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과 달리 북경에도 눈이
자주 내려 설산 등산이 잦아 진다.
이미 최근 들어 아이젠을 착용한 산행만 서너 차례다.
지엔코에서 백용(白龍) 같은 장성 등을 걸을 때가 그러했고, 눈 내리는 봉황타를 오르며 서정 담긴 마을을 지나 계곡물 소리를
들을 때도 그랬다.
또 오래된 탑과 비석이 운무
속에서 공덕을 기리는 홍라삼험 또한 설경으로 가득 했다.
그리고 이번 등산지 남석양
대협곡은 이때까지 온 눈을 모아 놓은 듯해 히말라야 등정 같이 족적을 남겼다.
1주일간의 준비를 마치고 협곡 탐험을 위해
집을 나섰다.
밤과 낮의 그림자가 교대를
위해 거리에서 서성이고, 주변 사물은 어슴프레 하다.
그 사이를 가르며 늦은 듯한
시간을 뜀박질로 보충 한다.
50인승이 넘는 큰 버스는 태워야 할 사람들을
용케 알아보고, 적당한 인력으로 한 사람씩
끌어 들인다.
출발한 차에는 금일 산행을
안내할 핵심 멤버 한 분이 오지 않았다.
나는 맨붕 속에서 갈피를
잡기 위해 의견을 듣기도 하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 하기도 하며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 바빴다.
그렇지만 다른 회원들은 불만
없고, 동요 없이 기다려 주었다.
결정된 생각이 차량을 출발
시키고 얼마쯤 지났을 때였다.
전화가 울렸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개인 차량으로 출발 하겠다고 한다.
차량은 예정된 목적지에 도착해, 먼저 와 기다리는 야돈님과 함께 등산을 시작 했다.
남석양 협곡 가는 길은 빙판이
되어 뒤쪽 진변성 마을에서 올랐다.
워밍업 같은 산행 시작은
동네 골목들을 기웃 거리며, 집들을 들여 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가지런한 돌담은 산촌 마을 겨울 집안을 따뜻하게 에워 쌌고, 그
안에서는 가을에 추수한 밤 굽는 향기와 군 고구마 냄새가 모락 모락 피워 나는 듯 하다.
그러면서 찾은 들머리 길은 정상을 향해 꼬불 꼬불, 우리의 발길 보다 앞서 있다.
우리도 이 길을 따라 왼쪽에
펼쳐진 과수원을 허전하게 바라보며 질척한 발길을 옮긴다.
입구에는 소나무 세 그루가
푸르게 푸르게 하늘까지 닿을 듯 하다.
그 속에는 여름내 새끼를
길러낸 까치 둥지 몇 개가 이웃하며, 내년 봄날의 전성기를 기다리며
허전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갈길 바빠 내려올 때 더
자세히 보기로 하고 열심히 걸었다.
갈수록 깊어지는 눈길을 오르니
어느덧 필가산(笔架山)의 검은 모습 전체가 병풍처럼 펼쳐진 능선에 도착 했다.
그 모양은 이름처럼 붓 걸이 와 같다.
뒤쪽 위에서 비추는 태양은 최고급의 색상을 자랑하는 ‘블랙 마운틴’ 을 만들었다.
이 괴목(怪木)같은 산 경치에 반해 걸게(붓걸이)하나라도 다칠 세라 조심스럽게 카메라로 옮겨 담았지만, 사람의 눈 만 못하다.
생각 같아서는 그 자리에
백만평 만한 화선지 한 장 펼쳐 놓고, ‘매난국죽’ 멋들어지게 조화된 수묵화 한 폭을 그려 내고 싶다.
그리고 먹물 뚝뚝 떨어지는 붓을 번갈아 가며, 필가산 여기 저기에
턱턱 걸며 스케일 크게 천하를
호령하고 싶다.
작은 육신에 호연지기의 마음을 담으니 깊어지는 눈길도 알아서 꺼져 내리거나, 낭떠러지로 쓰러지며 길을 내준다.
잡목 늘어선 능선을 지나
계곡으로 접어 드니 큰 나무들이 서 있고, 그 아래에는 깊게 쌓인 백설이
산행 속도를 느리게 한다.
어떤 곳은 몸 무게를 간신히
견디며 꺼질 듯 말 듯 했으나, 대부분은 무릎 위까지 올라오며
얼음장 만한 눈덩이가 뚝뚝
떨어졌다.
12시 반이 넘어가는 시간이지만 마땅한 식사
장소가 없어, 앞이 훤한 능선을 조금 남겨 두고 4명은 올라
가고 나머지는 하산하며 식사 장소를 찾아 자리를 폈다.
깊게 쌓인 눈 위 식사지만, 좋은 날씨 때문에 겨울 정치 가득 담은 만찬이 되었다.
하산길!
올라 갈때 밟아 놓은 백설은 곤죽처럼 어스러졌고, 눈사태가 날것
같은 엄청 많은 양은 미끄러져도 아프지 않다.
그리고 낭떨어지에 있는 등산길은 햇볕을 받아 더욱 미끄러워
조심 조심 걸어야 했다.
그러한 곳을 지나니 올라갈 때 본 장성은 꼬마 병정도
넘을 수 있는 만큼 낮게 허물어졌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인 망루를 내세워 하산 길의 이정표가 된다.
그 아래 큰 소나무 옆에는 회원들이 모여 “소나무 집 주막”을 차려 놓고 술잔을 기울인다.
이에 맞추어 500년된 나무는 용 비늘 같은 껍질과 푸른 잎으로 하늘과 색깔을 견준다.
옆으로는 까마귀 한 마리가
지나가고, 논 두렁에는 이름 모를 산세가 눈 사이를 비껴 난다.
주모 없는 선술집의 백주가
비워질 때쯤, 즐거움이 가득한 주말 한때는 해와 함께 기울어 간다.
아쉬움으로 남은 남석양 대협곡은
해동된 어느 봄날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첫댓글 가 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아쉽운 마음 후기보며 달랩니다..
ㅋㅋㅋ 산행후기 잘 보고 갑니다~ 배신의 결과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