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시자야, 등불을 가져 오라.”
그 스님이 물러나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
[운암이 나중에 동산에게 이야기하니, 동산이 말하기를
“그 스님이 알기는 했지만그저 절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달마 조사께서 오시기 전에도 이 국토에 조사의 뜻이 있었습니까?”
“있었다.”
“이미 조사의 뜻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또 오셨습니까?”
“다만 있다고 하기 때문에 오셨을 뿐이다.”
대사가 경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평소에 남들에게는 경을 보지 말라고 하시더니,
어째서 스님께서는 보십니까?”
“나는 그저 눈을 가리려는 것이다.”
“제가 화상을 본받아도 되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쇠가죽도 꿰뚫어 보아야 하리라.”
[장경長慶이 말하기를 “눈이 무슨 허물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장경은 약산의 뜻을 알았을까,
몰랐을까?”라고 하였다.]
낭주郎州 자사刺史 이고李翶가 대사의 현묘한 교화를 멀리서 듣고
자주 청했으나, 끝내 일어나지 않으므로 몸소 산에 들어가서 뵈었다.
그러나 대사는 경을 보면서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에 시자가 아뢰었다.
“태수太守가 오셨습니다.”
이고는 성질이 급해서 이렇게 말했다.
“얼굴을 보는 것이 이름을 듣는 것만 못하구나.”
대사가 태수를 부르니, 이고가 대답했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어째서 귀만 귀하게 여기고 눈은 천하게 여기는가?”
이고가 손을 모으고 사죄하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대사가 손으로 위와 아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
이고는 기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절을 하고는 게송 하나를 읊었다.
몸의 형상을 단련한 것이 학의 형상과 같고
1천 그루 소나무 밑에 두 함函의 경일세.
내가 와서 도를 물으니 다른 말은 없고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고 하네.
練得身形似鶴形 千株松下兩函經
我來問道無餘說 雲在靑天水在缾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말해 보라. 이李 태수太守는
그를 찬탄한 말인가, 그를 밝혀준 말인가?
행각行脚한 안목을 갖춘 이라야 비로소 되리라”고 하였다.]
이고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계戒․정定․혜慧입니까?”
“나의 이 속에는 그러한 쓸모없는 가구家具가 없다.”
이고가 현묘한 취지를 헤아리지 못하자, 대사가 말했다.
“태수께서 이 일을 보전해 지니시려면,
바로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가서 앉고,
깊고 깊은 바다 밑을 다녀야 하오.
규합閨閤 안의 물건은 버릴 수 없으니 그대로 새어 버리게 하오.”
어느 날 밤에 대사가 산에 올라 거닐다가
홀연히 구름이 걷히면서 달이 나타나는
것을 보자 크게 웃으니, 그 소리가 예양澧陽
동쪽의 90리까지 들렸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동쪽 집에서 나는 소리라 여겨서 이튿날
아침 차츰차츰 물어서 약산까지 와서 물으니,
약산의 대중들이 대답했다.
“지난밤에 화상께서 산꼭대기에서 크게 웃으셨다.”
이고가 이 말을 듣고 다시 시를 바쳤다.
그윽한 거처를 잡아서 야정野情에 흡족한지
해가 끝나도 맞이하지도 않고 보내지도 않네.
때로는 외로운 봉우리 정상에 곧바로 올라서
달 아래 구름이 걷히자 한바탕 크게 웃네.
選得幽居愜野情 終年無送亦無迎
有時直上孤峰頂 月下披雲笑一聲
대화大和 8년 2월에 임종하기 직전에 외쳤다.
“법당이 쓰러진다. 법당이 쓰러진다.”
대중이 모두 기둥을 잡고 지탱하니,
대사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그대들은 나의 뜻을 모른다.”
그리고는 입적하니, 수명은 84세이고 법랍은 60세였다.
입실한 제자 중에 충허沖虛라는 이가 선원의 동쪽에다 탑을 세우니,
시호는 홍도弘道 대사라 하였고 탑호는 화성化城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