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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端의 追憶 #95, 파자(破字)풀이 盧光公
우리는 그를 늘 ‘선생님’이라고 깍듯하게 예우하면서 불렀고 따랐다. 평소에는 얼마나 인자하고 자상스러운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 성질을 부리면 그 노기가 황소고집이다. 이분에게서 세칭 동방교의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 3년만 있으면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고 지구가 멸망할 때 어떻게 해야 구원받는지를 세세하게 가르쳐주는 그야말로 우러러 뵈이는 불가침의 존재였다.
천국열쇠(지성,실천,복종,순교)를 비롯한 세칭 동방교의 교리며 교주 노광공의 여러 가지 전설같은 이야기들, 어줍잖은 주역풀이, 성경해석등 찾아가서 만나뵈면 이야기거리들이 무궁무진했다. 어린 나이에 나는 도취했고 소위 일류학교에 다니는 중학생이라고는 내가 유일했던 터라 세월이 흐르면서 적어도 부산의 '사상8교회'에서는 내가 김인경 입다목사의 수제자가 되었다. (이단의 추억 # 3, 세칭 동방교에 입교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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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절에 배웠던 파자(破字)풀이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세칭 동방교의 교주 노광공(盧光公)이라는 이름에 얽힌 파자(破字)풀이다. 노광공, 그는 교하노씨(交河盧氏)다.
노(盧)자의 파자
上 윗 상 --> 하늘을 말한다
丿 삐침 별 --> 하늘에서 땅으로 쭈~욱
내려온다는 뜻
七 일곱 칠 --> 칠대동안 도를 닦았다는 뜻
田 밭 전 --> 땅, 세상을 말한다
皿 그릇 명 --> 정성과 공을 쌓는 제단을
만들었다는 뜻
파자(破字)풀이--->하늘에서 한분이 땅으로
내려오셨는데 그분의 선조들이
땅에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쌓아 칠대동안 도를 닦아
이땅에 내려오게 되었다는 뜻.
칠대동안 도를 닦아 빌고빌어 얻은 성민
정화수를 떠다놓고 빌던 조부님
낙원세계 가는길이 굽이 굽이 몇만리
석양노을 성지앞에 이죄인 슬피웁니다.
(註. 칠대동안 도를닦아--노광공으로부터 그의 선조들 7대가 도를 닦아 성민들을 얻었다고 설파하곤 했었다.
(이단의 추억 # 42, 성가라는 노래 중에서)
광(光)자의 파자
丶 점 주 --> 성자
丨 뚫을 곤 --> 성부
丿 삐침 별 --> 성신
一 한 일 -->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
즉 하늘과 땅의 경계
亅 갈고리 궐--> 처음에는 땅으로 내려꽂혀
실패한다는 뜻(1차-예수)
乚 숨을 은--> 두번째는 실패하는듯 하나
결국 승리한다는 뜻(2차-이래)
파자(破字)풀이--->하늘에 계시는 성부,성자,
성신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 이땅에
두 번 오셨는데 1차로 오신 예수님은 이땅
에서 결국 실패하셨지만 두 번째 오신
이래(二來)는 실패하는듯 하나 결국은
글자의 획이 마지막에 끌어올려지듯이
결국은 승리한다는 뜻
공(公)자의 파자
八 여덟 팔 --> 팔도강산
厶 아무 모 --> 반모(네모의 반)
-->밧모, 밧모섬(계1:9)
파자(破字)풀이--->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그분은 팔도강산 반모의 땅, 요한이 계시를
받았던 밧모섬(계1:9)에 오시는데 말세의
밧모섬은 바로 동방의 반도땅 한국을
말한다는 뜻.
盧光公 = 그의 선조들이 7대동안 공을 쌓고 도를 닦아 팔도강산 반도땅 한국에 내려오게 되었는 처음 1차 예수님때는 실패했지 만 이번에는 실패하는듯 하다가 기필코 성공한다는 뜻.
동방교의 깊은 가르침, 파자(破字)풀이... 이만하면 얼마나 멋진 해석인가.
그러면 기필코 성공한다던 그의 결말을 어찌 되었던가...
세칭 동방교의 교주, 할아버지(?) 노광공은 지병인 당뇨합병증으로 이땅에 수많은 손자들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남겨두고 파란만장한 그의 생을 54세의 요절로 마감했으니 그때가 1967년 (음) 6월19일이다. 창조주 하나님(?)이요 재림의 구세주(?)였던 그도 영생불사 할것 같았건만 이땅에 무덤(자료 #1)을 남기고 사라지고 말았으니 세계적으로는 말할것도 없고 한국땅에만 해도 수백이 넘는 내노라 하는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의 수괴들과 하나같이 똑 같은 전철을 밟고 말았다.
(이단의 추억 # 36, 악령, 그리고 환생 중에서)
그로부터 2년후 그는 이단사설로 꾀어낸 이승의 수많은 손자들과 곧 불심판이 닥쳐 세상의 끝이 온다고 협박하면서 긁어모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을 남겨두고 자칭 재림의 주요 전지전능의 창조주 하나님이라던 그가 당뇨병 하나를 고치지 못하여 54세의 요절로 한많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으니. . . , 그때 보았던 타고있던 지프차의 번호는 ‘서울 자 3337’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정확한지는 자신이 없지만.
(이단의 추억 # 6, 할아버지와의 대화 중에서)
세상은 곧 멸망할텐데 금붙이며 패물, 재산이 왜 필요했던지, 세칭 동방교를 위시한 이땅의 모든 이단사이비 종교가 가정과 인격을 파탄시키면서 까지 재물을 탐하는 이러한 행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 생각하면 몇 번이나 태어나고 다시 죽어도 다 쓰지 못할 이 많은 돈을 긁어모아 소유하고 있는 이단사이비 교주들이 그것으로 과연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참 궁금하기 이를데 없다.
전지전능한 자칭 하나님(?) 이래 할아버지 노광공도 당뇨합병증이라는 자기의 병 하나도 고치지 못한 채 그렇게 긁어 모았던 재산을 모두 놓아두고 54세라는 많지않은 나이에 요절, 이승을 하직하여 한많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으니. . . , 멸망한다던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세월은 흘러 세상은 날로 발전하고 있었으니 눈길 한번 돌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으로 바라보았다면 금새 알아차릴 수 있는 이단사이비 요설에 어찌 몸을 맡기고 있었던지. . .
(이단의 추억 # 9, 담배가게 아들 소바더 중에서)
2대 교주 노영구는 국내의 세칭 동방교 조직을 원격 조종하며 지내게 되었다. 자칭 하나님이요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써 ‘성삼위 일체’(?)였던 그도 결국 자기몸의 병 하나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채 ‘파킨슨병’으로 이국땅에서 안타까운 그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원래 2대 교주 노영구는 발음이 시원찮고 말하는 것도 어눌해서 정상적이지 못한 면이 다분히 있었다.
미국에서 최신 의술로 온갖 치료를 다 해보고 좋다는 한약은 다 찾아 먹고 인도의 주술사까지 찾아가 병을 치료해 보고자 했으나 모든 것이 허사로 안타깝게도 63세의 단명으로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으니 그가 한줌의 재로 한국땅에 돌아오게 되었을때 과거의 신앙에 젖어있던 신도들인 구성민들은 한없는 절망에 빠져 통곡했고 과거를 모르는 새로운 신도들은 한줌의 재로 돌아온 그가 누구이길래 이토록 통곡하는가 의아해 했다.
충청북도 괴산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벌써 경기도 소래의 성지(?)에서 이장한 노광공을 위시하여 노영도, 노영구, 즉 <성부, 성자, 성신? > 삼위일체 3부자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으나 비밀에 부쳐져 있으며 세칭 동방교내의 신도들중에서도 극소수에게만 알려져 관리되고 있다.
(이단의 추억 # 71, 유스도, 김여사에 대한 소고 중에서)
이런한 시기에 이런것도 배웠다. .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구약성경 이사야 11장에 나오는 말씀이다. 구약 다윗의 기사에 등장하는 그의 아버지 ‘이새’를 세칭 동방교에서는 ‘이 사이’를 말한다(이새=이 사이)고 해석한다. ‘예수님과 세상의 끝(말세)’ 사이라는 이야기다. ‘이 사이’에서 한 싹, 즉 재림주, 노광공이 태어난다는 해석이다. 참 희한한 발상의 해석이다. 그야말로 기똥차다. 경화록에 기록되어 있는 엉뚱한 성경해석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단의 추억 # 2, 세칭 동방교의 주요 용어설명 중에서)
당시에 귀담아 배우고 들었던 세칭 동방교의 진리(?)중에 이런 대목도 기억이 난다.
정감록에 기록되어 있다는 예언 한토막,
민족상잔의 6.25동란이 터졌을때 살곳은 팔금산(八金山)을 찾아가야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팔금산(八金山)이 어디일까? 많은 사람들이 팔금산(八金山)을 찾아 헤메었지만 그 팔금산(八金山)은 바로 부산(釜山=八金山)의 파자(破字)였던 것이다.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찾아 헤메었던 사람들은 다 비참하게 죽었지만 그것을 깨닫고 부산(釜山)을 찾았던 사람들은 모두 살았노라. . .
그렇다면 말세지말(末世之末)의 살곳은 어디인가, 정감록에는 다시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곳이 과연 어디일까? 바로 십자가의 환난을 이겨낸 ‘좁은길’이라는 것이다. 세칭 동방교에서는 여러차례(1차 십자가, 2차 십자가, 3차 십자가. . .)의 십자가가 있는데 이는 모두 노광공과 관련된 간음, 혼음, 갈취, 감금, 폭행사건등으로 관계당국의 수사선상에 올라 피해다니고 잡혀들어가고 하던 사건들을 말하는데 모두 좁은길(동방교)에서 억울하게 당한 고난의 십자가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 . . 나는 위의 기사들에 관해서 전부가 다 이래조부님 (노광공)이 지신 십자가라고 가르침을 받았고 그것을 일말의 의심없이 굳게 믿었다.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억울하게 지신 고난의 십자가... 내가 끊임없이 받은 세뇌였고 내가 줄기차게 시킨 세뇌였다. 할아버지가 간음쟁이라고 해도 믿겠느냐, 사기꾼이라고 해도 믿겠느냐... 예, 믿겠습니다. 손들고 다짐하고 맹세했다. 수백번... 수천번...
(異端의 追憶-追19, 생사의 피안, 그리고 고난의 십자가... 중에서)
정감록에 이런 기록이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보지 못해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여하튼 그렇게 예언되어 있다고 했다.
일말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었던 것은 또 있다.
지금의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이 자리잡고있는 언덕의 아래쪽에는 기와를 덩그렇게 얹은 고가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는 동네가 있었다. 이곳에 세칭 동방교의 대기처가 한 곳 있었다. 본채와 사랑채가 있는 상당히 규모가 큰 한옥이었는데 번듯한 사랑채의 한 칸에는 성전이라 이름하여 제단이 모셔져 있고 이곳에 거주하는 대기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예배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 마당에서 언덕위를 쳐다보면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쳐놓은 국무총리 공관이 바로 머리위로 보였다. 마당이 건물 입구의 도로보다 한층 정도 지대가 높았기 때문에 출입은 대지의 왼편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걸어 올라가 세워진 솟을대문을 통하여 들어가게 되어 있었고 오른편으로 도로와 연접한 마당의 끝부분에 정자식으로 약간 튀어나오게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부속 건물이 하나 붙어 있었다.
이곳이 초기의 ‘청해’라는 월간 잡지와 주간지 다블로이드판 교계신문 ‘주간 기독교’가 출판 업무를 보던 장소이기도 하다. ‘청해’는 1대 교주 노광공의 ‘호’인데 이 이름을 따서 잡지를 발행하여 주로 군종교기관 중심으로 배포하던 월간잡지였다. 세칭 동방교의 신도들 중에서 몇명이 주로 이 잡지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곳 삼청동 대기처에서 잠시 기거한 적이 있는데 삼청동이라는 지명도 노광공의 선조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선조중에 노광공의 아버지 삼형제가 있었는데 이름이 각각 ‘자청, 지청, 군청’이었다고 한다. 그들 삼형제가 이 동네에서 살았다고 해서 삼청동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세칭 동방교에서는 선전되고 있었고 그때 나는 그것을 일말의 의심없이 굳게 믿고 있었다.
(이단의 추억 # 33, 거액도난사건,
일가족음독사건 중에서)
요즘도 누가 이런 교육들을 시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수도자과정’에서는 은밀하게 시키려나... 성가도 부르면서 교하노씨 조상신 섬기는 ‘차례제’와 함께...
아... 미망의 시절...
첫댓글
동방교를 비롯한 이단들의 특징은 세상의 갖은 요설들을 자기네 것으로 만들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이 발달하여 거짓말이 통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동방교에서는 서울 삼청동을 노광공 부친 3형제의 호(군청, 자청, 지청)를 따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인터넷에는 3개의 산과 물, 그리고 인심'이 맑다는 의미에서 '山淸', '水淸', '人淸'이라고 하여 삼청동이 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