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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כִּי תִשָּׂא 키 티싸" : 3월 둘째 주 토라포션 in 5783
출30:11-34:35(To), 왕상18:1-39(Haft), 고후3:1-18(Brit), 마21:1-23:39(신약)
1부 예배 유니스 목사님
< 콜 메바케쉬 야훼 >
콜 메바케쉬 야훼 : 내가 추구하는 전부는 야훼이십니다
콜, 모든 것, 메바케쉬,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베바카샤, 뭔가 부탁할 때 이 말을 쓰는데, 바카쉬라는 말은 ask라는 뜻이다. 구하다, 추구하다. 우리가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는데, 사모함으로 구하고, 찾고, 추구하는 것을 바카쉬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사모하는, 내가 구하는 단 한 가지, 그 전부는 바로 야훼이십니다. 이런 뜻이다. 키 티싸, 높이 들어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으로 추구하는 우리의 갈망을 잘 드러내는 제목이다.
출애굽기가 끝나고 있고, 개인적으로 제일 사랑하는 레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너무 가슴이 떨린다. 하나님의 레위기를 이번 년도에 어떻게 풀어주실지 기대가 된다
출30: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한 구절 안에 너무나 많은 단어들과 의미들이 들어있어서, 몇 주를 설명해도 부족하다. 우리가 많이 배워왔고 익숙하지만, 너무 깊이가 깊기에, 계속 배워도 끝이 없는 영원의 구절이 이 구절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토라를 배우는데, 너무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떻게 보면 영원에서 영원까지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번 우리 인생 속에서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셔도, 우리의 언어로 바꿔서 듣기 때문이다. 우리 통역기, 우리의 파파고가 따로 있어서 무슨 언어를 주시면 얼른 에고의 통역기를 돌려서 우리의 언어로 알아듣기에, 우리의 시스템, 체계로 구성되어있기에 알아듣기가 쉽지가 않다
지난 샤밭 말씀은 한편의 뮤지컬 같았다. 목사님이 어찌나 흥분을 하시고, 잘하시던지, 봉숭아 학당도, 노래도 잘 부르시고 말이다. 그런 웃음과 감동이 있는 예배를 드릴 때, 우리 가슴이 뜨거워지고,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고, 오른뺨을 치면 웃으면서 왼뺨을 드러낼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데, 막상 일상으로 돌아가면 잘 웃어지지가 않는다. 나의 통역기를 돌리기 시작하면 잘 안된다는, 에고의 부서지지 않는 시스템, 이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의 에고를 잘 데리고 살 수 있는지 배워가야할 것이다
우리는 참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참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다. 하나님이 저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 길이 없다. 하나님이 이 물을 여기에 왜 갖다놓으셨는지, 옆 사람을 왜 내 인생에, 옆자리에 갖다두셨는지 알 길이 없다. 저 사람이 나에게 좋으냐, 나쁘냐를 생각하는 힘을 이번 주 금송아지라고 배웠다.
망상에도 종류가 많다. 색정형, 피해, 과대망상, 연예인이 나를 좋아해서 찾아올 것이라는 망상, 여러가지 망상들이 있고, 제일 심각한 것은 불특정망상, 혼합해서 나타나는 망상도 있다. 이 망상을 할 수 있는, 객관적으로 절대로 생각할 수 없게하는 힘을 금송아지 힘이라고 배웠다. 사실 이것을 하나님이 제거하지 않고는 앞으로의 길을 걸어갈 수 없기에, 유대인들은 키 티싸를 토라의 시작이라고까지 한다. 베레쉬트가 아니라, 금송아지 망상을 제거한 이때가 너희들에게 다시 토라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때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2nd chance,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찬스를 주신 것이다. 결정적으로 모세가 이번 주 토라포션에서 금송아지 사건을 일으킨 백성들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돌판을 깨뜨리고, 두 번째 돌판을 받는다. 첫 번째 돌판은 깨어졌어야 한다. 지금까지 착각해온 교회, 나 자신에 대한 것들이다
우리가 수치를 배우고 있는데, 내가 수치를 당하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큰 가해자는 나였다. 그 수치를 받은 나를 버린 진짜 가해자는 바로 나 스스로였다고 배워가고 있다.
우리는 착각의 첫 번쨰 돌판을 깨뜨리심으로 해결하기 원하시고, 다시 두 번째 돌판, 슈네이, 샤나, 완전한 변혁의 돌판, 내가 너를 새롭게 하겠다고 하는 것이 푸림인데, 완전한 승리였다. 하만의 목을 단 것으로 끝나지 않고, 허리에 칼을 차고 다 죽이는 역사를 이룬다. 완전한 승리가 있는 날이다. 우리도 지금까지 하나님을 만나서 이 길을 잘 걸어왔다고 착각했던 것을 이번주에 막 꺼내신 것 같다
저희도 착실하게 제자의 길을 걸어온 제자들이 금송아지를 드러내면서 싸우는 것을 목도하면서, 정말 저희 부부에게 위로가 되고, 이 부부는 참 착실하다고 생각했던 제자들이 싸우는데 정말 무섭더라. 하지만 그것도 금송아지를 드러내서 이 키 티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에피소드가 되서 감사하다. 우리의 아픔이 간증이 된다고 찬양했는데, 우리의 아픔, 수치, 가난한, 미련함을 이번 시간들 속에서 번쩍 들어올리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실 수 있도록 하자
지난 주에 말했던 제자가 있다. 작정하고 수술하겠다고 선포하자, 주님이 이 여종의 입술을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진짜 수술을 하시더라. 멀쩡하게 운전하는데, 뒤에서 그 자매의 차를 박아서, 그 자매는 100% 뒤 사람 과실인 것이다. 그 자매가 함께 놀랬다.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나를 번쩍 들어올리시는구나. 육적, 영적으로 수술하기 원하시는구나. 그렇게 고백하고 번쩍 자신의 영혼을 들어올리셔서 수치를 수술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있다.
우리는 다시 주님 앞에 서서 두 번째 돌판을 받아야 할 때가 바로 이 때이다. 우리가 바로 그 두 번째 돌판, 너를 완전히 고치겠다, 수술하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 안에 거하기 원한다.
이 허상의 힘, 망상의 힘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을 레위라고 했다.
출32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라메드에 대한 계시를 받은 자, 토탈 비전만이 영혼을 수술할 수 있는 자이다. 이 칼을 차시게 되길 축복한다. 그래서 제자들, 그리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을 한번에 도려내야 한다. 괜히 썰면 안되고, 한번에 도려내서, 우리 안의 에레브 라브를 단번에 잘라내는 역사가 있게되기 원한다
죄의 특성이 있다. 죄는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는다. 죄의 열매들에 대해서만 다루고, 회개하고, 미안하고 용서한다고 해결된 문제가 아닌 것이 죄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든다는 것은 죄의 뿌리를 든다는 것이다. 모세가 이 에레브 라브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תשׁה חטאתם 티싸 하타탐 : 죄를 올려주십시요
우리가 서로 잘못했다는 것을 그냥 미안해, 용서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죄 자체를 뿌리채 들어올릴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죄의 뿌리까지 들어올리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한다. 우리 죄의 모든 뿌리를 다 지고 가셨다. 그리고 모세는 과감하게 기도한다. 이것을 들어올리셔서 제거하여 주소서
그럴 때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절대로 너희와 같이 안 간다고 하시다가,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내가 친히 가리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하시면서, 선한 영광을 보여주겠다고 하시면서, 끝내 우리를 선으로 인도하신다
출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כל טובי 콜 투비 : 모든 선한 것
오늘 선이 뭔지 알지 원한다. 주님이 드디어 주님의 선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원하신다. 우리의 죄의 뿌리가 번쩍 들려서, 죄의 모든 나무를 뿌리뽑으시고, 진정 선하신 주님의 진짜 선한 생명나무가 오늘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키 티싸 에트 로쉬라고 되어있다. 머리를 들라. 하나님이 지금 강림하셔서, 너희의 머리를 들라고 하시면, 몇개의 머리가 나올까? 머리를 들면 손과 발이 딸려올라가야 하는데, 하나님이 머리를 들었을 때, 뭐가 붙어있을지. 손만 붙어있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카운트되는 하나의 머리. 우리가 에하드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에하드인 것을 정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제자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가문은 원래 이래. 그래서 네가 따라와야해. 너의 논리로는 옳지 않고 억울해도, 아버지가 머리이기에 따라와야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 형제가 부품이었다면, 머리를 들었을 때 딸려와야 하는데, 그 형제가 머리가 되어있었기에, 잘 딸려오지 않는 그런 일들이 삶 속에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런데 머리를 들 때 주님이 뭐라고 암송 구절에서 이야기하셨냐면, 생명의 속전을 내라고 했는데, 그게 반 세겔이고, 그 반 세겔을 내지 않으면 질병에 걸린다고 했다.
נגף 네게프 : 질병, 육체에 신실한 것
요새 코로나 이후에 학교 아이들에게 항상 이야기하는게, 뭐가 도는 것 같다는 것이다. 장염, 감기, 독감이 돈다고,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정확하게 예언하신 온역, 질병, 전염병이 가득한데, 이것을 네게프라고 한다. 육신에 신실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너무 신실하다. 우리는 육신에게 너무 한결같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스스로도 아는 것 같다. 나한테 이것을 건드리면 못 참아 하는 것이다. 돈 문제가 걸리면 나는 한결같이 반응할 수 있다. 감정을 상하게하면, 나는 아주 신실하고 한결같이 이것에 반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질병이다. 이 죄의 뿌리를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수치, 절망, 이런 고통들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출33: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드디어 이 백성이 오늘의 제목, 콜 메바케쉬 야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그냥 두 손, 두 발 다 들고 주님에게 항복하는 것 외에는, 내가 구하는 것이 야훼가 될 때까지 부수시는구나. 탈무드에는 온 세상이 부서지기 전까지는 메시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나의 모든 것이 부서지고 절망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상, 주님이 나타나고 싶으셔도 나타날 수 없다
회막 문에 선다고 한다.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이 땅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우리에게, 주님이 다 부수시면 다른 세상이 열릴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만을 구하며, 하나님과 호흡하는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 제자가 링크를 보내주었는데, 전날 받았던 것인데, 너무 보석같이 소중해서 숨겨놨던 그 링크를 한 제자가 보내주었다. 제가 다니던 대학에 그분이 교수로 들어갔다는 기사였다. 저는 제가 다니던 대학이 수치였다. 그 대학에 들어가서, 저희 아버지가 식탁을 다 부수셨다. 식탁 유리가 60만개로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수치를 느꼈던 학교였기에, 학교 내내 우울했고, 어떻게 하면 이런 우울한 세상에서 일찍 죽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 그 교수님께서 저희 학교에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내가 너무 자랑스러운 것이다. 바로 이지선 교수님이다. 한동대 교수님인데, 저랑 같은 학번이시다. 제가 세네번 단 위에서 설명한적이 있었다. 대학생 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전신의 55% 이상이 화상을 입어서 중증 장애 1급 지체 장애로 판정을 받고, 무려 몇십번, 40번 이상은 카운트를 안 했는데, 지금도 피부 이식 수술을 하고 계신데, 이런 말을 하더라. 그런 사고를 당하고 나서 자기가 하나님께 따지고 싶었다는 것이다. 나를 이렇게 만드셨으면, 대책이 있으실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없으셨고, 예배가 다 끝나고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고 한다.
지금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아무 말씀을 안 하고 계실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자매님이 그 다음날 예배당에 다시 나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한 목사님께서 자신에게 다가와서, 자신을 꼭 끌어안아주면서, 사랑하는 딸아, 라고 불러주시더라. 그때 자기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나 자신 조차 사랑할 수 없는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계시다고? 라고 하면서, 나 자신 조차 버리고 싶은, 너무 수치스러워서, 그 사고를 당하고나서 길거리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그렇게 수군거렸다고 한다. 차라리 죽지. 저러고도 사냐고 말이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 정말 나 자신 조차 사랑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이 가장 버리고 싶었던 그런 나를 하나님이 다시 거두어주시며, 사랑스럽다고 하시는 그 음성을 들은 후부터 이분은 다시금 소망을 찾고 살아가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고백했다. 인생이 동굴인 줄 알았는데,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더라.
우리가 콜 메바케쉬 야훼를 외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이 동굴이 아니기 때문이다. 끝이 있는 터널이고, 터널의 끝에는 반드시 빛, 야훼, 그리스도가 있다는, 하나님은 반드시 살아계시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는 것이다. 순관이 노래에 터널이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 인생은 동굴이 아니다. 지금 주님이 침묵하실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전히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
주님이 목사님의 입을 통해서 그렇게 약속하셨다고 한다. 내가 너를 세상 가운데 다시 세워서,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자가 되게 하겠다. 그러나 자신은 기적적으로 자신을 고쳐주기 원했는데, 눈을 감고 자고 일어나면, 나의 예쁜 온전한 얼굴로 돌아가기 그렇게 원했는데,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내가 너를 티싸해서, 고통받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인 후에, 자기가 했던 첫 번째 일이 거울 보기라고 한다. 지금까지 거울을 보지 않았는데, 그 약속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이 수치주고 버려버린 나 자신을 끌어안았을 때, 거울을 보게 되었고, 처음 보는 얼굴을 보고 안녕하고 인사하게 되었다. 자꾸 보니까 그 얼굴에도 정이 들더라. 새로운 얼굴에 익숙해져갔고, 저 자신을 용납하기 시작했다
저희 친정 부모님이 와 계시긴 하지만, 우리 아픔이 다 스토리가 되기 때문에 괜찮으실 것이다. 이게 다 망상, 허상인 것을 아는데, 우리는 평생을 허상 때문에 고통받는다. 제 아버지와의 첫 기억이. 이라크에서 돌아오셨던 공항이었다. 5-6살 때, 아버지를 마중나갔는데, 오빠와 언니와 제가 나갔다. 그런데 제 기억에 저는 이발소를 다니고 있었고, 언니는 머리가 긴 생머리였다. 아버지가 나오시는데, 어떻게 그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한지, 나오셔서 언니를 번쩍 들어서 키 티싸를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저는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를 티싸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제가 느꼈던 허망함, 그리고 그때 모든 공항의 사람들은 Fade out되고, 그냥 허망하게 서 있는 짧은 머리의 남자같은 아이가 한명 있는 것이다. 그 정서가 지금까지, 내가 금송아지 죄를 처리하기 전까지, 너는 못생겨서 버림받았고 선택받지 못해, 잘나지 못했기에 선택받지 못하는 자야, 티싸 할 자격이 없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수치주고 그 소녀를 버려버렸다.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나 자신을 도저히 거울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없는, 소녀로 금송아지 망상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지선 교수님이 그런 말을 한다. 자신은 그 사고 당했던 날을 자신의 두 번째 생일로 치고 있다. 두 번째 돌판이 내려오는 시점이다. 첫 번째 돌판이 철저하게 부서진, 식탁 유리가 60만개로 쪼개지면서, 예쁘지도 못했는데 공부도 못해서 버림받은 소녀를 가해한 것은 저 자신이었고, 저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는데, 이것에 대해서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오며, 주님, 내가 수치주고 버려버린 나 자신을 다시 끌어안겠습니다. 그것은 망상, 허상이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 파워 안에서 이렇게 살아왔는지. 그런데 우리에게 주님은 두 번째 생일을 주고자 하신다. 오늘의 예배, 이 시즌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출33: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하나님이 구름 기둥으로 서 계신다. 답을 주신다. 그분에게는 답이 있고 대책이 있으시다. 각기 장막 문에서 예배한다. 이 백성들은 자기가 버려버린 자기 대신에, 끊임없이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단장품들이 있다. 수치 때문에 버린만큼 얻었어야 했던 단장품들이다. 내가 썼어야만 했던 가면들, 옷들, 이것이 누구는 열등감의 옷, 누구는 미움의 옷, 누구는 어떤 옷을 입는다. 성실의 옷을 입음으로 끊임없이 나를 단장했어야 했던 것을 다 떼어버리고, 모든 백성이, 이 콜이 회막 문에 서서 그 주님의 대책을 듣고, 각기 문에 서서 주님을 예배하게 된다. 주님, 내가 구하는 것은, 구했던 것은 그 어린 소녀가 구했던 것은, 여러분이 수치주고 버린 소년, 소녀가 원했던 것은 주님을 예배하는 콜 메바케쉬 야훼를 원하는 삶이었구나
이지선 교수님은 자신은 그 사고를 당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나는 절대로 그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사고를 만났고, 그 사고와 이별한다. 그 피해의식과 망상 속에서 이별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한숨을 바꾸셨네라는 찬양을 할텐데, 여러분의 모든 망상, 여러분이 버렸던 수치, 그래서 내 삶 속에는 진짜 호흡이 없었고, 진짜 노래와 웃음이 없었고, 웃을 수 없었던 한숨이 바뀌어 노래가 되게하시는 그분을 함께 찬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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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것이 사랑받는 저희 언니는 어떻게 살았냐면, 언니가 이뻐서 중고등학교 때는 교회 오빠들이 항상 쫓아다녔다. 어떤 오빠가 너희 언니가 영애인데, 영애 쫓아다닌 사람을 모아보면 한 트럭이 나올 것이라고 할 정도로 예뻤는데, 지금 캐나다에 이민을 가 있는데, 벌써 50이 다되가는 언니가 아빠를 보더니 주륵주륵 우는 것이다. 언니는 나름대로의 망상과 상처를 가지고 평생을 고통받으면서 살았던 것이다. 자기는 둘째였기에, 오빠와 막내 사이에서 사랑받지 못했다. 그때 또 같이 울고 하는 퍼포먼스를 참 많이 한다. 주님이 보실 때 얼마나 재미있을지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체가 몸을 입고 온, 여러분의 영혼은 참 하나님과 같은 영혼이기에, 누구도 해할 수 없고,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영혼인데, 그 영혼이 육체를 입고 오기에 선택했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영혼은 에고에 갇혀서, 육신에 갇혀서 열등이가 되고, 열등이를 감추기 위해서 우월함, 명예, 권력, 이성, 사랑을 가지고 장난치면서 살아온다. 우리가 이것을 확실히 안다면, 너무 속아서 억울하고, 사단이 너무 미운 것이다. 진짜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진짜 적을 알아야 한다. 내 마누라가 적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는 그런 남편이 내 적이 아니라, 진짜 적은 이렇게 우리를 망상의 감옥 속에, 수치의 감옥 속에서 속이면서 살았던 사단이 진짜 적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약자이며, 열등이며, 너무 나 자신이 수치스러워서 버려버린 열등이는 사고를 쳐야만 살 수가 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았던 아버지조차도 상처줬다고 만들어야만 살 수 있는, 그것을 먹이 삼아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약자이고, 열등한 에고이다
너무나 두려움을 싫어하지만, 너무나 그 두려움을 원하는 그런 약자들이다. 몇일 전에 하영이와 하나와 같이 저녁 시간에 투썸 카페에 갔다. 저는 항상 카페에서 공부할 때 구석에서 공부한다. 뭔가 누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장소에 말이다. 그날은 애들과 같이 갔기에, 정중앙에 앉은 것이다. 그런데 제가 그때 갑자기 두려움이 확 몰려오는 것이다. 뚫려있어서 취약해진 상태에 놓인 것 같고, 누가 공격해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인 것 같은 상태인데, 제 눈 앞에 맞은편에 목감고 일진으로 보이는 네명이 앉아있었다. 그러면서 욕을 거의 50% 이상을 섞어가면서 이야기하면서 힐끔힐끔 저희를 쳐다보는 것 같은 것이다. 그때 제 마음에 두려움이 오는데, 우리 하영이한테 쳐다보지마. 눈 마주치면 안되. 일진들은 눈만 마주쳐도 시비를 거니까, 절대 쳐다보면 안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제 마음 속에 기억이 하나 나기 시작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세명이 버스를 타고 고속터미널에 놀러갔는데, 경찰서 앞에 내렸다. 그때는 신세계 백화점도 없었는데, 그 앞에 같이 버스를 탄듯한 언니 두명이 내리더니 저희들을 부르는 것이다. 너 우리 왜 꼬라봤어? 하는 것이다. 저희는 쳐다보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어디 중학교인데, 자기 이야기를 막 하는데, 하나도 들리진 않고, 꼬마 세명이 얼마나 덜덜 떨면서 집에 와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지. 이제 우리 인생은 끝났다고 했던 그 기억이 저를 엄습하면서, 하영아, 너 어떡하지? 내일 가서 그 언니들이 오라고 하면 어떡하지? 제 마음 속에 그런 두려움이 오면서, 순간적으로 패닉 증상을 보이는 저를 보게 되었다.
한번 두려움의 영이 오면 지나가는 개도 무섭다. 저는 아직도 개를 무서워하는데, 두려움의 문을 열게 되면, 두려움의 영이 들어오게 되면 날마다 무섭고, 날마다 떨리고, 날마다 불안하다. 저는 믿지 못하시겠지만, 난독증이 있었다. 두려움과 불안함 때문에 책을 잘 못 읽어서, 교회 개척하고나서 주님이 말씀 전하게 하시면서 치유해주셨는데, 우리의 에고, 열등이, 약자는 버려버린 내가 뭔가라도 붙잡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싫어하지만, 두려움을 먹고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 에고의 먹이가 되어버린다.
우리의 버려버린 에고는 아픔 자체이기에, 아픔을 또 먹으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데, 제가 이제 백신 부작용으로 굉장히 많이 아프면서, 하루하루가 두렵고, 다음 이 시즌이 오면 아플 것에 대한 두려움 떄문에 떨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몸은 너의 것이 아니다. 저는 제 건강, 제 몸이 한결같이 두통만 오면 쓰러지는 몸이 내 것인 줄 알았다. 두통이 내가 열심히 하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한결같이 이 삶 속에 오지? 저는 수치주고 버려버리고, 건강, 내 육신조차 그렇게 버려버렸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다. 건강은 너의 것이 아니다. 몸은 너의 것이 아니다. 두통조차 너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버렸다. 버림받았다는 망상 자체가, 얼마나 내 것인 줄 알고, 버렸다느니, 버림받았다느니, 하는지 모른다. 애초에 우리 육신도 영혼도 우리 것인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의 힘이 잔뜩 들어가서, 내가 뭔가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철저하게 주님은 우리 모든 것을 부수심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내가 구하는 단 한 가지는 콜 메바케쉬 야훼, 야훼밖에 없다고 고백하게 하신다
버스가 오는데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문제이다. 두려움은 신성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가장 큰 신호등일 수 있고, 브레이크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서 스스로 그것을 감옥으로 만들어서, 절대로 다시는 아파선 안된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되고, 절대로 내 인생을 망쳐선 안되고, 일이 망쳐져선 안되, 수치당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스스로 감옥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 땅에 이 두려움은 우리에게 분별심을 낳아서, 끊임없이 이게 좋고, 나쁘다고 선악간의 시비를 가리지만, 콜 메바케쉬 야훼는 그저 생명나무이며 선한 것이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은 그저 선하다는 것이다. 왜냐? 애초에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스더서를 읽었는데, 에스더가 사실 굉장히 수치를 당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했던 말이, 에스더가 이 수치 당한 자신을 버린, 약자의 마음을 계속 주장했다면, 엄청난 수치였을 것이다
하만이 유대인들을 다 죽이겠다고 이야기하자, 모르드개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에4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이 자체에 수치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에스더가 자기가 정말 아름답고 이뻐서 간택되었다. 6개월 동안 자신을 단장하고, 향품으로 절여서 간택이 되었는데, 이런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는 수치를 준다. 말이 없어도, 유다인들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너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제 수치가 너 아니어도 괜찮아. 너 필요없어. 이런 것인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때 에스더의 반응을 보자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수치를 극복한 자, 끌어안은 자, 자기가 너무 창피해서 버려버린 자신의 에고를 끌어안은 자는 이런 용기가 나온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잘되고 간택받고 사랑받는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콜 메바케쉬 야훼입니다. 라고 하는 자의 마음 속에는 이런 것이 나온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콜 메바케쉬 야훼, 그분에게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에서 천사들도 장래 일도, 어떤 것도 끊어낼 수 없는 사랑이기에, 나는 괜찮습니다
세상은 아픔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아픔의 길을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그것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여정 자체가 그리스도라고 목사님은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괴로움을 겪고, 수치를 당하면서 버리지 않고 걸어가는 여정 자체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충만이라는 찬양을 할텐데, 우리가 가난해도 괜찮은 이유가 나와있다. 고통을 당해도, 무명이어도, 공허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나와있다. 예수 안에서 난 완전하고 우리 안에는 예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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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풍파도 두렵지 않다고 한다. 아가서에서 보면 북풍아, 남풍아 불어라. 고난의 바람도, 위로의 바람도 상관없이 내 삶에 불어도 괜찮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죽으면 죽으리라.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그리스도께서 높이 티싸하셨기에, 그분의 생명이 내 안에 영원히 살아계시기에 그렇다.
수치당해도 괜찮다. 왜냐? 내 안에 높이 들리신 그분이 수치당해도 괜찮다는 것을 온 세상에 보여주셨다. 속옷조차 입을 수 없었던 수치를 다 지고 높이 들리셨지만,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지금도 임하시는 그분이 아직도 살아계시기 때문에 괜찮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수치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면서 할례를 말씀하신다.
수5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을 열방이 보고 마음이 녹는 것이다. 당신들의 엘로힘이 진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그때에 무슨 일을 하시냐면, 여호수아에게 이런 말을 하신다.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할례를 행하신 곳이 길갈이라는 곳이다. 지금도 히브리어로 유모차가 아갈라이다. 굴러가는 것이다. 길갈, 우리의 수치가 계속 굴러가는 것이다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이 수치에서 벗어나게 하시는데, 그 방법이 바로 할례이다. 그 백성들이 낫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우리의 수치주고 버린 나의 약자는 그렇게 그 약함을 가리기 위해서 뭘 한다. 그렇게 오지랖을 떨고, 안 해도 될 일을 한다. 돈을 그렇게 벌려고 하고, 사랑을 받으려고, 이성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하고, 열심히 뭔가를 붙이려고 하는데, 주님은 할례를 하고, 잠잠히 기다린다는 것으로 우리의 약한 아픔을 치유하시면서, 그냥 머물러라. 그 아픔을 끌어안고 머물러라. 하려고 하지 않고 잠잠히 기다리라고 하신다
우리가 버려버린 그 약자를 다시 끌어안고 함께 울고, 잠잠히 머무르면 어느새 그 두려움과 아픔은 녹아내리고,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는 예수의 용기가 내 안에서 솟아나오는 것들을 경험한다. 그래서 이지선 교수님은 참 놀라우신 분 같다. 나는 다시 주님이 20년 전에, 30년 전의 사건을 만나게 하신다고 하여도 기꺼이 그 사건을 다시 마주하겠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다.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그 죽음보다, 순교보다 더 아프다고 하는 화상의 수술을 4-50번에 걸쳐서, 지금도 여전히 하고 계신 그분이 다시 그 사건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할례의 아픔을 끌어안고 기다릴 줄 아는데서 나온다
그분이 자신의 블로그 홈페이지 이름을 주바라기라고 했다고 한다. 콜 메바케쉬 야훼, 내가 붙들고 전해야 할 유일한 분은 야훼 그분만이시다. 그분만을 원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 키 티싸에서 모세가 에레브 라브를 향한 눈물겨운 탄원을 주님앞에 한다. 주님이 막 화가 나셔서, 이 백성은 네 백성이고, 내가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출33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이 에레브 라브의 부끄러움과 정말 약함을 끌어안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운짓을 하는 에레브 라브들을 향하여 모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주소서. 이 간절한 모세의 기도, 탄원이 하나님의 마음에 상달되었다. 하나님의 마음의 과녁을 맞추게 된 것이다.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하나님 마음이 녹으셨다. 우리가 수치스럽다고, 너는 진짜 아니라고 해서 버려버린 그 족속에 대한 모세의 탄원과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네가 말하는 이 일도 하겠다. 그들을 구원하겠다.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제 모세는 영광의 차원으로 올라간다. 드디어 주님은 이 콜 투비, 선을 보여주신다. 우리의 삶에 선이 필요하다. 선이 없으면, 끊임없이 분별이 일어난다. 이게 진짜 선일까? 악일까? 해칠까? 지나가던 개도 무섭다고 한다. 개가 나를 물까? 말까? 끊임없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분별심, 선악간의 판단함과 시비심이, 진짜 선으로 응답하실 주님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내가 버리고 수치주고 버렸던 약자를 끌어안는 모세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수치의 해독제는 사랑이다. 제가 몇일 전에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제자들이 저에게 많은 위로를 해주는데, 한 제자의 글이 생각난다. 당신이 어떤 모습일지라도, 당신이 설사 이 교회를 그만둔다고 할지라도, 내가 당신 뒤에 서 있겠습니다. 제가 그 문자를 받고, 정말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무조건적으로 제자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받는 사랑은 제자들이 해주는 사랑이구나. 그러면서 저의 수치가 이렇게 거둬지는 경험을 했다. 끊임없이 이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저였다. 뭔가 사모의 자리에 부적절하다. 나는 정말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든 버리려고 했던 수치의 해독제는 무조건적인 제자들의 사랑이었고, 여러분들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어떤 것도, 내가 좋은 사모가 되고, 좋은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니라,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콜 메바케쉬 야훼이구나.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그냥 주님 한분이시구나. 그리고 그분을 향해서, 그 미의 세계를 향해서, 우리의 찢어진 조각들과 함께 마의 세계를 걸으면 되겠구나. 내가 어떤 욕을 먹고 수치를 당해도 상관없는 것이구나
그때 우리는 진짜 강한 마음을 쓸 수 있다. 죽으면 죽으리라. 내가 이 토라를 통해서, 사모 역할을 잘 해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내 인생에 아픔이 더 이상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북풍, 남풍, 고통의 바람들까지도 다 품어서 함께 노는 것이구나. 함께 웃으면서, 진심으로 사는 것이구나. 아파도 배신당해도 욕을 먹어도, 그냥 진심으로 살면 되는 것이구나.
그런 이야기가 있다. 애기를 목욕시키는데, 목욕물이 더러워지자, 목욕물만 버려야 하는데, 애기까지 다 버려버리게 되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그런 잔인한 일을 우리는 매일 하고 있다. 내 수치가 너무 싫어서, 진짜 나의 영혼까지 다 버려버리게 되는 그런 어리석음, 그 수치를 어떻게 해결하시냐면, 콜 메바케쉬 야훼, 그분만을 따라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심과 사랑이, 그 아픔을 함께 느껴주는 그 진심이 우리를 함께 가게 한다.
이지선 교수님이 다시 일어나게 될 수 있던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가 매일매일 엄마와 함께 감사거리를 한개씩 찾았다고 한다. 어느날은 눈썹이 다시 자라게 되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한번도 깨지 않고 잘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하나하나씩 감사하기 시작했는데, 그 감사를 책으로 냈고, 그 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메세지를 전해주는데,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책을 읽은 분들 중에 이런 편지가 왔다. 살아남아주어서 고맙다.
우리가 너무 창피해서 버려버린 그 여러분이, 그래도 이렇게 살아남아주어서 고맙지 않은가? 저는 그 수치를 끌어안고, 아픔을 끌어안고 잠잠히 거해보니까, 그렇게 내 영혼에게 고맙더라. 내가 그렇게 무시하고, 버려버린 그 영혼이 왜 이렇게 고마운지,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케뎀에서부터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걸어준 나의 영혼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래서 저는 나 자신에게 고백했다. 나 다시 태어나도 너를 선택할게. 내가 다시 태어나서, 나에게 선택이 또 있다 하더라도, 나는 나 자신을 선택할거야. 이렇게 사랑스럽고 예쁜 나를 다시 선택할게.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나에게 정말 많은 선물을 주셨고, 이전보다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으로 살게 하신다. 그래서 저는 사고를 당했다는 표현보다, 사고를 만났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사고를 만났지만 잘 헤어진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망상과 허상의 사건들을 만났다면, 잘 헤어지게 되시길 축복한다. 그 사건에 매몰되어서, 사건의 감옥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수치주고 밀어넣지 말고, 나 자신의 영혼에게 말해주기 바란다. 너 정말 괜찮은 영혼이구나. 내가 널 다시 선택할게. 나는 너가 너무 좋아.
사무엘상에 다윗이 정말 수치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왕이 되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사울이 자기를 쫓아오고, 침을 흘리고 미친척하면서 그렇게 목숨을 구걸하는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다윗은 시편을 쓴다. 시34이 바로 그런 개수치를 당한 다윗이 썼던 시이다.
시34
1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여러분의 얼굴이 수치를 당해서 부끄러워졌지만,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게 되시길 축복한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에게 피하시기 바란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주님, 당신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그분께 피하시길 축복한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여러분의 삶 속에 참 고난이 많았고, 수치가 많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그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이런 모세의 간절한 에레브 라브에 대한 사랑이 로마서의 바울에게서 또 보인다. 바울은 개 같이 수치스러워서 다 버림받은 우리를 이스라엘 되게 하소서라는 놀라운 기도를 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하나되게 하셔서, 콜 이스라엘 이바샤, 그 이스라엘이 구원받게 하소서. 내가 부끄럽다고 버려버린 이 족속을 당신의 족속으로 합쳐주소서. 그것이 주님의 선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바울이 기도한다
우리는 개였다. 정말 부끄러운 존재들이었고, 수치받아 마땅한 존재들이었지만, 주님이 이스라엘과 합치져서 진짜 선을 보이시고, 이스라엘과 하나된 우리를 보이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 중심을 저격하는 우리가 되기 원한다. 우리에게 그 선을 보여주시는 주님을 찬양하기 원한다
우리 영혼에게 사랑한다고, 내가 다시 태어나도 너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해주기 바란다.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살아계신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하나될 것이고, 그분의 궁극의 선을 맛보게 될 것이다.
* 기도
모세의 기도가 내 영혼 가운데 있게하여 주소서. 바울의 끊어지는듯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의 기도가 있게 하소서. 내가 버려버린 영혼들을 찾게 하시고, 첫째로는 내가 버려버린 그 약한 나, 아픈 나를 찾게 하시고, 둘째로는 나의 이웃들을 찾게 하시고, 궁극적으로 버려진 이 이방인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으로 이스라엘과 하나되게 하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열방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자
우리의 수치를 높이 들어올려 주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의 수술을 받겠나이다. 우리 금송아지의 죄, 망상의 죄, 내가 사랑받지 못했다고, 내가 수치당했다고 버려버린 나의 아픈 약자와 내가 버린 아버지, 어머니, 수많은 인연들을 우리가 다시 찾아내겠습니다. 그들이 콜 이스라엘이 되어서, 콜 메바케쉬 야훼할 때까지, 우리를 그렇게 부숴오신 주님의 할례 앞에서 아픔을 끌어안고 잠잠히 거하겠습니다. 그럴 때 마음 안에서 나오는 모세의 기도가 만져질 때까지 우리가 잠잠히 주님 앞에 거하겠습니다.
주님의 갈망을 우리가 이제는 맞추기 원합니다. 콜 이스라엘, 그 자녀들이 살아나는 그날을 우리가 기다립니다. 누가 내게 부르짖어 저들을 구원케할까? 누가 나를 위해 가서 나의 사랑을 전할까? 히네니.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기쁜 찬송의 소리, 그 웃음소리가 온 땅에 가득할 그날을 위하여 우리가 걸어가겠습니다. 찾아오겠습니다. 버려진 이스라엘과 이방이 하나되어 진정한 선을 이룰 그날까지 우리는 걸어가겠습니다.
2부 예배 고세중 목사님
출3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얼른 읽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으시고, 회개하라는 메세지로 들리는데, 정말 높은 수준의 말씀인 것을 아시게 될 것이다. 제가 열심히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하면서도 생각하면, 이걸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래서 저도 랍비같이 하기로 했다.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드실만큼 드시기 바란다. 다 약이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일 것이다. 쫙 이어지게 하고 싶은데, 하다보면 칸도 모자라서 뒤에는 황급히 하다말고 끝내기도 하는데, 그래도 정신을 바짝 붙들고 가기 바란다.
כי תשׁא 키 티싸
키 티싸의 가장 핵심적인 메세지로 오늘 남겨야 할 것이라고 한다면, 목이 곧은 백성으로서 장신구를 떼는 것이 무엇이냐이다. 목이 곧은 백성이 무엇이고, 장신구를 뗀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있게 깨달을 수 있기 바란다. 그렇게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1. 키 티싸의 위치 : 성막 완성 과정 => ויקהל 바야크헬
키 티싸의 위치를 한번 보자. 토라포션이 하나의 여정인데, 처음 오신 분들은 이런 말들이 익숙하지 않을텐데 할 수 없다. 어떤 분은 그래서 우리 교회가 처음 오시는 분들을 위한 예배를 따로 하셔야 할 것 같다는 말씀도 하시는데, 처음 오셨다고 하더라도, 오래 다녔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진리의 여정 가운데 같이 가고 있지 않으면, 오래 자리를 지켰다고 할지라도, 거기서 거기이다. 처음 온 사람처럼 엉뚱한 이야기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키 티싸의 위치라고 하는 것은, 출애굽기의 마지막, 바야크헬, 페쿠데이 앞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성막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바야크헬 앞에 있다. 쿠웨이트 교회에 바야크헬 페쿠데이 기간에 세워졌다. 페쿠데이에 집중하기에, 제자도에 필요한 목록들, 하나하나의 디테일들을 하나씩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집중하도록 운명지어진 교회이다.
קהל 카할 : 교회
하나님의 마음은 카할, 교회이다. 교회를 정말 세워나가고 싶어하시는데, 어떤 교회를 세울 것이냐? 그림, 청사진은 이미 주셨고, 이제 하나님의 마음은 교회를 세우는 청사진뿐만 아니라, 그 청사진의 작동원리를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2. 교회의 작동 원리 : 브살렐 + 오홀리압 = 개인 능력 + 팀 워크
교회 작동 원리의 증거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이다. 우리의 아들 브살렐,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이다. 애화 자매와 보혜 자매가 나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한 증거이다. 브살렐은 개인의 Qualification, 개인의 능력이다. 벤 우리, 우리의 아들, 빛들의 아들, 하나님의 말씀, 빛 가운데 있어서 세워지면 베짤엘, 하나님의 그늘 아래라는 뜻인데, 무엇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 개인의 능력이다. 오홀리압은 아히사막의 아들이기에, 아히사막, 형제들을 서포트하는 것인데, 팀 사역을 같이 해서 어떻게 아버지의 장막을 완성하느냐? 이것은 팀 워크이다. 교회의 청사진을 주었고, 이것을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가르쳐주시는 단계에 계신 것이다.
지금 키 티싸 주간에 하나님이 가르쳐주고 싶으신 것이 바로 어떻게 하나님의 성막이 작동할 수 있게 하느냐? 개인의 능력이 어떻게 되어야 하고, 그 개인들이 어떻게 서로 도와서 아버지의 집을 세워가느냐 하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해야하는 이유가 있는데, 왜냐하면 교회라는 말이 이 시대에 너무나 많이 오해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뭔지를 잘 모른다. 교회를 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비밀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땅에서 본 교회, 목감 교회, 온누리 교회, 소망 교회, 이런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셨던 교회라는 것이 뭐냐는 것이다. 그것은 알파벳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온다.
카할 : 교회 = 네샤마의 생명을 배우는, 훈련하는 소망이 있는 곳
קהל 카할, 교회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소망(ק)이다. 여러분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소망 자체이다. 그런데 훈련(ל)을 호흡(ה)해야 한다. 호흡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거이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숨이 멎었다고 하고, 숨이 쉬어지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한다. 호흡은 inhalation, exhalation, 들숨과 날숨이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담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호흡,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네샤마의 호흡이다. 네샤마의 생명을 배우는 소망이 있는 곳이다. 그 소망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에덴의 생명, 네샤마의 생명을 어떻게 배우는지를 알 수 있는 그 모든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계속 네샤마의 생명에 대해서 들으시고, 어떻게 하면 네샤마의 생명에 도달할 수 있는지, 그 소망을 가지고 계속 배워가고, 훈련해나가고, 그 생명을 상승시켜나가는 것이다
TDI에서 제가 정중동이라고,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시겠지만, 무지하게 바쁘다. 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이겨내려면, 매우 운동량이 많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에 두 시간 이상 밖으로 나가고, 운동을 해야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손님들 찾아오지, 저와 개인적으로 아는 손님들도 있고, 교회와 소통하는 사람들도 있고, 교회 안에 있는 분들도 들락날락하면서 막 네샤마의 생명이 호흡이 일어난다. 유명하다는 선교사들도 오시고, 무명한 선교사도 오시고, 많은 목사님들도 오신다. 그들과 계속 하는 것이 교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어떤 수준의 교회를 보느냐? 제자 교회를? 세상 교회? 복음주의 교회? 그 모든 것들을 아울러서 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비전이 결정된다.
우주적 교회에서부터 지역 교회까지이다. 여러분들이 보시는 교회에 대한 관점과 제가 보는 관점이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목감 교회에서 살아남기에도 벅찬데, 다른 교회 무슨 생각하냐는 분들도 있으실 것이다. 우리 교회 따라가기도 정신이 없다. 히브리어, 알파벳에 푸림에, 맨날 이거저거해라 정신 하나도 없는데, 무슨 다른 교회인가? 사실 알고보면, 여러 교회들을 답습하고 여행해서 여기까지 오신 분들이 태반일 것이다. 멋모르고 따라왔다가 여기서 연결되어서 생명이 자라는 분들은 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만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고 바로 아버지 집을 만난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도는 우주적인 교회, 온 우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 모아서, 그 모은 단위들이 지역 교회이고, 그 지역 교회들까지 다 합쳐서 우주적인 교회를 만들기 원하시는 것이다. 여기에는 종교 색채가 다 필요없다. 지난주에 보니까 민하 할머니가 간증하시는데, 카톨릭 교회 이야기를 듣고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런 카톨릭 교회던지, 심지어 절이던지, 교회는 절과 싸울 필요가 없다. 무슬림들과도 싸울 필요가 없다. 그 사람들이 열심일수록, 누군가에게 도달하고자 하는 김멜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해와 혼동 가운데 빠진 것을 우리의 아들들이 빛을 비춰서 진리 가운데 나올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카톨릭 교회 사단아 물러가라? 절에 가서 뭐라고 하는 것 좀 하지 말라. 창피해 죽겠다. 우리는 그냥 개독교로 만족하면 된다. 갈렙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정원이 보면 약간 개스럽긴 하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명령, 마지막 비전인 것이다. Vision sharing의 마지막 단계를 가고 있는데, 32장의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이 핵심 사건인데, 이 사건의 배경과 처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3. 이스라엘의 실제 수준 : Big gap, 큰 간격 = 금송아지
32장에서 이스라엘의 수준이 다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만 잘 하면 된다고 마지막 명령을 흥분 가운데 전달하고 계신데, 정작 그것을 받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준은 하나님의 의식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Big gap, 큰 간격이 있다. 하나님의 의식과 이스라엘의 실제 수준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간극이 발생했다. 그 엄청난 간극을 한 마디로 금송아지라고 하는 것이다. 금송아지 사건은 단순한 한 가지의 어떤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금송아지 사건에 포함되어있는 요소를 말씀드릴 것이다.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큰 갭, 금송아지 사건은 어느면에서 필연적이다. 토라의 모든 것은 그들의 실수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통과해야하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수준의 빅 갭의 첫 원인을 알아야 한다
1) 리더의 부재 : 모세 -> 아론 = 대체 리더
- 전체적 책임 - 권위 & 조정 능력
첫 번째 원인은 리더의 부재이다. 모쉐가 안 보이는 것이다. 그들 앞에서 그들의 리더인 모세라는 분이 사라져버렸다. 엄청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경험하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바다 목사님과 유니스 사모님이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해봐라. 그러면 좋지? 히브리어 공부 안 해도 되고, 헷갈리는 이야기 안 들어도 되고? 안 계시면 정말 좋겠네? 손 들어보라. 상상이 안 갈 것이다. 리더의 부재는 이런 것이다.
모세에서 아론인데, 대체 리더라는 것이다. True leader에서 Substitution leader, 대체 리더이다. 이스라엘에 가시면 한두주 빠지는데, 대체 리더가 세워진다. 대체 리더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 한두주만에 돌아오면 좋겠지만, 무슨 사정이 생겨서 이스라엘에서 더 길게, 아니면 계속 사시면 당장 그 뒤에 있는 세라는 그날부터 울기 시작할 것이다. 순애 집사는 없으면 할 수 없지 뭐? 시영이는 생각만해도 울려고 한다. 대체 리더의 취약성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바다 목사님이 없을 때 베드로 목사님이 열심히 하지만, 전체적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땜빵만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책임지려고 하고, 이것저것 임명했다가, 다시 돌아오시면 왜 그렇게 했어? 대체 리더는 전체적으로 보는 관점이 없기 때문에, 권위와 조정 능력이 없다. 너는 이리로, 누구는 저리로 가라고 코디네이팅, adjustment 할 수 있어야 한다. 전체를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 배치를 하고, 이렇게 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이 있어야 하고, 각 사람들의 지파적 능력과 운명, 개인적 성취 수준, 지금까지 살아온 길, 이런 것들을 다 파악하고 있을 때 그 사람들을 배치할 수가 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권위이다.
이분이 굉장히 비권위적이시다. 봉숭아 학당하고, 배신자여, 노래도 잘 하신다. 봉숭아 학당이라는 것이 정말 토라적이다. 제가 열심히 봤다. 무식한 것. 엊그저께 진짜 랍비가 되셔서, 무식한 놈들은 화내지만, 봉숭아 학당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저질적인 것들로 보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진짜 웃음의 소재가 된다. 종교적이었을 때는 뭐 저런걸 보냐고 하면 내쳤는데, 토라의 사람이 되고나서는 이거야말로 토라다! 제가 열심히 봤더니, 바다 목사님이 드디어 전염이 되셔서 따라하고 계신다.
리더의 인정 실패 // 아버지 인정
리더가 있거나, 없거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리더의 부재란, 모세가 실제로 없었지만 리더에 대한 인정 실패이다.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저분이 아버지라고 다들 하는데, 난 도대체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들이다. 리더라고 하는 것을 리더라고 표현해서 그렇지만, 사실 리더는 중국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군사부일체라는 말 들어보셨는가? 임금, 스승, 아비이다. 맞는 말이고 이게 리더이나, 순서가 틀렸다. 히브리어로 가야한다. 부사군일체이다. 네샤마 생명에서 아버지이고, 루아흐 생명에서 랍비이고, 땅의 생명에서 왕이다. 이게 하나라는 것이다. 제가 그 사람을 리더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리더를 무엇으로 인정하시는가? 부사군으로 인정하시는가? 아니면 사군으로 인정하는가? 사 하나만 하시는가? 이분은 잘 가르치는 분이다? 스승 사이다? 인정하시는 분? 아마도 사는 인정하겠지만, 군에서 잘 안 올라가고, 부에서 올라가기가 정말 힘들다. 아버지의 인정이다. 사실 가장 높은 차원이 아버지 인정이라는 것이다.
엊그저께 저지 오름이라는 곳에 올랐다. 요새 산에 올라가면 제주도에 노루가 그렇게 많다. 순관이가 왔을 때는 노루가 네 마리가 나타났는데, 그제는 노루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자연과 조우하실 때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멀리 있는 것도 눈에 확 들어오면 메세지가 있는 것이기에, 눈을 뜨고 잘 보셔야 한다. 커다란 노루가 제 1미터 앞으로 확 지나가더라. 깜짝 놀랐다. 이 한 마리가 저만큼 가더니 돌아서더니 돌아보더라. 노루야 여기 좀 보라고 했더니, 고개를 숙이고 있길래 풀 한번 더 뜯어먹으라고 했더니, 막 뜯어먹는 것이다. 참 신기했다. 빙 돌아서서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2미터 앞에서 두 마리가 후다닥 또 올라가는 것이다. 결론은 산에서 노루가 한 마리를 보고, 두 마리를 봤는데, 뭔가 메세지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피조물들이 내 말을 듣네? 그런데 한 마리, 두 마리네? 결론에 딱 도달했다. 제주도의 노루들이 나를 אב 아브로 인정하는구나. 이 해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어떤 분들은 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아버지 인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인정하지 못한 상태, 모쉐가 없어서 대체 리더가 군사부 중에서 어떤 것으로도 인정되지 않은 상태가 되니까, 연약한 리더, 대체 리더가 있는 상태에서 연합적 하향이 벌어진다.
2) 연합적 하향 : Down grade - 아버지의 부재
- 각자도생 vs 유기적 생명력 <== 관점의 동질성 (비전의 일치) -> 아버지 지배 여부 - 공동 목표
진정한 리더가 없으면, 그 공동체는 반드시 Down grade된다. 반드시 그렇다. 강한 리더가 계속 끌어올리는 힘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바다 목사님이 여러분들의 전체 생명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으시는지, 토요일만 되면 토요일 신드롬에 걸리시는데, 제가 한번 설교하겠다고 하면 정말 행복해하신다. 그래서 사실은 이 아버지나 왕의 인정이 되지 않는, 겨우 사, 가르치는 사람으로만 인정하는 상태의 교회가 down grade된 것이다. 은사주의 교회에서 조금 큰 교회는 왕 같이 모신다. 왕 같은 목사님 제가 잘 안다. 그분 교회에 가면, 목사님 근처에 가지도 못한다. 목사님 주변에 까만 양복 입은 호위팀이 있어서, 근처에도 못 간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아버지 인정이 되지 않는, 아버지 인정에서 실패하면, 고아들의 모임이 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한다. 말이 우리이지, 잡족들이 잡스러운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다. 말로만 우리이지, 사실 각자 도생하기 위해서이다.
각자도생 vs 유기적 생명력 <== 관점의 동질성 (비전의 일치) -> 아버지 지배 여부 - 공동 목표
그 교회가 각자 도생하는 공동체인지, 유기적 생명력이 있는 공동체인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프로 축구팀에서 아주 잘 뛰는 사람 몇명을 데려다가 멋진 팀을 만들어보고자 돈을 많이 투자하지만, 그렇게 안된다. 왜 그런가? 각자도생이다. 자기 몸값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 어떠함만을 이야기하니까, 그렇게 안된다. 외인구단이라고, 초짜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모아놓으면서, 유기적 생명력, 함께할 때 보이는 Spirit, 이게 어디서 오냐면 관점의 동질성에서 온다. 비전의 일치이다. 비전이 일치되면 엄청난 파괴력, 에너지를 발휘하는데, 각자 도생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입장, 자기 것들만 이야기하기에, 힘이 없다. 개인은 근사할지라도 말이다. 항상 이것을 봐야한다. 이런 현상이 있는 곳에는 각자 자기의 어떠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데, 이것들이 에드, 장신구들이라고 한다
벤 다비드가 얘들의 필요는 보지 못하고 나의 어떠함을 보았다고 했다. 장신구들이다. 굉장히 중요한 관점이다. 이게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이 교회가 아버지로부터 지배를 받느냐 아니냐를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지배해서, 연결되어서, 군사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궁극적인 정체성에 대해서 어느정도 인정되어있고, 일치되어있고, 동질적이냐에 의해서 유기적 생명력의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의 소망에 대한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일치된 비전을 가지고 호흡하는 그런 공동체일 때, 숫자가 적어도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제가 쿠웨이트에 갔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제게 다섯 가정만 주십시요. 제가 아랍을 뒤집어 엎겠습니다. 이런식으로 기도했다. 저는 동질적 파괴 능력, Homogeneous power, 얼마나 동질적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공동의 목표를 가져야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지배하는데, 그 아버지가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에 얼마나 일치하느냐이다. 그 일치감, 동질감, 이런 것들이 교회에 생명력을 주기 때문에, 그 생명의 에너지들이 파워를 가지고 흘러나가는 것이다.
TDI에서 보면 자기 관점과 자기 장식물이 많이 있는 분들이 오셔서 놀라는 것은, 바로 이런 동질성에서 감동받는다. 요셉이도 있고, 하늘이, 순관이도 있고, 성원이도 있었는데, 아버지를 중심으로 같은 이야기들을 화기애애하고,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샤밭을 보여주는데, 이런건 처음봤다는 것이다. 마음이 확 녹아서,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는 분인데, 자기는 이런거 처음봤다고, 이스라엘, 샤밭, 수상해서 올까말까 하시다가 와서 보더니 마음이 활짝 열리셔서 교회가 이건데! 하시더라.
3) 금송아지 탄생 : 결과물 - 성급함 + 거짓 희생 (금고리)
= 관계 단절
- 대체 리더 -> 거짓 리더
이 필연에 의해서 금송아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금송아지 탄생은 결과물이다. 리더가 없고, 연합적 하향이 일어난 결과물, Consequence라고 한다. 군사부일체, 아버지가 없고, 리더가 부재한 상황에서, 그 사람들이 각자 도생하고, 탁월함이 있더라도 일체감이 있지 아니하고, 비전의 동질성을 보이지 못하는 그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그 결과물은 어쩔 수 없이 금송아지밖에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돈과 자기 이익은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금송아지라는 것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 성급함이 있고, 거짓 희생이 작동한다. 반드시 아버지와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성이 없을 때, 거기서 나타나는 것은 성급함이다. 성급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Humanity, 인간성의 가장 큰 특징이 성급함이다
출32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리더의 부재이다. 더디다. 성급함이 작동해서 백성이 아론, 대체 리더에게 말해서, 우리를 인도할 신, 나를 위하여, 각자 도생이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잡족이라는 말을 쓰지만, 중요한 것은 이 성급함으로 인해서 관계가 단절된다. 성급함은 관계를 단절시킨다. 기껏 맺었던 아버지 관계도 성급함으로 단절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아버지 인정을 하게되면, 모든 것이 다 될 줄 알았지만, 사실은 이 뒤의 과정들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성급함은 관계를 단절하게 하고, 사랑이 흐르지 못하게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성급함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성급하지 않아야 사랑을 할 수 있고, 관계를 세워나간다.
여러분들의 관계 수준은, 여러분들의 인내 수준이다. 식당 가는데마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거저거 짜르면, 갈 식당이 아무것도 없고, 같이 갈 친구도 없어서, 혼자서 그러고서 마음에 드는 인간, 식당 하나도 없다고 불평하는데, 어떻게 그러겠는가? 거꾸로 말하면, 자기의 인내가 없다는 것이다. 영원성을 모르는 인간들은 반드시 성급함 속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그 유명한 사랑은 언제나 오랜참고로 시작한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고, 그 오래참음으로 관계가 성립되고, 회복되고 세워지는 것이다. 성급하신가? 쟨 이래서 안돼? 혼자서 미미미, 존재를 다 규정해버리면서 끊어버리면, 남는 것은 혼자밖에 안된다. 주여, 주님만이 저를 아시지요 하면서 혼자 외롭게 기도하는데, 그것은 애처로운 것이 아니라, 멍청한 것이다.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금 고리
너희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 자하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가져와라. 관계가 없고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희생을 강요한다. 많은 교회들이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사랑이 없으니까 희생을 강요해서 가져오라고 한다. 가져오는 사람은 가져오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게 아니라, 관계, 생명, 사랑, 호흡도 없는데 드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드린다. 어떤 교회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없는 이 세대 교회 공동체의 어떠함을 말씀드리는 것이다.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대체 리더 -> 거짓 리더
대체 리더가 이제는 거짓 리더가 되어버린다. 인간들의 성급함이 작동해서 거짓 리더가 된다. 너무 심각한가?
4) 하나님의 진단 : 부패 + 네 백성
전 해부학을 좋아한다. 여러분들의 영혼을 해부해서, 낱낱히 뜯어발겨서, 어디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보는 것이다. 거짓 리더는 껍데기 리더이다. 껍데기 리더이다. 타이틀만 목사이고 선교사이다. 관계가 없고, 사랑이 없고, 인내가 없어서 어떤 것도 전체적인 관점으로 해결해주지 못하는 사람, 어떤 읽은 것만 앵무새같이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이다.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שׁחת 샤하트 : 부패하다 = 끝장나다
생명 자체가 파괴되어서 끝장난 상태이다. 네가 인도하여낸 네 백성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고 하지 않고, 네 백성이라고 한다. 쟤들은 나랑 상관이 없어. 끊어졌으니까. 관계가 단절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성급함은 관계를 단절시킨다. 인간적인 성급함은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이것저것 다 드시는데, 성급함으로부터만이라도 자유를 누리시기 바란다. 얼마나 성급한지 모른다. 성급한 사람들은 항상 호들갑을 떤다. 그러면 전 항상 호들갑 떨지 말고 잠깐만 있어보자. 어떻게 된거야? 언제까지 결정해야해? 2일의 시간이 있는거야? 알았다. 생각해보자. 기도해보자.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안봐도 비디오라고 한다. 뭘 안봐도 비디오인가?
עם קשה ערף 암 카쉐 오레프 : 목이 곧은 백성, Stiff Neck Syndrome
부패, 네 백성, 제일 중요한 것이 SNS이다. 이 사람들은 SNS를 좋아한다. Stiff Neck Syndrome이다. 목이 뻣뻣한 증후군이다. 암 카쉐 오레프. 오늘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단어이다. SNS, Stiff neck이다. 영어로 보면 Stiff neck people이라고 되어있다. 소아과에서는 목이 뻣뻣하면 큰일난다. 어린 아이가 열이 나서 왔는데, 목을 숙여봤는데 뻣뻣하면 큰일난 것이다. 죽을 때가 다 된 것이다. 죽은 시체 만져보셨는가? 목을 들어보면 쭉 끌어올려온다. Stiff한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진단인데, 정말로 금송아지의 무서운 점은 바로 이것이다. 네 백성이라는 관계 단절, 생명이 부패해서 끊어졌다, SNS, 목이 뻣뻣하다. Stiff neck syndrome은 또 다른 SNS로 바뀌는 Servent of Non-self이다. 똑같은 SNS라고 할지라도, Devine, 신적인 SNS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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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의 회복 과정 (From 금송아지) >
금송아지로부터 완전히 탈피해야한다. 금송아지가 나한테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큼의 축복은 없다. 여러분 안에 SNS가 있다는 것, 그것을 알아야 제거가 가능하다. 나는 목이 뻣뻣하지 않아!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지, 내가 왜 부패했어?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 자체가 가장 딱딱한 목이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하나님 제 목이 뻣뻣한지 아닌지 제 목을 진찰해주십시오라는 태도를 가져야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목이 뻣뻣한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목이 뻣뻣한지 아닌지는 병으로는 의사겠지만, 여러분의 아버지가 목을 진단하신다. 자기가 스스로 진단한다는 태도 자체가 목이 뻣뻣한 것이다. 오늘 예배끝나고 오셔서 진단받으시기 바란다.
1) 금송아지의 가루 : (과거) 책임직면 -> 회개 (돌아섬) = 바로 -> 모세
금송아지의 가루를 마시게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 금송아지로 인한 관계단절, 각자도생,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자기 책임을 인정하고 책임을 직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들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책임을 직면해야한다. 제가 그랬습니다. 내 책임입니다! 그 문제들에 대해서 아는만큼, 그것을 직면하고 내가 그 모든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겠습니다. 돌아서겠습니다. 이것을 슈브, 회개라고 한다. 돌아서는 마음의 태도이다. 나 이제 더 이상 그런짓 안하고 그런 곳에 안 가겠습니다. 마음의 태도와 자기 의지이다. 이것은 바로에서 모세를 향하여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바로가 방자하다고 한다.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פרע 파로 : 방자하다
백성이 파로하다. 하나님을 만나고 토라를 받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관계에 세워져있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모세의 제자가 아니라 바로의 제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바로의 제자됨, 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어 먹음으로써 마음을 돌리는 것을 말한다,
2) 여호와의 편 = 내 편 → ליהוה 라야훼 = אלי 알리
- 형제/친구/이웃 → 죽이라 = 완전한 단절
- 부분적 회복 = 약속 성취(+) + 동행(-)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여호와의 편은 내 편에 오라고 하시는 아버지편에 서는 것이다. 아버지 인정을 하면 이 편을 서기가 너무 쉽다. 나는 아버지 자식인데, 그 아버지가 내 눈에 어떻게 보이더라도 그 편에 설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으로만 보이면 설 수가 없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저 사람의 가르침이 이상해라고 왕 관계면 마지못해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면 자발적으로 서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었을 때만 자발적으로 그 편에 설 수 있다. 그 편에 서는 것이 מי ליהוה 미 라야훼,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아버지 편에 설줄 아는 사람이 야훼 편에 서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나에게 왜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나를 보는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예슈아를 본 것을 가지고, 예슈아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의식으로 말씀하시는데, 내가 당신의 육신을 봤지 언제 하나님을 봤어? 아버지를 보이라. 같은 이야기이다. 그래야만 다 죽일 수가 있다.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형제/친구/이웃 → הרג 하라그 : 죽이라 = 완전한 단절
그것이 바로 이웃을 하라그, 죽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관계를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네 육신의 관계들과 관계를 끊으라는 것이다. 내 육신의 생각으로 인해서, 내 육신의 관계로 인해서, 육신의 삶 가운데 있을 것으로 인해서 어떠한 것으로 맺어졌던 육신적 모든 상태들에 대하여 하라그하라는 것이다. 하라그는 높은 단계의 완전한 단절이다.
즉 사고체계가 완전히 바뀌라는 것이다. 무트는 그냥 단절이지만, 완전한 단절은 의식, 사고체계, 그들의 사고체계로부터 완전히 절단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야만 이 회복의 여정을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이것이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이것은 단지 부분적인 회복일뿐이다. 정말 힘들게 힘들게 이 일을 했겠지만 이것이 부분적 회복이다.
출33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부분적 회복 = 약속 성취(+) but 동행(-)
이 앞의 두 단계를 앞에서 모세가 명령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이다. 여기를 떠나서 그 땅으로 올라가라 , 쫓아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이것이 부분적 회복이다. 부분적 회복은 약속은 성취하시지만 동행은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얼마나 어렵게 왔는가, 결과물을 책임지고, 가루를 마시고 육신의 관계들을 죽이고 끝장내는 것도 힘든데, 이것이 단지 부분적인 회복이라는 것이다.
4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백성이 이 말씀을 듣고 우리 가겠습니다가 아니라 완전히 슬퍼하며 자기 몸을 단장하지 않는다. 자기 몸을 단장하지 않는 법을 드디어 배우는 것이다.
3) 장신구를 떼어내라(SNS) → עדי 에디 : 나의 증거, 장신구 → 내려놓으라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그래서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달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너희 가운데 한순간이라도 있으면 너희를 진멸할 것이다. 나의 속성자체는 목이 곧은 백성이 있으면 다 진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안 가는 것이 너희들을 위해서 유익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장신구를 떼어내라, 그러면 어떻게 할지 정하시겠다는 것이다.
עדי 에디 : 나의 증거, 장신구 → 내려놓으라
Stiff neck syndrome, 너의 장신구, 나의 증거, 내가 어떻게 해야만 보이는 것, 벤다비드 형제가 잘 설명해주었는데 내가 해야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굉장히 높은 수준의 깨달음이다. 이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아버지와 관계가 있어서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자하는 소망이 있는 사람들이 깨닫는 단계이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면 그런 것들에 대한 인지 능력이 없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니? 내가 청소해야하고, 내가 해야만돼라는 것이다. 나의 증거이다.
목이 곧은 사람은 반드시 자기 증거를 추구한다. 내 주관, 내 생각에는, 이 세상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내 주관, 내 생각, 내 주장만이 판치기 때문에 공부 많이 안한 사람들은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하면 그런가보다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공부한 사람들치고는 자기가 아무리 많이 공부했어도 자기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한 사람이 항상 있기 마련이고, 누군가가 그 위에 반드시 있어서 절대 관점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이 에디를 내려놓는 것이다.
동질적인 공동체가 되어가지고 자기의 증거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에디는 겉으로는 나의 주장, 나의 생각, 나의 어떠함, 내 해석 이런 것을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아버지 그것은 이상해요, 아버지가 절대적인 신이란 뜻이 아니다. 여러분의 아버지들도 실수를 하신다. 우리 바다 아버지가 얼마나 많이 실수를 하시는지 아시는가? 자기도 모르시는 말을 하신다고 한다. 그러면서 무식한 놈들!이라고 하신다. 저라고 다른 줄 아시는가? 똑같다.
무식하고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냐면 자녀들에 대한 포괄적인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담아서 하기 때문에 틀리고 맞고가 없다. 그 길에 대해서 하나님의 카파르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카파르가 아버지를 끌어올려서 아들도 함께 끌어올리는 것이다. 우리 영인 형제가 새롭게 취직을 하면서 면접을 했는데, 그 면접을 한 분이 회사 지부장이신데 당신에게 소개를 해준 이 사람하고 어떠한 관계인가요?라고 물었다. 영인 형제가 장민수 형제에 의해서 소개를 받아서 갔는데 그 사람이 물어본 것이다. 당신하고 장민수라는 사람은 어떤 관계입니까? 그러자 영인 형제가 1초도 안걸려서 그분은 제 아버지같은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힘이 거기서 드러난 것이다. 3개월 뒤에 출근하라는등의 조건 다 떼버리고 당장 출근하라고 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얼마나 능력있는지 아시는가? 정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들어가셨는가? 그래서 더 이상 목이 정말 굳지 않으셨는가?
עם קשה ערף 암 카쉐 오레프 : 목이 곧은 백성
오레프가 목이다. 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는가? 머리와 몸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와 몸을 어떻게 연결하느냐? ערף 오레프, 목에는 ע 관점, ר 의식이 있고 פ 말이 있다. 아버지가 보는 곳으로 목을 향하여 돌리고, 아버지가 목을 숙이면 아들도 숙이고, 아버지가 우를 보면 아들도 우를 보는 것, 이것이 부드러운 것이다. 요새 MZ세대가 부드럽지 않아서 이것을 잘 못한다고 한다. 인사하면서 숙이는 것을 못한다고 한다. MZ세대들은 시니어들은 보면 안녕하세요 인사하시기 바란다. 몰라서가 아니라, 가르쳐주는 아버지가 없어서 그렇다.
קשה 카쉐 : 딱딱한, 굳은 / עדי 에디 : 장신구
카쉐는 어떠함이다. 그래서 자기의 소망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형상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카쉐는 반드시 에디와 관계가 있다. 자기 것을 만들려고하니까 자기 것을 주장하고, 자기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것봐라, 저것봐라, 이렇게 해서 내가 학교나왔고 내가 상 받았고, 그래서 내가 훈장을 받았고, 그래서 암 카쉐 오레프는 훈장을 달고 다닌다. 자기의 어떠함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겉으로가 아니라 속, 내면적으로 작동하기에 목이 뻣뻣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의 속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의 장신구를 떼어내라, 장신구라는 것은 목이 뻣뻣한 것의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암 카쉐 오레프는 에디를 가지고 있다. 내가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를 했는데, 내가 어떤 신학교를 나왔는데, 그 뿐만 아니라, 그 이외에 다양한 사회적인 커리어를 가지고 자기 스스로 암 카쉐 오레프, 에디, 장신구를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떼어내는 사람들 사이에 내가 함께 있으실 수 있다는 것이다. 금송아지만 없앤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금송아지는 너무 중요한 증거이지만, 사람들 마음에 남아있는 목이 곧은 백성, SNS로서 부패한 백성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단은 하나님의 치료에 의해서만 해결이 된다. 그분이 그렇게 진단하셨기에 여기에서 처방전을 내리시는 것이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한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 있으면 너희들을 진멸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내라.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가, 금송아지 가루를 다 마시고 회개를 하고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고, 바로에서 모세로 돌이켜서 자기 친구, 형제, 이웃을 다 죽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겠다는 약속을 다 받았다! 그런데도 모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차선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차선이 아니라 최선을 찾으셔야한다. 차선이 아니라 최선을 찾기 바란다.
4) 내 등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에게 주의 영광을 보이소서라고 했더니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높여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다라고 하신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내 등을 보이신다. אחרי לך 아호리 레크, 내 등, 내 뒤를 따르라. 제자도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 기도
이 시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에 대한 메세지를 들었습니다. 키 티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을, qualify 그 자격을 부여하는, 그 자격을 부여받은 교회의 사람들, 그 증거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이지만 백성들에게는 큰 Gap이 있어서 하나님의 생각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급함으로, 거짓 희생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제 회복의 길로 들어섭니다.
우리가 이제 회복의 길로 들어섭니다. 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어 마시고 여호와편에 모세편에 서서 친구 이웃들을 죽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아니하고, 차선에서 일어나서 최선을 향하고 여호와와 함께 가기 위하여 결정합니다. 주님 우리가 장신구를 ֵ떼어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이 여정, 아버지와 함께하는 회복의 여정, 회개의 여정, 주님과 함께하는 여정을 같이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를 인도하여주시고 내가 이 길을 가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우리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목이 뻣뻣한 자이며 장신구를 덜렁덜렁 달고 다니는 자입니다. 오늘 그것을 깨달았사오니 주님의 진단을 받은 자처럼 주님의 처방을 받고 회복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소서, 이 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어서 다 마시고, 야훼 편에 모세 편에 서서 이웃을 죽이며 우리 안에 있는 장신구를 떼어내서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여주소서 여호와의 등을 보고 따라가는 제자삼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주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감사드리고 받아들이며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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